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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시네바캉스 서울/Review

마이클 치미노의 '대도적'

옥수수밭 한 가운데의 교회. 머리를 얌전하게 빗어 넘긴 목사 썬더볼트(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근엄하게 설교를 하고 있다. 그러다 마치 타란티노의 <킬빌2>(2004) 한 장면처럼 중년의 사나이가 교회로 들어와 목사를 향해 총을 쏘기 시작한다. 엉겁결에 달아나던 목사는 라이트풋(제프 브리지스)의 차를 얻어 타게 된다. 썬더볼트는 목사가 아니라 전설의 은행 강도이며, 한국전에서 돌아와 그저 백수로 지내는 말썽장이 라이트풋은 이제 막 그 차를 훔쳐 달아나는 상태였다. 그때부터 두 사람의 이상한 여행이 시작되고, 곧 또 다른 두 남자 레드 리어리와 에디 구디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그들은 썬더볼트가 돈을 빼돌렸다고 굳게 믿는 남자들이다. 그렇게 사기꾼이 목사로 행세하는 교회는 낯선 사람에 의해 난장판이 되고 훔친 차는 떠돌이 남자들의 발이 된다. 그런 간략한 얼개만으로도 마이클 치미노는 한국전쟁 이후 미국의 황량한 풍경과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 쓱쓱 써나간다. 영화가 사기꾼이 설치는 교회에서 시작해 돈이 숨겨진 학교에서 끝나는 것도 무척 의미심장하다.

영화 속 에디의 말을 빌자면 (영화의 원제이기도 한) ‘썬더볼트와 라이트풋’은 ‘멍청한 마을의 이상한 녀석들’이다. 세르지오 레오네의 ‘무법자’ 캐릭터는 물론 직전까지 <더티 해리2: 매그넘 포스>(1973)를 성공시키며 ‘더티 해리’ 캐릭터까지 덧씌운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역시 <배드 컴패니>(1972)에서 사기꾼 역할을 훌륭하게 해낸 ‘젊은’ 제프 브리지스는 기존 캐릭터 이미지와 맞물려 매력적인 시너지 효과를 낸다. 총이 있음에도 굳이 맨손 대결을 자청하는 레드, 전혀 도움이 안 돼 늘 구박만 당하는 운전수 에디 등도 이상하긴 매한가지라 <대도적>은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기이한 강탈영화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얼떨결에 힘을 합치게 된 네 남자는 금고를 털기 위해 머리를 맞대게 된 것. 사실 별다른 이유 없이 제프 브리지스가 여장을 하면서까지 세밀하게 준비하고, 거대한 박격포가 등장하는 금고 파괴 장면에 이르기까지 그 범행 과정 역시도 여타의 강탈영화와 비교해도 독특하다.

<대도적>은 마이클 치미노가 이후 만든 <디어 헌터>나 <천국의 문>과는 큰 연관관계를 찾아보기 힘든 버디무비다. 어쩌면 영화평론가 로빈 우드의 얘기처럼 “<디어 헌터>나 <천국의 문>을 만들 만한 야심과 대담함을 예상할 수 없었”기에 더 흥미로운 영화가 바로 <대도적>일지도 모른다. 변칙적인 내러티브와 배배 꼬인 장르적 컨벤션, 그리고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제프 브리지스가 만들어낸 생생한 캐릭터가 그야말로 톡톡 튄다. 1960년대 말 <이지 라이더>(1969)와 <미드나잇 카우보이>(1969), 그리고 <내일을 향해 쏴라>(1969)를 통해 결정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남성 버디무비는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제리 샤츠버그의 <허수아비>(1973), 로버트 알트먼의 <캘리포니아 스플릿>(1974) 등으로 이어졌는데 로빈 우드는 <대도적>을 위 두 작품과 한데 묶으며 “기존 버디무비들을 통해 확립된 원칙들의 변종으로서 가장 뛰어나고도 특이한 작품 중 하나”라고 말했다.

오랜 세월만큼 반가운 얼굴들도 많다. <총알 탄 사나이> 시리즈의 또 다른 할아버지로 기억되는 조지 케네디를 비롯, 제프 브리지스가 처음으로 유혹하는 여자로는 TV 시리즈 <듀크 오브 해저드>에서 섹시한 데이지 듀크를 연기했던 캐서린 바하, 제프 브리지스와 잠깐 일을 같이 하는 단역으로 게리 부시가 출연한다.

글/주성철(씨네21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