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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Review

[리뷰] 헝가리 영화에 대한 오해를 넘어서 - 유운성 평론가의 선택 <신밧드> <러브> <또 다른 길>

 

상영작 리뷰

헝가리 영화에 대한 오해를 넘어서

유운성 평론가가 선택한 헝가리 영화들

 

헝가리 영화는 여전히 한국의 영화관객들에겐 낯선 영역으로 남아 있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영화의 중추를 이룬다고 간주되는 지역들은 차치하고라도, 같은 동유럽 국가영화들과 비교해 봐도 체코나 폴란드 그리고 최근의 루마니아 영화 등에 비해 영화제나 시네마테크에서 소개되는 빈도도 훨씬 낮다. 물론 여기엔 몇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역사적으로 주도권을 쥐고 있었던 프랑스와 영국, 그리고 미국의 영화비평 담론들이 형성해 놓은 역사적 정전(canon)들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영화 저널리즘과 영화 프로그래머들의 한계를 먼저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도 한국에서 헝가리 영화는 1960년대 유럽 모더니즘 영화의 맥락에서 수용 가능한 작품이나, 당대 서구 영화제와 저널리즘에 의해 승인된 소수의 걸작 - 주로 A급 영화제에서의 수상이나 연말 베스트 리스트가 그 기준이 된다. - 의 범위를 넘어서 이야기되는 법이 거의 없다. 또한, 미클로슈 얀초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모더니즘 미학을혁명적’으로 계승했다거나, 얀초를 계승한 벨라 타르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수직적 영성을 수평적 물성으로 전화했다는 식의 비평은, 그간 헝가리 영화가 우리에게 익숙한 다른 서구영화의 틀을 빌려서만 수용되고 이해되어 왔다는 증거에 다름 아니다. 얀초와 타르가 현대 헝가리 영화를 대표하는 거장들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한국에서 간헐적으로 소개되었던 이슈트반 사보나 마르타 메사로슈를 잠시 논외로 한다면) 이들의 영화 주위만을 맴도는 과정에서 형성된 헝가리 영화에 대한 모종의 그릇된 편견 - 예컨대, 대평원을 무대로 한 알레고리적 서사를 담아내는 롱테이크 미학 - 이 강고한 영화적 전통을 갖고 있는 이 동유럽 국가의 영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과도하게 좁혀 버렸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여담으로 덧붙이자면, <카사블랑카>(1942)로 잘 알려진 마이클 커티즈는 헝가리 출신의 망명 감독으로, 그는 무성영화시기 헝가리와 오스트리아에서 수십 편의 영화를 연출한 베테랑이었다. 그의 헝가리식 이름은 미하이 케르테스이다.)

 

 

이상과 같은 상황이 단번에 개선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번에 소개되는 세 편의 작품은 헝가리 영화에 대한 그간의 오해와 편견을 바로잡기 위한 최소한의 기회는 제공해 줄 수 있으리라 본다. (아쉬운 점이라면 헝가리 아방가르드 영화를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자, 벨라 타르가 얀초와 더불어 가장 존경하는 헝가리 감독으로 꼽곤 하는 가보르 보디의 3부작 영화 <나르시스와 프시케>(1980)를 상영시간(270) 문제로 프로그램에 넣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헝가리 평론가들이 가장 사랑하는 영화들이기도 하다. 21세기가 시작되던 2000, 헝가리 평론가들을 대상으로 역대 최고의 헝가리 영화 12편을 꼽는 설문이 이루어졌을 때, 1위를 자치한 것은 얀초의 <검거>(1965)였고, 이에 뒤이어 각각 2위와 3위를 차지한 작품이 바로 같은 해(1971)에 발표된 카로이 마크의 <사랑>과 졸탄 후사릭의 <신밧드>였다. (타르의 의심할 바 없는 걸작 <사탄탱고>(1995)가 순위에서 빠진 것은 좀 기이한 일이다.) 지면 관계상 이 글에서는 이번에 상영되는 작품들 모두를 다루기보다는 헝가리 뉴웨이브를 논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기관인 벨라 발라즈 스튜디오를 소개하고 <신밧드>의 감독 졸탄 후사릭의 영화세계에 대해서 약술하려 한다.

헝가리 예술평론가 벨라 발라즈(1884~1949)의 이름을 딴 벨라 발라즈 스튜디오(이하 BBS로 표기)가 설립된 것은 1959년으로, 처음에는 영화인들의 친목을 위한 필름클럽으로 출발했지만 1961년부터는 영화제작을 위한 설비를 완비하고 젊은 영화인들에게 자유로운 방식으로 실험적인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독립 스튜디오로 거듭났다. 이 스튜디오에서 작업한 영화인들이 후일 영화산업계로 흘러들어가면서 새로운 헝가리 영화의 물결을 이끄는 주역들이 되었는데, 그 가운데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들이 바로 이슈트반 사보와 벨라 타르다. (1960년대 초 사보의 초기단편들은 BBS에서 제작된 것이었다. 타르의 단편들에서 가능성을 본 BBS는 당시 22세에 불과했던 그가 장편데뷔작 <패밀리 네스트>(1977)를 만들게끔 자금을 댔다. 앞서 언급한 가보르 보디는 BBS의 핵심적인 멤버 가운데 하나였고 그의 데뷔작 <아메리칸 토르소>(1975) 역시 BBS에서 제작되었다.)

 

 

 

BBS 초기라 할 1960년대에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작품 가운데 하나가 졸탄 후사릭의 19분짜리 실험영화 <엘레지아>(1965)였는데, ()을 소재로 삼아 문명의 의미를 탐색하는 이 단편에서 구사된 시적 몽타주는 사실주의적 스타일이나 (당시 이미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던) 얀초의 알레고리적 영화와는 차별화된 헝가리 영화미학의 길을 예견케 하는 것이었다. 그가 BBS에서 연출한 다른 단편 <카프리치오>(1969)는 시간의 흐름과 그에 수반되는 변화를 눈사람을 매개로 그려낸 또 한 편의 영상시였다. 폭넓게 말해, 변화와 소멸을 피할 수 없는 인간존재가 경험하는 현상학적 시간과 가차 없이 흘러가는 물리적 시간 사이의 대비에서 비롯되는 긴장이야말로 후사릭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주된 모티프라 할 수 있으며, 이는 20세기 초 헝가리의 모더니스트 작가 기울라 크루디의 원작을 각색한 후사릭의 장편데뷔작 <신밧드>에서 그의 시적 스타일과 거의 완벽하게 결합되었다. (죽기 직전의, 혹은 이미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 방탕아 주인공의 회상을 따라 흘러가는 이 영화에서 과거, 현재, 미래를 가늠케 하는 시간적 지표들은 점점 무의미해지고 영화는 경험적 시간의 결정(結晶)이라 할 만한 인상의 총체로 화한다. 후사릭이 <신밧드>를 발표했을 때 그의 나이는 이미 40세였다. 그리고 그가 두 번째 장편 <촌트바리>(1980)를 내놓기까지는 또 10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이 영화의 상업적 실패로 좌절한 그는 술독에 빠져들었고 결국 이듬해(1981)에 세상을 떠났다. <신밧드>는 자국 내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국제적으로는 소수의 영화제 상영을 제외하고는 거의 소개되지 않았고 - <신밧드>와 같은 해에 발표된 카로이 마크의 <사랑>은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어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 21세기에 들어서야 영국을 비롯한 영어권 관객들에게 소개되며 재조명되었다. 그리고 영화가 처음 발표된 지 40년이 넘게 지난 2013, 마침내 한국의 관객들도 이 비운의 걸작을 마주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유운성 /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