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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서울아트시네마 개관 10주년 기념 존 카사베츠 회고전

[리뷰] 존 카사베츠의 '남편들'

삶과 죽음과 자유에 관한 코미디

- 존 카사베츠의 <남편들>

 

 

 

<그림자들>이 없었다면 뉴할리우드의 시작은 좀 더 늦게 시작됐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뉴아메리칸시네마의 시작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존 카세베츠는 새로운 영화 청년들과 다른 길을 걸었다. 젊은 감독들이 스튜디오의 초대를 넙죽 받아들일 때, 카사베츠는 스튜디오에 맞서고자 몸부림쳤고, 젊은 감독들이 현실 바깥에서 방황하는 청춘에 매달릴 때, 카사베츠는 현실의 문제를 고스란히 안고 살아야 하는 중년의 인물을 다뤘다. 카사베츠는 동시대의 문제적 관계의 축소판인 부부 관계를 즐겨 그렸는데, <남편들>은 카사베츠의 가족 드라마를 대표하면서도 (<투 레이트 블루스>가 그렇듯) 한동안 관객들이 만나기 힘들었던 작품이다.

 

 

1969년에 찍어 1970년대의 시작점에 공개된 <남편들>은 이상한 가족 드라마다. 가족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부인과 아이들은 영화에서 거의 지워져 있다. 오히려 남편들의 모험담에 더 가까운 <남편들>은 <행오버>의 거친 선배 같다. 1970년대의 가족문화를 반영하거나 예견한 작품들 - <밥과 캐롤과 테드와 앨리스> 유의 드라마, <아메리칸 패밀리> 유의 TV쇼, <토끼> 시리즈 유의 중산층 남자 소설 - 과 비교해, <남편들>은 이후 다가올 것들에서 의도적으로 달아나려고 한다. 가족 깊숙이 현미경을 들이대고 부부관계를 냉소하고 숨겨진 진실을 까발리는 태도는 <남편들>에 없다. 친한 친구의 장례식에 참석한 세 남자가 집과 직장에서 벗어나 멀리 영국으로 무작정 떠나는 것처럼, <남편들>은 집으로 돌아가기를 꺼리는 어린아이의 얼굴을 지닌 영화다.

 

카사베츠는 <남편들>이 아주 개인적인 영화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서른 살에 죽은 형을 기억했고, 영화에는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이 초래한 정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줄곧 술에 취한 세 남자는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것으로 슬픔을 달래려 한다. 그들의 행동은 때때로, 아니 대부분 어리석다. 번듯하게 살아가던 세 남자는 느닷없이 정신 나간 행동에 빠지면서 전형적인 카사베츠의 인물로 화한다. <삶과 죽음과 자유에 관한 코미디>라는 부제를 단 <남편들>은,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의 특성이 그대로 극의 전개 방향을 지시하는 카사베츠 영화의 대표적인 예다. 시작부에서 세 남자가 동의한 선언 - “집에 가지 않겠어” - 은 영화를 이끌어가는 동인임과 동시에 세 남자의 내면을 옭아매는 짐이다. 그들은 뉴욕과 런던 사이를 오가는 게 아니라, 집으로 돌아가는 것과 집으로부터 멀어지는 것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그들은 왜 집으로 가지 않을까, 그들에게 돌아갈 집이 존재하기는 할까. 결국 공항에서 급히 구입한 선물꾸러미를 들고 집 앞에서 서성이는 두 남자(한 남자는 어디로 갔을까)의 모습이 시리다. 아이가 덤덤하게 내뱉는 “엄마, 아빠 왔어”라는 말은 그들 - 남편들에게 엄숙한 선고로 들린다.

 

남편이란 존재들이 중년의 모퉁이를 돌며 느끼는 불안감, 죄책감을, 카사베츠는 <남편들>을 통해 전한다. 기실 <남편들>과 <행오버>는 다르다. <행오버>가 사라진 (곧 결혼할) 남자를 찾는 친구들의 이야기라면, <남편들>에서 실종된 자는 (오래 전에 결혼한) 그들 자신이다. 당연히 누군가를 찾는 결말 따위는 없다. (이용철 /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