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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Review

[리뷰] 전형적 장르문법과 작가적 야심의 기묘한 충돌 - 알란 파커의 <페임>

상영작 리뷰

전형적 장르 문법과 작가적 야심의 기묘한 충돌

- 알란 파커의 '페임'

 

시장통과 다름없는 예술고의 오디션 장면에서 영화는 시작한다. 더없이 진지한 얼굴로 자신과 어머니의 관계를 얘기하다 선생의 눈치를 보는 몽고메리의 자기소개에서 시작한 화면은 곧 무용과와 연기과, 음악과에 응시한 아이들의 실기시험 장면들을 빠른 속도로 훑는다. 그리고 지원서조차 제대로 내지 않은 아이가 오로지 실력으로 높은 점수를 얻어 합격하는가 하면 이른바 ‘문 닫고 합격’을 하는 아이도 있고, 친구는 붙었는데 자신은 떨어지자 온갖 저주의 말을 내뱉으며 눈물과 함께 퇴장하기도 한다. 도대체 왜 이 학교에 지원한 것인지 잘 모르겠는, 춤도 악기도 잘 다룰 줄 모르면서 무용과와 음악과를 차례로 순방했다가 결과적으로 연극과에서 합격한 아이도 있다. 이렇게 높은 경쟁률을 뚫고 예술고에 합격한 이들의 4년을 다루는 영화가 바로 <페임>이다. 영화는 이 중에서도 연극과의 3인방 맥닐리와 도리스, 랄프, 그리고 무용과의 리로이와 코코, 음악과의 브루노 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페임>에 대해 “꿈을 가진 10대 예비 예술가들의 좌충우돌과 좌절과 성장” 운운하는 건 너무 뻔한 소개가 될 것이다. 그보다, 영화평론가 구회영이 그의 저서에서 80년대 할리우드 영화의 가장 큰 특징으로 ‘장르의 해체’를 지적한 면을 상기하고자 한다. 어쩌면 이 영화야말로 애초 ‘뮤지컬’ 제작을 염두에 두고 기획되었으면서도 전형적인 뮤지컬 공식은 한사코 피하며 ‘장르의 해체’ 경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10대의 방황과 성장을 다룬 점에서 청춘영화로, 예술고가 배경이라는 점을 십분 활용해 뮤지컬 장르의 전매특허라 할 만한 잼 공연 장면이 두 시퀀스나 삽입돼 있다는 점에서 뮤지컬로 볼 수도 있다. 특히나 이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제가상을 차지하기도 한 아이린 카라의 주제곡이 큰 인기를 끌었는가 하면 그녀가 직접 주인공 중 한 명으로 나서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부 ‘전형적인 외형’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결코 ‘전형적인 장르영화’로 이어지지 않는다. 특정한 한두 명이 아닌 다수의 주인공들이 무더기로 등장하는 캐릭터 구성, 영화의 클래이막스가 될 만한 중심적인 사건 대신 이들의 4년의 일상적인 학교생활을 스케치하듯 그려나가는 이야기 구조, 그리고 이를 위해 이들의 소소한 사연들을 빠르고 훑고 교차시키는 편집.

 

결정적으로, 이 영화의 두 번의 잼 공연 장면은 한 번은 일부 주인공들의 참여 거부와 황급한 퇴장으로, 또 한 번은 주변 인물들의 격렬한 항의와 싸움으로 이어진다. 뮤지컬 공연 장면의 전형적인 대단위적 ‘동화와 참여’ 대신 ‘불화와 방해’로 마무리되는 것이다. 이는 시퀀스를 넘어서, 전형적인 상업적 장르영화의 외피와 작가적 야심이 기묘하게 충돌하고 부조화를 이루며 오히려 독특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이 영화의 전체적 특성을 만들어낸다. 그렇기에 다른 영화도 아닌 <록키 호러 픽쳐쇼>를 이 영화가 중요하게 인용하는 장면이 더욱 의미심장해지는 것이다.

 

김숙현 /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코디네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