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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전/스타일의 혁신: 닛카츠 창립 100주년 스즈키 세이준 회고전

[리뷰] 이치카와 곤 <나 홀로 태평양>

거기에 영화가 있기 때문에, 전진

 

1962년 5월 12일 밤, 니시노미야 항구에서 한 사내가 몰래 배에 오른다. 분명한 목적 없이는 출국이 금지되었던 시기다. 그렇다면 남자는 몰래 어딘가로 도피하려는 중일까. 아니면 비밀리에 어떤 임무를 수행 중일까. 어느 쪽도 아니다. 남자는 혼자 힘으로 태평양을 건너고 싶었다. 단지 그뿐이다. 하지만 그 단순한 목표가 아주 절대적이어서, 이 영화에 충분한 동력을 제공한다. 짐작하겠지만 거기에 대단한 이야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대개는 남자가 배에 오르기까지 거쳐 온 시간을 되새김질한 것들일 따름이다. 심지어 이야기는 때때로 한 자리를 맴맴 돌고 있는 듯하다. 바람 한 점 없는 날 망망대해에 떠 있는 남자의 배처럼 말이다. 모터가 달려있지 않은 배의 운명은 오직 바람의 주관이다. 바람이 그를 목적지까지 데려다줄까. 예측할 수 없는 날씨,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의 작용 속에서 남자는 샌프란시스코 해안을 향해 계속 나아간다.

2008년에 타계한 이치가와 곤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일관성과 거리가 멀다. 오즈 야스지로나 구로사와 아키라 같은 앞 세대 거장들과 비교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사회적 논평이 짙은 드라마, 밝고 경쾌한 장르물, 인간의 욕망에 천착한 이야기가 아무렇지 않게 공존한다. 그들을 관통하는 공약수를 찾기란 쉽지 않다. <나홀로 태평양>도 그의 다른 영화들과 어떤 방식으로 묶인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보트 안에서 홀로 세 달을 버텨내는 남자의 고독을 이미지와 사운드의 배치를 통해 설득시키고 남자의 눈앞에 놓인 자연을 한 폭의 그림으로 담아내는 능력을 보면, 그가 스스로를 화가로 생각했던 완벽주의자였음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는 있다.

남자의 항해에 대한 몰두는 감독의 영화에 대한 몰두를 떠올리게 하는 면이 있다. 남자는 감독이 영화를 준비하듯 출항을 준비한다. 배의 설계도를 찾고, 그 배를 완벽하게 지어줄 기술자를 섭외하고, 관계된 사람들의 동의를 구하고, 항해에 필요한 물건들을 빠짐없이 챙긴다. 실제로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 조금이라도 숙지하고 있는 이라면 그것이 집단적 노동의 산물임을 알 것이다. 그러나 재미있게도 이 영화에서 그 과정은 개인적 고독의 산물로 이해된다. 감독이 자신이 원하는 장면을 얻기 위해 기다려야 하는 시간, 설득해야 하는 사람들, 지출해야 하는 비용은 적지 않다. 그 때 감독은 매번 자신과의 싸움을 벌여야할 것이다. 하지만 남자에게 태평양이 거기에 있듯, 감독에게도 영화라는 ‘목적지’가 거기에 있기에 그는 계속 전진한다. 그 불안하지만 우직한 운동성이 이 영화에도 있다. 그리고 그 점이 이 영화를 극히 단순하지만 힘 있게 한다.

가장 놀라운 것은 마지막 장면이다. 남자는 드디어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다. 그는 태평양을 횡단한 첫 일본인이었기에 엄청난 환호를 받는다. 하지만 그에게 주변의 관심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는 목적지를 통과했고, 그 사실이 제일 중요하다. 그제야 그는 피곤을 느낄 수 있다. 어머니로부터 걸려온 전화도 받지 못할 만큼 잠에 빠진 그가 침대에 코를 파묻으면서 영화는 끝난다. 극심한 노동 끝에 허락된 평온의 시간. 그 간명한 결말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체험케 하는 작품이다.

 

글/ 이후경(씨네21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