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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이마무라 쇼헤이 <인류학 입문>

수컷과 암컷의 관계, 그 풀 수 없는 삶의 비밀

 

수부는 음화(淫畵)를 팔아서 먹고 사는 사내다. 그는 미망인 하루의 집에 하숙 들어 살며 그녀와 애인 사이로 지낸다. 하루의 아들 코이치는 엄마 품에 안겨 수부에게 돈을 뜯어내려 한다. 딸 케이코는 수부의 음탕한 시선을 거절하지 않는다. 이마무라 쇼헤이를 잘 아는 관객이라면 예상하겠지만, 사실상 가족처럼 살아가는 이 네 사람 사이에 어떤 일정한 질서는 없다. 그가 오즈 야스지로의 조감독을 거쳤으나, 사부의 정연한 세계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그로부터 떨어져 나와 자신 만의 길을 찾아 떠났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의 세계는 어지럽다. 인간의 욕정 때문이다. 그 욕정이 오즈의 세계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마무라의 세계에서는 종종 자연적 상태 그대로 노출되어 있어 잦은 충돌을 빚는다. 수부, 하루, 코이치, 케이코, 네 사람의 욕정이 일으키는 작용과 반작용은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끝내 부수어버린다.

“그 누구도 수컷과 암컷의 관계를 이해할 수 없지.”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조수를 앞에 두고 수부는 말한다. <인류학 입문>에서 탐구의 대상은 수컷이나 암컷으로서의 인간이다. 수컷과 암컷 외의 명명법은 허울에 불과하다. 특히, 아버지, 어머니, 딸, 아들처럼 가족적 위계 내에 자리 잡고 있는 호칭은 제대로 정박하지 못하고 늘 불안하게 떠돈다. 딸이 어머니가 되기도 하고, 남동생이 아들이 되기도 하며, 여동생이 아내가 되기도 한다. 이마무라의 현미경에 포착된 세계에서 가족이라는 기계는 작동을 멈추고 인간들 사이에는 욕정의 난반사가 일어난다. 그렇게 성과 욕망은 모든 문명적 조리에 선행하고, 포르노그래피는 인간에 관한 학문이 될 수 있다.

들여다보다. 그것은 이마무라 식 인류학의 중첩적 구조를 특징짓는 행위다. 수부가 만든 포르노그래피는 동시에 수부에 관한 포르노그래피다. 하루가 죽은 남편의 환생으로 여기며 매일 들여다보는 잉어도 동시에 매일 하루를 지켜보고 있다. 렌즈의 안쪽과 바깥쪽이 뒤바뀌면서, 삶과 영화적 기록의 경계도 얇아진다. 이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수부에게 제작비를 대려는 의사 양반의 이야기에서도 나타난다. 남자의 욕망은 영화 속으로 흘러들고, 영화 속 사태는 남자에게로 전이된다. 인물들은 주체와 대상의 자리를 끊임없이 헤맨다. 다만 그 과정에서 더욱 혹독하게 시달리며 그 과정을 더욱 씩씩하게 견뎌내는 쪽은 여자들이다. 그들은 남편 혹은 아버지 자리에 대신 앉게 된 남자를 그 자리에 붙들어 놓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생명체로서 남자와 여자가 만나는 것이다. 그들에게 어떤 질서가 기능한다면 유일하게 가능한 것은 바로 그런 동물적 질서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수부는 하루를 닮은 인형과 함께 태평양 바다로 흘러든다. 그는 그녀에게 털을 심어주며 아파도 조금만 참으라고 말하지만, 하나의 고통이 끝나면 또 다른 고통이 시작될 것이라고도 말한다. 그리고 그것이 삶이라고 말한다. 섹스를, 고통을, 살아있음의 증거로 받아들이며 견뎌나가는 것.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본들 명쾌하게 이해하거나 답을 내리기 어려운 것. 욕정에 젖은 인간이 삶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일 뿐이라고, 누군가 말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 순간 태평양 바다가 경쾌하고도 무심하게 일렁이며 이쪽을 내다보고 있다.

 

글/ 이후경(씨네21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