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 16. 15:32ㆍ2015 10주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Review
변영주 감독의 선택 <부퍼의 계곡에서>
The Neo-Fascist Trilogy: I. In the Valley of the Wupper
1994│96min│이스라엘, 프랑스, 영국│Color│Beta│15세 관람가
연출│아모스 기타이 Amos Gitai
상영일│ 1/18 19:00, 1/31 13:00, 2/6 15:30
“다큐멘타리는 자기 고유의 문법과 미학의 균질함을 추구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렇다는 것
을 1993년 이 영화를 보며 나는 확신했다.”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아모스 기타이의 화법
1950년에 이스라엘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모스 기타이는 초기작인 <집 The House>(1980)과 같은 작품들에서부터 이미 이스라엘의 문제를 직간접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집>을 포함해 레바논 전쟁(이스라엘이 1982년에 레바논과 벌인 전쟁)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현장 일지 Field Diary>(1982) 등이 대표적이며, 이후로도 그는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오가며 이스라엘의 현실을 응시하는 작품들을 계속 발표하고 있다.
그런데 이때 아모스 기타이의 입장은 이스라엘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쪽에 있지 않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해 그는 어떤 특정한 주장을 외치기보다는 현실의 어두움과 복잡함 자체를 드러내는 쪽에 더 관심이 있는 편이다. 나아가 그는 국가나 민족을 기준으로 한 ‘단순한’ 구분을 넘어 개별 인간이 처한 힘겨운 삶과 이를 구성하는 여러 조건들을 세심하게 짚는 데 더 힘을 쏟는다. 그가 예루살렘에서 일하는 팔레스타인 노동자나(<집>), 레바논 전쟁의 피해자들(<현장 일지>)을 찾아간 것은 그런 그의 특징을 잘 드러낸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적지 않은 사람들은 아모스 기타이가 건드리는 문제 자체를 불편해했고, TV 방송국은 그의 작품들을 방영해 주지 않았다. 결국 아모스 기타이는 프랑스로 망명을 떠날 수밖에 없었고 십 년이 지난 후에야 이스라엘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물론, 그의 관심사는 변하지 않았다. 아모스 기타이는 지금도 국가 간, 이데올로기 간 경계의 영역에서 이스라엘이 처한 문제들을 그린다. 그의 영화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도 여전하다.
그런 맥락에서 아모스 기타이가 만든 <부퍼의 계곡에서>(1994)는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그럼으로써 몇몇 사람들의 심기를 거스르는 그의 전략이 잘 드러난 다큐멘터리다. 영화가 다루는 사건 자체는 매우 단순하다. 1992년 11월 12일, 독일의 한 술집에서 유태인으로 오해받은 남자가 ‘스킨헤드’들에게 폭행을 당해 사망했다. 여기까지는 소위 ‘팩트’이며, 그래서 사건은 간단해 보인다. 더할 나위 없이 분노하기 쉬운 사건이지만, 그러나, 아모스 기타이는 즉각적인 분노와 거리를 두려 한다.
이를테면 영화는 피해자와 가해자들이 극우파들이 즐겨 모이는 술집에서 몇 시간째 술먹기 대결을 하다가 사소한 시비가 붙어 싸웠다는 것을 자세히 알려주고, 나아가 피해자가 먼저 가해자를 모욕했다는 사실까지 알려준다. 이를 통해 이 사건이 피해자가 단지 유태인이라서 벌어진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폭행 사건인지 관객으로 하여금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는 관객이 쉽고 단순하고 빠르게 분노하도록 만들지 않는다.
이것이 아모스 기타이의 전략이다. 어떤 이들은 이 태도 앞에 더 화를 낼지도 모른다. “저 남자는 유태인”이라는 한 마디가 사건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 자체는 변함이 없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모스 기타이는 계속해서 더 생각해 볼 것을 제안한다. 그는 가해자의 가족을 찾아가 그가 얼마나 평범한 청년이었는지 물어보고, 거리의 극우 청년들을 만나 그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평화’라는 대답을 듣고 돌아온다. 그리고는 다시 건조하게 사건의 개요를 정리하며 영화를 끝낸다.
이때 아모스 기타이가 정확하게 어떤 문제를 제기하는지 따져묻는 것은 물론 중요한 질문이겠지만, 어쩌면 아모스 기타이의 관심과는 조금 다른 질문일 수 있다. 즉, 그는 성급하게 문제를 찾아내기보다는 현실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고 제안하는 중이다. 이를 통해 아모스 기타이는 쉽게 답을 내리려 하는 사람들, 그럼으로써 현실을 단순하게 보려 하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불편하게 만든다.
김보년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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