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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Review

[리뷰]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레오 맥커리의 <내일을 위한 길>

상영작 리뷰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레오 맥커리의 '내일을 위한 길'

 

<내일을 위한 길>은 지난해 상영할 기회를 얻지 못했던 영화중의 하나다. ‘백편의 시네마 오디세이’에서 상영할 예정이었지만 영화를 수급하기 어려웠던 탓이다. 사실, 올해 시네마테크의 선택작에는 다른 추천작도 있었다. 마르코 벨로키오의 데뷔작 <포켓 안의 주먹>이 그것이다. 시대의 폐색적인 공기에 붙잡힌 젊은이의 반항을 그린 작품이다. <내일을 위한 길>이 자식들에게 내몰린 노부부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임을 감안하면 벨로키오의 영화와는 반대의 지점에 놓여 있다 하겠다. 하지만 나로서는 이 두 편의 영화가 공통의 지점에 위치한다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청춘과 노년의 불화. 감독 레오 맥커리의 충실한 설명에 따르자면(영화의 오프닝에 작가의 변을 대신하는 설명자막이 나온다) 이 영화는 나이든 사람과 젊은이들 사이의 거대한 협곡, 고통스런 갭에 관한 이야기다. 맥커리는 이를 해결하는 현자의 말을 끌어온다. 노인을 공경하라!.

 

왜 나이든 사람과 젊은이, 혹은 시대가 불화에 놓이는가? 맥커리는 삶의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버리기 때문에 나이든 사람들이 시대의 템포를 놓치기 때문이라 말한다. 시대는 그들을 기다리지도 고려하지도 않는다. 게다가 새로운 세대는 그들의 웃음과 그들의 눈물을 이해하지 못한다. 코미디의 전문감독이었던 레오 맥커리(그는 로렐과 하디의 코미디극, 막스 브라더스의 최고작이라 평가받는 <오리 스푸>를 만들었다. 게다가 같은 해 그는 <이혼소동>으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는 이 영화로 그의 경력에서 가장 예외적인 비극을 만들었는데, 스스로는 <내일을 위한 길>을 자신의 최고작이라 불렀다.

 

영화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때는 미국이 경제 불황에 허덕이던 1937년. 실직한 노년의 바크는 은행에 저당 잡힌 집이 차압되면서 자식들의 집에 머물 생각을 한다. 하지만 5명의 장성한 자식들 그 누구도 부모를 모실 생각이 없고, 그 때문에 부부는 서로 헤어져 다른 자식의 집에서 각각 지내기로 결정된다. 하지만 남편의 건강이 악화되고 아내 루시는 자식들과 불화를 겪으면서 이들은 결코 만날 수 없는 곳으로 먼 길을 떠난다.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는 딸의 집으로 바트가 떠나던 날 부부는 신혼여행 때에 방문했던 뉴욕에서 마지막 하루의 데이트를 즐긴다. 영화의 클라이맥스가 이 마지막 순간으로 노부부는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고 불안과 체념 속에서 남겨진 시간을 즐긴다.

 

왜 이런 상황이 발생했을까. 영화의 한 장면에서 이런 씁쓸한 정황이 묘사된다. 그나마 작은 가게를 운영하면서 노년을 보내는 바크의 친구는 자식들이 자신을 필요치 않기에 그도 자식이 필요하지 않다, 라고 다소 냉정하게 말한다. 그는 가게를 갖고 있고, 아내가 있고, 바이올린 연주를 하고 있다. 바크에게는 그 중 하나라도 제대로 갖춘 것이 없다. 바크가 아이들이 어린 시절의 기억을 자라서도 잊지 않기를 바라지만 친구는 그에게 ‘자네가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주었을 때 결국 그들은 자네를 부끄러워할 것’이라 말한다. 이 말은 나중에 노부부가 거리를 걸어가다 ‘젊은 때 미래를 위해서 저축하라’라는 문구를 읽는 장면과 미묘한 조응을 이룬다. 급기야 바크는 호텔의 연회장에서 아내에게 ‘내가 요즘의 젊은이라면 아마 독신으로 살았을 거야’라 쓸쓸하게 고백한다.

 

이 영화는 맥커리의 가장 개인적인 영화이자 저주받은 작품이 됐다. 관객의 호응을 얻지 못했고 흥행은 참패했다. 하지만, 오즈 야스지로가 <도쿄 이야기>를 만들 때 이 영화를 염두에 두었다거나 오슨 웰즈가 이 영화를 최고의 비극으로 꼽은 사실들에서 비공식적인 영화사적 영향력을 감지할 수 있다. 게다가 라스트의 연회장에서의 댄스 장면(악단의 지휘자가 노부부를 위해 느린 템포의 음악을 연주하는 장면)이나 역에서의 간결한 이별 장면은 영혼을 움직이게 하는 진실한 감동을 선사한다.

 

김성욱 /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