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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독립영화의 산실 ‘시네마테크’를 뺏지 마라

‘잃어버린 10년’으로 표현되는 현 집권 세력의 강박이 한국 사회에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방송은 물론 배움의 전당인 학교에서도 자기들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되면 여지없이 퇴출시키고 있는데, 거기에는 모든 것을 자기 손아귀 안에 넣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욕망과 강박만이 읽힌다. 오랜 기간 한국 독립영화 진영에 큰 공헌을 했던 인디스페이스와 미디액트는 급조된 단체들에 운영권을 넘겨주게 되었다.

 

이에 반발한 독립영화감독 155명은 지난달 18일 참여연대 느티나무 강당에서 “한국다양성영화발전협의회가 운영하는 독립영화전용관에서 우리의 창작물이 상영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왜 그 감독들은 자기 자식 같은 영화가 대중과 만날 수 있는 창구를 스스로 거부했을까? <똥파리>를 만든 양익준 감독은 “제가 독립영화판에 들어온 지 10여년이 되었기 때문에 그동안 많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제가 잘 뵙지 못하던 분들이 운영 주체로 계시고, 공모 과정에서도 의혹이 있는데 어떻게 제 영화를 믿고 맡길 수 있겠습니까?”라고 했다. 이 정부에서 계속 제기되고 있는 기본적인 신뢰의 문제라는 얘기다.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는 영화계 안팎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2월10일 ‘2010년 시네마테크전용관 지원사업 운영자 선정 공모’를 발표했다. 영진위는 “공모제 전환을 신중하게 재검토하라”는 국정감사의 시정사항도 무시했고, 최근 독립영화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각종 의혹들에 대해 ‘공모 과정 자체가 범죄 행위에 가깝다’는 천정배 의원의 지적에 대해서도 ‘공모에 문제가 없다’고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독립영화 감독들 뒤에 배후세력이 있다’는 케케묵은 음모론으로 맞섰다. 공모제를 밀어붙이던 영진위는 막상 지원자가 나오지 않자 일단 공모를 중단한 상태다.

 

서울아트시네마는 2002년 5월 설립된, 교육적이고 문화적인 목적으로 영화를 상영하는 서울 유일의 민간 비영리 시네마테크 전용관이다. 시네마테크의 설립 취지에 공감하고 그 활동을 지지하는 영화인들이 참여하는 시네마테크 영화제는 올해로 5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최동훈, 홍상수, 류승완, 안성기, 김영진, 정성일 등의 영화인들이 추천하는 영화를 같이 보고 토론하는 축제의 장이다. 그 영화제의 개막식에 참석한 영진위 조희문 위원장은 축사를 통해 ‘디브이디(DVD)도 있는 시대에 고전 영화를 보러 여기 온 분들이 신기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다’는 양가 감정을 토로한 바 있다.

 

박찬욱 감독은 아트시네마에 대해 ‘오랜 세월 열악한 상황 속에서 좋은 영화를 모으고 소개하느라 고생해 온 풀뿌리 단체’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 한국의 내로라하는 감독들이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보면서 감독의 꿈을 키우고, 자신의 문화적, 영화적 역량을 쌓아왔다. 시네마테크라는 것은 하나의 문화 공간이자 커뮤니티이지, 단순히 극장 하나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민간이 설립한 이곳의 운영주체를, 도대체 그들은 무슨 권리로 공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영진위는 하루빨리 서울시네마테크전용관 운영자 공모 방침을 철회하기 바란다. (지승호)

 

* 이 글은 칼럼니스트 지승호 씨가 한겨레 [왜냐면]이라는 코너에 게재한 칼럼을 발췌한 것입니다.

 

[출처] 한겨레 2010-03-14 (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41004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