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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전/페데리코 펠리니 회고전

꿈같은 인생, 현실의 지옥

[영화읽기] 페데리코 펠리니의 <백인추장>

 
<백인추장>(1952)은 펠리니의 단독 데뷔작이자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가 각본에 참여했고, 펠리니의 아내이자 뮤즈인 줄리에타 마시나가 조연으로 출연한 영화다. 영화 속 대사를 인용하자면 이 영화는 "현실은 꿈같은 인생이지만 어떤 이에게 꿈은 현실의 지옥"임을 보여준다. 펠리니는 이를 익살적인 방식으로 보여준다.

신혼부부인 카발리와 완다가 기차를 타고 로마로 입성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여자가 평소에 흠모하던 '백인추장'이라는 배역의 남자를 만나기 위해 극단을 방문하면서부터 좌충우돌 사건들이 전개된다. 남자는 로마, 여자는 로마에서 떨어진 시골이라는 서로 다른 공간에서 각기 벌어지는 사건들이 교대로 보인다. 가령 완다가 백인추장과 바에서 술을 마시는 장면에서 우연히 울려 퍼지는 노래가 그들 사이에 낭만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그들을 춤추게 한다. 이 장면에 이어 친척들과 식사를 하고 있는 카발리 주위로 멕시코 악사들이 와서 서글픈 노래를 부르며 부인이 사라져 슬퍼하는 그의 감정을 한껏 고조시킨다. 예기치 않은 상황들이 각기 우연적으로 일어난 사건들이 서로 충돌하면서 <백인추장>은 익살적인 코미디극이 된다.


영화의 중반부에서 숲 속에서 방황하던 완다는 멀리서 그네를 타고 있는 백인추장을 발견한다. 황홀경에 도취되어 완다는 눈물을 훔친다. 백인추장은 마치 천상의 사람처럼 하늘을 배경으로 그네를 타며 아름다운 선율을 흥얼거리다 땅으로 내려온다. 완다가 꿈꿔왔던 환상이 그렇게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환상과 현실 사이의 경계는 허물어져 버렸고, 이는 카발리에게도 매한가지다. 서로 다른 인물들과 상황(로마와 시골, 카발리와 친척, 완다와 백인추장, 낮과 밤, 절망과 서커스 쇼, 거리와 성당 등)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꽤나 시끌벅적하다. 짧은 숏들과 잦은 숏/리버스 숏, 인물들의 과장된 연기는 영화 속 카발리의 어지러움처럼 현기증을 불러일으킨다. 이렇듯 <백인추장>은 인물들 간의 시선의 교차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런 가운데 벌어지는 작은 사건들은 카발리와 완다가 상대방의 실체를 인정하면서 매듭지어진다. 즉 환상을 제거하는 과정을 통해 현실을 바라보는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펠리니가 담아낸 둘의 모습은 귀엽고 아기자기하다. (최혁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