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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포르투갈 영화제” 상영작 리뷰 - <외딴 길>(테레사 빌라베르데, 2017)

[2017 포르투갈 영화제 - 포르투갈의 여성 감독들]


<외딴 길>(테레사 빌라베르데, 2017)



테레사 빌라베르데는 한국에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지만 주앙 페드로 로드리게스, 미구엘 고메스 등과 함께 뉴 포르투갈 시네마의 중요한 인물 중 하나로 꼽히는 여성 감독이다. 주로 여성이나 10대 청소년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당대 포르투갈 사회의 풍경을 성찰하는 영화들을 만들어온 그녀는 2017년 신작 <외딴 길>에서도 한 10대 소녀의 가족의 일상적 리듬과 몸짓들을 통해 포르투갈 경제 위기의 여파를 고스란히 감지하게 한다.

한창 꿈이 많아야 할 나이의 마르타는 실직한 뒤 자괴감에 빠진 아버지와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매일 녹초가 되어 돌아오는 어머니와 함께 리스본 변두리의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언뜻 그들은 빈곤한 환경 속에서도 함께 버티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소리 없이 다가오는 신자유주의의 기습 속에서 가족이라는 공동체는 어느 순간 어디서부터 부서질지 알 수 없는 한없이 허약한 울타리 같은 것이다. 가족들은 하나하나 순서대로 집을 떠났다 돌아오길 반복하다, 결국 헤어진다. 처음에는 마르타가 임신한 친구와 함께 숲속과 바닷가를 떠돌다 발에 흙탕물을 잔뜩 묻힌 채 돌아오고, 다음에는 아버지가 외딴 해변에서 홀로 하룻밤을 보낸 뒤 발이 여기저기 까진 채 돌아온다. 그러다 전기세조차 제대로 낼 수 없는 형편이 되자 견디다 못한 어머니가 집을 나가겠다고 할 때, 그들은 재회의 기약도 없이 이별의 기로에 선다. 

인상적인 것은 떠나감과 돌아옴 사이에 종종 결정적인 생략이 동반된다는 사실이다. 아마 이 영화의 태도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인물들이 무작정 어딘가를 향해 떠났다가 아무런 결단도 내리지 못하고 진이 빠진 두 다리로 원래의 자리에 터벅터벅 돌아오고 말 때, 영화는 그 고단한 몸과 마음들에 어떤 질문도 하지 않고 그저 그들이 거기에 그렇게 돌아와 있다는 사실을 담담히 바라볼 뿐이다. 그들의 마음에 거센 파도가 일고, 새까만 어둠이 내리는 순간 속으로 결코 끝까지 함께 들어가지 않고 자기 자리에서 지켜보려 애쓰는 카메라, 이 영화는 결국 그 카메라다.

 

이후경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