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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인터뷰

“으스타슈와 멜빌의 영화들을 아트시네마에서 쭉 보고 싶다”

원정 나온 관객 김지현, 박예하 양을 만나다

지난 일요일 대전아트시네마의 열혈관객이자 서울아트시네마와는 ‘장거리 연애’를 하고 있는 김지현 씨가 오랜만에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걸음에 극장으로 달려갔다. 영화를 보기 위해서가 아닌 후원금을 내기 위해 극장에 들렸다는 지현 씨는 친구 박예하 양과 함께 서울아트시네마 로비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카메라를 들이대자 고개를 좌우로 돌리는 수줍은 많은 두 친구로부터 현재 진행 중인 영화제, 그리고 최근 시네마테크를 둘러싼 문제들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강민영(웹데일리팀):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연중 가장 큰 행사기도 하다. 지현 씨의 경우 개막에 맞춰 서울에 올라왔던 것으로 아는데, 두 분 모두 이번 친구들 영화제에서 영화 많이 보셨는지 궁금하다.

박예하(관객): 친구들 영화제 개막 즈음에 여행을 갔다 오느라 많이는 못 봤다. 배창호 감독의 <여행>을 봤고, <사냥꾼의 밤>도 봤다. 다음 주에 <뱀파이어> 데이가 있지 않나. (웃음) 그날 되도록 <뱀파이어>를 다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완전 무성이어서 부담은 약간 되지만 말이다.

김지현(관객): 개막식 때 <뱀파이어> 1, 2부를 보고 난 후 <엄마와 창녀>정도만 보았다. 아무래도 멀리 있다 보니 서울에서 영화보기는 좀 힘들더라.

 

민영: 시네마테크를 처음 만났던 때가 궁금하다. 어떤 계기가 있었던 것인지.

예하: 제일 처음 만난 시네마테크는 시네마테크 부산이었다. 부산에서 살았으니까 그곳을 굉장히 열심히 다녔다. 딱히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부산은 영화의 도시라고 흔히 이야기하잖나. 아무리 그래도 고전영화나 예술영화나 이런 걸 볼 수 있는 상영관이 많지 않아서 처음에는 국도예술관부터 다니며 영화를 ‘본다’는 자각을 하게 되었다. 그게 굉장히 자연스러웠다. 국도예술관에 가면 시네마테크 부산에도 가는 게 당연한 것이었는데 내 경우엔 시네마테크 부산이 훨씬 맞았던 것 같다. 그 이후 2008년 초에 서울로 이사 왔다. 이사 기 전 2007년 여름에 잠시 서울과 부산을 왕복했던 시기가 있었는데 서울아트시네마는 그때 처음 알게 된 거다. 아마 시네바캉스 때였던 것 같다. <대탈주>랑 <프렌치캉캉>을 제일 처음 봤다. 한눈에 반했지.

지현: 사실 영화본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대학을 들어가고 학교신문사에 같이 영화 보고 리뷰 쓰고 하는 코너가 있다는 걸 발견했는데 그때 대전아트시네마를 알게 되었다. 대전역 근처에 있다는 말은 들었었지만 어디인지는 잘 몰랐는데 알고 보니 대전역 바로 앞에 있었다. 정말 놀라웠다. 밖에서는 무심하게 지나갈 수 있는 위치라서 몰랐던 것 같다. 그곳에서 처음 루이스 부뉴엘의 <환상의 전차를 타고 여행하다>를 봤다. 근데 이 영화 재밌다고 말하면 다들 엄청 독특하다고 하더라. (웃음) 그 이후 계속 아침에 극장을 들러서 영화를 봤는데 상영관에 항상 나 혼자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대전아트시네마의 대표님을 알게 되었고 어쩌다보니 내가 대전아트시네마의 회원으로 가입하게 되었다. 대전아트시네마가의 커뮤니티가 그리 활발하게 활동하는 건 아니다. 회원은 100명 정도다. 회원 행사 등을 하면 20명 정도만 모여도 많은 편이다.

 

민영: 대전아트시네마의 운영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지현: 대전아트시네마 생기고 나서 단 한 번도 흑자가 난적이 없다고 들었다. (웃음) 대표님이 이런저런 영상작업도 하고 다른 부수입으로 극장운영을 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다.

 

민영: 대전아트시네마에서도 시네마테크의 공모제 문제에 관련해서 회원들 혹은 직원들끼리 이야기가 오간 적이 있었나.

지현: 대표님과 이야기는 몇 번 했다. 대전아트시네마 쪽은 서울 상황을 지켜보며 그냥 한숨을 쉴 뿐이다. 계속 주시하고 있지만 딱히 도움을 줄 수 있는 일도 없고 하니 답답하고 안타깝다.

민영: 대전에서 일부러 영화 보려고 서울로 올라오거나 했던 경험도 있는지 여기서 오즈 야스지로의 회고전을 보기 위해 시네마테크 부산으로 내려가는 것처럼 말이다.

지현: 친구들 영화제처럼 큰 행사를 보러 올 때가 종종 있다. 대전에는 개봉작들도 잘 안내려오는 경우가 많아서 그럴 때 올라오기도 한다.

 

민영: 예하 양은 친구들 영화제를 2008년에 처음 만났다고 했는데 두 분 모두 지금까지의 친구들 영화제 상영작 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어떤 작품인지, 꼭 친구들 영화제가 아니라 서울아트시네마 혹은 대전아트시네마에서 본 상영작도 상관없이 시네마테크에서 본 영화 중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예하: 영화 목록이 시네 바캉스랑 엄청 헷갈리는데, 2009년 친구들 영화제에서 아벨 페라라 영화들이 너무 좋았다. <킹 뉴욕> 너무 좋다. 그 영화를 보고 엄청 충격을 받았었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라면 단연 멜빌이지, 장 피에르 멜빌이랑 하워드 혹스 둘 다 완전 좋다. 빌리 와일더도 좋고. 멜빌 영화는 그냥 영화 전반의 공기가 너무 좋은 것 같다. 공기가 얼어있는 느낌이 좋고 영화 속 인물들이 시체처럼 움직이는 느낌이 마음에 든다.

지현: 맨 처음 대전아트시네마에서 본 작품이라 그런지 <환상의 전차를 타고 여행하다>가 가장 좋다. <그들 각자의 영화관>도 좋았다. <그들 각자의 영화관>은 대전아트시네마 회원의 날 상영을 통해 본 작품이다. 그날따라 기분이 좋았던 건지 시스템이 좋았던 건지 스크린도 너무 좋았고 사운드도 좋았고 모든 게 완벽했던 꿈같은 날이었다.

민영: 두 분 각자의 ‘내 인생의 영화’도 궁금하다.

지현: 나는 조금 유치해서. (웃음) 옛날 상업영화 중에 <퍼펙트맨>이라는 게 있었다. 별로 유명하지도 않고 유치한 내용이었다. 그냥 어떤 남자가 어린 남자애를 데리고 돌아다니는 흔한 전개영화였는데, 지금은 내용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마지막엔 다른 많은 영화들처럼 희망을 전해주는 메시지가 있었던 영화였다. 중학교 1학년 때 그 영화를 보고 나중에 어른이 된 후에도 계속해서 이 영화를 봐야지 봐야지 생각했다.

예하: 내 인생의 영화. 조금 생각해봐야겠다. 천지가 개벽 되는 것 같은 영화는 <폭력의 역사>였다. 5번 정도 봤던 것 같다.

 

민영: 시네마테크에서 상영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졌던 작품이 있는지.

지현: <엄마와 창녀>를 이번 영화제를 통해 재밌게 봤는데, 영화 속 대사들이 너무 맘에 들었다. 그 영화를 대전아트시네마에서 다시 보고 싶고 장 으슈타슈의 다른 영화들도 보고 싶다.

예하: 실현가능성이 없어도 말해도 되나. (웃음) 매년 겨울마다 멜빌 영화를 틀었으면 좋겠다, 하하.

 

민영: 마지막으로 이번 공모제 사태에 관해서 느끼는 바를 한마디 부탁드린다.

지현: 너무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어느 돈 많은 기업가가 전용관을 설립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고 있다. 자유롭게 전용관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부산은 이에 대한 막대한 예산을 투자하지 않나. 하지만 걱정만 앞설 뿐이다. 앞으로 지금보다 더한 일들이 많을 것 같아서 말이다.

예하: 처음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서울아트시네마로 건너 왔을 때 엄청 충격적이었다. 극장이 너무 좋아서 말이다. 로비도 좋고 의자도 좋고 스크린도 크고. 시네마테크 부산이 의자도 불편하고 스크린도 작고해서 여러모로 관람이 힘든 게 많다. 그런 것과 비교해 서울아트시네마는 만족스러웠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게 얼마나 철없는 생각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시네마테크 부산은 부산에서 모든 지원을 하고 프로그램도 전폭 지원하니까 그런 의자라도, 그런 가건물이라도 좋으니까 안정적이 되었으면 좋겠다. 솔직히 말하면 서울아트시네마가 낙원상가가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마음 아프고 여기가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날 것 같지만, 지금은 그런 투정을 할 때가 아니다. (강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