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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과 ‘정상’의 구분 - <원숭이 여인> 상영 후 한창호 평론가 시네토크

[2017 베니스 인 서울]


‘괴물’과 ‘정상’의 구분

- <원숭이 여인> 상영 후 한창호 평론가 시네토크



- 마르코 페레리가 비교적 덜 알려진 이유

마르코 페레리는 이탈리아 영화사에서 자기 위치가 분명한 사람이다. 그런데 이탈리아를 벗어나면 60년대에 같이 데뷔했던 파졸리니, 베르톨루치, 타비아니 형제 등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진 편이다. 여기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먼저 페레리는 파졸리니와 함께 전투적인 맑시스트를 대표하는 감독이었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다른 나라에서는 문화적 거부감이 있었을 것이다. 또한 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기 위해서는 미국이라는 가교 구실을 하는 나라를 거치는 게 좋은데(파졸리니는 미국에 소개된 후 다른 나라에 널리 알려질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페레리는 좀 불리했다. 다른 나라 사람이 보기에는 급진적인 근본주의자로 보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70년대는 페레리의 전성기인데(오늘 본 영화는 페레리의 60년대 초기작이라 그의 특징이 그리 도드라지게 나타난 작품은 아니다), 그때도 `여전한 급진성 때문에 영화인들이 같이 일하기를 꺼렸었다. 오늘 영화의 주인공인 우고 토냐치나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 등 스타 배우들이 도와주었기 때문에 영화를 계속 찍을 수는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페레리의 이름이 늦게 알려진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고 본다. 

- 페레리와 검열

페레리는 밀라노 출신이다. 일반적인 중산층 가정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영화 제작을 하며 영화계에 첫발을 들였다. 하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20대 후반에 도피하듯 유럽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이때 바르셀로나에서 자신의 최고 협력자인 라파엘 아스코나(Rafael Azcona)라는 작가를 만난다. 이 작가도 물론 맑시스트였고, 이 두 청년이 힘을 모아 사회의 부조리함을 풍자하는 코미디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다. 오늘 본 <원숭이 여인>도 이 콤비가 만든 작품이다. 

페레리는 1958년, 서른 살에 스페인에서 데뷔했다. 데뷔작 제목이 <El pisito>인데 번역하면 ‘원룸’ 정도의 뜻으로 볼 수 있다. 젊은 청년이 작은 방을 얻으려고 80살 넘은 노인과 결혼하는 코미디다. 줄거리만 봐도 당시 사회에 대한 비판이 읽힌다. 아니나 다를까, 이미 이때부터 검열 당국과의 갈등이 시작됐다. 이후 스페인에서 세 편의 영화를 잇달아 만든 뒤 이탈리아로 돌아와 역시 풍자 코미디인 <여왕벌(Una storia moderna-L'ape regina)>(1963)이라는 영화를 만든다.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만든 두 번째 작품이 바로 <원숭이 여인>이다. 오늘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이 작품 역시 엔딩을 세 개나 따로 만들 정도로 정부의 검열을 심각하게 받았다.

- 페레리의 중요한 테마: 괴물

60년대의 마르코 페레리 영화를 특징짓는 하나의 단어를 선택하라고 하면 ‘괴물(mostro)’을 꼽을 수 있다. 페레리는 자신의 영화를 통해 ‘괴물’이라고 불리는 사람은 누구인지, ‘괴물’을 만드는 사람은 누구인지 질문을 던진다. 또한 그렇다면 소위 ‘정상’은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묻는다. 이게 페레리의 중요한 테마다. 그는 평생에 걸쳐 괴물성을 탐구한 감독이다. 맑시스트의 입장에서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스스로를 ‘정상’이라 부르는 사람들의 통념을 비판하고 싶어 했다. 당시 이탈리아는 공산당이 합법 정당이었지만 그 안에도 여러 스펙트럼이 있었고, 페레리는 그 안에서도 래디컬한 편이었다. 즉 사회의 지배적 이데올로기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던 사람이다. 부르주아의 윤리, 그들이 정상이라 주장하는 것, 자신과 다르면 괴물이라 부르며 타자화시키고 억압하는 통념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원숭이 여인>은 그런 사회의 문제에 대한 알레고리인 셈이다. 일단 마리아가 괴물로 설정되어 있다. 괴물은 남들과 다른 것인데, 다르다고 말하려면 잣대가 있어야 한다. 그 잣대는, 물론 구체적인 성격을 명확하게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전통이나 사회의 주류 통념을 지시한다. 부르주아 사회는 괴물들을 타자화시키고 이 영화에서처럼 죽을 때까지 착취한다고 페레리는 말하고 있다. 

지금 사회도 그렇지만 당시 1960년대의 이탈리아 사회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여러모로 불리했던 것이 사실이다. <원숭이 여인>은 그렇게 여성이 더 쉽게 괴물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사회를 바라보는 페레리의 민감한 감각을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이다. 보다시피 마리아는 털이 많아서 ‘원숭이 여인’이다. 물론 동물처럼 털이 많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남자처럼 털이 많다고 볼 수도 있다. 즉 남성의 영역에 들어와 있는 여성을 괴물로 보는 사회의 통념을 비꼬는 것이다. 

- 세 개의 서로 다른 엔딩

오늘은 서로 다른 세 개의 엔딩을 함께 보았다. 먼저 이탈리아 개봉판(검열판)에서는 마리아도 죽고 아이도 죽는다. 소위 ‘문명사회’에서 타자는 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 없고, 평생 착취만 당하다 죽는 것이다. 착취 이후의 허무한 죽음을 보여주는 비극적인 엔딩이다. 하지만 페레리의 기본적인 성격은 이런 비정한 느낌이 아니다. 이 감독은 기본적으로 코미디 감각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유머를 통해 냉소를 보내는 쪽에 더 가깝다. 

페레리가 원래 의도했던 버전은 오늘 본 엔딩이다. 정말 페레리답다. 씁쓸하고, 웃을 수도 없고,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하다. 죽은 아내와 자식을 박제로 만들어서 마지막까지 돈벌이로 삼는 안토니오의 모습에서 끝난다. 그는 여전히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 채 반성하지 않는다. 

프랑스 개봉판도 매우 흥미롭다. 언뜻 보면 페레리의 영화 세상과 가장 다른 것 같다. 절충주의처럼 보이기도 한다. 마리아는 무사히 출산을 하고, 털도 다 사라져 ‘정상’으로 바뀐다. 그리고 안토니오는 육체노동을 하며 모든 것이 제자리를 잡는다. 어떻게 보면 거부감이 들 수도 있는 결론이다. 하지만 페레리의 영화 세상을 알고 있다면 이 장면 역시 반어법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즉 통념의 세상에 들어오지 않는 이상 세속적 행복을 누릴 수 없다는 뜻으로 볼 수도 있다. 물론 나처럼 페레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해석해 줘야 하겠지만 말이다(웃음). 개인적으로 나는 페레리 버전의 엔딩이 역시 그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일시 12월 9일(토) <원숭이 여인> 상영 후

정리 김보년 프로그램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