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베니스 인 서울]

 

“서울을 배경으로 K-pop 가수가 등장하는 영화를 찍고 싶다”

- <사랑과 총알을 그대에게> 상영 후

마르코 마네티 감독, 미켈란젤로 라 네베 작가 시네토크

 

미켈란젤로 라 네베(시나리오 작가) 무엇보다도 서울에 와서 무척 기쁘다. 서울은 정말 아름답고 놀라운 도시다. 

허남웅(영화평론가) 이탈리아 뮤지컬 영화를 본 건 오랜만이었다. 어떻게 처음 아이디어를 얻었는지 궁금하다.

마르코 마네티(감독) 내가 조금 ‘맛이 간’ 성격이다(웃음). 나도 어떻게 아이디어를 얻었는지 잘 몰라서 답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이 영화를 만들기 전 동생과 함께 뮤직비디오를 100편 정도 만들었는데 그래서인지 내 영화에는 뮤지컬이나 오페라적인 측면이 있다. 이 영화의 배경은 나폴리인데, 나폴리는 다른 도시가 제공하기 힘든 경험을 선사하는 도시다. 나폴리는 혼돈스럽고 음악적인 매력을 갖고 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나폴리를 배경으로 뮤지컬 영화를 떠올렸다. 일반적으로 범죄와 뮤지컬은 잘 어울리지 않지만, 그 보기 드문 조합을 해보려고 했다.

허남웅 뮤지컬 장르의 시나리오를 쓸 때는 다른 장르보다 생각할 지점이 더 많을 것 같다. 

미켈란젤로 라 네베 기술적 어려움이 있다. 일단 노래를 영화에 맞춰야 하고, 한 배우가 아니라 여러 명의 배우들이 노래를 불러야 하기 때문에 어떤 노래를 선택해야 할지 많이 고민했다. 하지만 노래를 넣음으로써 관객에게 감동을 전달하는 데 굉장한 도움을 받았다. 기술적으로는 어려웠지만 결과적으로 나에게도 좋은 경험이었다. 개인적으로 뮤지컬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 영화를 통해 뮤지컬을 좋아하게 되었다.

허남웅 비슷한 질문을 감독님께 묻고 싶다. 뮤지컬 영화이기 때문에 캐스팅 할 때도 더 고민을 해야 할 것 같다. 

마르코 마네티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있다. 일단 노래를 부를 수 있어야 하고 춤도 출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배우이면서 노래를 할 수 있는 사람 중 반을 캐스팅했고, 나머지 반은 가수이면서 연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캐스팅했다. 파티마 역을 맡은 배우(세레나 로시)는 노래도 잘하고 연기도 잘하는 완벽한 배우였다.

허남웅 이 영화는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하는 007 영화를 뮤지컬로 만든 것 같은 느낌이다. 007 시리즈를 비롯한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인용이 많다.

마르코 마네티 007 시리즈나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인용은 극 중 마피아의 아내를 떠올리며 생각한 것이다. 보다시피 이 영화에는 남자 주인공 2명, 여자 주인공 2명이 등장한다. 그런데 남자 주인공들은 주로 자신이 맡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대장은 대장의 일을 하고 부하는 부하의 일을 이행한다. 하지만 여자 주인공들은 이들과 다르다. 이들은 창의적으로 행동한다. 게다가 마리아는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나의 놀이처럼 생각한다. “당신은 왜 할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확실하고 멋있게 사람을 죽이지 못하느냐.”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이런 행동을 보이면서 할리우드 영화와 현실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즉 현실 속에서도 할리우드 영화와 같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허남웅 나폴리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영화 로케이션을 하며 어떤 기준을 가졌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나폴리라는 배경이 이야기에 어떻게 녹아들었는지 듣고 싶다. 

마르코 마네티 우리는 로케이션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어느 정도 시나리오가 풀리면 그 다음 바로 로케이션을 진행한다. 할리우드처럼 경제적인 상황이 좋으면 새로운 세트를 지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사실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시나리오에 딱 맞는 장소를 찾는 건 매우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장소를 찾다가 적합한 곳을 찾으면 거기에 맞춰 시나리오를 바꾸기도 했다. 이를테면 영화 안에는 항구에서의 총격전을 포함해 항구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시나리오에는 항구 장면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나폴리에서 장소를 찾다 보니 항구와 고층 빌딩이 많이 나와서 자연스럽게 영화에도 등장하게 됐다. 사실 이 영화에서는 시나리오가 아니라 로케이션이 지휘권을 갖고 있었다.

나도 그렇고, 미켈란젤로도 그렇고 나폴리 출신이 아니다. 그래서 지금 나폴리의 성격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조금 조심스럽다. 하지만 우리는 로케이션 매니저를 따로 고용하지 않고 직접 그 장소를 돌아다닌다. 서울에 와서도 사흘 동안 열심히 땀 흘리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이런 작업을 나는 너무 좋아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람도 직접 만나고, 시나리오를 쓰는 도중에도 로케이션을 다니며 인물을 새롭게 추가한다. <사랑과 총알을 그대에게>를 만들며 나폴리에서 만난 분이 있는데, 나중에 그분이 이 영화를 보고 ‘이게 바로 나폴리다.’라고 얘기해 주었다. 우리 보고 나폴리 출신이 아니냐고 물을 정도였으니 우리들이 나폴리를 완전히 잘못 이해한 건 아닌 것 같아 기뻤다. 영화를 잘 만들었냐 못 만들었냐를 떠나, 우리는 나폴리에 대한 사랑을 갖고 그 사랑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려고 했다. 

참고로 여러분들이 영화를 보는 동안 나는 잠깐 밖에 나가 있었다. 그런데 극장 옆에 아주 작은 골목이 있었고, 불이 켜져 있길래 가봤더니 여러 식당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 풍경을 보는 순간 여기서 뭘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극장으로 돌아와 미켈란젤로를 데리고 와서 같이 그 골목을 걸었다. 미켈란젤로도 여기를 배경으로 뭔가 써보고 싶다고 했다. 이게 우리의 작업 방식이다. 

미켈란젤로 라 네베 시나리오 작가들이 방에 갇혀 작업을 오래 하다 보면 폐쇄적으로 바뀐다. 시나리오도 기술적으로만 접근하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밖에 나가서 직접 특정한 장소를 보며 작업을 하면 마음도 열리고 결과물도 더 좋게 나온다. 

관객 1 이탈리아 관객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봤는지 듣고 싶다. 현재 한국의 시민들은 많이 개인화되었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떼지어 다녔다면 지금은 더 이상 그런 모습을 찾기 어렵다. 그런 맥락에서 영화 속 치로의 캐릭터가 하는 행동들이 인상적이었다. 현대 이탈리아의 젊은 세대에게 감독님이 어떤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았다.

마르코 마네티 좋은 질문을 해주어서 고맙다. 이탈리아 관객들에게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관객도 많이 찾았고 비평가들에게도 긍정적인 평을 받았다. 올해 최고의 영화로 꼽히기도 했다. 10월 5일에 개봉해서 지금도 상영하고 있을 정도다.

한국의 개인주의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 별로 없다. 영화 속 치로는 사랑 때문에 친구를 배신한다. 그리고 자신의 진정한 친구였던 로사리오를 죽이고 진정한 살인자가 된다. 두 사람 사이에는 우정이 존재하는 것 같지만 그 우정은 마피아 조직 내에서의 우정일 뿐이다. 치로도 극 중에서 “너는 사실 마피아 두목을 위해 살아온 것이다.”라고 말한다. 치로든 로사리오든 이들은 결국 마피아 두목의 부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개인의 삶, 개인의 자유를 서로 존중하는 사람만이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어떤 이유에서든 개인의 삶과 자유를 파멸시키는 사람은 진정한 친구로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관객 2 말씀하신 것처럼 영화에 나폴리에 대한 애정이 많이 담겨 있다. 그런데 나폴리의 범죄자들이 사는 아파트를 보여주는 장면도 있고, 나폴리를 떠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이처럼 나폴리를 부정적으로 그리는 장면들도 있는데 이런 장면에 대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마르코 마네티 영화 속에서 세 개의 중요한 장소가 나온다. 첫 번째는 나폴리의 스캄피아(Scampia)라는 곳이다. 영화 안에서는 부정적인 공간으로 묘사되지만 이 지역은 나폴리 전체를 대변하는 곳이 아니다. 물론 약간 낙후된 동네이기는 하지만 위험한 지역은 절대 아니다. 영화 안에는 미국 관광객들이 소매치기당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진지하게 부정적으로 그린 건 아니고 약간 유머러스하게 그리려고 했던 장면이다. 나폴리는 범죄만 벌어지는 장소는 아니다. 알다시피 문화적, 예술적으로 풍부한 가치를 지닌 곳이고 삶의 생동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나쁜 동네가 아니라는 걸 다시 한 번 말씀드리고 싶다(웃음). 

두 번째 장소는 뉴욕인데, 뉴욕에 대해서는 특별히 할 말이 없다. 굳이 이야기를 하자면, 악의 무리는 세계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영화 속 범죄는 주로 나폴리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동시에 뉴욕과도 연결되어 있다. 

세 번째는 호놀룰루다. 호놀룰루라는 장소를 나폴리와 비교해서 보여주고 싶었다. 영화를 만들면서 나폴리가 굉장히 아름다운 곳이란 걸 새삼 느꼈다. 그런데 나폴리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는 곳을 살기 어려운 동네라고 말한다. 즉 우리는 나폴리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칭찬하지만 정작 그곳의 사람들은 그 칭찬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나폴리는 예술적으로 큰 가치를 지니고 있는 곳이지만 나폴리 사람들은 그 가치를 외부인처럼 생생하게 느끼기가 오히려 어렵다. 그래서 나폴리 사람들은 나폴리를 떠나고 싶어한다. 이런 아이러니를 호놀룰루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 나폴리에 살던 사람들이 호놀룰루에 가자 “나폴리가 아니야, 나폴리가 아니야.”라는 가사의 노래를 부른다. 그래도 나폴리가 최고라는 메세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관객 3 개인적인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들 중 몇몇은 마치 악당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르코 마네티 007 시리즈의 주인공 중 한 명인 다니엘 크레이그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영화에서 스무 명을 총으로 쏴 죽여도 어느 누구도 나보고 뭐라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영화에서 담배를 한 대 피우니까 사람들이 뭐라고 하더라.” 이 말을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다. 

죽이는 것과 훔치는 것은 다른 일이다. 비록 영화 속에서 도둑질을 하긴 하지만 그건 마피아들의 보물을 훔치는 것이니 어떻게 보면 선한 것이기도 하다. 게다가 그 사람이 날 죽이려고 계획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괜찮은 것 같다. 내가 얘기하고 싶은 건, 영화는 결국 현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영화는 현실을 과장해서 보여준다. 특히 도덕이나 윤리 같은 문제를 과장된 상황 속에서 보여주려 한다. <사랑과 총알을 그대에게>도 우화적인 측면이나 은유적인 측면을 통해 현실 세계의 삶과 죽음을 보여주려 했다. 물론 현실에서는 사람을 그렇게 죽이면 안 되지만, 다시 말씀드리고 싶은 건 영화는 현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조금만 더 이야기하고 싶다. 난니 모레티 감독의 작품 중 영화감독이 한 영화비평가를 굉장히 괴롭히는 내용의 영화가 있다. 자신의 영화를 계속 비판했다고 붙잡아서 고문을 해버린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그렇게 고문을 했다고 해서 실제 난니 모레티가 그런 고문을 하고 싶어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그런 장치를 통해 현실 세계와 그 속의 폭력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건 이렇게 예술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영화다. 

허남웅 마지막으로 작가님과 감독님께 인사 말씀을 듣고 마무리하겠다.

미켈란젤로 라 네베 무엇보다 여러분들이 깊이 있게 이 영화를 봐주어서 감사하다. 조금 전 극장 옆에서 본 골목도 그렇고, 이번에 구상한 것을 구체화시키기 위해 가능한 한 빨리 한국에 다시 오고 싶다. 

마르코 마네티 나도 빨리 한국에 다시 오고 싶다. 지금은 구상 초기 단계라서 자신 있게 말하긴 어렵지만 요즘 상하이를 배경으로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다.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이탈리아에 살던 주인공이 눈을 뜨니 하루 아침에 상하이에 와 있다. 그는 빨리 이탈리아로 돌아가야 하지만 여권도 없고 신분증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중국의 한 밀수업자를 만나 그의 도움으로 이탈리아로 돌아간다. 그런데 지금은 그 밀수업자를 K-pop 가수로 바꾸고 싶다(웃음). 그리고 상하이보다 서울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지금 결정할 수는 없고 로마로 돌아가자마자 동생과 함께 상의를 해야 할 것 같다. 

허남웅 조만간 K-pop 가수가 등장하는 마르코 마네티 감독의 영화를 기대하면서 큰 박수 부탁드린다. 


일시 12월 10일(일) 오후 6시

정리 김혜령 관객에디터

사진 허윤수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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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 베니스 인 서울]


“즐거움을 추구하는 욕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 <가타 신데렐라> 상영 후 마리노 과르니에리 감독, 연상호 감독 대담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베니스 인 서울”에서 처음으로 애니메이션 영화를 상영했다. 사실 이탈리아 애니메이션 영화도 거의 만날 기회가 없기 때문에 오늘 자리는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잠바티스타 바실레(Giambattista Basile)라는 작가의 17세기 동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이 동화를 바탕으로 만든 1970년대의 희곡을 원작으로 삼았다고도 볼 수 있다. 어떤 계기로 이 작품을 만들었는지 궁금하다. 

마리노 과르니에리(감독) 방금 말한 것처럼 이 영화의 원작은 바실레의 『Gatta Cenerentola』이다. 처음 제작할 때는 ‘고양이 신데렐라’를 바탕으로 성인용 뮤지컬을 제작하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게 됐다. 1970년대에 나온 연극 버전의 『Gatta Cenerentola』는 표현 수위가 높고 세속적인 대사들이 많이 등장한다. 우리 역시 그 느낌을 살리고 싶었다. 또한 이 연극에는 나폴리 방언이 많이 나오는데 <가타 신데렐라>에도 그 대사들을 최대한 많이 살리려고 노력했다. 

김성욱 나폴리를 배경으로 했지만 영화의 중심 공간은 배 안이다. 배뿐 아니라 배 안에서 홀로그램을 이용해 여러 이미지들을 보여주는 게 흥미로웠다. 이런 설정을 어떻게 처음 떠올렸는지 듣고 싶다. 

마리노 과르니에리 연극 『Gatta Cenerentola』는 기본적으로 바실레의 원작을 거의 그대로 따라간다. 하지만 우리는 거의 모든 일이 배 안에서 일어나는 걸로 바꾸었다. 영화 속 배는 하나의 은유로 볼 수 있다. 나폴리는 오래된 도시인 동시에 여전히 큰 잠재력을 가진 도시다. 항구에 정박한 배는 세계 어디로든 갈 수 있다. 나폴리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을 만든 20여 명의 스탭들은 거의 30~40대이다. 이들은 <스타워즈>를 보며 자랐는데,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홀로그램 같은 공상과학적 측면을 반영하려 했다.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 이런 공상과학적인 요소를 사용해 의도적으로 시간적 요소를 모호하게 만들려고 했다. 

김성욱 <가타 신데렐라>를 상영하기로 하면서 연상호 감독을 먼저 떠올렸다. 지난 ‘친구들 영화제’에 연상호 감독이 곤 사토시 감독의 <동경 대부>를 추천했었는데, <가타 신데렐라>에서 곤 사토시 감독의 느낌을 받았다. 오늘 연상호 감독은 이 영화를 어떻게 보았는지 궁금하다. 

연상호(감독) 사실 이탈리아 애니메이션을 많이 못 봤다. 이탈리아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오늘이 처음이었는데, 유럽의 그래픽 노블이 떠오르는 훌륭한 색상과 조명 사용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 영화에서 제일 좋았던 건 내가 이탈리아를 가본 적도 없고 나폴리도 어떤 도시인지 모르지만 어렴풋하게나마 나폴리가 어떤 도시인지 느끼게 해주었다는 점이다. 방금 이야기한 <동경 대부>도 관광지와는 다른 동경의 느낌을 노숙자의 시선에서 영화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한다. 내가 만든 <서울역>에도 노숙자를 출연시키고 경찰들이 물대포를 쏘는 장면을 집어넣었다. 이렇게 영화를 통해(비록 애니메이션이라 하더라도) 한 도시의 풍경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최근에 본 유럽 국가의 ‘아트 계열’ 애니메이션 중에는 3D를 이용한 툰쉐이딩(Toon Shading) 기법을 쓴 작품들이 많다. <가타 신데렐라>에는 툰쉐이딩뿐 아니라 그 위에 덧입혀진 작업들이 많아 보인다.  

마리노 과르니에리 이 영화는 전부 3D로 만들었다. 작품을 만들 때 사용한 프로그램은 ‘블렌더(Blender)’라는 프로그램인데 누구나 인터넷에서 무료로 다운로드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 영화는 전 세계에서 블렌더로 만든 최초의 애니메이션이다. 이 프로그램으로 골격을 만든 다음 평면에서 렌더링을 했다. 그리고 여기에 조명과 그림자를 추가하며 작업을 해나갔다.

관객 1 카메라가 역동적으로 움직이면서 인물과 내가 춤을 추는 느낌을 받았다. 열정적인 무도회에 다녀온 것 같다. 특히 밀고 당기는 느낌이 물속에서 움직이는 느낌과 비슷했다. 이 움직임의 리듬을 어떤 느낌으로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었는지 궁금하다.

마리노 과르니에리 나폴리는 물과 바다와 깊은 연관을 갖고 있다. 나폴리 사람들은 스스로를 ‘바다의 사람’이라고 얘기할 정도이며 바다를 볼 때마다 어디서든 ‘여기가 내 고향이다.’란 느낌을 받는다. 나폴리 사람의 어린 시절 역시 바다를 빼고는 말할 수 없다. 창밖으로도 물과 바다가 보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그린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우정, 사랑,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등. 그런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당기고 놓아주는 느낌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려고 했다. 바다의 움직임과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고, 말한 것처럼 춤의 리듬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관객 2 영화를 보면서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배경으로 한 애니메이션들이 많이 생각났다.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작품이 있는지 궁금하다.

마리노 과르니에리 이 영화는 4명이 함께 만들었는데 다들 나이가 35~40살 사이다. 우리 세대는 <스타워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를 비롯해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며 자랐기 때문에 이 작품들에게서 단순히 만화적 측면뿐 아니라 전체적인 시각적 측면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중요한 건 네 사람의 서로 다른 경험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고, 그걸 다시 새롭게 창조해내는 것이다. 자식과 부모의 관계처럼 부모를 닮을 수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닮지 않을 수도 있다. 무언가 새로운 걸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연상호 애니메이션을 하는 사람끼리는 그냥 잘 통하는 게 있다(웃음). 지금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사람들은 앞으로 애니메이션의 미래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얼마 전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 한국에 왔을 때도 그 얘기를 했다. 오시이 마모루 감독도 투자를 못 받아 다음 작품을 만드는 게 힘들다고 하더라. 그리고 요즘 넷플릭스나 아마존 같은 글로벌 플랫폼들이 활발히 작품을 제작하고 상영하는데, 애니메이션도 꽤 많이 상영한다. 이제 프랑스나 유럽 쪽의 애니메이션을 접하기도 쉬워지고 있다. 혹시 이런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작업을 하실 계획도 있는지 궁금하다. 

마리노 과르니에리 유튜브 등 많이 알려진 플랫폼을 이용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많은 관객들을 감동시키는 건 정말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애니메이션에 대한 미래는 사실 말하기 어렵다. 대신 애니메이션을 만들려고 하는 욕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경우에 따라서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 자체를 잘 알아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이런 작업을 한다는 게 제일 중요하다. 물론 경제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즐거움을 향한 욕구가 더 중요하다. 그리고 이를 위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중요하다. 지금도 <가타 신데렐라>를 만들었던 네 사람이 다시 모여 다음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이탈리아에서도 한국의 애니메이션 영화를 볼 기회가 많으면 좋겠다. 연상호 감독이 이야기한 것처럼 애니메이션을 하는 사람들끼리는 서로 통하는 게 있다. 곧 그런 기회가 생기면 좋겠다.

 

일시 12월 15일(금) 오후 7시 30분

정리 김혜령 관객에디터

사진 김보년 프로그램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한국영화 특별 상영]


처음 가보는 길에서 느끼는 무서움, 그리고 기대감

- <초행>


‘초행’은 처음 가보는 길이자 처음으로 가는 행위 그 자체를 의미한다. 사실상 누구에게나 모든 것의 처음이 있을 테고 엄격히 따져 묻자면 같은 일을 반복할 때조차도 흘러간 시간 앞에서는 그마저도 처음일 수밖에 없다. 또 처음 하는 일에는 얼마간의 낯섦이 있을 수밖에 없을 텐데 그 낯섦이 무서움이라는 감정으로 호명될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주춤거리다 못해 잔뜩 움츠러든다. 김대환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초행>은 ‘첫’이 불러일으키는 이 무서움에 대한 영화이자 그 무서움의 실체를 마주하게 하는 방식에 대한 영화 같다. <초행>에선 무엇이 무서움인가. 무서움은 어떻게 발생하는가.

7년간 연애하며 지금은 동거 중인 지영(김새벽)과 수현(조현철)이 있다. 그들은 살던 집보다는 좀 더 가격이 싼 외곽으로 이사를 가기 위해 짐을 싼다. 싸다 만 이삿짐들 사이에서 이들은 최소한의 식기와 침구만 두고 며칠을 더 지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 때에 수현은 아버지의 환갑 모임에 참석하라는 전화를 받고 난감해한다. 지영도 함께 오라는 것 같아 수현은 더욱 곤란하다. 곧이어 지영은 수현에게 자신이 생리를 하지 않고 있음을 말한다. 그 말을 들은 수현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하며 대답을 회피하거나 대답하길 지연시키고 싶다. 지영 역시 즉각적으로 어떤 말을 더 하거나 무슨 방도를 취하지는 않는다. 낯설고 불편하고 불안하고 그래서 무서워지는 것들이 수면 위로 하나 둘 등장이다. 그들은 새 집으로 이사한 지영의 부모가 있는 인천과 수현의 가족이 있는 삼척을 차례로 오간다. 양쪽 부모는 저마다 정도의 차는 있겠으나 지영과 수현이 조만간 결혼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하는 것 같다. 영화를 좀 더 지켜보면 방송국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지영은 정규직 전환 여부가 확실치 않으며 미술학원 강사인 수현 역시 벌이가 녹록해 보이진 않는다. 지영과 수현은 여러모로 압박을 받고 있는 것이다. <초행>은 30대 비혼 커플이 직면할 법한 결혼, 임신, 생계, 주거의 곤경을 보여준다. 이 모든 것들이 지영과 수현의 무서움의 대상임에 분명하다. <초행>은 젊은 세대가 일상적으로 겪느라 오히려 익숙해져버릴 지경인 이 ‘무서움’을 공간(성)과 풍경을 통해 드러내는 방식을 취한다. 데뷔작 <철원기행>에 이어 김대환 감독의 가족 서사는 이 지점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특히 감독에게 집은 원형적인 공간으로 보인다. <초행>의 집부터 말해보자. 지영과 수현은 주거비를 감당하기 위해 이사를 택하지만 이사 갈 집에서도 이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진 않다. 지영의 부모가 장만했다는 집은 시세 차익을 고려한 지영 모가 택한 잠정적 공간이다. 그 집에 지영 모가 꾸민 지영의 방은 지영이 거주하지 않는, 지영의 의사가 반영돼 있지 않은 공간이다. 사실상 주인 없는 텅 빈 방이나 다름없다. 수현의 부모는 각자 따로 산다. 그중 수현의 아버지가 사는 집은 산만하며 느닷없이 들려오는 세탁기 소리가 괴기스럽기까지 하다. 삼척으로 향하던 지영과 수현이 잠시 들렀던 공가옥도 을씨년스럽긴 마찬가지다. <초행>의 집들은 채워져 있으되 비어 있는 공간이자 임시적이고 한시적인 거처다.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집이든 집으로 대변되는 가족이라는 관계든 집은 불안의 요소다. 지영과 수현에게 집은 오래 머물고 싶지 않은 피곤하고 불편하며 낯설고 무서운 공간으로 자리한다.

로드무비라고 해도 좋을 만큼 <초행>은 길이라는 공간성과 이동의 과정을 일부러 길게 또 중요하게 보여준다. 지영과 수현은 그들의 생활 터전인 서울을 중심으로 인천과 삼척을 횡단한다. 이동 그 자체가 영화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며 그들의 자동차가 그들의 임시 거처로 보일 정도다. 그들은 길 위에서 때론 길을 잃고 때론 목적지를 찾기 어려워 도착하기도 전에 길 위에서 이미 지친다. 삼척으로 가는 길은 특히나 이상하다. 수현이 지영에게 팔다리가 절단된 채 삼척 해변에서 발견됐다는 시체 이야기를 하며 “그런 데야, 삼척이. 너 지금 그런 데로 가고 있어.”라고 말할 때 그것은 무시무시한 괴담의 유포자가 늘어놓는 엄포다. 하지만 그렇게 말함으로써 이후 이들은 삼척을 생각할 때면 아마도 하나의 강렬한 이미지(시체)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대화 이후가 더 으스스하다. 느닷없이 새떼가 그들의 차로 돌진해 날아든 것이다. 그때 더 크게 놀라는 쪽은 수현이다. 괴담 유포자가 놀라 내리지르는 괴성은 삼척행의 괴괴함이 수현에게 보다 더 크게 다가오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영화 속에 예고 없이 난입해 들어온 새떼는 그야말로 우발적인 사건이다. 그 우연이 기이하고 그 기이함이 영화 속 무서움을 자극한다.

이동의 방식 중 ‘걷는다’는 행위 역시 말하고 가야 한다. 인천에서 일몰을 배경으로 지영 부모와 지영, 수현이 걸어가는 장면이 와이드 앵글로 이동 촬영돼 있다. 인물들은 서로 다른 거리 차를 두고 일렬로 걸어간다. 인물과 인물 사이의 거리가 인물 간의 심리적 간극이 된다. 일렬이라는 하나의 선 위에 있으되 그들은 그 선 위에서 만나지 않는다. 이때 ‘걷기’란 여기서 저기로의 이동이 아니다. ‘걷기’라는 이동은 각자가 자신의 공간을 구획하고 서로의 공간을 침범하지 않는 방법이자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회피하는 방식의 한 형태다. <철원기행>에도 이러한 이동의 형태가 있다. 흩어져 살던 가족은 아버지의 정년퇴임식에 참석하기 위해 철원으로 모인다. 폭설로 그곳에 고립된 가족은 눈밭을 걸어서 아버지의 임시 거처인 관사로 향한다. 나란히 걷기가 아닌 거리를 두고 일렬로 줄지어 가는 이동의 풍경이 등장한다. 게다가 두 영화의 이 걷는 장면은 풍경이 만드는 기세가 극적으로 드러나는 때다. <초행>의 걷는 장면에서는 거센 바람이 분다. 가로수 잎이 꺾일 만큼 거친 바람은 불어오는 바람을 등지고 걷는 가족의 등을 떠밀고 있을 게 분명하다. <철원기행>의 걷는 장면에는 내리는 눈과 걸음을 옮길 때마다 푹푹 빠져들 정도로 쌓인 눈의 물성이 있다. 앞으로 가지 않을 수 없는, 하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떼는 게 천근만근일 게 분명한 상황. 눈의 무게감이 고스란히 체감적으로 다가온다. 인물들이 찾아간 공간과 그곳의 풍경은 인물들의 신경을 건드리고 무서움의 실체를 또 다시 자극한다.

그러던 <초행>의 마지막 이동의 공간은 2016년 겨울의 광화문 광장의 촛불 현장이다. 지영과 수현은 나란히 광장을 걸으며 “이리로 가니까 또 다 저리로 가는 것 같은데”라며 촛불 물결의 방향을 가늠한다. 하지만 방향을 바꿔 걸어봐도 그곳에는 또 다른 흐름이 있다. 자신의 상황과 입장과 선택 앞에서, 인천과 삼척을 오가던 내내 지영과 수현은 “모르겠다”고 말해왔다. 지영과 수현의 “모르겠다”는 말은 그들이 “무서웠어”, “나 너무 무서워.”라고 서로에게 각자의 무서움을 고백할 때까지 ‘무섭다’의 간접 화법처럼 들린다. 그러던 그들은 광장의 흐름 앞에서 또 한 번 어디로 갈지 “모르겠다”고 한다. 달라진 게 있다면 그들은 지금 방향이 명시돼 있는 길이 아닌 사방으로 열려 있는 무정형의 공간인 광장에 있다는 것이다. 이곳은 어디로 가도 상관없다는 의미에서 어디로든 갈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럼에도 향도를 잡아나가야 하는 건 지영과 수현의 몫이다. 가능성으로서의 열림. 그것은 동시에 또 다른 무서움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무서움은 무서움인 채로 남아 있다. 모르겠는 것도 마찬가지다. <초행>이 이동하고, 걷고, 움직여 가며 얻은 자명하고도 잠정적인 결론이다.

 

정지혜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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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포르투갈 영화제 - 포르투갈의 여성 감독들]


<외딴 길>(테레사 빌라베르데, 2017)



테레사 빌라베르데는 한국에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지만 주앙 페드로 로드리게스, 미구엘 고메스 등과 함께 뉴 포르투갈 시네마의 중요한 인물 중 하나로 꼽히는 여성 감독이다. 주로 여성이나 10대 청소년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당대 포르투갈 사회의 풍경을 성찰하는 영화들을 만들어온 그녀는 2017년 신작 <외딴 길>에서도 한 10대 소녀의 가족의 일상적 리듬과 몸짓들을 통해 포르투갈 경제 위기의 여파를 고스란히 감지하게 한다.

한창 꿈이 많아야 할 나이의 마르타는 실직한 뒤 자괴감에 빠진 아버지와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매일 녹초가 되어 돌아오는 어머니와 함께 리스본 변두리의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언뜻 그들은 빈곤한 환경 속에서도 함께 버티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소리 없이 다가오는 신자유주의의 기습 속에서 가족이라는 공동체는 어느 순간 어디서부터 부서질지 알 수 없는 한없이 허약한 울타리 같은 것이다. 가족들은 하나하나 순서대로 집을 떠났다 돌아오길 반복하다, 결국 헤어진다. 처음에는 마르타가 임신한 친구와 함께 숲속과 바닷가를 떠돌다 발에 흙탕물을 잔뜩 묻힌 채 돌아오고, 다음에는 아버지가 외딴 해변에서 홀로 하룻밤을 보낸 뒤 발이 여기저기 까진 채 돌아온다. 그러다 전기세조차 제대로 낼 수 없는 형편이 되자 견디다 못한 어머니가 집을 나가겠다고 할 때, 그들은 재회의 기약도 없이 이별의 기로에 선다. 

인상적인 것은 떠나감과 돌아옴 사이에 종종 결정적인 생략이 동반된다는 사실이다. 아마 이 영화의 태도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인물들이 무작정 어딘가를 향해 떠났다가 아무런 결단도 내리지 못하고 진이 빠진 두 다리로 원래의 자리에 터벅터벅 돌아오고 말 때, 영화는 그 고단한 몸과 마음들에 어떤 질문도 하지 않고 그저 그들이 거기에 그렇게 돌아와 있다는 사실을 담담히 바라볼 뿐이다. 그들의 마음에 거센 파도가 일고, 새까만 어둠이 내리는 순간 속으로 결코 끝까지 함께 들어가지 않고 자기 자리에서 지켜보려 애쓰는 카메라, 이 영화는 결국 그 카메라다.

 

이후경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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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포르투갈 영화제 - 포르투갈의 여성 감독들]


<돌연변이>(테레사 빌라베르데, 1998)



포르투갈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고자 거의 일 년간 리서치를 진행한 테레사 빌라베르데는 자금 문제로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 없게 되자 곧바로 픽션을 쓰기 시작한다. 그 결과 그녀의 세 번째 장편인 <돌연변이>가 만들어진다. 영화에 등장하는 세 명의 아이들(안드레아, 페드로, 리카르도)은 모두 조금씩 다른 이유로 일반적인 가족관계 안에 붙어있지 못한 채 시설에 들어간다. 그리고 관객은 영화가 시작한 지 꽤 지난 후에야 안드레아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는 아이의 아빠와 만나기 위해 시설을 빠져나오고, 다시 돌아갔을 땐 오히려 쫓겨난다. 한편, 이야기의 또 다른 축인 페드로와 리카르도 역시 돈을 벌기 위해 시설을 나와 위험한 상황에 스스로를 노출시킨다.

아이들의 여정엔 누군가와 결속하고자 하는 욕망이 새겨져 있다. 부모는 그들을 쉽게 포기하고, 친절을 베풀던 타인은 어느 순간 다시 그들에게 선을 긋는다. 시간이 흘러 출산이 임박할수록 안드레아의 유일한 유대 관계는 배 속의 아이라는 것이 명확해진다. 그러나 바라보기조차 고통스러운 공중 화장실 장면이 오랫동안 지속되고 나면 그녀는 결국 완전히 혼자 남는다. 페드로 역시 알고 지내던 여성의 집에 머물게 해달라며 결속에의 욕망을 드러낸다. 영화의 끝에서, 모종의 상실을 경험한 페드로는 일을 나가는 다른 아이에게 가지 말라고 말한다. 잠시 멈춰 서 있던 그가 문을 닫고 나가면서 영화가 끝난다. <돌연변이>는 타인과 함께하고 싶지만 누구와도 결속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테레사 빌라베르데는 <돌연변이>를 자신의 것이 아닌 아이들의 영화라고 말했다. 안드레아 역의 배우(아나 모레이라)를 제외하곤 모두 실제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는 아이들과 함께 작업했다. 그래서인지 인물들의 가장 밝은 순간과 가장 처참해지는 양극단의 순간은 뭐라 형용하기 어려운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영화의 후반부, 텔레비전 화면을 담는 장면에서 아이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손이 보인다.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이 손은 학대당하는 아이들을 ‘멀리 떨어져서 볼(tele-vision)’ 수밖에 없는 자의 뒤늦은 애도처럼 느껴진다.


황선경 관객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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