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동아리 ‘울림’의 이민우, ‘하늘빛’의 이재호 군을 만나다

친구들 영화제를 풍성하게 만드는 건 상영목록 만이 아니다. 수많은 시네토크와 마스터클래스를 통해 관객과 감독, 평론가, 배우들이 한데 모여 영화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영화 못지않게 흥미롭고 각별하다. 특별히 이번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기간 중에는 극장에서뿐 아니라, 영화를 꿈꾸는 청년들과 영화공동체가 감독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시네클럽”이 진행된다. 이 프로그램은 일찌감치 마감되어 많은 감독지망생들이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서둘러 신청해서 행운을 얻은 “시네클럽”의 참여자들 중 영화동아리연합에서 활동하는 두 학생을 만났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울림’의 이민우, 서울 시립대 ‘하늘빛’의 이재호가 그들이다. 영화를 전공하는 학생들은 아니지만 영화에 대한 열정을 지닌 청년들. 영화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이들과 나눈 영화, 그리고 시네마테크 이야기를 전한다.

왼쪽 이재호 군, 오른쪽 이민우 군


교류 통해 경계 넓혀 나갈 것

영석(웹데일리): 영화동아리연합은 어떻게 구성되었나.
민우(외대 울림): 외대의 ‘울림’, 경희대의 ‘그림자놀이’, 시립대의 ‘하늘빛’, 이렇게 세 학교의 영화동아리가 연합해서 활동하고 있다. 비영화과 학생들이 만든 동아리인데, 그런 만큼 영화를 전공하는 사람들과는 다른 시각에서 영화를 다루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요즘은 학교의 동아리 활동 자체가 쇠퇴하는 분위기이기도해서 개별 동아리들의 활동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주변 학교 동아리들이 연합을 해서 그런 분위기에 변화를 주자는 생각이 모여졌고, 작년부터 세 학교가 연합해서 한 달에 한 번씩 세미나를 하고 경계를 넓혀가고 있다. 맨 처음 시립대에서 세미나를 시작해서 <핸드폰>의 김한민 감독을 초청했었고, 시립대에서 윤성호 감독, 외대에서는 김성욱 프로그래머님을 초청했었다. 프로그래머님과는 그렇게 인연이 되어서 이번 시네클럽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영석: 정기적인 세미나 외에도 같이 모여 영화를 보거나 다른 활동을 하기도 하나.
재호(시립대 하늘빛): 올해부터는 연합동아리에서 영화제작을 준비하고 있다. 연출, 시나리오 등을 분담할 예정이다.
민우: 학교에서의 지원 같은 것은 전혀 없다.
재호: 無 예산이다(웃음).

영석: 요즘 영화과 학생들이라고 해도 고전영화를 잘 안 보는 편인데, 동아리의 분위기는 어떤가.
민우: 전에는 신입생들이 들어오면 다 같이 <시민케인>을 보고 그랬는데, 지금은 그런 것도 어렵다. 각자 스펙 올리느라 많이 바쁘고 하다 보니 다 같이 모여 고전영화를 보거나 하는 것들이 잘 안 된다.
재호: 동아리 내에서 제작이냐, 감상이냐 사이에서 많이 고민하기도 했었다. 이제는 굳이 동아리가 아니어도 서울아트시네마에만 와도 좋은 영화들을 충분히 볼 수 있기 때문에, 동아리 내에서 감상은 전제로 하고, 제작에 좀 더 힘을 쏟으려한다.
민우: 저희도 비슷하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것 같다.
재호: 요즘 동아리 활동이 쇠퇴하고 있는데 좋은 활력소를 찾고자한다. 김한민 감독이 미장센심사위원을 하면서 “요즘은 비영화과학생들의 새롭고 재기 넘치는 영화들이 드물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뭔가 좀 다른 걸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민우: 관습적이지 않으면서 사고치는 영화. 필름에서 디지털로 바뀌면서 작업자체가 많이 간소화되어서, 우리가 그런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된다.


짧고 거칠지만 신선한 영화 만들고파!

영석: 올해, 혹은 내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볼 수 있게 되길 바란다(웃음). 영화와 관련해서 글쓰기나 연출이랄지, 개인적으로 욕심을 두고 있는 부분은 무언가.
민우: 영화연출을 꿈꾸고 있다. 원래 영화과를 가고 싶었는데, 집안 반대로 그러진 못했었다.
재호: 연출보다는 촬영이나 편집 쪽으로 관심 있었다. 그런데 단편영화작업을 실제로 해보면서 쉽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영상에 관심이 있지만 집단작업은 좀 힘든 것 같고, 좀 더 개인적인 작업에 관심이 간다. 지금 동아리에서 하려는 것도, 좀 더 간소하게, 無 예산으로 짧고 거칠지만, 신선한 걸 만들어보고 싶다.

영석: 시네클럽에서 각자 이번 참여를 통해서 얻고 싶은 게 있다면 어떤 건가. 특별히 그 감독의 강의를 선택하게 된 계기랄까.
민우: 오승욱 감독과 류승완 감독의 강의를 듣는다. 오승욱 감독은 영화 연출 보다는 시나리오를 많이 쓰셨는데, 시나리오도 그렇고 영화에 관한 글도 잘 쓰신다. 특히 옛날 한국영화들을 찾아내서 쓰는 글들이 좋다. 정말 영화에 대한 열정이 느껴진다. 류승완 감독은 제목이 ‘나는 어쩌다 영화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가’인데, 나도 어떻게 하면 어쩌다 영화를 만드는 일을 하게 될지 궁금하다(웃음).
재호: 류승완 감독은 패기가 정말 멋지시다. 영화도 매력적이지만, 영화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이나 모습이 멋지다고 생각되어서 지원하게 되었다. 영화를 대하는 태도, 자세 같은 걸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책에서 볼 수 있는 지식이 아니라 본인의 노하우를 듣게 될 텐데 그런 점들이 기대된다.

영석: 각자 좋아하는 감독이나 영화, 그리고 만들고픈 영화가 있다면.
민우: 좋아하는 감독은 우디 알렌이다. 만드는 사람 개인이 투영되고, 자신의 주변 이야기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어 가는 게 매력적이다. 나도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
재호: 제2의 홍상수영화?
민우: 사실 마초적인 영화도 좋아한다.
재호: 우디 알렌도 좋아하고... 수다스런 영화를 좋아한다. 윤성호 감독 영화를 좋아하는데, 수다스럽고, 가벼워서 나풀거리는 듯하면서도, 진심이 담겨있는 그런 영화. 오늘 아침에 본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도 참 좋더라. 취향이 난잡해서 딱히 꼬집어서 좋아하는 영화를 말하기가 어렵다.

그들만의 리그가 아닌 공간, 시네마테크

영석: 시네마테크에는 언제부터 다녔나?
민우: 2005년, 서울아트시네마가 낙원상가로 이사 오면서부터 다녔다. 우연히 실험영화제 때 극장에 왔다가 그 후론 거의 매일 드나들기 시작했다. 학교사람들이 ‘민우 어딨냐’고 찾으면 다들 극장에 있을 거라고 말할 정도로. 하루에 두세 편씩 보았다. 군대에 있을 때 전용관문제를 뉴스를 통해 접하게 되었는데, 지금은 또 공모제문제 얘기가 나오면서, 그런 소중한 공간을 뺏기는 느낌이었다.

영석: 시네마테크 전용관이 생기게 되면 동아리들이 활동하기에도 좋을 것 같다.
민우: 이곳은 우리 같은 학생들이 영화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재호: 사실 유일하다는 것 자체도 속상한 일인데, 그것마저 뺏으려한다는 게 어이없다. 사실 명분이라고 내세우는 것들이 말도 되지 않는 것들이고, 화가 난다.

영석: 사실 시네마테크의 혜택을 누리를 수 있는 사람들은 영화과 학생들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비영화과 학생들일 수 있을 텐데. 피부로 다가오는 게 클 것 같다.
민우: 시네마테크가 아니라면 영화의 수요층이 굉장히 좁혀지게 되고, 만드는 입장에서도 결구 그들만의 리그가 될 수 있다.
 
 

시네마테크 전용관 건립 잘 되길

영석: 외국의 시네마테크는 상영관뿐만이 아니라, 박물관, 도서관, DVD를 볼 수 있는 공간, 카페가 함께 있다. 시네마테크가 영화관계자나 전공학생들만을 위한 게 아니라 일반사람들을 위한 교육적인 기능도 하는 곳인데, 공간 자체가 없으면 그런 것들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된다.
민우: 군대에 있을 때 한 선임병이 있었다. 영화라면 멀티플렉스에서 하는 개봉영화만 보던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TV에서 마틴 스콜세지의 <좋은 친구들>을 봤다고 했다. 평소 같았으면 잘 모르는 영화니까, 바로 채널을 돌렸을 법한데, 끝까지 다 봤다고 했다. 주인공이 여자를 데리고 식당을 들어가는 장면이 있는데, 롱테이크로 찍혀진 장면이다. 그 사람은 롱테이크라는 말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그 장면이 너무 좋았다고 했다. 그리고 나서는 스콜세지의 영화들을 전부 챙겨보았다고 했다. 영화에는 그렇게 우연히 풍덩 빠지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시네마테크라야 말로 그런 식의 영화와의 만남이 가능한 공간인 것 같다.

영석:
본인들에게도 그런 계기가 있었는지.
민우: 이렇게 얘기하면 사람들이 의아해하는데 <다이하드>가 그랬다. 캐릭터가 흥미롭다.재호: 어렸을 때, 성룡영화 좋아했다. <프로젝트A>나 <용형호제>같은. <미지와의 조우>같은 스필버그 사단의 영화도 좋아했다. 고등학교 때는 타란티노나 왕가위 영화들을 봤다.
민우: 내가 ‘연출을 하고 싶다,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것이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을 보고 나서다.

영석: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재호: 다들 취향이 다를 뿐이지 영화를 많이 좋아하지 않나. 시네필 중에서 너무 무거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반 관객들 중에서 너무 가벼워서 날라 다니는 사람도 있는데, 그 둘을 좀 섞어놨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동아리가 그런 기능을 했으면 좋겠다.
민우: 우리가 많이 고민해서 우리 스스로 변화를 모색할 수 있으면 좋겠고, 시네마테크 전용관 문제도 잘 됐으면 좋겠다.
재호: 정말 잘 됐으면 좋겠다.!!


(진행: 박영석, 정리: 장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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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②


존 포드는 1895년 2월 미국 메인주에서 아일랜드 이민자의 후예로 태어났다. 영화계에서 ‘잭 포드(Jack Ford)’라는 예명으로 일하면서 배우, 스턴트맨, 시각효과 등의 다양한 경험을 쌓았으며, 그의 형인 프랜시스 포드의 조연출을 거쳐 자신의 이름을 건 연출을 시작했다. 현장에서 계속된 영화작업을 통해 스스로를 발전시켜나간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포드는 폭스와 워너 등 메이저 스튜디오에 소속되어 50년(1917~1966)의 연출경력동안 웨스턴, 가족멜로드라마, 코미디, 전쟁물 등 다채로운 장르의 영화를 만들었다.

미국 영화의 카리스마

특히 포드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단연 웨스턴이다. 포드는 스스로 자신을 소개할 때 “내 이름은 존 포드다. 나는 서부영화 감독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그의 경력을 온전히 설명해주지는 않지만, 서부영화를 상징하는 감독으로서의 무게감을 잘 드러낸다. 그의 웨스턴 영화가 보여주는 서부개척 신화는 미국 건국의 역사와 조응했으며, 그가 이뤄낸 웨스턴의 장르적 진화는 할리우드 클래식의 형식적 발전의 주요 요소가 되었다. 그리하여 포드는 고전기의 미국영화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남게 된다. 이번 친구들 영화제의 특별 섹션으로 마련된 ‘존 포드 걸작선’에는 그의 유명한 웨스턴영화들을 비롯하여 코미디와 드라마 영화도 포함되어 있다. 그의 방대한 필모그래피를 음미해 볼만한, 비교적 다양한 시기의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을 만나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굽이도는 증기선>은 포드의 초기 유성영화의 스타일을 드러내는 블랙코미디로 윌 로저스 삼부작의 마지막 작품이자 그의 유작이다. 로저스가 연기한 엉뚱한 행동을 보이지만 소박하고 따스한 마음씨를 가진 인물 닥터 존은 포드 영화의 인간적인 면을 잘 드러내준다. 증기선의 질주와 장르적 쾌감의 상승효과가 어우러지는 후반부의 즐거움이 압권이다.

포드 영화를 얘기할 때 드라마도 빼놓을 수 없다. 포드의 많은 드라마 중에서도 가장 가족멜로드라마의 원형에 충실한 걸작들이라면, 아카데미 연속 수상을 달성한 <분노의 포도>와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일 것이다. <분노의 포도>는 불합리한 사회구조 속에서 붕괴되어가는 가족과 그에 따른 분노의 표출을 그린다.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는 전작과 유사한 구도로 행복한 가족이 탄광회사의 횡포로 겪는 갈등을 보여주는데 가족의 따스한 유대감에 더 집중하여 가슴 저린 감동과 유년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특히 포드의 드라마에는 아일랜드에 대한 그의 근원적 그리움의 정서가 짙게 배어있다.

창조한 신화를 스스로 전복시키다!


하지만 역시 포드의 매력적인 영화들은 웨스턴에 집중되어 있다. 무성영화 시절 포드의 최고 걸작 중 하나인 거대한 스케일의 <철마>는 대륙횡단철도를 연결시키려는 꿈을 키워가던 사람이 마침내 그것을 이뤄내는 과정을 통해 서부개척 신화의 가장 핵심적인 사건 중 하나를 다룬다. 포드는 이미 39년에 <역마차>와 <모호크족의 북소리>를 통해 고전적인 웨스턴의 원형을 정립한 바 있다. 서부개척의 역사에서 발생했던 인디언과의 전쟁, 공동체의 구축과 문명의 도입 과정, 서부사나이들의 결투 등이 다뤄진다. 예컨대 <모호크족의 북소리>는 미국이 독립전쟁을 치르던 시기를 배경으로, 다양한 인종이 함께 공동체를 형성하여 척박한 자연환경에 맞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간다는 미국적 개척신화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번 상영작 중 더 눈 여겨 봐야할 것은 그의 중후반부 작품들이다. 포드의 웨스턴에서 경력의 후반부로 갈수록 더 강해지는 특징이 있다면, 인디언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영웅적 군대의 모습을 보여주거나 강한 총잡이끼리의 결투를 긴장감 있게 연출하는 것보다는 전쟁이나 결투 전후의 사람들의 일상적 삶의 모습을 다룬다는데 있다. 포드는 개인을 사회 혹은 역사 속에 두면서도 거기에 함몰시키지는 않았던 것이다. 아니 차라리 실제로 역사에서 함몰되었던 사람들의 삶을 영화 속에서 복원해낸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를테면 <황야의 결투>는 문명이 개척되고 사람들이 변해가는 과정을 상징적인 여성의 존재성과 사랑을 통해 보여주는데, 이는 실제역사이자 서부극의 신화로서 영화의 큰 골격을 형성하는 와이어트 어프와 클랜튼 가족 간의 OK목장의 결투보다 더 중점적으로 다뤄진다. 또한 <아파치 요새>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기병대의 패배를 다루면서도 그 전투 자체보다는 요새에 살던 이민자들의 소수 공동체에 동부의 질서(대령과 그의 딸)가 유입되는 것을 보여 준다. 공동체 삶의 모습이 새로운 질서를 따라 변화하는 모습에 더 집중한 것이다. 1940년대 중후반부터 <수색자>에 이르는 시기에 만든 그의 웨스턴영화들은 그를 서부영화 감독으로서 정점에 다다르게 했다.

이후로도 그의 작업은 계속되었다. 그는 웨스턴에 담겨있던 세계관들을 스스로 비판하고 성찰하는 영화들을 만들었다. <말 위의 두 사나이>은 기병대 문화, 가부장제, 백인 우월주의에 대한 비판과 자본주의의 유입을 담고 있으며,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는 옛 가치가 새로운 가치로 완전히 대체되는 서부의 풍경을 다룬다. 이는 옛 가치를 대표하는 톰 도니폰(존 웨인)과 새로운 가치를 대표하는 랜섬 스토다드(제임스 스튜어트)를 통해 극명히 양분화 된다. 도니폰은 열심히 집을 짓지만 더 이상 그곳에서 살아갈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아버리고는 스스로 그 집을 태운다. 도니폰과 같은 사람은 이제 스토다드와 같은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세상의 건설을 어둠 속에서 돕는 역할을 할 뿐이다. 일종의 역사적 희생자를 재물삼아, 역사는 이러한 방식으로 신화가 된다. 전투에서 패배한 대령이, 영웅으로 신화화 되는 <아파치 요새>처럼 말이다. 결과적으로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는 웨스턴에 대한 장례를 스스로 치른 셈이 됐다. 영화에는 옛 가치의 상실에 대한, 그리고 동시에 웨스턴 장르의 인기가 시들어가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의 멜랑콜리가 담겨있다. 실제로 유작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존 포드의 유작처럼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고전기 영화의 위대한 유산


한편 포드와 함께 웨스턴의 전형으로 자리 잡은 것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배우 존 웨인과 모뉴먼트 벨리라고 할 수 있다. 포드는 이를 기본으로 삼으면서 이에 안주하지 않고, 다른 요소들, 이를테면 헨리 폰다나 제임스 스튜어트와 같은 다른 성격을 지닌 배우들을 기용하고, 이들의 캐릭터를 내러티브 구축의 역학과 연동시키면서, 스스로의 전형성에 변주를 가했다. 또한 주연과 조연을 오가며 포드와 평생을 함께한 워드 본드, 빅터 맥라글렌 등의 개성 강한 배우들도 영화의 서브플롯들을 작동시키는 중요한 요소로서 포드 영화의 다채로움과 풍요로움을 증진시킨 보증수표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닌 포드가 그의 경력 전반에서 가장 지속적으로 탐구한 문제가 있다면 무엇일까? 그건 아마 ‘영화에 삶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라는 단순하고 소박한 문제의식일 것이다. 그는 누구보다도 그것을 잘 해냈던 사람이다. 포드에게 있어서 인간성, 가족, 그리고 집이라는 가치는 가장 핵심적인 주제들이다. 그는 평생에 걸쳐 아일랜드라는 뿌리를 잊지 않았다. 공화당원이자 보수주의자였으며, 가톨릭 신자였던 포드는 그의 영화처럼 일관성 있게 평생을 살았던 인물이다. 그는 배우에게 어떤 연기를 요구하고, 카메라를 어디에 세팅하고, 미장센과 몽타주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에 대한 지극히 영화적인 직관만으로도, 아름다운 영상과 고결한 정신이 깃든 영화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스튜디오 시스템의 통제를 받으면서도 이렇듯 일관성 있는 작품들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이다. 그의 비전의 심원함은 영화가 어떠한 예술가적 자의식을 요구받지 않고, 그 깊이와 완성도만으로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는데 있다. 그렇게 존 포드의 영화들은 고전기 영화의 위대한 유산으로 신화처럼 남아있다. (박영석)

 ■ 존 포드 걸작선 
 
 철마 The Iron Horse
 
1924 | 133min | 미국 | B&W | 35mm 
 
 굽이도는 증기선 Steamboat round the Bend
 
1935 | 81min | 미국 | B&W | 35mm 
 
 모호크족의 북소리 Drums Along the Mohawk
 
1939 | min | 미국 | Color | 35mm 
 
 분노의 포도 The Grapes of Wrath
 
1940 | 129min | 미국 | B&W | 35mm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How Green Was My Valley
 
1941 | 118min | 미국 | B&W | 35mm

 
황야의 결투 My Darling Clementine
 
1946 | 미국 | 97min | B&W | 35mm

 
아파치 요새 Fort Apache
 
1948 | 미국 | 127min | B&W | 35mm

 
말 위의 두 사람 Two Rode Together
 
1961 | 미국 | 109min | Color | 35mm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 The Man who Shot Liberty Valance
 
1962 | 미국 | 122min | B&W | 35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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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19일 화요일  정시우 기자  

눈 밑에 점 하나 찍었을 뿐인데, 애미애비도 못 알아보는 딸내미로 변신하는 막장 이야기가 기막히다면, 자판 하나 뚝딱 두드려서 영화를 다운 받아 보는 낭만 잃은 시대가 아쉽다면, 엔딩 크레디트가 다 올라갈 때까지 객석을 뜨지 않는 마음 맞는 이들과 함께 하고 싶다면,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가 좋아 죽겠다고 모인 이들의 열기 가득한 공간이 그립다면 낙원상가에 위치한 시네마테크로 살짝 눈길을 돌려보라. 영화를 사랑하고, 영화에 대한 존경을 마다않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영화인들이 또 한번 의기투합했다. 2006년 1월, 영화문화의 다양성을 외치며 출항 한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어느덧 5주년을 맞았다. 개막작 루이 푀이야드의 <뱀파이어>를 시작으로 45일간의 항해에 들어간 올해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영화는 모두 44편. 박찬욱 감독을 비롯해 김지운, 김한민, 윤종빈, 류승완, 박찬옥, 봉준호, 오승욱, 이명세, 이재용, 전계수, 최동훈, 홍상수 감독과 배우 안성기, 영화평론가 김영진 등이 자신들의 가슴에 품은 영화를 들고 관객 앞에 섰다. 하나같이 주옥같은 작품들이니, “도대체 뭘 봐?”하는 고민이 안 될 수 없을 터. 그래서 영화제에 탑승할 친구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9편의 작품과 걸작전 1개를 소개한다. 하지만 아래 소개하는 영화들은 순전히 ‘무비스트’의 취향이 반영된 리스트일 뿐이니, 기타 자세한 사항은 영화제 홈페이지를 참조하길 바란다. 특히 두 달이라는 긴 영화제 기간 동안 일정에 변동이 생길 수 있으니, 틈틈이 체크하는 센스는 필수다. 그래야 1년을 기다린 영화를 눈앞에서 놓치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정성일 영화평론가가 추천하는 <뱀파이어> Les Vampires
연출: 루이 푀이야드 | 출연: 무시도라, 에두아르 마테| 1915년 | 399분 | 12세 관람가

<트와일라잇>의 사각턱 뱀파이어 오빠, 에드워드(로버트 패틴슨)을 생각하면 안 된다. <렛미인>의 미소녀 뱀파이어 이엘리를 기대해서도 안 되고, 사랑에 눈이 먼 ‘옥빈낭자표’ 뱀파이어를 추측해서도 안 된다. 이번 영화제 개막작이자 정성일 영화평론가의 추천작이기도 한 루이 푀이야드의 <뱀파이어> 속, 뱀파이어는 피에 환장한 흡혈귀가 아니라, 파리의 범죄 집단 이름이다.

1915년부터 1916년까지 제작된 <뱀파이어>는 총 10편으로 제작된 무성영화다. 그러니까 <스파이더맨>, <트랜스포머>류의 시리즈물을 떠올리면 되는데, 영화는 앞의 두 영화만큼이나 당대에 큰 사랑을 받으며 공전의 히트를 친 것으로 기록돼 있다. 푀이야드를 스릴러 장르의 주요 개척자로 자리 잡게 한 수작으로 몽환적이면서 낮선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그의 연출력은 훗날 프리츠 랑, 알프레드 히치콕, 알랭 레네, 데이비드 린치 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오는 1월 20일과 2월 10일, 10개의 에피소드가 모두 상영된다고 하니, 도시락 싸 들고 가서 하루 죙일 극장에 칩거해보는 것도 기억에 남을 추억이 될 듯싶다.

류승완 감독이 추천하는 <열혈남아> 旺角下問
연출: 왕가위 | 출연: 유덕화 장만옥| 1987년 | 94분 | 18세 관람가

맨몸으로 세상과 맞짱 뜨는 열혈남아 ‘다찌마와 리’로 사랑받은 류승완 감독의 추천작은 (너무나도 어울리게) <열혈남아>다. 뒷골목 인생들의 허무와 패배의식을 통해 홍콩의 불확실한 미래를 보여준 왕가위 감독의 데뷔작으로 '왕가위표'라는 새로운 감수성을 탄생시킨 작품이기도 하다. 주목할 것은 이번에 상영되는 <열혈남아>는 기존에 개봉한 대만 버전이 아닌 홍콩버전(감독판)이라는 점이다.

때문에 이번 상영작에는 공중전화박스 장면에서 흘러나왔던 왕걸의 노래 "너는 내 가슴 속의 영원한 아픔" 대신, 임억력이 <탑건>의 O.S.T를 번안해 부른 ‘Take My Breath Away’가 나온다. 공중전화 키스씬과 더불어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린 엔딩장면 안타깝지만 역시 볼 수 없다. 하지만 유덕화, 장학우, 장만옥 등 톱스타들의 혈기왕성하고, 주름 없는 옛 모습을 볼 수 있으니, 그들의 팬이라면 놓치기 아까운 시간이다

봉준호 감독이 추천하는 <서바이벌 게임> Deliverance
연출: 존 부어맨 | 출연: 존 보이트, 버트 레이놀즈| 1972년 | 110분 | 15세 관람가

<서바이벌 게임>을 어떻게 표현해야 가장 적절한 설명이 될까? 위험한 장면이 너무 많아 모든 보험회사들로부터 촬영 관련 보험 가입을 거부당했다는 사실? 아니면 할리우드의 강심장 쿠엔틴 타란티노가 어릴 적 이 영화를 보고 큰 충격에 빠졌다는 사실? 그것도 아니면 2005년 최고의 공포영화로 뽑힌 닐 마샬 감독의 <디센트>의 레퍼런스가 된 작품이라는 사실? 수몰지역의 자연과 자연인들이 네 명의 도시인에게 무차별적인 복수를 가하는 대학살 극 <서바이벌 게임>은 현대 슬래셔 영화들에 원대한 영향을 끼친 작품으로 평가받는 영화다.

그러니, 호러영화의 애호가라면, 냉큼 서바이벌 게임 속으로 들어 갈 준비를 하시라. 영화는 ‘위대한 미국’이라는 건국 신화 이면의 야만성과 모순을 폭로했다는 높은 평가를 받으며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안젤리나 졸리의 아버지로 잘 알려진 존 보이트의 겁에 질린 명연기에 덩달아 겁에 질리게 될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명세 감독이 추천하는 <동경 이야기> Tokyo Story
연출: 오즈 야스지로 |출연: 류 치슈, 히가시야마 치에코| 1953년 | 136분 | 15세 관람가

비주얼리스트 이명세 감독이 미니멀리즘 미학의 선구자인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를? 상영작 중에 추천인과 추천작의 매치도가 가장 낮은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만, 야스지로가 (낮은 앵글로 인물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일명) '다다미 쇼트'를 통해 가장 전통적이고 일본적인 영상미학을 구축했다는 평을 받는 감독이라는 점을 상기해보면, 일면 공감이 가기도 한다.

<동경이야기>는 자타가 공인하는 오즈의 대표작으로 평론가들이 뽑은 역대 최고의 영화 순위에서 10위권 밖으로 밀려난 적이 없는 수작이다. 영화는 가족 제도의 붕괴와 노인 소외 문제에 대한 비판을 ‘무심한 듯 시크하게’ 흐르는 절제된 카메라와 쓸쓸한 필치로 풀어낸다. 파격적인 내용을 찾는 이들에겐 심심할 수 있는 작품이지만, 최소의 움직임만으로 삶을 꿰뚫어내는 기운만은 강력하니, 오즈 야스지로를 몰랐던 사람이라면 도전해 볼 만 하겠다.

김지운 감독이 추천하는 <마태복음 Il> Vangelo secondo Matteo
연출: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 | 출연: 엔리케 이라조퀴, 마르게리타 카루소| 1964년 | 137분 | 12세 관람가

이탈리아의 뛰어난 시인이자 소설가, 영화감독이자 평론가였던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를 아는가. 1975년 11월 2일 로마 외곽의 황량한 벌판에서 동성애 매춘을 하던 한 소년에 의 해 처참하게 살해되며 더 유명해 진 감독, 파시즘에 정면도전한 공산주의자로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간 감독이 바로 파올로 파솔리니다. <마태복음 Il>는 예수의 삶과 말씀인 마태복음 1장에서 28장까지의 전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로 파솔리니는 영화에서 자신만의 리얼리즘 방법론으로 새로운 예수의 이미지를 창조하는가 하면, 바흐 모차르트의 종교음악 등을 삽입해 경건한 분위기를 연출해 냈다.

결국 영화는 영화평론가들로부터 종교적 영감을 가장 감동적으로 표현했다는 평가를 얻으며 파솔리니에게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국제 비평가협회 대상, 최우수 촬영상과 기독교 영화제 대상 등의 영예를 안겼다. 이 영화를 김지운 감독이 추천했다는 사실에 놀랄 이도 있겠으나, 그가 오래전부터 파솔리니에 대한 애정을 밝혀 온 감독임을 아는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것으로 보인다.

최동훈 감독이 추천하는 <바람에 사라지다> Written on the Wind
연출: 더글라스 서크 | 출연: 록 허드슨, 로렌 바콜| 1956년 | 99분 | 12세 관람가

최근 <전우치>의 흥행으로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는 최동훈 감독의 추천작은 1940~1950년대 할리우드 멜로영화를 이끌었던 더글러스 서크 감독의 <바람에 사라지다>다. <범죄의 재구성>, <타짜>로 대변되는 최동훈의 전작을 살펴보면, 그가 멜로영화를 추천했다는 게 다소 의외일 수 있으나, 그건 더글라스 서크를 몰라서 하는 말씀이다. 그는 단순한 통속극을 이데올로기적 비판의 도구로 승화시킨 대표적인 작가주의 감독이다. 석유재벌 2세 카일과 가난한 단짝 친구 미치, 카일 소유의 계열사 비서 루시와 카일의 여동생 마릴 리가 펼치는 애정관계를 담은 <바람에 사라지다>는 시나리오 상으로는 삼각, 사각으로 꼬인 구닥다리 멜로드라마에 불과하다.

하지만 서크는 놀라운 연출력이 더해지면 영화는 장르영화의 컨벤션을 전복시키고, 급기야 부르주아와 가부장적 문화에 날카로운 비판의 날을 세운다. 로버트 와일더의 통속 소설을 영화화 한 작품으로 멜로드라마의 선구적인 작품으로 기억되고 있다.

배우 안성기가 추천하는 <아마데우스> Amadeus (New 35mm 디렉터스 컷)
연출: 밀로스 포먼 | 출연: F. 머레이 에이브러햄, 톰 헐스| 1984년 | 160분 | 전체관람가

짐작컨대, 밀로스 포먼의 <아마데우스>를 통해 관객들이 발견하고, 감정이입하게 된 인물은,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난 주인공 모차르트가 아니라, 그에 대한 ‘넘사벽’을 실감하며 일평생 질투와 열등감에 괴로워했던 안토니오 살리에르일 것이다. 특히 영화 마지막, “나는 보통사람들의 대변자”라고 고백하는 살리에르의 고독한 얼굴은 묘한 연민을 불러일으키며 그를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악당으로 만들었다.

피터 쉐퍼의 동명 희곡을 바탕으로 한 <아마데우스>는 살리에르의 고백을 통해 모차르트의 짧은 생애와 음악을 조명한 영화다. 1985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 최우수 작품상, 남우주연상 등 8개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개봉 당시 삭제됐던 20분을 완벽하게 복원한 디렉터스 컷으로 상영된다. 배우 안성기가 추천하는 영화로 ‘살리에르 증후군’에 시달리는 이들이라면 주목하시길.

시네마테크가 추천하는 <사냥꾼의 밤> The Night of the Hunter (New 35mm 프린트)
연출: 찰스 로튼 | 출연: 로버트 미첨, 셀리 윈터즈| 1955년 | 92분 | 12세 관람가

개봉 당시에 엄청난 혹평을 받았다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재해석되고, 재평가를 받는 영화를 ‘저주받은 걸작’이라고 한다. 대표적으로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와 왕가위의 <아비정전>을 꼽을 수 있는데, 그나마 이들은 살아있을 때 재평가를 받았다는 점에서 행운아다. <사냥꾼의 밤>의 찰스 로튼은 살아생전 좋은 소리 한 번 못 들었다가, 사후에야 인정을 받았으니 말이다. 결국 찰스 로튼은 작품의 실패에 크게 낙담해 계획됐던 차기작 연출을 모두 포기했고, <사냥꾼의 밤>은 그가 연출한 처음이자 마지막 작품이 됐다.

참고로 찰스 로튼은 감독이기 이전에,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인기 배우다. 그러니 만약 <사냥꾼의 밤>이 당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았다면, 우리는 일찍이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같은 ‘명배우겸 명연출가’를 만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요괴라는 소재를 통해 인간의 선과 악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돈을 차지하기 위해 어린 남매를 쫓아다니는 로버트 미첨의 신들린 듯한 연기가 압권이다. 영국에서는 한 때 어린이들에게 보여줘서는 안 되는 X등급 영화로 평가되기도 했는데, 이번 영화제에서는 12세 관람가로 소개되니, 과거와 현재의 등급에 대한 상대적인 눈을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다.

관객들이 추천하는 <항해자>The Navigator
연출: 버스터 키튼 | 출연:버스터 키튼, 캐트린 맥과이어 | 1924년 | 63분 | 12세 관람가

‘소녀시대가 제일 우월하네, 원더걸스가 더 지존이네’ 하는 논쟁보다 오래된 갑론을박이 있다. 바로 찰리 채플린과 버스트 키튼 중 누가 더 위대한 무성영화의 전설인가를 논하는 싸움이다. 국내에서는 (TV에 자주 등장하는) 찰리 채플린에 대한 선호도가 훨씬 높지만 이는 버스트 키튼에 대한 소개가 상대적으로 덜 이루어진 탓일 뿐, 영화사에서 그는 채플린 못지않은 지위를 점하고 있다. 찰리 채플린과 함께 슬랩스틱코미디 장르를 이끈 버스트 키튼은 ‘아크로바틱’한 스턴트 묘기와 영화적인 기교들을 이용해 당대의 사람들에게 큰 웃음을 안겼다.

동시에 웃음을 자아내는 상황에서도 표정이 전혀 변하지 않는 ‘그레이트 스톤 페이스’로 삶에 대한 묘한 페이소스를 전하기도 했다. 그런 버스트 키튼을 이번 영화제에서는 <항해자>를 통해 만날 수 있다. 오해에 휘말린 두 남녀가 '항해자' 호를 타고 망망대해에서 표류하게 되면서 겪는 모험을 그린 작품으로 장 엡스텡 감독의 <어셔가의 몰락>과 함께 ‘관객들의 선택’ 상영작으로 선정 돼 관객을 찾아간다.

존 포드 걸작전 John Ford Special

이번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는 1940∼60년대 할리우드의 서부영화 전성시대를 이끈 존 포드의 영화들이 ‘존 포드 걸작전’이란 이름으로 상영된다. 김영진 평론가가 추천하는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와 크리스 후지와라 평론가의 선택작인 <말 위의 두 사나이> 외에도, 1924년작 <철마>, 35년작 <굽이도는 증기선>, 39년작 <모호크족의 북소리>, 40년작 <분노의 포도>, 46년작 <황야의 결투>, 그리고 62년작인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와 48년작 <아파치 요새> 등 총 9편이 찾아간다. 서부극 최고의 작품으로 꼽히는 그의 39년작 <역마차>와 56년작 <수색자>가 빠진 게 아쉽지만, 이 중 6편은 서울아트시네마 측이 '필름 라이브러리' 사업의 일환으로 직접 구입한 새 35mm 필름으로 상영될 예정이라니 존 포드의 팬들은 주목하길 바란다.

글_ 정시우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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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트시네마는 제 고향입니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성인이 갖춰야 할 조건들이 많다고 느끼며 힘들어하던 시기에 그곳은 제게 위안이 되고, 친구가 되어주는 곳입니다. 단순히 오락으로만 영화라는 문화를 접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바로 잡아주는 유일한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화는 경제이며 생활이고 예술입니다. 영화가 가진 문화적 위력은 사상을 바뀌게도 하고, 웃음을 주기도 하며 용기를 주곤 합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고전영화' 자체를 모르는 친구들이 더 많습니다. 소개로 극장을 찾은 친구들은 많은 관심을 보이며 '좋은 영화를 상영하는 곳'이란 말을 제게 하곤 합니다. 전 그 공간을 사랑하고 그런 공간을 변함없이 유지해주시는 분들께 항상 감사합니다. 좋은 영화를 보고 좋은 대화를 나누는 공간은 요즘의 멀티플렉스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라서 그곳이 더욱 잘 지켜지길 바라는 마음이 항상 간절합니다. 그 곳은 영화를 공부하거나, 직업으로 삼고계신 분들께 더욱 좋은 곳 일 수도 있겠지만 순수하게 고전영화의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해 극장을 찾는 저와 같은 관객들에게는 둘 도 없는 극장입니다. 언제나 그곳을 지키는 분들께 뜨거운 응원의 마음을 보냅니다. 제가 좋은 관객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자주 극장을 찾아 좋은 영화를 더 많이 보는 거라고 생각하고, 그러기를 언제나 바랍니다. (한세희, 2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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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함께 영화를 본다는 것이 함께 숨 쉬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면, 나와 당신이 낙원동 골목 어귀에서 만났던 매 순간마다, 그 지긋지긋하게 느려터진 엘리베이터에서 황급히 빠져나올 때 마다, 같은 추억을 쌓았던 그곳. 세월의 연륜과 추억으로 겹겹이 쌓인 의심할 바 없는 명품영화를 만날 수 있는 ‘내 영혼의 충전소’ 시네마테크는, 서울아트시네마뿐이다. 그곳 외에는 생각조차해본 일이 없다. (백건영,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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