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 흘러도
가 거기에 있는 한, 아니 그 기억만으로도
음을 나눌 수 있는 곳, 시네마테크
크놀로지의 시대에 무슨 고전이냐고? 일단 한번 봐봐.

나큰 감흥과 함께 세계를 경험 할 터이니.

한상희, 26세

빈약했던 서울의 수많은 씨네소울들이 서울아트시네마가 지어주는 밥을 먹고, 내주는 잠자리에서 자고 하면서 그 동안 많이 풍족해졌습니다. 저도 그 수혜자 중 하나로, 가족 같은 마음에서 서울아트시네마를 편애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헌데 지금, 저는 뉴욕에서 살며 뉴욕의 시네마테크를 보며 한국의 서울아트시네마를 그리워합니다. 관객의 열정도, 프로그램의 질도, 우리 서울아트시네마만한 곳을 찾기 힘듭니다. 내가 그 자식이 아니었대도 말입니다. 이런 소중한 곳이, 사랑은 있지만 돈이 없어 사라져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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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 흘러도
가 거기에 있는 한, 아니 그 기억만으로도
음을 나눌 수 있는 곳, 시네마테크
크놀로지의 시대에 무슨 고전이냐고? 일단 한번 봐봐.

나큰 감흥과 함께 세계를 경험 할 터이니.


김숙현, 37세


서울아트시네마가 얼마나 대단하고 멋지고 행복한 곳인지, 내가 이곳에 얼마나 애정을 갖고 있는지 굳이 현란하고 긴 수식어를 연발하며 요란을 떨고 싶지는 않다. 진짜 행복은 조용히 웃는 표정 하나만으로 다 전달되는 법이니까. 그리고 애정은 말만으로 지속되지는 않으니까. 정성일 영화평론가는 서울아트시네마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저 자주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이라고 잘라 말한 바 있다. 그렇다. 나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계속해서 서울아트시네마에 영화를 보러 올 것이다. 영화를 보며 울고 웃고, 친구와 환희의 비명을 나누며 폴짝폴짝 뛰고, 벅찬 가슴에 밤잠을 못 이루며 글을 쓰는 경험을 계속할 것이다. 거기에 특별한 하나를 보탠다면 간간이 해왔던 번역후원 노릇을 앞으로도 계속하는 것 정도? 머리가 하얗게 센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서도 지팡이를 짚고 여전히 이곳에 와 울고 웃을 수 있다면. 그게 내가 간절하게 바라는 것이다. 이 소망이 너무 큰 욕심이 아니기를, 그저 나 혼자만의 꿈이 아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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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거기에 있는 한, 아니 그 기억만으로도
음을 나눌 수 있는 곳, 시네마테크
크놀로지의 시대에 무슨 고전이냐고? 일단 한번 봐봐.

나큰 감흥과 함께 세계를 경험 할 터이니.


김태미, 27세


I LOVE 'C'. 극장 안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은 어딘가 모르게 수줍고도 음험한 행동처럼 보인다. 어둠속에 가만히 앉아 스크린을 보는 것은 타인의 내밀한 고통과 슬픔, 기쁨과 열정은 물론이고 설명되어질 수 없는 것들에 관한 기록을 훔쳐보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끄러움 많은 자들이 비밀스런 호기심만을 채우기 위해 극장을 찾는 것은 아니다. 내가 그랬고 당신이 그랬듯이 영화가 ‘나’를, ‘당신’을, ‘우리’를 알아주기에 그 커다랗고 깜깜한 방에 발을 들이게 되는 것이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영화는 알고 있다. 극장 안에서 눈이 마주치는 순간, 영화는 우리에게 속삭인다. 사실은 지금 너의 마음이 어떤지 알고 있다고 말이다. 언제나 외로웠고, 여전히 외로운 우리들은 나를 알아줄 영화를 쫓다가 서울아트시네마에 도착하게 된다. 영화들의 집과 같은 그곳에서 영화를 보고 비틀거리며 걸어 나올 때, 옆에 있는 이름 모를 누군가의 얼굴에서 발견하게 되는 몽롱한 혼란과 희미한 미소는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 준다. 그리고 그 사실이 우리를 조금 덜 외롭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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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민, 윤종빈 감독과 함께한 으스타슈의 <엄마와 창녀> 시네토크


1월 17일 서울아트시네마에선 무려 4시간 가까운 상영시간에 달하는 장 으스타슈의 <엄마와 창녀>(1973)를 인터미션도 없이 상영 후 이 영화를 친구들의 선택으로 꼽은 김한민, 윤종빈 감독과의 시네토크가 진행됐다. 3시간 40분 동안 서너 명의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전부인 영화. 이미 작년 11월에 일찌감치 이 영화를 선택했다고 하는 김한민, 윤종빈 감독은 왜 이 영화를 고른 것일까. 언뜻 보면 대조적이지만 은근히 잘 어울리던 두 감독의 마치 ‘시사토론회’ 같던 그 현장을 일부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 오랜만에 이 영화를 온전하게 다시 봤다. 게다가 젊은 장 피에르 레오를 보니 새롭다. 이 영화는 2003년에 서울아트시네마가 소격동에 있던 시절에 ‘장 으스타슈, 필립 가렐 특별전’을 개최할 때 처음 한국에서 상영한 바 있다. 이후에 DVD를 갖고 있어 몇 번 보긴 했지만 집에서는 온전하게 다 본 적이 없었다(웃음). 7년 만에 필름으로 다시 보니 좋다. 오늘 거의 4시간에 달하는 영화를 추천해주신 두 감독님을 모시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다.
윤종빈(영화감독) : 나도 이 영화를 2003년 선재에서 봤다. 그 때는 상영 중간에 한 번 쉬었었는데 안 쉬고 보니까 더 색다르다. 그리고 여전히 감동적이다. 영화를 많이 보지는 못하지만 꼽으라면 베스트 5위 안에 들어가는 영화다.
김한민(영화감독) : 나는 사실 윤종빈 감독이 추천해서 봤다. 제목도 <엄마와 창녀>고 해서 재밌겠다싶어 DVD로 먼저 본 다음에 함께 나오게 되었다. 영화를 보면서 내가 치열하게 영화에 대한 감성을 다듬던 대학시절, 대학원시절의 영화적 감성이 다시 올라오더라. 밀란 쿤데라가 얘기했던 팽창된 영혼의 순간을 느꼈다. 보고 나니 담배와 술이 확 땡기더라.



김성욱 : 지난 해 말에 영화가 잘 안 돼서 우울한 김한민 감독을 만나 술을 마시러 간 적이 있는데 윤종빈 감독도 자리를 함께 했었다. 그 때 윤 감독이 <엄마와 창녀>를 굉장히 좋아한다며 지금 시대에 한번 쯤 다시 틀어도 좋겠다고 해서 이번 영화제에 두분을 초대하게 됐다. 윤종빈 감독의 영화 <비스티 보이즈>와도 상당히 많은 관련성을 느꼈다. 이 영화에서의 알렉상드르와 하정우 씨 같은 경우가 상황이 좀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오늘 보면서 어땠나.
윤종빈 : 내가 좋아하는 감독들이 홍상수, 에릭 로메르, 장 으스타슈, 존 카사베츠 그런 감독님들이다. 그 감독들의 영화의 형식이라든지 세계관은 다 다르지만, 그들이 영화에 갖고 있는 믿음은 현실이 딱 깔끔하게 정리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현실은 거대 담론으로 해석되지 않는 것이라는 전제도 갖고 있다. 그래서 영화가 열려 있고, 어떤 결에 얽매이지 않으며, 느린 호흡으로 전개하면서도 인간의 풍부한 모습과 그 시대의 공기를 잘 전달한다. 나도 <비스티 보이즈>에서 그런 것을 해보려고 했는데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잘 안 된 것 같다. 하지만 계속 그런 것들을 염두에 두고 만들려고 한다.

김성욱 : 이 영화는 얼굴과 음성, 그리고 음악으로만 진행되는, 액션이 많지 않은 영화다. 얼굴과 말하는 것으로 네 시간을 끌고 가는데 김한민 감독의 영화는 액션도 많고 극적 전개가 많으니 좀 경우가 다르다. 이런 영화는 어떻게 생각하나.
김한민 : 사람들이 우리 두 사람을 보고 영화 스타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른데 어떻게 친해졌느냐고 물어본다. 그런데 실제로 영화 이야기를 나눠보면 비슷한 영혼을 갖고 있고, 교감할 수 있는 지점이 많다. 나는 윤종빈 감독이 부럽고 장 으스타슈도 부럽다. 영화를 계속할 수 있고, 자신이 보는 세상의 본질을 자기 스타일의 영화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게 부럽다. 가장 큰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 영화의 경우에는 그런 지점에 있어서 장르적이고 짜인 작업이기도 하고, 상업적인 고민 등으로 인해 닫혀 있는 것 같다. 영화를 볼 때 외적인 현상이나 스타일로 볼 것인가, 아님 주제로 볼 것인가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후자의 측면에 있어서는 나도 조금 ‘의식적인’ 감독이라고 스스로 평가한다. 농담 삼아 프로그래머님에게 “작가를 말하다”에 나는 왜 안 불러주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웃음). 실제로 <용서받지 못한 자>, <비스티 보이즈>, <베티 블루>, <나쁜 피> 이런 영화들을 보면서 내가 영화를 그렇게 안 만든다고 해서 그런 영화에 공감 못한다는 건 아니다. 오늘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건 이 영화가 순간을 포착해내고, 자신의 삼각관계를 행복하게 바라본다는 거다. 저런 찰나의 순간, 아름다운 순간들이 내 젊은 시절에 있었던가. 없었다면 저런 시절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이게 내 영화의 에너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새로운 것들을 돌이켜보는 자리가 된 것 같다.

김성욱 : 예전에 필립 가렐이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종종 영화가 삶을 구제해준다고 말하는데 으스타슈의 죽음을 돌이켜보면(장 으스타슈 감독은 81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영화가 한 사람의 삶도 구제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끔찍한 사건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가슴 아픈 일이다. 이 영화는 68혁명의 좌절 이후의 73년의 시대의 공기를 담고 있다. 윤종빈 감독도 그런 걸 좋아하는 듯한데.
윤종빈 : 이 영화랑 비슷한 걸 꼽자면 386의 후일담인 <경마장 가는 길>같다.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확신이 드는 건 겉으로 남녀의 연애, 섹스 얘기를 하고 있지만 본질은 68혁명 이후 사람들의 공황상태와 그 시대의 공기를 담으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영화 속 대사로 영화의 본질을 얘기할 때나, 68혁명 당시 “살고 싶었다” 같은 얘기, 베로니카가 울면서 하던 얘기도 그렇고, 대사에 소우주가 담겨 있다는 생각을 했다.

김한민 : 나는 마지막 장면에 의문이 들었다. 마지막에 레오가 바래다줄 때 마리는 혼자 계속 음악을 듣고 있다. 그리고 다시 바래다준다. 만약 홍상수 감독님이나 윤종빈 감독이라면 거기서 끊었을 것 같은데 그 뒤에 결혼 얘기와 토하는 것까지 나온 다음에 끝난다.
윤종빈 : 나는 그게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볼 때는 왜 이렇게 길게 갈까 했는데 마지막에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가 또 나오는 걸 보니 회귀하는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성장하는 게 아니라 똑같은 과정으로 회귀한다는 느낌말이다. 그래서 이 음악을 틀어주는 죽은 시간이 이 영화에서 미학적으로 가장 파격적인 선택이 아닐까.

김한민 : 노래를 길게 끄는 건 좋은데, 그 뒤의 에필로그 같은 프로포즈와 토하는 장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윤종빈 : 레오가 바로 찾아가서 얘기하면 되는데 그렇게 안 한 이유를 생각해보면, 레오의 행위에 원래 그런 게 많기도 했다. 가다가 말고 돌아오는 그런 해위. 그래서 나는 이게 회귀라고 생각했다. 변하지 않는 것, 일테면 <해변의 여인>에서 고현정의 차가 유턴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맥락에서 동질감을 많이 느꼈다. 한편으로 쟤 저렇게 살면 안 된다는 생각도 했다.

김성욱 : 장 으스타슈가 이 영화를 직접 들고 모로코에 가서 밤새 사람들이랑 진지하게 얘기했다고 하더라. 오늘도 이 영화에 대한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얘기하면 8시간, 10시간씩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긴 시간 영화도 보고 시네토크에도 참석해주신 관객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정리 : 김보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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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이 추천한 니콜라스 뢰그의 <쳐다보지 마라> 시네토크

1월 16일 3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니콜라스 뢰그의 <쳐다보지 마라> 상영 후 올해 친구들 영화제의 첫 시네토크가 이어졌다. 이 영화를 선택한 박찬욱 감독은 이 자리를 빌어 자신의 무의식에 크게 자리 잡고 있는 영화라고 소개하면서 영화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표현했다. 더불어 그는 얼마 전 영국에서 뢰그 감독을 직접 만날 기회가 있었다며 뢰그와 그의 영화에 관한 흥미진진한 비사도 전했다. 테마나 이미지에 있어 박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 <박쥐>와도 연결점을 발견할 수 있어 더 흥미로웠던 그 시간을 담아본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 친구들 영화제를 위해 감독님이 꼽았던 다른 두 편의 영화도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영화였다. 그 중 <쳐다보지 마라>를 상영하게 되었는데, 이 영화를 어떻게 선택하게 되셨는지. 그리고 오늘 다시 본 느낌은 어떠셨는지.
박찬욱(영화감독) : 이 영화는 논리적으로 말끔히 설명되지 않는다. 모든 것이 불명료하고 모호하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가장 뛰어난 공포 영화, 또는 공포 영화 장르의 범주를 벗어나서, 가장 무섭고 아름다우며 불안한 영화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 같고, 저도 그래서 좋아한다. 2003년, 제가 영화제 때문에 런던에 갔을 때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마침 그 때가 영화가 개봉한지 30주년이라 깨끗한 새 프린트로 영국 전역에서 정식으로 재개봉했다. 그만큼 이 영화는 영국인들이 자부심을 갖고 있는 영화다. 아내와 함께 영화를 봤는데 그 때의 경험이 우리 부부에게는 잊을 수 없는 경험으로 남아있다. 지금도 이 영화를 본 얘기를 하곤 한다. 요즘 들어 제 영화들을 돌이켜 보니까 이 영화에서 영향 받은 것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 이를테면 딸아이가 물에 빠져 죽은 <복수는 나의 것>의 아버지나 <박쥐>에서 계속해서 강우의 유령이 나타나는 이야기가 그렇다. 강우도 물에 빠져 죽고, 물에 젖은 그의 유령이 나타나자 집안도 젖어가고 축축해진다. 그것은 강우가 죽은 호수를 떠올리게 한 장치였는데, 어쩌면 그런 것들이 이 영화에서 근거한 것일지 모르겠다. 알게 모르게 저의 무의식에 크게 자리 잡고 있는 영화이다.

김성욱 : 감독님의 영화에서 ‘죽은 아이’라는 테마, <복수는 나의 것>에서 송강호에게 나타나는 물에 젖은 아이랄지, 그리고 이후의 영화들에서도 아이의 유괴나 죽음이 등장한다.
박찬욱 : 제가 아마 부모가 되지 않았더라면 그런 이야기를 다루지 않았을 텐데, 누구나 그렇듯이 부모가 되면, 자신의 죽음보다도 더 끔찍하고 가장 두려운 사건으로 상상하게 되는 게 아이에 관한 거다. 저는 제가 만드는 영화에서 항상 최악의 상태를 원하기 때문에, 모든 행복과 쾌락을 앗아가는 최악의 사건으로서 그런 이야기를 다루게 되는 것 같다.


김성욱 : 초반부 장면이 인상적이다. 도날드 서덜랜드가 보고 있던 사진에 빨간 물감이 퍼지고, 아이의 죽음과 연결되어지는 장면, 액체적인 방식으로 죽음을 표현한 것 같다. 또 죽음과 색채가 연결되는데, 영화 곳곳의 붉은 색이 그렇다. 그런 표현의 방식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박찬욱 : 이 영화에서 사용된 기법이란 것이 당시엔 상당히 충격적이었던 모양이다. 몇 달 전, 런던에서 뢰그 감독을 만나 얘길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감독이 하는 말이 자신은 영화를 만들어서 개봉 당시에는 한 번도 비평적으로 평가 받지 못했다고 하더라. 이 영화도 개봉했을 때 굉장히 평가가 안 좋았고 특히 미국평론가들의 혹평이 많았다. 이 영화에서 시제를 혼동시키는 것, 과거와 미래가 자꾸 현재에 끼어드는 방식은 뢰그 감독만의 개성이라고 할 수 있다. 데뷔작인 <퍼포먼스>에서도 그러한 점들이 나타난다. 특히 섹스장면에서의 크로스커팅과 플래시포워드는 영화를 처음에 봤을 때는 촬영 때부터 정해져있던 편집이었는지, 편집과정에서 즉흥적으로 나온 것인지 궁금했었다. 지금 보니 촬영단계에서 정해져있었던 게 아닌가 싶은데, 왜 그렇게 했을까. 이 영화에서 섹스 후 옷을 입고 화장하는 게 무슨 중요한 일이라고 굳이 그런 것들을 섹스장면에 집어넣었을까. 의도를 알기 어려운 편집인데, 감독이 직접 말하길, 그저 부부의 일상을 보여주고 싶다고 하더라. 섹스라는 것이 부부에게 옷을 입고 밥을 먹는 것처럼 자연스런 생활의 일부라는 생각을 갖고 찍었다고. 아마도 아이의 죽음 이후 부부가 처음 나누는 정사인 것 같은데, 어떻게 보면 드라마 상에서 중요한 터닝포인트라고도 할 수 있는 사건에서 부부의 관계회복이라든가, 일상으로의 복귀를 환기시킨다. 더 나아가 미래가 현재에 끼어든다는 것, 미래를 보는 남자와 장님을 그러한 형식, 기법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 같다.

관객1 : 거울장면이 기억 남는데, 줄리 크리스티가 거울 보는 장면에서 <올드보이>의 미용실 장면이 생각났다. 감독님의 소견은.
박찬욱 : 이 영화가 독특하고 알 수 없는 지점은 관객을 자꾸 엉뚱한 상상을 하게 만들면서 결말로 이끌어간다는 거다. 전 식당에서 여자가 기절하는 장면은 상징적인 죽음이 아닌가 생각했고, 그 이후의 삶이란 유령과 같은 것이라 보았다. 서덜랜드가 성당에서 떨어질 뻔한 것도 그렇고, 거울 장면도 그렇고, 경찰에 가져가는 폴라로이드 사진의 이미지도 전체적으로 유령과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결말은 그녀가 아니라 결국 남편이 죽는 이야기다. 그래서 이 부부는 둘 다 유령 같다는 느낌이 들게 된다.

김성욱 : 영화 곳곳에 두 사람을 지켜보는 이상한 시선이 있다. 초반 화장실씬도 그렇고.
박찬욱 : 영화에서 주인공을 힐끗 보거나 쳐다보고는 사라지는 사람들이 계속 등장하는데, 뭔가 안 좋은 사건 한 가운데에서 사람들에게 관찰당하는 그런 느낌들을 받게 된다. 화장실의 늙은 여자, 주교와 면담하고 있는 젊은 여자와 그 한켠에서 안절부절 하는 젊은 남자, 여자경찰관 통역도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다. 형사도 그렇다. 그가 몽타주 그림을 보면서 ‘몽타주는 산 사람도 시체처럼 보이게 한다’는 말은 자매를 유령처럼 느끼게 하기도 한다. 주교의 표정도 이상하다. 살인사건의 범인은 주교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아님 형사인가 싶기도 하다. (웃음) 의도적으로 뭔가 감추고 있는 것 같은 표정들로 불안을 조성한다.

관객2 :
<쳐다보지 마라 Don't look now>는 제목의 의미가 뭐라 보는지.
박찬욱 : 이 영화는 본다는 게 중요한 영화다. 장님인데 무언가 보는 사람, 자신의 미래를 보는 남자가 그렇다. 또 이 영화는 시간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보는 것과 시제에 관한 영화라는 걸 알려주는 제목이긴 한데 구체적으로 무얼 의미할까. 결론은 확실치 않지만, 더 이상 과거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인 듯하다. 부부는 아이의 죽음에 대해서 죄의식을 갖고 있는데, 거기에 더 이상 사로잡히지 말라는 말이다. 결국 서덜랜드를 죽이는 연쇄살인자가 빨간 우비를 입은 사람이라는 것은 이 남자의 죄의식이 만들어낸 환영이 아닐까. 그가 보는 빨간 우비는 물에 비친 이미지로 나타나는데, 그런 장면들은 계속해서 이것은 환영이고 죄의식과 연결되어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김성욱 : 본다는 것과 관련해 인상적인 것은 형사가 시체를 찍은 사진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영화가 만들어진 시기인 70년대의 영화들에서, 이상하게 본다는 것과 죽음이 많이 연결된다. 끔찍한 것을 보는 행위가 영화에서는 분명히 명시되지 않고 색깔이나 다른 사람들의 모호한 시선을 통해 중개되어 나타난다. 이런 류의 모호하고 알 수없는 영화들이 나왔던 시대의 트라우마나 공기가 연결되어있다는 생각도 좀 든다.

관객3 : 감독님의 영화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맞게 되는 죽음, 운명이 나타나는데, 이 영화도 그렇다.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운명에 관한 이야기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
박찬욱 : 뭔가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숙명론적인 세계관이 그 당시의 젊은 감독들에게 좀 있었던 것 같다. 데뷔작인 <퍼포먼스>라는 영화를 60년대 말에 만들었는데, 그 당시의 히피문화, 혁명에 대한 절망적인 시선이 들어나 있다. 이 영화는, 60년대를 보낸 지식인 부부가 부식되고 침몰하는 도시인 베니스에 와서 오래된 것들을 수리하고 복원하는 일을 하는데, 그것이 굉장히 부질없는 일처럼 느껴진다. 그런 암담한 전망이 이 영화에 들어있지 않나 싶다.

관객4 : 히치콕 영화의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박찬욱 : <현기증>을 떠올리게 하는 점이 있다. 이 영화의 원작자 다프네 뒤 모리에는 히치콕의 <새>나 <레베카> 같은 영화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이 영화가 각색을 너무 심하게 해서 제작자와 감독이 뒤 모리에에게 겁을 좀 냈다고 한다. 그런데 나중에 뒤 모리에가 감독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원작과 많이 바뀌긴 했지만, 자기가 처음 이 소설을 쓰면서 생각했던 이미지, 슬픔에 잠긴 부부와 베니스의 이미지가 잘 녹아있다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관객5 : 영화를 보면서 믿음과 우연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둘 사이에 어떤 문제가 생겼는데, 무언가를 믿는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을 보여준다. 티끌이 눈에 들어가는 것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그런 우연과 시선, 티끌 같은 것들이 쌓여가는 것에서 믿음과 운명을 떠올렸다.
박찬욱 : 말씀하신 것처럼 식당장면이 인상 깊다. 남자가 창문을 여니까 문이 열리고 거기서 비롯되어서 숙명 같은 예정된 파국을 향해서 가게 된다. 분열과 붕괴, 깨지는 이미지가 계속 등장한다. 초반에 아이가 깨트리는 유리, 엄마가 읽어주는 책 제목에도 아예 단어로 등장하기까지 한다.
김성욱 : 영화에서 모자이크 조각을 붙이다가 붕괴되어 파편화되는 장면도 그렇다.

관객6 : 이렇게 좋은 영화를 추천해주셔서 감사하다. 영화가 모호하긴 하지만 결론이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쳐다보지 말라’는 말은 결국 인간의 영역을 벗어나 신의 영역을 넘보지 말라는 그런 의미가 아닐까 했다.
박찬욱 : 그럴 수도 있겠다. 영화는 뭔가 봄으로써 파국을 맞는 그런 이야기다.

김성욱 : 끝으로 관객 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박찬욱 : 재밌게 읽은 책 중에 <추락하는 천사들의 도시>라는 베니스에 관한 책이 있다. 바다와 소금기, 심지어 비둘기 똥에 의해 부식되고 썩어가는 베니스를 그린 논픽션이다. 가장 화려했던 유럽의 중심도시 베니스가 지금은 점점 가라앉고 붕괴되고 있는데, 이 영화도 그렇게 점점 썩어 가라앉고 있는 유럽문명에 대한 어두운 풍경을 담았다 본다.
(정리 : 장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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