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서울아트시네마를 자주 갔던 건 아니지만, 옥상위의 극장이라는 그 낯선 풍경은 어느 극장들 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겨주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 해지는 서울을 바라 볼 수 있는 극장은 아마 서울아트시네마 뿐일 것이다. 하지만 서울아트시네마가 주는 강렬한 인상은 단지 물리적 공간 때문이었을까? 더 이상 서로에게 익명적이지 않은 소수관객들의 유대감은 평소 영화를 대하던 나의 시니컬함을 바꿔 놓았던 것 같다. 영화가 사람들을 만나게 한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영화관인 동시에 만남의 장소이다. (안성용, 2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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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서 생활하다가 학교 및 취직 문제로 서울로 오게 됐을 때 가장 기대했던 것은 서울의 다양한 문화 인프라 및 문화공간이었다. 다양한 박물관, 미술관, 문화체험관 등 지방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다양하고 소중한 공간들이 너무 많은 서울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특히 최신영화만이 아니라 과거의 고전영화를 비롯해 동시대의 영화 중 멀티플렉스에 걸리진 못하지만 충분히 가치 있고 재미있는 여러 국가들의 영화들을 볼 수 있는 서울아트시네마를 비롯한 다양한 영화관들이 있다는 점이 가장 설레고 흥분되는 일이었다. 인터넷 다운로드가 활성화되면서 구할 수 있는 영화는 많아졌으나 실상 받아놓은 수많은 영화를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일일이 챙겨보는 일은 쉽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한 영화들을 직접 필름으로, 커다란 스크린을 통해 보는 일은 적잖은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공간이 수익성 문제로 없어질 위기에 처했다는 것은 아쉬움, 안타까움 이전에 신기한 일이다. 수익성이라는 측면으로 문화공간을 판단하는 것 자체에 어떤 문제점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가? 문화는 그 도시가 시민들에게 마땅히 제공해야 하는 ‘서비스’라고 생각한다. 이곳에서 발생하는 수익이 높다 낮다를 판단하기 이전에 도시문화의 측면에서 이 공간이 필요한가, 필요하지 않은가를 따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진희, 28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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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옥 감독 선택작 마이크 리의 <네이키드> 시네토크

1월 19일 저녁, 박찬옥 감독이 선택한 영화 <네이키드>가 시작할 때쯤 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있었다. 가볍게 내리는 비를 보면서 영화와 이 영화를 뽑은 박찬옥 감독이 왠지 모르게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남자 주인공의 정곡을 찌르는 빠른 말솜씨에 감탄했고, 영화가 끝난 후 이어진 시네토크에서는 박찬옥 감독의 천천히 조용하게 흐르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었다. 절룩거리면서 마지막에 떠나는 주인공 죠니의 모습만큼이나 긴 여운을 남겼던 박찬옥 감독과 함께한 토크를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먼저 이 영화를 고른 추천의 변부터 들려주신다면. 박찬옥(영화감독): 원래 음식이든 뭐든 누군가에게 추천을 잘 못 한다. 이번에 친구들 영화제에서 영화를 추천하라고 해서 했는데, 시네토크에 나와서 이야기 하려니 ‘하지 말걸 그랬나’라는 생각이 든다(웃음). 그냥 이 영화를 재미있게 봐서 했다. 돌이켜보니 얼마 전에 만든 영화 <파주>의 영향 아래 여전히 있는 것 같다. 그 영화를 만들었을 때 몇몇 영화중에서 두 가지 영화가 떠올랐는데, 둘 다 결말에 주인공이 떠나는 영화더라. 하나는 <정복자 펠레>이고 다른 하나는 이 영화다. <네이키드>의 떠남을 <정복자 펠레>보다 좋아하는 것이 솔직한 마음인 것 같다. 특별히 이유를 들자면 이 영화의 결말을 좋아해서 추천하게 되었다.

김성욱: 이 영화의 결말에서 남자가 떠난다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셨는데, 어떤 느낌인지 더 묻고 싶어진다.
박찬옥: 정말로 서로 통하는 친구가 같은 고향 맨체스터에서 사귀었는데 여자가 런던으로 오고 남자가 나중에 여자를 런던으로 찾아왔는데, 남자가 여자를 찾아와서 이러저러한 것들을 겪고 이제 착하게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가 남자가 떠나버린다. ‘일종의 배신인가 배반인가’ 싶지만, 그렇게 떠나는 것이 그 남자다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인물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았고, 그런 마음을 좀 알 것 같았다(웃음).

김성욱: 이 영화를 보면서 고등학교 때 봤던 이장호 감독의 <바보선언>이 떠올랐다. 그 영화에서도 주인공이 국회의사당을 뒤로 하고 절룩거리면서 걸어간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많은 사람들이 인물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감독님은 영화 속 캐릭터들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박찬옥: 영화학교에 처음 가서 친구들이 만든 영화를 봤는데, 고민하는 젊은이들이 많이 나온다. 그런 친구들 영화의 전형적인 주인공을 좋아하지는 않는데, 이 영화의 주인공도 역시 같은 범주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좋아하는지 스스로도 의문이다. 그의 고민이 얼마나 골 깊은지 어떤 배경이 있었는지가 전혀 나오지 않는데도 배우가 주는 눈빛과 속도 있으면서 힘들어 보이는 모습에 그 사람이 싫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남자가 발작을 일으킬 때 표정이나 말이 ‘배우 개인의 모습일까 아니면 시나리오에서 약속된 연기일까’라는 생각을 했다. 만약 내가 발작을 하거나 본능적으로 무의식이 튀어나올 때 어떤 말을 하게 될까라는 궁금함도 들었다. 소피의 역할을 맡은 배우 캐트린 카트리지도 매우 놀라운데 <비포 더 레인>뿐만 아니라 <브레이킹 더 웨이브>에서도 조연인데도 너무나 정확하게 자기 역할을 해주는 것 같아서 놀라웠다.

김성욱:
찾아보다 보니까 <네이키드> 영화 소개에 누군가가 ‘내가 이래서 영화제에서 상 받은 영화를 안 봐. 이 영화 이후로’ 이렇게 쓴 것이 있었다(웃음). 이 시절에 마이크 리는 방송이나 영화에서 유명세를 치루고 있었고 <네이키드>는 굉장히 작심하고 만들었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이 영화로 칸에서 상을 받아서 마이크 리라는 감독이 더 유명해졌다. 그러나 관객들은 이런 영화들을 볼 때 사실은 동조하지 못하고 불편해하거나 불쾌해하는데, 관객이자 감독인 입장에서 이런 반응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박찬옥: 처음에 이 영화를 집에서 비디오테이프로 봤다. 그리고 오늘 큰 화면으로 보게 되었는데, 스크린으로 보니까 드라마의 흐름이나 물리적인 시간이 더 직접적으로 몸에 다가왔다. 지루할 때는 극장 위에서 들리는 소리가 크게 들리다가 어떨 때는 보다가 영화에 빠져들기도 한다. 이 영화가 대중들을 위로하는 영화는 될 수 없지만 몇몇 사람들에게는 위로와 위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이 든다.

관객1: 이 영화를 보면서 현대 사회의 구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 죠니가 대화하는 방식은 소크라테스의 문답법 방식이면서 내용은 하이데거의 현대철학을 떠오르게 한다. 죠니가 마지막에 떠나는 것도 현대철학의 영향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드는데.
박찬옥: 보신 분의 느낌이 맞을 것 같다. 제가 배우들에게 사색적이고 철학적인 대사를 하게 한다고 했을 때, 그 내용 자체보다는 그 사람의 경향을 보여주는 것이지 내용을 통해서 영화가 말하려는 무엇이 바로 전달되기 원하지 않다보니... 저의 경우에는 죠니가 떠들 때마다 ‘아 떠드는구나, 현재 자기의 상태와 세상에서 자신이 편하지 않는 것을 저런 숱한 말로 내뱉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봤다.

관객2: <네이키드>와 감독님의 영화 <파주>의 처음과 끝이 유사한데, 이 영화에서 영향을 받으셨는지 궁금하다.
박찬옥: 인물이 떠나는 것을 결말로 하고 싶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 했을 때 이 영화가 많은 영향을 준 것 같긴 하다. 사실 영화의 출발은 어렸을 때 보았던 <헐크>라는 미니시리즈였다. <헐크>의 엔딩에서 주인공은 헐크로 변신하는 자기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택시를 타고 떠난다. 다른 것은 기억에 없고 그 장면만 기억이 남는데 이것이 내용에 영향을 주었던 것 같다. <네이키드>의 주인공이 런던으로 와서 런던을 떠난다면 <파주>에서는 파주로 와서 파주를 떠나는데 이런 지점들은 떠남을 전제한 영화구조에서는 비슷한 듯 하다.

관객3: 영화를 보면서 배우들의 연기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네이키드>를 보다보니 자연스럽게 감독님의 영화가 떠오르면서 감독님의 연기연출 비법이나 스타일이 궁금해졌다.
박찬옥: 비법이라 할 것은 없고 그냥 개인적인 생각 중에 하나가 촬영, 미술, 조명, 콘티 다 훌륭해도 배우의 연기가 훌륭하지 못하면 보는 사람의 공감을 얻을 수 없다는 거다. 항상 배우의 연기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 생각들이 잘 실현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려운 일이라서 잘 실현되려면 저한테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본다. 배우와 많은 교감과 신경전을 감당하면서 그 문제들을 풀어가야 되는데 배우도 감독도 어느 선에서 대충 접고 포기하고 가면 산으로 가게 된다. 그런데 항상 시간의 한정 속에서 결정해야 되기 때문에 배우와 저 사이의 허심탄회한 자리를 미리 만들려고 하는 편이다. 저는 현장에서 배우들에게 특별한 제스처가 없는 편이어서 이제는 제스처를 좀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지만 여전히 다이렉트한 접근이 유효하다는 생각도 한다. 기술로 배우들을 대하면 배우들도 그것을 알기 때문에 다이렉트 함이 유효할 수도 있다는 거다. 힘이 드니까 어느 선에서 접는 그런 것들이 없도록 좀 더 에너지를 많이 갖고 있어야 될 듯 싶다. (정리 : 신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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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①     
 
새해가 밝아오고 찬바람이 극성을 부릴 때 즈음 항상 시네마테크 친구들의 영화제는 등불을 밝히고 관객을 맞을 준비를 한다. 그리고 시네마테크의 영화를,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이 선택한 영화들을 보러 오기 위해 관객들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그들의 목록을 기다린다. 올해로 5주년을 맞은 ‘2010년 시네마테크 친구들의 영화제’에 상영될 시네마테크 친구들의 선택작은 총 13편이다. 영화감독과 배우, 그리고 평론가로 이루어진 올해의 친구들이 선택한 13편의 영화 중 5편의 영화와, 관객들의 손으로 직접 뽑은 관객들의 선택작 2편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불온하고 기괴한 기운을 만끽할 수 있는 영화 <쳐다보지 마라>와 <서바이벌 게임>


니콜라스 뢰그의 <쳐다보지 마라>는 초자연적인 현상들을 설명하는 심령 호러물이다. 영국의 추리작가 다프네 드 모리에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이 영화는 현실에서는 좀처럼 접하기 힘든 영적 체험들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시종일관 시간을 거스르는 영화의 이미지들은 원작을 뛰어넘을 정도의 음습한 공포를 유발한다. 특히 극 중 부부로 설정된 도널드 서덜랜드와 줄리 크리스티의 안정적이면서 어딘지 모르게 광기 넘치는 연기는 영화의 모토가 되는 초자연의 세계와 현실 사이의 괴리감을 더욱 확고하게 굳혀준다.

존 부어맨의 <서바이벌 게임>은 2대의 카누만을 이용해 댐공사로 인해 침몰되기 직전의 지역을 탐험하는 과정을 그린 것으로 그의 영화 중 가장 흥행에 성공을 거두기도 했던 작품이다. 제임스 디키의 소설을 영화화한 <서바이벌 게임>은 인간의 생존 투쟁을 보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광활한 자연을 적절히 활용한 작품이다. 액션과 어드벤쳐 무비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지만, 건국과 개발이라는 이면에 놓인 인간의 횡포를 효과적으로 파헤쳐낸 정치적인 영화라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

<쳐다보지 마라>와 <서바이벌 게임>은 서로 다른 주제와 공간 속에서 풀어지는 이야기들이지만, 이 영화들이 주는 잔혹함은 웬만한 공포영화를 뛰어넘는 영화다. 주목할 것은 두 영화 모두 특정 사건이나 인물로 인해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무섭게 전환되는 것을 잡아낸다는 것이다. 정적인 장면들로만 구성되어진 <쳐다보지 마라>와 평화롭고 잔잔한 자연을 비춰주며 시작되는 <서바이벌 게임>은 영화가 진행될수록 앞뒤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의 긴장을 선사한다. 장르에 충실하면서도 많은 것들을 추론해볼 수 있는 재미가 넘치는 기괴한 영화들이다.

충만한 B급 영화의 기운, <디바인 대소동>


음탕함의 제왕’, ‘쓰레기의 제왕’이라 불리는 존 워터스는 각종 사회적 문제들을 일으키며 문제시되어왔던 B급 컬트계의 악동이라 불리는 감독이다. 가는 곳마다 물의를 일으켰던 감독이었던 존 워터스의 <디바인 대소동>은 전작 <핑크 플라밍고>와 함께 그의 최고작으로 불리는 작품이다. 영화는 아름다움과 명성에 집착하는 던 데븐포트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적나라하게 비튼다. 주인공 던 데븐포트는 B급영화애호가들이 열렬하게 환호하는 존 워터스의 페르소나 디바인이 열연했으며, 그녀의 주변에는 섹스, 강도, 살인 등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끊임없이 돌아간다. 극 중 디바인이라는 캐릭터와 그녀의 외모에서도 볼 수 있듯이 영화는 탐욕과 음란함의 정점을 시각화한다.

영화에서 소개되는 온갖 도착적이고 광기 넘치는 범죄들이 더 이상 전진할 곳이 없다 생각되는 바로 그때, 존 워터스는 관객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내려친다. 지속적인 비윤리의 충격으로 인해 한껏 마음이 무뎌진 관객들은 단순 난잡한 B무비가 아닌 신선한 블랙코미디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철저한 미국식 코미디를 만들고 싶다는 존 워터스의 말처럼, <디바인 대소동>은 일그러진 미국사회에 관한 비판도 빼놓지 않고 있다. 저급 키치아트의 애호가 혹은 존 워터스의 전작 <핑크 플라맹고>의 후일담이 궁금하다면 반드시 관람해야 할 영화다. 

1970년대의 가장 실험적인 걸작을 만나다, <엄마와 창녀>


두 편의 다큐멘터리를 세상에 내놓으며 데뷔했던 장 으스타슈는 노동계급을 대표하는 감독이었으며 실제로 가난한 삶을 살았다. 장 으스타슈에게 영화를 찍는 것은 항상 자본과 투쟁하는 것의 연속이었으며 그는 가공된 이야기들보다 사실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을 원했다. 1973년에 제작한 영화 <엄마와 창녀>는 장 으스타슈의 대표작인 동시에 스크린을 통한 그의 실험정신이 얼마나 철학적이고 심도 깊은 것인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엄마와 창녀>는 프랑스 68혁명 이후의 공황을 알렉상드르라는 젊은이에게 투영시켜 보여준다. 영화는 하루를 때워나가기에 바쁜 한량인 알렉상드르와 그의 주변에 위치한 두 여인에 관한 농담들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롱테이크도 서슴지 않는 영화는 놀랍도록 현실적이고 차갑다.

<엄마와 창녀>에서 주목할 것은 약 4시간에 달하는 긴 시간동안 쉴 새 없이 흐르고 넘치는 대사(텍스트)들로, 주인공 남녀의 입에서 쏟아지는 진한 농담들은 시대를 비판하며 사회를 정면으로 조롱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라 생각될 정도로 사실적인 장 피에르 레오와 베르나데트 라퐁 등의 연기는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온전히 언어의 유희와 텍스트만으로 스크린을 지배한 <엄마와 창녀>는 1970년대의 최고걸작이라는 수식어에 저절로 동의하게끔 만드는 마력을 가진 영화다.

시네마테크에서 만나는 오즈 야스지로의 따듯함 <동경이야기>


<동경이야기>는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거장 오즈 야스지로의 대표작이다. <동경이야기>는 ‘평범’이라는 단어로 인해 제한되거나 보편화되어버리는 개개인 삶의 이야기를 서정적이고 따듯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영화로 일상적인 것들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오즈 야스지로는 영화의 다다미숏을 통해 낮고 단조로운 시선에서 일관적으로 흘러가는 모든 것들을 관찰한다. 때문에 그의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들은 극 중 인물들에 동화된다는 느낌보다 영화에 초대되어 그들을 바라보기만 하는 손님 같은 느낌을 받는다. 좀처럼 움직이지 않고 고정되어진 위치에서 영화의 인물들을 보게 되는 관객들은 오즈 야스지로의 작품에서만 느낄 수 있는 편안함과 사색적인 분위기에 매료된다.

독특한 기교 없이 화면을 잡아내지만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에서는 그 모든 것들이 철저하게 구성되어진 것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옷가지나 가방, 책장은 별다른 사건 없이 제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을 뿐이지만 이러한 소품들은 그의 영화에 회화적인 연출을 가능하게 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반복되는 인물들의 대사나 흘러가는 구름을 지긋이 잡아내는 오즈 야스지로의 카메라는 쉽게 지나쳐가는 수많은 대상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담아내고 있다. 익숙함 뒤에 찾아오는 사라짐의 시간들이 더욱 가혹하고 애처롭게 느껴진다는 것을 너무나도 정확하게 서술하는 오즈 야스지로의 <동경이야기>는, 꾸밈없는 시선으로 인생의 교훈을 건네는 아름다운 영화인 동시에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시네필들에게 결코 잊지 못할 마음 속 고전으로 자리 잡는 작품이다.

관객들의 선택: 다시 보고 싶은 무성영화 <어셔가의 몰락>과 <항해자>


올해 투표를 통해 선정된 관객들의 선택작인 장 엡스탱의 <어셔가의 몰락>과 버스터 키튼의 <항해자>는 모두 1920년대에 만들어진 무성영화로 고전을 회고하는데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작품들이다. 에드가 엘런 포의 소설을 완벽하게 각색했다는 찬사를 받는 <어셔가의 몰락>은 아방가르드 예술의 최고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이었고. <항해자>뿐 아니라 <제너럴>, <셜록 주니어>등을 통해 뛰어난 연출과 연기를 보여주었던 버스터 키튼은 무성영화 시기의 가장 뛰어난 작가였다. 초기영화의 위대한 시네아스트들, 그들이 개척해놓은 영화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극장에 앉아 스크린으로 투영되는 환상에 젖어들 수 있는 것이다. 영화 역사의 시작이자 영화의 언어와 문법을 창조했던 무성영화, 그 중 이번 영화제를 통해 상영되는 <어셔가의 몰락>과 <항해자>는 관객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과거로의 여행을 선사해줄 것이다. (강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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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동아리 ‘울림’의 이민우, ‘하늘빛’의 이재호 군을 만나다

친구들 영화제를 풍성하게 만드는 건 상영목록 만이 아니다. 수많은 시네토크와 마스터클래스를 통해 관객과 감독, 평론가, 배우들이 한데 모여 영화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영화 못지않게 흥미롭고 각별하다. 특별히 이번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기간 중에는 극장에서뿐 아니라, 영화를 꿈꾸는 청년들과 영화공동체가 감독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시네클럽”이 진행된다. 이 프로그램은 일찌감치 마감되어 많은 감독지망생들이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서둘러 신청해서 행운을 얻은 “시네클럽”의 참여자들 중 영화동아리연합에서 활동하는 두 학생을 만났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울림’의 이민우, 서울 시립대 ‘하늘빛’의 이재호가 그들이다. 영화를 전공하는 학생들은 아니지만 영화에 대한 열정을 지닌 청년들. 영화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이들과 나눈 영화, 그리고 시네마테크 이야기를 전한다.

왼쪽 이재호 군, 오른쪽 이민우 군


교류 통해 경계 넓혀 나갈 것

영석(웹데일리): 영화동아리연합은 어떻게 구성되었나.
민우(외대 울림): 외대의 ‘울림’, 경희대의 ‘그림자놀이’, 시립대의 ‘하늘빛’, 이렇게 세 학교의 영화동아리가 연합해서 활동하고 있다. 비영화과 학생들이 만든 동아리인데, 그런 만큼 영화를 전공하는 사람들과는 다른 시각에서 영화를 다루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요즘은 학교의 동아리 활동 자체가 쇠퇴하는 분위기이기도해서 개별 동아리들의 활동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주변 학교 동아리들이 연합을 해서 그런 분위기에 변화를 주자는 생각이 모여졌고, 작년부터 세 학교가 연합해서 한 달에 한 번씩 세미나를 하고 경계를 넓혀가고 있다. 맨 처음 시립대에서 세미나를 시작해서 <핸드폰>의 김한민 감독을 초청했었고, 시립대에서 윤성호 감독, 외대에서는 김성욱 프로그래머님을 초청했었다. 프로그래머님과는 그렇게 인연이 되어서 이번 시네클럽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영석: 정기적인 세미나 외에도 같이 모여 영화를 보거나 다른 활동을 하기도 하나.
재호(시립대 하늘빛): 올해부터는 연합동아리에서 영화제작을 준비하고 있다. 연출, 시나리오 등을 분담할 예정이다.
민우: 학교에서의 지원 같은 것은 전혀 없다.
재호: 無 예산이다(웃음).

영석: 요즘 영화과 학생들이라고 해도 고전영화를 잘 안 보는 편인데, 동아리의 분위기는 어떤가.
민우: 전에는 신입생들이 들어오면 다 같이 <시민케인>을 보고 그랬는데, 지금은 그런 것도 어렵다. 각자 스펙 올리느라 많이 바쁘고 하다 보니 다 같이 모여 고전영화를 보거나 하는 것들이 잘 안 된다.
재호: 동아리 내에서 제작이냐, 감상이냐 사이에서 많이 고민하기도 했었다. 이제는 굳이 동아리가 아니어도 서울아트시네마에만 와도 좋은 영화들을 충분히 볼 수 있기 때문에, 동아리 내에서 감상은 전제로 하고, 제작에 좀 더 힘을 쏟으려한다.
민우: 저희도 비슷하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것 같다.
재호: 요즘 동아리 활동이 쇠퇴하고 있는데 좋은 활력소를 찾고자한다. 김한민 감독이 미장센심사위원을 하면서 “요즘은 비영화과학생들의 새롭고 재기 넘치는 영화들이 드물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뭔가 좀 다른 걸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민우: 관습적이지 않으면서 사고치는 영화. 필름에서 디지털로 바뀌면서 작업자체가 많이 간소화되어서, 우리가 그런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된다.


짧고 거칠지만 신선한 영화 만들고파!

영석: 올해, 혹은 내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볼 수 있게 되길 바란다(웃음). 영화와 관련해서 글쓰기나 연출이랄지, 개인적으로 욕심을 두고 있는 부분은 무언가.
민우: 영화연출을 꿈꾸고 있다. 원래 영화과를 가고 싶었는데, 집안 반대로 그러진 못했었다.
재호: 연출보다는 촬영이나 편집 쪽으로 관심 있었다. 그런데 단편영화작업을 실제로 해보면서 쉽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영상에 관심이 있지만 집단작업은 좀 힘든 것 같고, 좀 더 개인적인 작업에 관심이 간다. 지금 동아리에서 하려는 것도, 좀 더 간소하게, 無 예산으로 짧고 거칠지만, 신선한 걸 만들어보고 싶다.

영석: 시네클럽에서 각자 이번 참여를 통해서 얻고 싶은 게 있다면 어떤 건가. 특별히 그 감독의 강의를 선택하게 된 계기랄까.
민우: 오승욱 감독과 류승완 감독의 강의를 듣는다. 오승욱 감독은 영화 연출 보다는 시나리오를 많이 쓰셨는데, 시나리오도 그렇고 영화에 관한 글도 잘 쓰신다. 특히 옛날 한국영화들을 찾아내서 쓰는 글들이 좋다. 정말 영화에 대한 열정이 느껴진다. 류승완 감독은 제목이 ‘나는 어쩌다 영화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가’인데, 나도 어떻게 하면 어쩌다 영화를 만드는 일을 하게 될지 궁금하다(웃음).
재호: 류승완 감독은 패기가 정말 멋지시다. 영화도 매력적이지만, 영화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이나 모습이 멋지다고 생각되어서 지원하게 되었다. 영화를 대하는 태도, 자세 같은 걸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책에서 볼 수 있는 지식이 아니라 본인의 노하우를 듣게 될 텐데 그런 점들이 기대된다.

영석: 각자 좋아하는 감독이나 영화, 그리고 만들고픈 영화가 있다면.
민우: 좋아하는 감독은 우디 알렌이다. 만드는 사람 개인이 투영되고, 자신의 주변 이야기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어 가는 게 매력적이다. 나도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
재호: 제2의 홍상수영화?
민우: 사실 마초적인 영화도 좋아한다.
재호: 우디 알렌도 좋아하고... 수다스런 영화를 좋아한다. 윤성호 감독 영화를 좋아하는데, 수다스럽고, 가벼워서 나풀거리는 듯하면서도, 진심이 담겨있는 그런 영화. 오늘 아침에 본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도 참 좋더라. 취향이 난잡해서 딱히 꼬집어서 좋아하는 영화를 말하기가 어렵다.

그들만의 리그가 아닌 공간, 시네마테크

영석: 시네마테크에는 언제부터 다녔나?
민우: 2005년, 서울아트시네마가 낙원상가로 이사 오면서부터 다녔다. 우연히 실험영화제 때 극장에 왔다가 그 후론 거의 매일 드나들기 시작했다. 학교사람들이 ‘민우 어딨냐’고 찾으면 다들 극장에 있을 거라고 말할 정도로. 하루에 두세 편씩 보았다. 군대에 있을 때 전용관문제를 뉴스를 통해 접하게 되었는데, 지금은 또 공모제문제 얘기가 나오면서, 그런 소중한 공간을 뺏기는 느낌이었다.

영석: 시네마테크 전용관이 생기게 되면 동아리들이 활동하기에도 좋을 것 같다.
민우: 이곳은 우리 같은 학생들이 영화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재호: 사실 유일하다는 것 자체도 속상한 일인데, 그것마저 뺏으려한다는 게 어이없다. 사실 명분이라고 내세우는 것들이 말도 되지 않는 것들이고, 화가 난다.

영석: 사실 시네마테크의 혜택을 누리를 수 있는 사람들은 영화과 학생들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비영화과 학생들일 수 있을 텐데. 피부로 다가오는 게 클 것 같다.
민우: 시네마테크가 아니라면 영화의 수요층이 굉장히 좁혀지게 되고, 만드는 입장에서도 결구 그들만의 리그가 될 수 있다.
 
 

시네마테크 전용관 건립 잘 되길

영석: 외국의 시네마테크는 상영관뿐만이 아니라, 박물관, 도서관, DVD를 볼 수 있는 공간, 카페가 함께 있다. 시네마테크가 영화관계자나 전공학생들만을 위한 게 아니라 일반사람들을 위한 교육적인 기능도 하는 곳인데, 공간 자체가 없으면 그런 것들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된다.
민우: 군대에 있을 때 한 선임병이 있었다. 영화라면 멀티플렉스에서 하는 개봉영화만 보던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TV에서 마틴 스콜세지의 <좋은 친구들>을 봤다고 했다. 평소 같았으면 잘 모르는 영화니까, 바로 채널을 돌렸을 법한데, 끝까지 다 봤다고 했다. 주인공이 여자를 데리고 식당을 들어가는 장면이 있는데, 롱테이크로 찍혀진 장면이다. 그 사람은 롱테이크라는 말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그 장면이 너무 좋았다고 했다. 그리고 나서는 스콜세지의 영화들을 전부 챙겨보았다고 했다. 영화에는 그렇게 우연히 풍덩 빠지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시네마테크라야 말로 그런 식의 영화와의 만남이 가능한 공간인 것 같다.

영석:
본인들에게도 그런 계기가 있었는지.
민우: 이렇게 얘기하면 사람들이 의아해하는데 <다이하드>가 그랬다. 캐릭터가 흥미롭다.재호: 어렸을 때, 성룡영화 좋아했다. <프로젝트A>나 <용형호제>같은. <미지와의 조우>같은 스필버그 사단의 영화도 좋아했다. 고등학교 때는 타란티노나 왕가위 영화들을 봤다.
민우: 내가 ‘연출을 하고 싶다,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것이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을 보고 나서다.

영석: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재호: 다들 취향이 다를 뿐이지 영화를 많이 좋아하지 않나. 시네필 중에서 너무 무거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반 관객들 중에서 너무 가벼워서 날라 다니는 사람도 있는데, 그 둘을 좀 섞어놨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동아리가 그런 기능을 했으면 좋겠다.
민우: 우리가 많이 고민해서 우리 스스로 변화를 모색할 수 있으면 좋겠고, 시네마테크 전용관 문제도 잘 됐으면 좋겠다.
재호: 정말 잘 됐으면 좋겠다.!!


(진행: 박영석, 정리: 장지혜)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