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피에르 멜빌 회고전]


마지막 숨결, 장 피에르 멜빌



카메라는 공기를 찍을 수 없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영화는 공기를 담을 수 없다. 영화는 가장 구체적인 액션들만 찍을 수 있지 추상적인 것을 담을 순 없다. 그러나 어떤 감독은 바람에 날리는 흙먼지로 주인공의 거센 기운을 표현하기도 하고, 또 어떤 감독은 총에 맞아 죽어가는 주인공의 마지막 숨결을 생생하게 잡아내는 그런 기적을 이뤄내기도 한다. 장 피에르 멜빌은 주인공이 죽어가는 순간을 냉혹하고, 잔인하게 낱낱이 기록하는 감독이다. 그는 2차 세계 대전 당시 프랑스 레지스탕스 출신이다(이 경험은 이후 <그림자 군단>에서 정밀하게 묘사된다). 사내들이 서로 친구가 되는 일은 너무나 어렵고, 둘 이상의 사내가 모이면 반드시 배신과 배반이 일어나며, 그들이 만약 진정한 우정을 나누는 사이라면 필연적으로 예정된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 말하는 그런 남자다. 그는 미국의 범죄영화를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존 휴스톤과 안소니 만처럼 B무비 감독이 되고 싶어했지만, 프랑스 주류 영화계에서 항상 소외되었고 과소평가받았던 감독이었다. 그는 항상 동시대 ‘침묵의 작가’ 로베르 브레송과 비교되곤 했는데, 브레송이 메이저의 마이너리티라면 멜빌은 마이너의 메이저리티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베르나노스의 소설 <시골 사제의 일기>를 읽고 영화화하려 했지만 동시대의 라이벌 로베르 브레송이 선수를 쳐서 빼앗겼고, <암흑가의 세 사람>은 미국에서 건너 온 줄스 다신이 먼저 <리피피>란 영화로 만들어 버리는 바람에 서랍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그는 10년이 지나서야 이 작품을 영화로 만들 수 있었다).

 

세심한 죽음

내가 멜빌의 영화를 처음 만난 것은 아마 초등학교 5학년 무렵이었을 것이다. <태양은 가득히>와 <암흑가의 두 사람> 때문에 매혹된 알랭 들롱과, <공포의 보수>에서 반했던 이브 몽탕까지 나오는 <대결>이란 제목의 영화였다. 영화의 마지막, 주인공들이 모두 다 단호하게 코를 땅에 박고 죽는 라스트의 스산한 공기에 매혹당하고 말았다. 개봉 당시 “대결”이란 제목으로 상영된 이 영화는 <암흑가의 세 사람>으로 비디오 출시되었다(원제는 “레드 서클(The Red Circle)”이었다). 주인공 알랭 들롱과 장 마리아 블론테, 이브 몽탕, 이 세 사람은 모두 한 장소에서 같은 시간에 죽는다. 그리고 그들이 죽어가면서 남기는 몸짓과 마지막 숨결은 너무나 허무하여, 그때까지 보았던 다른 영화들 속 주인공의 죽음을 모두 가짜로 만들어 버릴 만큼 진짜 같았다. 이 영화에서 죽은 주인공들은 감독의 컷 소리를 들어도 절대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당시나 지금이나 얼마나 많은 가짜의, 위선의 죽음들이 영화에서 판을 치고 있는가? <암흑가의 세 사람>에서 총에 맞은 주인공들은 검은 외투와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있고, 그들의 하얀 와이셔츠 소매 깃은 어스름한 저녁 빛과 겨울나무들을 배경으로 허공을 어이없이 크게 휘저은 채 땅에 떨어진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토해내는 마지막 숨결이 저럴 것이라는 설득력을 주는 마지막 숨을 토해내고는, 축축하게 젖은 겨울 풀밭 위에 코를 박고 죽어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한다. 시퍼렇게 날이 선 것 같은 초저녁 추위 속에서 마지막 입김을 토해내며 들롱이 죽어간 영화 속 공기가, 극장 안의 담배 냄새와 온갖 시시한 냄새를 걷어내 버리고 내 콧속까지 전해지는 것 같았다.

멜빌은 왜 그렇게 주인공들의 죽음에 대해 저토록 세심하게 그들이 토해내는 마지막 숨결까지 잡아내려고 하는 것일까? 주인공들이 죽는다는 것은 멜빌의 영화가 시작됨과 동시에 모두가 아는 사실이고, 멜빌 영화의 주인공들이 지닌 숙명이다. 그의 영화에선 주인공들이 어떻게 예정된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마지막 순간에 그들은 어떤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하는가 하는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 이를테면 <형사>는 범죄자들의 죽음을 지켜보며 한 명씩 장례식을 치러주는 형사 알랭 들롱의 이야기였다. 가장 의미심장한 죽음은 범죄자들 중 가장 범죄자 같지 않던 은행원 출신 주인공의 자살 장면이었다. 형사 알랭 들롱이 범죄자의 집에 들이닥치자,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아내는 남편이 욕실에 들어갔다고 한다. 욕실 문을 연 알랭 들롱은 범죄자가 입에 총구를 들이대고 있는 것을 보자, 재빨리 문을 닫고 기다린다. 총소리가 들리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들롱은 쓰러지는 범죄자를 아주, 아주 정중하게 잡아서 바닥에 눕힌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형사는 자살을 막았어야 한다. 그러나 들롱은 자살을 방조하고, 범죄자가 죽어 넘어지는 순간 그의 영혼을 떠받치듯 소중하게 그의 등을 부축하여 땅에 내려놓는 것이다. 논리적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저 이상한 사내들의 이상한 몸짓들. 그건 혹시 어떤 종류의 의식이 아닐까? 혹은, 주인공들이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그리하여 죽음을 향해 달려가기 위해) 옷을 갈아입는 장면을 그토록 세심하게 묘사한 감독이 또 어디 있을까? 뭔가를 하기 위해 옷을 차려입는 사내들의 모습이 멜빌의 영화에서는 너무나 중요한 장면이다. <형사>의 기차 속 강탈 신에서 주인공이 더러워진 작업복을 벗고 ‘진짜’ 작업복인 나이트가운으로 바꿔 입는 장면은 너무나 세심해서 기가 찰 뿐이다. 이제 다 갈아입었겠지 하면 범죄자는 실내화를 꺼내 갈아 신고, 이제 정말 끝났군 하면 범죄 도구인 말굽 자석을 꺼내들어 주머니에 넣는다.

 

고독한 전문가들

<암흑가의 세 사람>에 등장하는 세 명의 범죄자 들롱, 블론테, 몽탕과 한 명의 형사 브루빌은 모두 자신의 일에서는 전문가이지만, 그 외 정상적인 사람들이 하는 모든 일상에는 미숙아이다. 브루빌이 연기한 마테오 형사 역시 마찬가지다. 마테오는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서 아이들을 부르는 것처럼 다정하게 세 명의 이름을 부른다. 그가 거실의 불을 켜면 집안에는 사람이 없고, 세 마리의 고양이가 소파와 거실 바닥에 앉아 있다. 그는 욕실로 들어가 욕조에 물을 받고, 부엌으로 가서 고양이 먹이를 준다. 집안의 사진들로 추측건대 아내가 일찍 세상을 뜨고 자식들이 없는 쓸쓸한 사람인 것 같다. 들롱의 경우 여자에게 배신당했다. 그녀는 들롱을 배신한 옛날에는 친구였던 자와 같이 살고 있다. 블론테는 체포된 범죄자로 이송 중이었으니, 이미 가족과는 멀리 떨어진 존재이자 외톨이인 것 같다. 이브 몽탕 역시 알콜 중독자로 커다란 방안에 가구라곤 하나도 없고, 언제라도 떠날 준비가 된 커다란 트렁크 두 개가 거실 벽에 입을 벌리고 옷장 대용으로 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모두 결혼 또는 여자와의 관계에서 실패한 사람들이다. 그들, 사내들의 사랑은 절대적 평등의 세계이다. 사내들끼리 서로의 평등을 확인한 순간이 그들의 우정을 확인하고 죽으러 가는 순간이다. 평등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내들의 관계에서 우정은 절대로 없다. 그래서 <암흑가의 세 사람>에서 들롱과 블론테가 처음 만난 순간. 그들은 서로 처음 본 남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짧은 순간, 같은 피가 흐른다는 것을 확인하자, 곧바로 아무런 소통 없이도 믿고 의지하며, 심지어 죽음의 순간에 동참하여 같이 죽어버린다.

그들은 전문가들이어서, 정상적인 사람들이 잠을 자거나 휴식을 취할 때 조용히 일을 한다. 그들이 도둑질을 하기 위해 움직이는 소리는 전혀 안 들리고, 화장실에서 물 내리는 소리와 바람 소리, 전깃불 소리만이 간간히 들릴 뿐이다. 그들은 범죄로 인해 얻어지는 결과물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마치 위대한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에만 신경을 쏟을 뿐 그 나머지 인간관계와 성공을 위한 비즈니스에는 백치인 것과 마찬가지다. 그들이 범죄를 저지를 때에는 너무나 경건하고, 원칙을 철통같이 지키며, 악마처럼 교활하다. 하지만 범죄에 성공한 그 다음 순간부터 그들은 모든 것에 미숙하여, 또 다른 도플갱어인 형사들(그들 역시 범인을 잡는 일에는 너무나 교활하고 경건한 예술가들이지만, 그 외의 것에는 백치 수준이다)이 파놓은 함정에 너무나 어이없게 걸려들거나 죽음을 맞는다. 말하자면 멜빌 영화의 사내들은 현대인이 아니다. 멜빌의 주인공들은 전근대적인 낭만주의자들이며 시대에 뒤떨어진 낙오자들이다. <암흑가의 세 사람>의 범죄 장면 클라이맥스에서, 이브 몽탕은 트라이포드와 망원경이라는 기계에 의존하지 않고 그동안 쌓아 올린 자신의 스킬과 직감을 믿은 채 단호하게 총을 들어올려 쏘아버리고 성공한다. 이처럼 시대착오적인 낭만주의자인 그들은 필연적으로 배신을 당하기 위한 존재들이고, 배신을 당하는 순간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몰사를 당하고 만다. 그들은 너무나 금욕적이고 윤리적이어서 배신 앞에서는 혼란에 빠지고, 그동안 쌓아 올렸던 전문가적 냉혹함을 상실하고 마는 것이다. 범죄를 하는 행위 자체가 경건한 예배와도 같은 인간들인 셈이다. 그래서 그들은 범죄를 할 때 너무나 금욕적이고, 원칙을 지키는 것에 너무나 철저한 윤리적인 인간들이다. 범죄를 완성하고, 함정에 걸려들어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그들은 너무나 순진한 패배자들이자 날지 못하는 새, 알바트로스들이다. 그래서 어둑한 저녁 무렵, 필사적으로 도망치다 두어 발의 총에 맞아 축축한 땅에 코를 처박고 마지막 숨을 토해내고 죽을 때. 그 마지막 숨결에서 나는 숭고함을 발견하고 몸을 부르르 떤다.

 

죽음을 완성하는 경건한 예배

사실 그런 것 아닌가? 어떤 일에는 너무나 강하고 빈틈없어 보이는 누군가가 어느 순간 틈새를 열어 추락한 알바트로스처럼 비웃음과 조롱을 당할 때, 그에게 매혹당하고 마는 것 아닌가? 멜빌 영화에서 사내들이 행하는 의식은 마지막에는 필연적으로 당하고야 말 배신을 준비하는 경건한 예배와 기도였던 셈이다. 그래서 주인공들이 죽으며 내뱉는 마지막 숨결은 그 예배의 완성의 순간인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세심하게 기록해야 하겠는가?  



오승욱 영화감독 

*이 글은 『판타스틱』 10호(2008년 2월)에 실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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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빗 린치 특별전]


‘보기’라는 행위의 미스터리 <광란의 사랑>


“나는 현실을 떠나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것과 미스터리를 좋아한다.” (『데이빗 린치의 빨간방』 중) 이것이야말로 데이빗 린치 영화의 모든 것이다. 그는 비현실 또는 초현실과 미스터리가 불러낸 혼돈을 이성적 사고로 조목조목 따지는 데 관심이 없다. 그가 바라는 건 강렬한 이미지와 그로부터 야기되는 어떤 인상(impression)이다. 그 인상을 저마다의 영화적 경험으로 감각하면 그뿐이라는 쪽에 가깝다. <광란의 사랑> 역시도 그러하다. “신의 미스터리”라고밖에 달리 말할 길 없는 환영과 히스테릭하고 괴이하며 광적인 이미지들이 멜로드라마와 로드무비, 뮤지컬과 갱스터 장르를 품고 있는 이 영화에 자리한다.

<광란의 사랑>이 빚어내는 인상은 오프닝 타이틀이 뜰 때 이미 전달되기 시작한다. 성냥의 머리에 불이 붙는가 싶더니 불씨는 이내 광폭한 화마로 번져 나간다. 불의 발화와 그 결과로서의 전소(절멸)는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불길한 전조, 예언처럼 보인다. 이 불길과 함께 “Wild At Heart”(황량한 마음)라는 제목이 스크린에 박히면 그것은 마치 활활 타오르는 불길의 황량함 내지는 화마 이후의 황량함일 것만 같다. 불의 전이는 영화 전체에 걸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이 불꽃은 또한 주인공들의 심리나 그들이 처한 상황과도 맞물린다. 곤경에 빠진 룰라(로라 던)와 세일러(니콜라스 케이지)가 물고 있던 담배 끝의 불꽃과 앞선 불꽃과의 디졸브나 담배를 피우던 주인공들이 플래시백으로 과거를 회상할 때면 어김없이 이 불꽃이 등장한다. 과거와 현재는 그렇게 불꽃의 이미지로 연결돼 있다. 모든 게 다 타버린 지난 시간은 계속해서 현재의 시간 안에 어른대며 접붙이기를 시도한다. 주인공의 사랑을 위협하는 결정적인 이유 역시도 이 화마의 순간과 관련돼 있음을 영화가 진행되면 알 수 있다. 심지어 불길의 한쪽에는 악마의 날갯죽지와 같은 무언가가 보인다. 사악한 기운이 어른거리는 듯하다.

사악함에 대해서라면, <광란의 사랑>이 『오즈의 마법사』에 대한 데이빗 린치 식의 인용과 해석이라는 점에서 얼마간 이유를 찾아볼 수도 있겠다. 도로시가 회오리바람에 휩쓸려 신비한 나라인 오즈로 갔다가 결국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환상의 이야기. <광란의 사랑>은 회오리바람 대신 화마가 세일러와 룰라를 ‘신비한 나라’로 데리고 갔다가 그들만의 ‘집’(사랑)으로 돌아오게 한다. 이름부터가 범상치 않은 ‘세일러’(Sailor)는 살인으로 복역한 후 가석방이 되자마자 연인 룰라와 함께 ‘케이프 피어’에서 “미친 도시” 뉴올리언스를 거쳐 텍사스로 이동한다. 이 여정에서 그들은 과거의 비밀이 현재를 망가뜨리고 있다는 사실과 직면해야 한다. 룰라가 외계인에 대한 망상에 빠져 있던 삼촌에 대해 말하며 “오즈의 마법사를 찾아가서 조언을 구하면 좋았을 걸”이라 할 때, 세일러는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라고 답한다. 그들의 현재가 망상가의 기벽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뉘앙스다. 고통스러운 순간을 맞은 룰라가 신고 있던 빨간 구두의 양 뒤축을 격하게 맞부딪힐 때면 그건 다분히 도로시가 집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 외던 주문을 떠올리게 한다. 동시에 룰라의 불안증과 광적인 상태를 강렬한 이미지로 보여준 경우이기도 하다. 여기에 마녀들의 환영과 환청까지 가세한다. 이를테면 모텔에서 룰라가 세일러와 달콤한 시간을 보낸 뒤 듣게 되는 기분 나쁜 여자의 웃음소리를 떠올려 보자. 그 소리가 옆방에서 나는 소리인지, 룰라가 기억 속 누군가의 웃음을 상기한 것인지, 혹은 룰라의 엄마 마리에타(다이안 래드)의 웃음을 암시하듯 들려주는 것인지 모호하다. 웃음의 출처도 방향도 정확하게 분간되지 않는다. 불명확함과 애매함은 두려움과 혼란을 부르며 이것이야말로 수많은 고전 속에서 ‘마녀’ 하면 떠올리게 하는 중요한 이미지다. 사실 실체의 불명확성에서 오는 균열과 불안은 그 자체로 데이빗 린치가 즐기는 영화의 화법이기도 하다.

마리에타는 상당히 요상한 인물이다. 그녀가 립스틱으로 얼굴 전체를 시뻘겋게 칠했을 때 그것은 사람의 얼굴이라기보다는 피로 범벅된 가면을 뒤집어쓰고 있는 인형처럼 보인다. 얼굴 위에 한 꺼풀이 덧씌워진 듯한 그 모습이 이물처럼 느껴져 더욱 괴기스럽다. 이어서 카메라는 그녀의 얼굴에서 서서히 내려와 코가 뾰족하니 말아 올라져 있는 그녀의 신발을 확인하듯 보여준다. ‘이것이 마녀의 신발이다’라는 투. 그녀는 산토스(룰라를 성폭행한 남자를 처음 마리에타에게 소개한 자이기도 하다.)와 은밀한 관계를 맺고 룰라의 아버지가 화마에 휩싸여 죽게 된 데 직접적으로 관계한다. 당시 산토스의 운전기사였던 세일러는 룰라의 아버지가 죽던 날 화마의 현장에 있었다. 세일러가 살인의 목격자는 아니라 해도 마리에타에게는 그가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 즉 그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그를 죽여야 할 이유가 된다. 세일러는 자신의 의지나 의도와는 무관하게 어떤 상황에 연루된 것이다. 이처럼 관련 없는 것들이 서로 얽혀들고 그것이 어떻게 뻗어나가는가를 지켜보는 것은 데이빗 린치의 영화에서 다른 세계와 미스터리를 결합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특히나 연루의 당사자는 이 연루의 순간을 절대로 볼 수 없다는 점에서 연루됨의 사악함이 있다.

마리에타는 영화가 시작하고 곧바로 진행되는 세일러의 살인의 정황을 모두 알고 있음에도 “거기 있긴 했지만 난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룰라 아버지 살해 현장에 있었던 세일러가 해야 할 말을 그대로 가져와 본인의 것인 양 써버린다. 데이빗 린치 영화에서 ‘본다’는 행위가 갖는 어떤 허점과 한계를 생각하게 한다. 우리가 보고 있는 건 사태나 상황의 극히 일부분뿐일지도 모른다. 정작 봐야 할 것은 실제로는 볼 수 없는지도 모른다. <광란의 사랑>에 아주 짧게 등장하는 ‘눈먼 자’가 ‘눈이 멀지 않은 자’에 대한 이상한 조롱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데이빗 린치의 영화를 보고 있어도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좀처럼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도 '본다'는 것은 한정적이다. 같은 경우로 세일러가 클럽에서,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순간에 부르는 노래가 모두 립싱크라는 점도 그렇다. 클럽 신에서 세일러의 노래에 맞춰 들려오는 여성들의 환호 역시도 녹음된 것이다. 사랑에의 도취의 순간과 영화적 클라이맥스에 라이브가 아닌 이미 만들어진 노래가 오버랩될 때의 이상한 불일치. 이런 것들이 비현실적인 순간, 웃음이 비죽이 나오는 동화적이자 환상적인 순간으로 만들어진다. 보는 것과 듣는 것, 진짜와 가짜 사이의 경계조차 그렇게 무람 없이 허물어지고야 만다.


정지혜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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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 린치 특별전]


거대하고도 황홀한 영화적 인상화 - <인랜드 엠파이어>

  

  데이빗 린치의 <인랜드 엠파이어>의 줄거리를 요약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영화 속 이미지들의 인과관계는 물론 인물들의 정체조차 명확히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마케팅을 맡은 사람들조차 내용을 어떻게 설명해야 될지 몰라 대충 ‘곤경에 빠진 여자’라고 태그라인을 붙이고 말아버렸다는 건 농담이 아니다. 물론 억지로 이렇게 추려볼 수는 있을 것이다. 거물 남편을 둔 한 여배우가 새로 이사 온 이웃의 예언대로 얼마 전 오디션을 본 영화에 캐스팅이 된다. 불륜과 사랑에 관한 낭만과 광기를 다루고 있는 것으로 짐작되는 그 영화는 알고 보니 두 주인공 배우가 살해를 당해 제작이 중단되고 만 어느 폴란드 영화의 리메이크작이다. 제작진은 무성한 소문과 불길한 예감을 뒤로하고 촬영을 개시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니키가 실제 현실과 극 중 현실 사이에서 혼란에 빠진다. 그러면서 영화 또한 그녀가 출연 중인 영화와 폴란드 원작영화 등을 넘나들며 거대한 악몽의 미로 속으로 접어들고 만다.

가능한 줄거리는 거기까지다. 그 다음부터 관객은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장면이 영화 속 영화의 한 장면인지 영화 속 실제 상황인지,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인물이 실제 주인공인지 주인공이 연기하는 인물인지 구분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거기다 애초부터 해석 불가능한 장면들도 적지 않다. 이를테면 토끼 탈을 쓴 배우들이 벌이는 실내극 장면이 대표적인데, 어떤 이들은 이를 린치의 다른 영상 작업들과 연관지어 파악해 보려고도 한 듯하나 별 소득은 없었던 듯하다. 자명한 사실은 누군가가 이 영화의 모든 조각들을 어떻게든 연결시켜 하나의 완벽한 해설을 도출해 본다고 한들 결국 거기에 절대적 근거나 토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이것은 내러티브 중심으로 영화를 보고 해석하려는 모든 시도를 일찌감치 좌절시키는 영화다. 대신 이 영화는 감상자에게 다른 태도를 요구한다. 데이빗 린치가 베니스영화제 기자회견장에서 직접 말한 것처럼, 이 영화가 퍼즐이라면 그것은 “지적 논리”가 아닌 “인상” 작용을 통해 끼워 맞춰야만 하는 퍼즐이다. 그중 특히 ‘인상’이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필름 카메라에 비해 디지털 카메라는 현대 회화의 붓과 같은 것에 훨씬 더 가까운 도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는 그의 카메라가 어떠한 대상에 대해 계획적으로 완성된 화면을 구성하기보다 구성 요소들에 의해 일어난 인상들을 말 그대로 그때그때 ‘찍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감상자는 어떤 장면의 대사나 공간적 구조나 인물 구도가 마치 자유연상 작용을 일으키듯 이후 다른 장면들을 잉태시키거나 파생시켜 나가는 상황을 종종 맞닥뜨리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에 사용된 디지털 카메라는 영화 제작의 현실적 조건과 한계에 기민하게 대처하기 위한 경제적 매체로서 선택되었다는 느낌 이상으로 창작자의 내적 필요에 의해 그의 영화적 아이디어들을 자유롭게 찍어내고 연결하고 덧칠하여 그것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배가시키기 위한 회화적 매체로서 선택되기도 했다는 느낌을 준다.

더불어 이 영화는 단지 디지털 카메라를 썼기 때문에 디지털 영화가 아니라 디지털 시대에만 가능한 지극히 실험적인 제작방식을 택했다는 점에서 중요하게 기억되는 디지털 영화이기도 하다. 할리우드에서 나름 잔뼈가 굵은 대감독과 대배우들이 2년 반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HD급도 아니고 소니 DV 카메라 PD-150을 가지고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짬짬이 되는 대로 영화를 찍은 것이다. 처음에는 장편 영화를 찍을 생각도 아니었다고 한다. 그저 단편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삼삼오오 모여서 촬영을 했고, 그러니 완성된 시나리오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었으며, 때로는 제대로 된 대본조차 없어 린치가 현장에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설명해 주면 배우들은 그것이 다른 장면들과 어떻게 연결될지 알지도 못한 채 그저 주어진 순간에 충실하여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과정상의 특징이 이 디지털 영화의 중요한 감각적 성질로도 그대로 옮겨져 있다.

누구의 간섭도 없이 초저예산으로 만들어진 이 거대하고도 황홀한 영화적 인상화는 조악하면서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 심도 화면의 포커스는 이따금씩 날아가 있으며, 등장인물들의 얼굴은 때때로 왜곡된 비율로 잡혀 있거나 과도하게 번득이고, 어둠은 종종 뭉뚱그려져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불명료하면서도 강렬한 현재적 인상들과 그 인상들이 안기는 불완전한 감각에 의존해 헤쳐 나가야만 하는 미적 미로에 다름 아니다. 특히 난감한 사실은 앞서 등장한 인물들, 공간들, 상황들에 대한 인상과 감각 또한 갑작스레 변모하기를 거듭한다는 점이다. 이 영화의 카메라가 로라 던이라는 배우의 얼굴을 다루는 방식만 봐도 그녀의 인상이 언제 어떻게 느닷없이 변해버릴지 전혀 가늠할 수가 없다. 비교적 친절한 음악과 사운드 디자인을 감안한다고 해도, 이 영화의 감상자는 준거점 없는 이야기의 세계, 원본 없는 감각의 세계에서 길을 잃기를 기꺼이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런 체험이 설렘보다 불편함과 귀찮음으로 다가온다면 <인랜드 엠파이어>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게 좋은 디지털적 영화 체험의 지옥이다.

 

이후경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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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리는 오늘도]



“나의 얘기를 하고 싶었다”

- <여배우는 오늘도> 상영 후 문소리 감독과의 대화





장영엽(『씨네21』기자) 최근 영화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마치 유행어처럼 ‘기자님은 오늘도…’, ‘팀장님은 오늘도…’ 이런 말을 쓴다. 오늘 본 <여배우는 오늘도>는 여배우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여배우’ 대신 각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모든 사람들의 이름을 넣어도 무리가 없다. 그만큼 보편적인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임순례 감독은 최근 문소리 감독에 대해 “연기도 잘하고 연출도 잘하면 반칙이다”라고 하더라.


문소리(감독) 세상이 그렇게 공평하지 않다(웃음).


장영엽 오늘은 문소리 감독이 직접 인상적인 장면 세 개를 뽑아주었다. 먼저 기본적인 질문을 한 다음 그 장면들을 보며 이야기하겠다. 이 영화는 원래 세 개의 단편으로 시작한 걸로 알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 장편 개봉 프로젝트로 진행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문소리 세 편의 단편을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다 같이 묶어서 상영한 적이 있다. 그때 이 단편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완결성을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배우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우리들 이야기네요’란 반응을 들으며 용기도 좀 얻었다. 단편을 극장에서 개봉해 한국 영화의 다양성에 기여를 해보자, 이런 생각은 너무 거창하고(웃음), ‘뭐 어때? 해볼 수 있지’라고 생각했다. 영진위의 2017년 저예산 영화 개봉 지원을 받아 여기까지 왔다. 작은 규모로 개봉 중이다.


장영엽 엄청난 GV 릴레이를 하고 있다. 여러 배우들이 게스트로 참여하는 것에 관객들의 반응도 뜨겁다. 이 영화를 본 다른 배우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문소리 많은 분들이 ‘백만 번도 더 겪은 일이다, 아우 그럼’ 이런 반응을 보여주셨다(웃음). 만약 ‘남배우는 오늘도’였으면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 있었을지 궁금해하기도 하더라. 아나운서, 간호사, 유치원 선생님 등 살면서 직업인이면서 딸이자 엄마 등 동시에 여러 가지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한국 여성들의 삶에 대한 공감을 보여주셨다. 심상정 의원도 ‘심상정은 오늘도’를 만들어야 한다며, 완전 자기 이야기라고 많이 이야기하더라.


장영엽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가장 먼저 이 질문을 떠올릴 것 같다. 도대체 현실과 픽션의 비중이 어느 정도인가.


문소리 며느리도 모른다(웃음). 사실 나도 모른다. 우리의 기억은 정확한 게 아니고 재구성된 것이다. 어떤 것은 강렬하고 길게 남지만 어떤 건 짧게 왜곡되어 남는다. 그런 기억을 다시 영화로 만들기 위해 각색을 하면 하나의 신에 얼마나 많은 왜곡이 들어갈까. 영화 안에 치과 의사랑 사진을 찍는 신이 있는데, 내가 여러 사람들과 사진을 찍은 100번도 넘는 기억이 하나의 신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사실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소위 ‘팩트 체크’를 할 수 없다.

그런데 팩트보다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 느낀 나의 생각을 전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결국은 다 영화다. 실제 문소리가 나오고 실제 남편이 나오지만 전부 만들어진 것이다. 그걸 진짜처럼 보이게 하려고 노력을 했다. 그리고 그게 영화 만들기고, 그게 연기의 과정이라 생각했다. 전부 가짜인데 그걸 진짜로 믿게 하려고 온갖 가짜를 다 동원하지 않나. 가짜를 통해 진심을 전달하는 것. 그런 ‘놀이’가 영화 만들기이자 영화 보기가 아닐까.


장영엽 감독이 됐을 때 배우들에게 이것만은 보장해주고 싶다, 이건 꼭 지켜야겠다 생각한 부분이 있을 것 같다.


문소리 음... 돈은 좀 제대로 주고 싶다(관객 박수). 그런데 나도 사실 제대로 드린 것 같지는 않다. 적은 예산에 적은 회차로 찍다 보니 제대로 지급을 못 했다. 그리고 아역 배우와 작업을 할 때는 아동 연기자를 위한 조항, 법규 같은 것들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아이들한테 해서는 안 될 스케줄이나 촬영 환경이 보이면 마음이 아프다. 그런데, 나도 많이 노력했지만, 밤 12시에 재운 애를 새벽 4시 반에 다시 깨워서 연기를 시켰다. 비가 올 것 같아서 비 오기 전에 촬영을 해야 했다. 내 자식이면 이렇게 찍을까 싶을 정도로 미안했다.

그리고 인물의 등장도 중요하지만 퇴장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 인물이 영화 안에서 제대로 사라지지 않으면 그건 감독이 버리는 거라고 생각해 왔다. 조연이든 단역이든 그 사람의 삶의 무게는 똑같은 거다. 그 인격의 무게를 다 담아내지는 못할 망정 중간에 회피하거나 방기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3막에 나오는 감독 아내가 담배 피우는 장면을 집어넣었다. 원래 시나리오에는 그런 마무리가 없었는데 촬영 전날 이 역할이 떠올랐다. 감독 아내 캐릭터가 단지 다른 배우들의 머리채를 잡으라고 만든 건 아니니 이 인물도 많은 역사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 감정의 마무리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촬영 전날 담배 피우는 신 하나 찍자고 부산으로 오라고 했다. 4시간 걸려 서울에서 부산까지 오신 다음 담배 한 대 딱 멋있게 피우고 올라가셨다(웃음).


장영엽 이제 준비한 장면들을 보면서 이야기를 이어가도록 하겠다. 첫 번째 고른 사진은 1부에 나온 장면이다.




문소리 일단 산이 나오는 장면을 하나 넣고 싶었다. 1막은 ‘산에 간다’는 아이디어로 시작했다. 그런데 다 찍고 보니 북한산이 너무 멋있게 찍힌 거다(웃음). 너무 의미를 부여한 장면 같아 보여서 일단 그 장면을 뺐다. 그런데 나중에 마침 이 안양의 삼성산 정상은 자동차 도로와 가깝다고 하더라. 정말로 차에서 내려서 조금만 걸어가니 저런 산 정상이 나왔다. 굉장히 높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게 높은 곳이 아니다(웃음). 산 정상에 올라가면 뭔가 대단한 걸 느낄 것 같지만 기대와 다를 수 있다, 그런 생각을 담고 싶었다.


장영엽 1막과 2, 3막의 촬영감독이 다르다.


문소리 1막의 시나리오를 썼더니 막걸리 마시면서 얘기하는 장면이 홍상수 감독의 영화 같다고 하더라. 남녀가 눈빛 교환도 안 하는데 무슨 홍상수냐고 얘기했지만(웃음), 사람들이 자꾸 그런 말을 하더라. 박홍열 감독과 가볍게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그럼 제가 최대한 홍상수 감독스럽지 않게 찍어볼게요’라고 먼저 제안을 했다. 그래서 최대한 다르게 해보자고 했다.

2막과 3막을 찍을 때는 소위 ‘단편 영화’의 환경에서 만들려고 했다. 아시다시피 박홍열 감독은 홍상수 감독뿐 아니라 다른 영화 경력이 매우 많은 촬영감독이다. 그리고 많은 단편 영화들은 아직 상업영화에 데뷔하지 않은 분들이 주로 작업한다. 나도 <박하사탕> 전에 여러 단편 영화를 찍으며 새로운 동료도 사귀고 영화를 배웠던 기억이 있다. 그 경험이 지금도 내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나도 그런 기회를 젊은 영화인들에게 주고 싶었다. 그래서 아직 데뷔하지 않은 스태프 중 좋은 분을 만나 함께 진행했다. 그분이 최근 <우리들>로 장편 데뷔한 김지현 촬영감독이다.


장영엽 다음은 두 번째 장면이다. 3막의 장면이다.


문소리 이 장면은 일단 기술적으로 좀 아쉽다. 광량도 부족해서 벽에 화면이 제대로 비치는 것 같지 않다. 특히 벽지 무늬가 저렇게 도드라진다.

저 영상의 대부분은 연극 연출하는 이상우 선생님이 강원도에서 직접 촬영한 것들이다. 새벽 5시 30분에 저런 영상을 막 보내준다(웃음). 여기에 내가 헌팅 다니면서 직접 찍은 영상을 같이 편집해 만들었다. 저 안개 낀 갯벌도 내가 찍은 것이다. 거의 열흘 가까이 장례식장과 묘지 헌팅만 다녔는데 딸이 서해안 갯벌 체험을 하러 갔다가 ‘엄마도 왔으면 좋겠다’고 전화를 하더라. 그래서 혼자 부랴부랴 차를 몰고 서해안으로 갔다. 갈 때만 해도 ‘내가 지금 여기 갈 때가 아닌데’ 하면서 조급해했었다. 서해안에 도착했는데 안개가 너무 많이 꼈더라. 그렇게 안개 속에 혼자 있으니 묘한 감정이 생겼다. 사람들은 멀리 아른아른 보이고 쓰레기는 바닥에 굴러다니고, 이걸 찍어야겠다 싶어서 아이폰으로 바로 찍었다. 내가 아무리 머리를 써서 의도하고 계획을 짜도 삶이 내 앞에 보여주는 것 앞에 그냥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순간이 있는 것 같다.


장영엽 3막은 앞의 1, 2막과는 조금 다른 정서를 갖고 있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예술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감독 문소리’의 이야기가 더 드러난 것 같다.


문소리 2막까지 여배우가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고 나니 자연스럽게 ‘왜?’란 질문이 생기더라. 우리는 왜 그렇게, 무얼 위해 그렇게 고군분투하는 걸까. 명확한 답은 아니더라도 이 질문에 답하는 어떤 방향이나 지향이 있음을 얘기하고 싶었다. 그래야 이 이야기를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장영엽 이제 세 번째 장면이다. 3막의 마지막 장면인 공동묘지 장면이다. 이 장면은 정말 묘하다. 지금까지 보통 바스트숏이나 클로즈업이 많았는데 예외적으로 롱숏이 나온다.




문소리 시나리오에는 장례식장 앞의 강으로 설정했었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곳을 찾고 보니 거긴 너무 그림 같아서 마치 ‘정답’ 같더라. 강도 흐르고 삶도 흐르는 느낌, 삶과 죽음의 강을 건너는 그런 느낌(웃음). 무슨 국어 시험 문제 같기도 하고, 단지 그림 예쁘다고 영화에 넣는 건 아닌 것 같더라. 그래서 다시 다른 곳을 찾기 시작했다.

일단 이 사람들이 외로워 보이지 않기를 바랐다. 함께 걸어가는 느낌이 있기를 바랐고, 그래서 묘지를 생각했다. 나는 여기 무덤에 묻힌 분들이 단순히 죽은 사람이 아니라 각자 하나의 삶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이 많은 인생을 긁어 모아 영화를 만들고 배우는 저들의 삶을 가져와 연기를 한다. 먼저 세상을 떠난 이분들과 함께 숏을 만들고 싶었다. 나는 이게 ‘떼숏’이라고 생각한다(웃음).

영화 속 공간은 부산에 있는 공원 묘지인데, 어릴 때부터 많이 봤던 곳이다. 이렇게 역사가 보이는 곳을 찾았다. 서울-경기 지역에 안 가본 묘지가 없을 정도로 찾아다녔는데 최근 만들어진 묘지는 너무 질서정연해서 데스크탑 컴퓨터가 300대 놓여있는 것 같더라. 오래된 묘지는 너무 산 중턱에 흩어져 있고. 그래서 이 무덤을 떠올리고 부산으로 가자고 했다. 처음에는 스태프들도 안 좋아했는데 막상 도착해서 보더니 다들 동의했다.

영화를 개봉하고 이렇게 GV를 여러 번 하면서 극장의 관객석 풍경이 무덤과 굉장히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웃음). 무덤 17번, 18번 이런 식으로. 내가 지금 이 경사로를 올라 뒷문으로 퇴장을 하면 영화 속 장면과 비슷한 그림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내게 극장의 이미지가 무의식 속에 이런 식으로 남아있는 건 아닐까 생각을 하고 있다.


관객 1 재밌게 봤는데 스트레스도 너무 많이 받았다(웃음). 사는 건 힘들고 나는 피해자지만 또 살아갈 수 있는 건 친구들과 이런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나를 죽지 않고 살아가게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며 그런 느낌을 받았다.


문소리 나만 생각하고 나만 들여다보면 답이 안 나온다. 많은 문제는 관계 안에서 풀리는 것 같다. 나, 나, 나 하고 살아가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심지어 더 고통스러워진다. 그런데 관계를 들여다보면 배우는 것도 있고 위로도 얻는다. 때로는 다른 사람과 싸우면서 새로운 힘을 얻기도 한다.


관객 2 1, 3막은 화면비가 16:9인데 2막만 시네마스코프다.


문소리 오늘 전문가들이 많이 오신 것 같다(웃음). 이렇게 묶어서 개봉을 할 생각이 없었다는 강력한 증거다. 2막을 찍을 때는 달리는 장면이 중요해서 시네마스코프를 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2막에는 나와 다른 사람들 간의 거리를 중점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가로로 넓은 화면에서 인물 사이의 거리감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시네마스코프로 찍었다.

그렇게 촬영과 편집이 거의 끝난 다음 남편에게 보여주었더니 ‘무슨 생각으로 2.35:1로 찍었냐’고 묻더라. 사람들이 1막이랑 이어서 볼 텐데 통일을 해야 된다는 거다. 그래서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답했었다(웃음). 생각이 짧았던 거지.




관객 3 직접 캐스팅도 하셨을 텐데 캐스팅이나 오디션에서 어떤 기준을 갖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문소리 영화인들끼리 하는 얘기가 있다. 어떤 감독이 훌륭한 감독인지 판단하는 제일 쉬운 기준은 그 감독이 어떤 배우와 일하는지 보면 된다는 거다. 다시 말해 감독의 중요한 능력은 배우 캐스팅이다. 그렇다고 내가 좋은 감독이란 건 아니지만(웃음), 이번에 괜찮은 배우들이랑 많이 작업을 했다.

1막에는 비전문 배우랑 많이 작업했다. 배우와 배우가 아닌 사람의 이야기를 그리다 보니  비전문 배우를 많이 캐스팅했다. 그런데 2막에서부터는 이게 다큐가 아니라 ‘영화’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전문 배우들을 캐스팅했다.

이미 연기를 하는 분들이라서 특별한 연기 오디션을 보지는 않았다. 대신 잠깐 나오는 분들이라도 5분 이상 평범한 대화를 나누며 ‘실제 느낌’을 보려고 했다.


관객 4 보통 TV나 영화에는 20대 여성 아니면 노인 여성들만 많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 영화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여배우들이 나와서 좋았다.


문소리 그래서 이 영화를 만들 때 내 작품의 별명이 ‘중년 단편’이었다(웃음). 특히 단편 영화에는 중년 남성도 많이 나오지 않는다. 나는 내 주변에서 제일 평범하게 사는 편이다. 직업만 영화배우일 뿐이지 삼십 대 중반에 결혼해서 애도 있고 어른들을 모시고 살아간다. 그런데 내 주위에는 정말 다양하게 사는 친구들이 많다. 그 친구들이 ‘우리 얘기’가 담긴 영화가 없다고 말한다. 차이밍량이 ‘세계를 걱정하면 상업영화고 자기를 걱정하면 예술영화’라는 귀여운 얘기를 했다고 한다. 우리도 그런 얘기를 했다. 왜 이렇게 영화들이 우주를 걱정하고 세계를 걱정하냐고. 그냥 각자 걱정하는 영화를 만들자는 말을 했다. ‘우리의 걱은 사소한 건가?’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 그냥 우리의 얘기, 나의 얘기를 하고 싶어졌다.


장영엽 마지막 이야기를 듣고 오늘 자리를 마칠까 한다.


문소리 많은 극장에서 GV를 했는데 서울아트시네마는 서울아트시네마의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오늘 많은 얘기를 했는데 사실 내가 뭐라고 얘기했든 별 상관 없다. 여러분이 본 느낌 그대로가 좋다고 생각한다. 음… 앞으로도 나 역시 좋은 영화의 좋은 관객이 되도록 노력하고, 그런 인생을 즐기고 싶다. 그러면 여기서 더 자주 여러분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시 9월 29일(금) <여배우는 오늘도> 상영 후

정리 김보년 프로그램팀

사진 이정훈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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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이마무라 쇼헤이 회고전]



“이마무라 쇼헤이의 세계”





김성욱(프로그램 디렉터) 이마무라 쇼헤이 회고전을 기획하면서 덴간 다이스케 감독을 초청했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아들이기도 한 덴간 다이스케 감독은 <우나기>의 시나리오에도 참여한 시나리오 작가이자 영화감독이며, 현재 일본영화학교의 학장이기도 하다. 먼저 이마무라 쇼헤이에 대한 덴간 다이스케 감독의 이야기를 들어보겠다.

덴간 다이스케(감독) 아버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에 저항감이 있어 그동안 얘기한 적이 거의 없었다. 나는 오늘 상영한 <우나기>의 각본 작업에 참가했었다. 아버지와는 네 편의 영화에서 각본 작업을 함께했다. 작업을 할 때는 부자 사이라기보다는 각본가와 감독의 관계에서 격렬하게 싸우기도 했다. <우나기>는 원작소설을 가지고 있는데, 소설과는 이야기가 약간 다르다. 원작은 밤에 장어를 잡고 낮에 장어구이집을 하는 남자의 이야기다. 그런데 그런 설정으로는 제작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이발소로 설정을 바꿨다. 각본을 쓰다가 아버지와 영화의 방향성에 대해 심한 대립이 일어났다. 절반 정도 각본을 쓴 시점에서 나는 빠졌었다. 결국 이후의 이야기는 다른 사람이 썼고, 각본이 다 완성된 시점에 한 번 읽어봐 달라고 연락이 왔다. 재미없는 부분이나 안 풀렸던 부분이 있으니 읽고 수정해달라고 했다.

이 영화는 다행히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다. 유럽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고, 일본에서도 비교적 흥행에 성공했다. 한국에서도 일본 영화로서는 꽤 이른 시기에 개봉했던 걸로 안다. 만약 이마무라 쇼헤이의 영화를 <우나기>로 처음 접한 분들이라면 그의 다른 작품을 보고 놀랄 수도 있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하나의 스타일을 고수하지 않았고 시대마다 변화했다.



이마무라 쇼헤이 작품들의 공통점

그 작업들을 관통하는 공통점 몇 개가 있는데, 그 공통분모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많이 언급되는 것으로 첫 번째는 섹스 묘사가 항상 있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 영화를 볼 수가 없었다. “네 아버지는 에로 영화만 찍는다”며 주변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 처음 아버지 영화를 극장에서 봤는데, 일반적인 포르노와는 다른, 솔직히 보고 싶지 않은 영화였다.

두 번째 큰 특징은 차별받는 사람이나 범죄자, 아웃사이더들이 주로 등장하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마무라 쇼헤이의 영화는 일본인이 어떤 종교관과 사고관을 가지고 그동안 살아왔는지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구조주의적 접근이 작품 중심에 있다. 섹스의 문제나 소외자의 문제는 사회나 인간 심리의 큰 구조를 설명하기 위한 요소로 들어가 있다. 아버지의 전체 필모그래피의 중반쯤 되는 지점에서부터는 일본의 신화를 모티프로 해서 구조주의적인 영화를 만들게 된다. 대표적으로 <신들의 깊은 욕망>이 있다. 또 한편으로는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여러 사건에 관심을 가졌고, 그들을 리얼하게 묘사하려 했다. 그 시기에 여러 편의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도 했다. 다큐멘터리를 찍고 리얼리티를 추구하다 보니 배우의 연기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가질 때도 있었고, 그래서 다큐멘터리의 기법을 극영화에 활용한 작업도 있었다. 오늘 <우나기>도 그렇지만 말년의 작품들은 오히려 연극적인 연기를 표현한다.


영화 작업을 하며 아버지가 겪은 갈등들은 굉장히 흥미롭다. 모든 영화가 다 재미있지만 상업적인 영화는 한 편도 없다. 그래서 계속해서 가난해졌고, 영화를 찍을 때마다 빚이 늘어났다. 더 이상 도쿄에서는 살 수 없어서 시골로 이사했었던 기억이 있다.

아버지의 영화 세계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특징은 유머다. 어떤 작품을 보더라도 유머가 있다. 무거운 희극이라고 해서 본인의 영화를 ‘중(重)희극’이라고 불렀다. 아버지는 인생, 세상, 역사가 희극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빚쟁이들에게 쫓기는 상황이 희극적으로 느껴졌다는 아버지의 글을 본 적이 있다. 이마무라 쇼헤이는 정말 에피소드가 풍부했던 사람이다. 그중 하나는 빚에 쫓기면서 시골에서 살던 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아버지가 마을을 걸어가다가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뭔가 하고 봤더니 범죄의 현장 검증이었다. 범죄자가 아닌 사람이 살인 누명을 쓴 거였다. 아버지는 집에 돌아와서 양복으로 갈아입고 다시 그 현장으로 돌아갔다. 현장에 경찰관도 많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수고하십니다”라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안으로 들어갔고, 정말 흥미진진하게 현장 검증을 보고 들었다. 그러다 결국 관계자가 아닌 걸 들켜서 쫓겨났는데, 쫓겨난 다음에도 다시 한 바퀴 돌아서 부엌으로 이어지는 뒷문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그 집안 식구와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잡담을 나누고 있는 곳에 능청스럽게 끼어들어서 현장 검증하는 얘기를 계속 들었다. 어떤 게 궁금할 때는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집요하게 파고들었던 분이다. 이런 일화들은 정말 많다. 나는 아버지가 영화에서 소외자를 다룬 것도 처음부터 사회적, 사상적으로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알고 싶은 것에 대한 호기심에 먼저 충실했던 결과라고 생각한다.

아버지 영화에는 반미적인 특성도 있다. 아버지는 청년 시절에 전쟁을 겪었고, 일본이 전쟁에 패하는 걸 목격했다. 군국주의 청년은 아니었고 그것에 비판적인 청년이었지만, 패전을 하고 일본이 미국에 지배를 당하는 걸 보게 된다. 전쟁에 패한 남자들은 풀이 꺾여서 일본으로 돌아오는데, 오히려 여성들은 미군을 상대하면서 씩씩하게 살아가는 면이 있었다. 그런 풍경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돼지와 군함>이나 <붉은 살의> 같은 영화가 그러한 영향을 보여준다.

김홍준(감독) 이마무라 쇼헤이의 회고전이긴 하지만, 덴간 다이스케 감독님도 처음 한국을 방문했으니 감독님에 대한 질문을 드리고 싶다. 덴간 다이스케 감독님은 영화 연출자이자 시나리오 작가, 교육자이기도 하다. 요즘에는 무슨 작업을 했는지 궁금하다. 또 일본영화대학이 이마무라 쇼헤이 영화학교의 발전한 형태라고 알고 있는데, 학교에 대해서도 소개를 부탁한다.

덴간 다이스케 요즘에는 연극을 몇 편 연출했다. 일본에서는 ‘자주영화’라고 표현하는데, 작은 예산을 가지고 만드는 독립영화를 직접 제작해서 일반 극장이 아닌 곳에서 상영회를 갖는 활동을 몇 년 전부터 해오고 있다.

그리고 아버지가 만들었던 일본영화학교가 발전되어 일본영화대학이 됐다. 처음에는 전문학교였는데 지금은 대학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현재 일본에는 이 학교 출신의 스탭이 없는 현장은 없다고 봐도 될 정도다.

김홍준 필모그래피를 보면 하야시 가이조, 미이케 다카시 감독과 시나리오 작업도 많이 같이 했다.

덴간 다이스케 미이케 다카시 감독은 일본영화학교 출신이다. 하야시 가이조 감독은 다른 곳에서 만난 분이다. 나는 영화학교 출신은 아니다. 저예산 영화를 만들다가 하야시 감독을 알게 됐고, 입봉하게 된 후에는 여러 감독을 만나 공동 작업을 했다. 미이케 다카시 감독은 이마무라 쇼헤이 촬영팀의 조감독 막내로 일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의 인연으로 알게 됐다.


김홍준 <우나기>는 1983년의 <나라야마 부시코>에 이어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탔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일본의 영화감독 중 유일하게 황금종려상을 두 번 수상한 감독이다. 일본에서 소위 ‘국민 감독’의 칭호를 얻는다거나 국가적 지원을 받을 법도 한데, 아까 빈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우나기> 이후 제작 환경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덴간 다이스케 상을 받은 직후에는 돈이 잘 모인다. 그런데 차기작에서 또 실패하기 때문에 그 다음부터는 다시 마이너스로 출발해야 한다. 해외에서 젊었을 때부터 평가를 많이 받았던 감독들과 달리 이마무라 쇼헤이는 그렇지 않았다. 이를테면 오시마 나기사 감독은 일찍부터 유럽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아버지는 “오시마 나기사는 사무라이고 나는 백성이기 때문에 안 되는 거다”라고 말씀하셨다.

칸영화제에 <나라야마 부시코>가 초대받았을 때 오시마 나기사의 <전장의 메리 크리스마스>도 함께 초대받았다. 당시 <전장의 메리 크리스마스> 팀에서는 데이빗 보위, 사카모토 류이치와 함께 성대한 파티가 이어졌고, 오시마 나기사가 수상할 것이라는 분위기가 있었다. 한편으로 <나라야마 부시코>의 파티는 프랑스인이 알 리 없는 사카모토 스미코라는 여배우가 노래를 부르는, 조촐한 분위기였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분위기가 좋게 작용한 것 같다. 인지도가 높지 않았기 때문에 갑자기 나타난 일본 감독이 호기심을 자극한 게 아닌가 싶다. 왜 <우나기>가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김홍준 여담인데 나도 부천영화제 프로그래머로서 1997년 칸영화제에 갔었다. 그해 칸영화제의 후일담 중 하나는 올해 최고의 파티가 <우나기> 팀이었다는 얘기다. 메인 메뉴로 장어구이가 나왔다(웃음).



관객 1 이마무라 쇼헤이의 필모그래피를 따라가다 보면 한국에 대한 언급이 종종 있다. ‘조선’, 또는 ‘한국’이라는 나라는 그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궁금하다.

덴간 다이스케 아버지는 젊을 때부터 재일조선인, 재일한국인들을 만나면서 그분들에 대한 친근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학생일 때도 “오늘 한국의 영화감독과 술을 마시면서 얘기를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정확히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도 한국 영화감독과 교류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앞서 이야기했던 현장 검증 에피소드의 누명을 쓴 사람도 재일한국인이었다.

관객 2 영화의 이미지나 인물의 동선이 다층적인 것 같다. 영화를 보면서 퍼즐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혹시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이 수학이나 수에 대해 관심이 있었는지 알고 싶다.

덴간 다이스케 아버지는 “각본은 수학적으로 써야 한다. 논리가 중요하다. 그렇지만 너무 지나치게 균형이 있는 건 좋은 시나리오가 아니다”라고 말씀을 하셨었다.

관객 3 한국영화 중 <2009 로스트 메모리즈>라는 영화에 이마무라 쇼헤이가 단역으로 출연했었는데, 어떤 경로로 출연했는지 궁금하다.

덴간 다이스케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 그 감독님이 아버지 영화의 팬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출연하신 것으로 안다.

관객 4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이 오즈 야스지로의 조감독을 맡았던 적이 있는 걸로 안다. 평상시에 오즈 야스지로 감독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시곤 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촬영현장에서 배우들과의 관계가 어땠는지도 궁금하다.

덴간 다이스케 아버지는 오즈 야스지로 감독을 존경했다. 스타일은 전혀 달랐다. 젊을 때는 반발도 있었다. 오즈 야스지로는 테이크를 반복하면서 거듭 다시 찍는 스타일인데, 그러다 보면 배우들이 가지고 있던 생생함이 사라지고 나중에는 좀비처럼 된다. 때문에 아버지는 오즈 야스지로의 그런 방식에 대해 동의하지 못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 “지금 생각해 보면 오즈 야스지로 감독은 정말 대단했다”라고 말씀하셨다.

연기 연출에 있어 아버지는 구체적인 지시 없이 대략적인 느낌을 던지고 본인이 원하는 것이 나오도록 기다리는 타입이었다.

관객 5 <우나기>를 보면서 일반적인 기승전결이 아니라 연대기적 서사라고 느꼈다. <우나기>는 원작이 있는데, 어떤 부분에 초점을 두고 각색하셨는지.

덴간 다이스케 클라이막스를 향해 가는 근대극적인 방식은 아버지가 쇼치쿠 소속이었을 때 주로 사용했었다. 하지만 독립적으로 작업을 시작하고 나서는 이전까지 자신이 해왔던 것에서 벗어나려 하는, 균형을 깨려는 싸움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오히려 <우나기>는 기존의 ‘균형 잡힌’ 대본이라고 생각한다. 근대극적인 방식을 어느 정도 즐기면서 만든 작업이 <우나기>가 아닌가 싶다. <우나기>를 만들 당시에는 이미 연세도 있었고, 개성이 굉장히 강한 감독이었기 때문에 구체적인 디렉션은 없었다. 선문답 같은 막연한 얘기를 하면 그걸 가지고 ‘이런 뜻이겠지’ 추측하며 작업했다.



 

관객 6 영화에서 이발소가 중요한 장소로 나온다. 각색된 설정인데, 이발소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하다.

덴간 다이스케 형무소에서 재소자들은 몇 가지 직업 훈련을 받는데, 실제로 수감자들이 출소한 다음 가장 많이 선택하는 직업이 이발사다. 이발소가 리얼리티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발소라는 공간이 갖는 분위기도 매력적이었다. 이발을 하다 보면 사람들이 모이고 이야기를 나눈다. 일본에는 ‘이발소 담화’라는 말도 있다. 매일 머리를 자르는 건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사람이 모여드는 장소로 이발소가 매력적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관객 7 이마무라 감독의 작품을 보면 아버지와 자식의 대립, 혹은 아버지가 없는 자식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런 부정적인 이미지가 어디에서 기인하는 거라고 생각하시는지 알고 싶다.

덴간 다이스케 아버지와 아들의 대립은 구조적으로 공동체와 개인의 관계를 다룰 때 도식적으로 잘 활용된다. 종교나 전쟁을 다룰 때에도 아버지와 아들의 구조가 활용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아버지는 자신의 아버지, 그러니까 나의 할아버지와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김홍준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주변부 인물에 대한 작업을 꾸준히 했다. 이런 작품 세계가 오늘날의 일본영화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궁금하다.

덴간 다이스케 정신적인 영향을 받은 분들은 많을 거다. 학교에서 배운 제자들도 많다. 이마무라 쇼헤이를 전혀 모르는 젊은 감독들도 아버지의 작품을 보고 영향을 받는 경우도 있을 거다. 아버지는 마지막까지 자신이 믿는 길을 걸어간 분이다. 현재 일본영화계에도 자신의 길을 믿으며 살아가는 분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김홍준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영화를 지금 서울에서 본다는 건 오늘날의 한국영화들, 그리고 그 한국영화들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현실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오늘 자리에 대한 감독님의 소감을 듣고 마치겠다.

덴간 다이스케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작품을 이렇게 많이 상영하는 기회는 일본에서도 거의 없었다. 아버지는 평생을 두고 재밌는 영화를 만드는 걸 추구했던 분이다. 시대에 따라서 연출 방식이 완전히 바뀔 때도 있었지만 모두 그때그때 성실하게 만들었던 작업들이다. 이마무라 쇼헤이의 영화를 오늘 처음 보시는 분들도 많을 텐데 영화에서 많은 것을 느끼면 좋겠다.


일시 9월 9일(토) 오후 5시 <우나기> 상영 후

정리 황선경 관객에디터

사진 주민규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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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