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과의 세 번째 만남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의 마지막 날 극장을 찾은 손님은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었다. 지난 2월 21일(화), 기요시 감독은 <크리피>를 관객들과 함께 본 후 시네토크 시간을 가졌다. 기요시 감독이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은 건 이번이 세 번째이다. 지난 소격동 시절에도, 낙원동 시절에도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았던 기요시 감독은 빠른 시간 내에 서울아트시네마의 새로운 전용관에서 ‘네 번째 만남’을 갖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구로사와 기요시(감독) <크리피>를 끝까지 봐주셔서 감사하다. <크리피>는 정말 꺼림칙한 영화다. 원작 소설이 있는 이야기인데, ‘이사를 온 전직 형사가 찾던 범인이 옆집 남자다’라는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어서 만들게 되었다. 오랜만에 만든 사이코 스릴러 드라마라서 찍으면서도 매우 즐거웠다.

정지연(평론가) 감독님도 말씀하셨듯이, 이전에는 주로 창작 시나리오로 작업을 하셨는데 <크리피>는 원작이 있는 작품이다. 영화를 본 후에 원작을 찾아봤더니 원작의 내용이 영화와는 많이 달랐다. 원작을 각색하면서 어떠한 기준으로 스토리와 캐릭터를 정리, 재창조하셨는지 궁금하다.

구로사와 기요시 원작 소설의 이야기는 굉장히 복잡하다. 영화로 구현한 부분은 원작 소설의 전반부에 해당한다. 원작의 후반부에는 형사와 범인 이외에도 굉장히 많은 인물이 나온다. 그러면서 서로 복잡한 관계를 맺지만 영화에서는 그런 부분을 과감히 생략했다. 과거를 그리면 분량이 배 이상 늘어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과거로 돌아가는 것 자체도 힘들다. 글로 쓴다면 간단하지만 영화는 그렇지 않다. 심지어 원작 소설에서는 범인 니시노와 형사 다카쿠라의 고등학교 시절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오는데, 이렇게 되면 배우들과 비슷한 얼굴을 가진 배우도 찾아야 한다. 초등학생 시절의 이야기라면 적당히 아역배우를 쓰면 되지만, 고등학생 시절을 연기할 닮은 배우를 찾기 힘들었다. 그래서 결국 생략했다.

정지연 영화 만들기의 경제학이 중요하게 작동한 것 같다. <크리피>를 보면서 <큐어>가 떠올랐다. 특히 주인공의 캐릭터나 이야기의 구조가 그러하다. <큐어>의 형사는 아내 때문에 상처가 많았다. <크리피>의 주인공 역시 겉으로는 아내와 다정해 보이지만 실상은 거의 깊은 얘기를 나누지 않는다.

통상적인 범죄 스릴러라면 범인을 잡아 불안감을 없애고 정상성을 복구하는 것을 목표로 할 테지만 감독님의 영화는 정상성을 복구하는 것보다 추격자의 내면을 묘사하는 데 더 집중한다. 원작에 전혀 없는 내용 중 흥미로운 장면이 있다. 오프닝에서 다카쿠라가 오만한 자신감을 갖고 있다 실패하는 부분이다. 그 마음의 상처 때문에 주인공의 자존감이 추락한다. 원작에는 전혀 없는 이 성격을 추가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구로사와 기요시 내 영화에 대해서 나보다 더 잘 아시는 것 같다. 나는 이제까지 무서운 영화를 여러 편 찍었다. 그 대부분은 유령이 나오는 영화였다. 이렇게 순수한 사이코 스릴러를 찍는 것은 말씀하신 대로 <큐어> 이후 거의 20년 만의 일이다. 너무 오래간만에 찍는 사이코 스릴러이기 때문에 <큐어>는 전혀 떠오르지도 않았다. 그저 다시 사이코 스릴러 장르를 찍을 수 있어 가슴이 벅찬 상태였고, 때문에 <큐어>와 다르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조차도 하지 못했다.

이 작품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프로듀서가 먼저 읽고 추천한 것이다. 찾아 헤매던 범인이 바로 옆집에 살고 있었다는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었다. 장소가 옆집이기 때문에 영화 자체가 조밀해진다. 출연하는 배우도 적어지고, 따라서 예산도 줄일 수 있게 된다. 이런 컴팩트한 상황에서 서스펜스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의 후반부를 대부분 생략하긴 했지만 핵심적인 아이디어는 원작의 그대로다.

원작과 내용이 달라진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이미 영화를 보면서 눈치 채신 분도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다카쿠라 형사 자체가 마음에 빈틈이 있는 사람이다. 그 빈틈이 어쩌면 악인인 니시노보다 다카쿠라에게 더 큰 결함으로 작동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니시노는 악랄한 괴물로 그려지지 않는다. 악인 니시노에게 대항해야 할 형사가 점차 악으로 변해가는 이야기에 서스펜스가 가득하다고 느껴졌다. 이 부분을 영화로 형상화해보고 싶었다.

정지연 <큐어>에서 야쿠쇼 고지가 마미야와 닮아가는 과정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구로사와 기요시 사실 형사가 범인을 잡는 이야기는 매우 흔한 이야기다. 그러나 내가 생각할 때 형사라는 ‘직업’ 자체의 결함 때문에 범인의 체포가 늦춰지는 경우는 드문 것 같다. 원래 수사는 제대로 진행하면 범인이 밝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세상의 법칙이다. 하지만 정말 이상하게도 니시노라는 범인은 좀처럼 체포되지 않고 범행의 진상도 밝혀지지 않는다. 왜 그런지 계속 생각했다. 그러다 도달한 결론 중 하나가 형사라는 직업 이전에 인간 자체가 가진 약점이 있다는 생각이었다. 범인이 그 약점을 능숙하게 잘 파고들기 때문에 수사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들을 종합해서 만든 영화가 <크리피>다.

정지연 감독님의 영화를 보면 유령영화와 범죄영화를 막론하고 감독님만의 인장이 있다. 가령 흔들리는 커텐, 실내에 쳐진 비닐 등의 이미지들이 그렇다. <크리피>에도 니시노의 집에 비닐이 많이 붙어 있다. 특히나 감독님의 기운을 느낀 순간 중 하나가 오프닝 신이다. 취조를 끝낸 다카쿠라가 후배와 이야기를 나눌 때 후경에서 문이 저절로 열린다. 사실 문이 저렇게 열릴 이유가 없다. 이건 감독님 특유의 유령적인 장면이다. 이 밖에도 영화를 잘 떠올려보면 문이 유령처럼 열리는 순간이 몇 번 반복된다. 주인공이 6년 전 사건이 벌어졌던 집에 도달했을 때도 문이 저절로 열리고, 아내가 니시노의 집에 갔을 때도 문이 저절로 열리면서 니시노가 등장한다. 물론 다른 영화에서도 유령 같은 문이 있지만 감독님의 영화에서 문이 열린다는 건 단순하지 않은 것 같다. 보통의 영화에서 문이 열리는 건 ‘환영(歡迎)’의 순간이라면, 감독님의 영화에서 문이 열리는 순간은 불온한 순간이다. 이 역시 원작에도 없는 내용인데 어떻게 구상하신 것인지 궁금하다.



구로사와 기요시 너무 여러 번 그런 장면을 찍어서 부끄럽다(웃음). 나도 문이 저절로 열리는 장면을 왜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문이 열린다는 것, 그러면서 이전까지 안보이던 광경이 스크린에 보인다는 것은 중요하다. 영화는 사각으로 구획된 세계만 볼 수 있지만 관객은 그 세계 저편에 다른 세계가 있다고 믿으면서 영화를 본다. 그렇다면 스크린에 비치지 않은 세계는 사실 카메라가 살짝만 움직여도 보이게 된다. 문이 열리는 것 역시, 문이 열림으로써 우리가 그전에는 보지 못한 다른 세계가 보인다. 이런 것들이 영화가 주는 즐거움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문이 저절로 열리는 장면은 간단해 보이지만 실제로 찍을 때는 그렇지 않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스태프가 숨어 문을 밀거나, 실 같은 것으로 당겨야 한다. 실제로 찍으려고 하면 굉장히 거추장스럽다. 스태프들도 문이 제대로 열리길 바라면서 긴장한다. 그런 의미에서 문이 저절로 열리는 장면은 현장에서 스탭들의 마음을 하나로 단결시키는 장면이기도 하다(웃음).

정지연 예전에 감독님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때 인터뷰 주제는 영화에 등장하는 유령의 존재론이었다. 왜 자꾸 유령의 세계를 묘사하냐고 물었더니, 영화 자체가 픽션과 리얼리티의 경계에 서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문을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라고 설명한 것처럼, ‘열린다’는 것이 감독님의 영화를 대변하는 키워드가 아닌가 싶다.

문이 열리는 것과 비슷한 느낌 중 하나는 접촉의 순간이다. <크리피> 역시 이상하면서도 에로틱한 장면이 하나 있다. 터널에서 니시노가 야스코에게 악수를 청하는 장면이다. 니시노가 야스코의 손을 잡고 “우리 집에 꼭 오세요”라고 말하는데 이 장면이 굉장히 이상하다. 비단 이 영화뿐 아니라 감독님의 영화에서 접촉의 순간은 좋은 느낌은 아니다. <밝은 미래>에서는 오다기리 조가 해파리를 만지려고 하는 순간에 아사노 타다노부가 “만지지 마”라고 하고, <카리스마>에서도 나무에 다가가는 주인공에게 환청처럼 만지지 말라고 하는 소리가 들린다. <해안가로의 여행>에서도 마찬가지로 남편이 아내에게 접촉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심지어 <크리피>에서 다카쿠라의 뒤편으로 아내가 손을 잡는 순간도 애정의 순간이 아닌 주사를 놓는 장면이다. 감독님의 영화에서 만진다는 것이 왜 이렇게 위험한 순간으로 그려지는지 궁금하다.

구로사와 기요시 내 영화를 상세히 보신 것 같다. 내 영화 속 만진다는 행위에는 특별한 느낌이 있는 것 같다. 그런 느낌 없이 내 영화에서 사람과 사람이 접촉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건 아마 내가 일본인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서양의 경우는 인사의 표시로 악수를 하고, 프랑스에서는 뺨에 키스를 하는데 이것은 일본에서는 있을 수 없는 행위다. 일상생활에서 일본인이 서로 접촉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자연스레 내 영화에 반영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또 이런 이유도 있다. 손의 연기라고 할 수 있는데, 서양인의 경우에는 가만히 내버려둬도 손의 제스처가 다양하기 때문에 그것이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하지만 일본인은 일상생활에서 손짓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찍을 때도 손을 화면에 넣을 필요가 거의 없다. 그래서 일본의 경우는 다들 얼굴만 거의 화면에 넣고 그 밖의 것은 넣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된다. 얼굴 표정만으로 오케이가 되는 것이다. 그 결과 카메라를 뒤로 빼는 것도 의미가 없어진다. 만약 손까지 넣으면 손을 비추기 위해 카메라도 빼야 하고, 배경도 신경 써야 하는 등 화면에 여러 가지가 담기게 된다. 손짓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정지연 감독님 영화의 공간에 대한 이야기도 궁금하다. 이 영화에는 집과 취조실, 강의실 이 나오는데 영화에서 물리적 공간을 배치하는 것에 대한 선택의 원칙이 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영화를 빨리 찍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콘티를 미리 정해놓는지, 아니면 현장에서 직관적인 판단으로 숏을 설정하는지 궁금하다.

구로사와 기요시 이 질문들은 내 영화를 관통하는 본질에 걸쳐 있기 때문에 대답이 길어질 것 같다. 가능한 간단히 대답하자면, 내 영화에서 공간의 선택은 굉장히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그렇지만 실제로 각본을 쓰는 단계에서는 공간을 거의 설정하지 않는다. 간략하게 마을, 방, 실내 정도로 쓸 뿐 구체적으로 어떤 마을이며 어떤 실내인지는 쓰지 않는다. 하지만 로케이션 헌팅을 나가면 여러 군데를 돌아다닌다. 그러다가 ‘딱 이곳이다’라는 느낌이 오는 장소가 있다. 아마 여기서부터 영화가 시작되는 것 같다. 거의 직감적으로 장소를 고른다. 그때 가장 중요한 것은 카메라를 어디에 놓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이 위치에 카메라를 놓았을 때 각본 그대로의 무대가 될 것 같은 장소가 있다. 분위기나 화각이 적합할 때가 그렇다. 그러나 이때 카메라를 오른쪽으로 조금만 움직이면 새로운 것이 보인다. 보이지 않던 통로가 보이거나 하는 식이다.

이런 ‘플러스 알파’가 있는 장소가 내가 생각하는 최적의 장소다. 이 플러스 알파의 유무로 장소를 정하고 카메라의 위치를 선택하면 배우가 그 공간에서 어떻게 움직이겠다는 생각이 대략적으로 잡힌다. 배우의 위치나 보이지 않는 공간으로 배우가 이동하는 동선 등이 점차 자연스럽게 머릿속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그렇게 카메라의 위치와 배우의 포지션이 결정되는 것에 따라서 작업을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콘티를 만들거나 구체적으로 무언가를 쓰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저 스태프에게 카메라의 위치를 설명하고 배우에게 동선을 설명하는 등의 주문만 한다.

영화를 찍을 때 실제로 배우를 그 장소에 넣어보면 실패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런 경우에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장소에 카메라와 배우를 배치해서 더 좋은 결과를 얻은 경우도 있다. 이것이 영화 현장에서의 스릴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에서는 계획을 세웠다가 그것이 실패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일이 굉장히 빈번하다. 이런 의미에서 현장에서의 자유로움만큼은 언제나 유지하고 싶다.

정지연 감독님의 영화를 보면 물리적으로 설정된 세트 공간 외에도 화면에 보이지 않는 공간을 흥미롭게 사용한다. 가령 <크리피>의 오프닝이 그러하다. 다카쿠라가 취조를 할 때 범인이 화면에는 보이지 않는 경사에게 가서 담배를 피워도 되냐고 묻는 장면이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범인의 그 행위를 보여줄 것 같은데 카메라는 계속해서 다카쿠라를 찍는다. 다카쿠라는 이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행위는 화면 바깥에서 벌어진다. 보이는 공간과 보이지 않는 공간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 원칙이 있는지 궁금하다.

구로사와 기요시 카메라에 비치지 않는 곳에서 나는 소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을 관객에게 들려주고 싶다. 실제로 내 영화에는 범행 현장의 옆방에서 들리는 소리나 어디서 나는지 알 수 없는 기계음 등이 많이 들린다. 현장에서도 스태프들에게 현장의 독특한 소리들을 녹음해 달라고 부탁한다. 당장 그 영화에서 쓰지는 않더라도 언젠가 쓸 일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 현장에서 스태프들이 내는 소리도 좋아한다. 가령 카메라 뒤에서 숨을 참고 있던 스태프가 본인도 모르게 내는 기침소리나 부스럭거리는 소리. 혹은 이동차가 움직이다 덜컹하는 소리 등이 그렇다. 이런 소리들은 일반적인 현장에서는 삭제되지만 나는 이런 소리를 굉장히 좋아한다. 내 영화 대부분에서 그런 소리들을 사용한다.



관객 1 <도쿄 소나타>를 보고 감독님이 만든 <우주 전쟁>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전철이 지나갈 때 집 내부에서 번쩍이는 빛들이 그러하다. <도쿄 소나타>와 <우주 전쟁>이 감독님께 어떤 영화인지 궁금하다.

구로사와 기요시 <도쿄 소나타>는 <우주 전쟁>과 <폭력의 역사>(데이빗 크로넨버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작품이다. <도쿄 소나타>에는 장남이 갑자기 미군에 입대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 설정은 <우주 전쟁>에서 오빠 역을 맡은 인물이 갑자기 입대를 하는 장면에 영향을 받았다. <폭력의 역사>에서는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아버지가 자취를 감춘다. 그리고 아버지가 다시 돌아오면 표면적으로 가족의 질서가 회복된 것처럼 보이지만 이 가족이 정말 제대로 회복이 되었나 하는 의문이 있었다. <우주 전쟁>도 마찬가지다. 이혼을 하고 뿔뿔이 흩어졌던 가족들이 보스턴에서 기적적으로 재결합하지만 앞으로 이 가족은 어떻게 되는 걸까라는 의문이 남는다. <도쿄 소나타>도 이러한 의문에서 출발했다.

관객 2 오프닝 크레딧이 인상 깊었다. 배우들의 이름은 철창 사이로 정확히 들어가지만 감독님의 이름은 창살을 가로질러 나온다. 본인이 이 세계의 창조자로서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겠다는 의지로도 느껴졌다.

구로사와 기요시 오프닝 크레딧은 전혀 의도하지 않았다. 다만 일본인은 대부분 이름이 네 글자인데, 내 이름은 세 글자라서 그런 것 같다. 주연 배우들의 이름은 네 글자로 그 공간에 예쁘게 들어간 반면 내 이름은 세 글자라서 그렇게 들어갔다(웃음).

관객 3 니시노가 자유의지를 말하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분명 주사를 투여해서 피해자들에게는 선택권이 없는 상황인데 그는 계속해서 자유의지라고 말한다.

구로사와 기요시 원작 이전에 일본에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가장 유명한 사건은 ‘기타큐슈 일가족 감금 살인사건’이다. 실제로 일곱 명이나 되는 가족들끼리 서로 죽인 사건으로, 그 사건에서도 범인이 일종의 약물을 사용한다. 그러면서 피해자들의 자유를 빼앗고 스스로 명령을 내리지 않으면서 희생자들에게 “네 마음대로 하라”고 말하고 내버려 두었다. 그러면서 희생자들이 서로 죽이게 조종하는 것이다. 아직도 재판 중이고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사건이다. 실제로 범인을 만난 적은 없지만 지인이 공판을 직접 보고 와서 이야기를 해 준 적이 있다. 범인이 실제로 굉장히 웃긴 사람이었다고 한다. 니시노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데, 재판장에서 범인이 말을 할 때마다 방청객들이 폭소했다는 것이다. 이 범인에게 니시노라는 캐릭터를 만드는 데 도움을 받았다.

관객 4 감독님의 영화에는 일본의 유명한 배우들이 많이 나온다. 캐스팅의 기준이 궁금하다.

구로사와 기요시 사실 내게 배우를 선택할 수 있는 힘은 없다. 게다가 인기 배우는 개런티도 비싸고 스케줄도 바쁘기 때문에 내가 부탁을 할 수도 없다. 지금까지는 다행스럽게도 좋은 배우들이 각본을 읽고 출연에 응해주었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실제 인기가 있고 다작을 하는 배우는 배우로서도 뛰어나다는 것이다. 인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지연 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는지.

구로사와 기요시 늦은 시간까지 함께해 주셔서 감사하다. 한국에 올 때마다 느끼지만 관객분들의 수준이 높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항상 세밀하게 보신다. 인사치레로 하는 말이 아니라 솔직한 심정이다. 이처럼 관객들의 수준이 높으니 한국에서 좋은 영화가 나올 수 있는 것 같다. 그에 비하면 일본은 여전히 좋은 영화가 나오고 있기는 하지만 관객의 수준은 떨어진다(웃음). 매번 실감하는 바이고, 또 많은 자극을 받는다.

정지연 이미 <크리피> 이후 <은판 위의 여인>을 만드셨고, 이 영화는 곧 한국에서 개봉할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영화를 또 만드셨다. 그 영화가 한국에서 상영될 때 또 한국에 초대하고 싶다. 무엇보다 서울아트시네마가 이전하면 그때 그 극장에서도 꼭 관객 분들과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정리 l 김창섭 관객에디터

사진 l 주민규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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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아무런 연고 없는 두 남자 잭(Zack)과 잭(Jack)은 각자 알 수 없는 모략에 빠져 우연히 같은 감옥에 수감된다. 곧이어 이탈리아인 밥이 이 감옥에 수감되면서 세 사람의 탈옥이 시작된다. 짐 자무시의 <다운 바이 로>는 이 세 사람 사이의 대조와 유사성을 비교적 명확한 구도를 통해 보여준다. 미국인인 두 남자 잭(Z)과 잭(J)은 그들의 이름에서도 드러나듯이 유사한 듯 다른 인물들이다. 그들이 각각 다른 사건이지만 감옥에 누명을 쓰고 들어왔다는 점, 영화의 초반 연인과의 관계 안에서 소극적인 태도를 취한다는 점 등, 두 사람은 몇 가지 공통점으로 묶이게 된다. 사실 이들과 정반대의 면을 보여주는 인물은 이탈리아인 밥이다. 수용소 철장에 나란히 선 세 사람이 자신이 잡혀온 연유를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자신의 무고함을 얘기하는 두 사람과 달리 밥은 돌연 나는 살인을 저질렀거든이라고 말한다. 그의 과거는 영화에서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그 말의 진위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어찌됐든 밥은 약간은 소극적이어 보이는 두 명의 미국인과는 다르다. 그는 (그의 말에 따르면) 살인을 저질러 감옥에 들어왔고, 세 사람이 탈옥을 감행하게 되는 주동자이며, 추위에 떠는 잭(Z)과 배고픔에 시달리는 잭(J)을 대신해 불을 피우고 토끼를 잡아 굽는다.

 

두 명의 미국인이 가진 소극적인 태도는 그들이 추구하는 독립성과 연관된다. 종국에 인적 드문 식당에서 만난 이탈리아 여성과 함께하기로 하는 밥과 달리, 잭과 잭은 홀로 걸어가는 길을 택한다. 밥은 떠나려는 두 사람에게 더 머물렀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지만 그들은 누군가와 함께 지낼 의지가 없어 보인다. 엔딩에서 영화는 잭과 잭이 따로 걸어가는 두 갈림길의 단순하고 명확한 구도를 보여주면 끝난다. 조금 이상한 말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이 인물들이 자신의 독립성을 강조할 때 동시에 두드러지는 것은 그들 사이의 유사성이다. 그리고 자무시는 두 인물의 유사성, 그리고 그들과 대립되는 밥의 모습을 또 다른 장치를 통해 드러내는데, 이는 언어의 기표라고 할 수 있다.

 

영어가 서툰 밥은 초반에 잭(Z)과 잭(J)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이는 외국어를 사용하는 사람에게 잘 감지되지 않는 유사한 기표의 차이이며, 따라서 밥이 갖고 있는 두 사람과의 근본적인 상이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탈옥한 세 사람이 강을 건너야 했을 때, 수영을 하지 못하는 밥은 홀로 강가에 남아 이탈리아어로 절규한다. (자막이 제공되지 않는 한에서, 절규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장면에서 밥은 꽤나 긴 이탈리아어 독백으로 영어권 관객들에게 이방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이때 이탈리아어로 제시되는 밥의 독백은 그 뜻은 정확히 전달되지 않고 언어는 기표로서만 남는다. 감옥에서 세 사람이 ‘I scream’‘ice-cream’의 발음의 유사성을 가지고 합창하는(“I scream-a, you scream-a, we all scream-a for ice cream-a”) 유쾌한 대목에서 언어의 쓰임 또한 비슷하다. 이 장면에서 합창은 순식간에 이 감옥의 모든 수용소로 확장된다. 처음 잭(Z)이 수용될 때의 트레킹 쇼트를 통해 딱 한 차례 보이는 다른 방의 수용자들은 이때 마치 잭(Z)과 잭(J)의 복제된 인물들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 각자 서로 다른 길을 가기로 한다. 자신이 어디로 향하는지는 정확하게 모르더라도, “네가 선택하지 않은 길을 갈게라는 말을 끝으로 이 두 사람은 미련 없이 헤어진다. 밥과는 대조적으로 자신을 둘러싼 상황에 압도된 듯 보이던 두 사람이 유일하게 고집하는 한 가지는 서로 함께하지 않겠다는 결단이다. 영화가 엔딩에 이를 때, 우리는 두 미국인이 스스로 선택하는 삶을 방식을 확인해 볼 수 있다.

 

황선경 | 관객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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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2017년 4월 13일(목) ~ 5월 7일(일)

주최│(사)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후원│영화진흥위원회, 서울시, 서울영상위원회, 주한프랑스대사관, 주한프랑스문화원
장소│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종로구 돈화문로 13 서울극장 1층)
문의│02-741-9782 www.cinematheque.seoul.kr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는 4월 13일(목)부터 5월 7일(일)까지 “연애의 모럴 - 에릭 로메르 회고전”을 개최합니다. <녹색 광선>, <해변의 폴린>, <가을 이야기> 등 에릭 로메르의 연출작 20편과 로메르에 대한 다큐멘터리까지 모두 21편의 영화를 상영하는 이번 회고전은 에릭 로메르의 작품 세계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삶의 아이러니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과 너그러운 시선을 동시에 보여주었던 로메르의 매력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감독 데뷔 전 국어교사, 평론가, 소설가로 활동했던 에릭 로메르는 1950년대에 이미 몇 편의 단편 영화를 만들었으며 1959년에 <사자 자리>를 연출하며 본격적인 감독의 길을 걸었습니다. 프랑수아 트뤼포, 장 뤽 고다르, 클로드 샤브롤 등과 함께 누벨바그의 대표 주자로 꼽혔던 그는 다른 감독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만의 길을 걸었습니다.
로메르의 영화 세계를 간단하게 정리하는 것은 의외로 어려운 일입니다. 로메르는 평생에 걸쳐 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삶에서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의 특질들이 골고루 섞여 있습니다. 이 중 어느 부분만 따로 내세워 뭉뚱그리는 건 그리 좋은 방법이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로메르는 우리의 삶과 가장 닮은 영화를 만든 특별한 감독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번 회고전에서는 ‘여섯 개의 도덕’ 연작 시리즈 중 한 편이자 초기 대표작으로 꼽히는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 ‘희극과 격언’ 연작에 속하는 <비행사의 아내>, ‘사계절’ 연작인 <겨울 이야기>, 로메르의 역사극 <O 후작 부인>, 국내에 소개될 기회가 적었던 <삼중 스파이>, 유작 <로맨스> 등을 만날 수 있습니다. 또한 <녹색 광선>의 주인공 마리 리비에르가 연출한 에릭 로메르에 대한 다큐멘터리 <에릭 로메르와 함께>도 상영합니다.
또한, 이나라 이미지문화 연구자와 곽영빈 평론가가 강의를 준비했으며, 4월 26일부터 29일까지는 90년대 이후 로메르의 거의 모든 작품을 편집한 마리 스테판 감독이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아 관객들과 만남의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각 작품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물론 로메르의 다양한 면모를 직접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상영작 소개 Screening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 Ma nuit chez Maud / My Night at Maud's
1969│110min│프랑스│B&W│DCP│15세 관람가
연출│에릭 로메르 Eric Rohmer
출연│장 루이 트랭티냥, 프랑수아즈 파비앙, 마리-크리스틴 바로
정숙한 결혼 상대자를 찾는 카톨릭 신자 장 루이는 친구 비달을 통해 모드라는 자유분방한 여자를 만난다. 장은 아름답고 지적인 그녀의 매력에 이끌려 모호한 감정이 교차하는 하룻밤을 보낸다. ‘여섯 개의 도덕’ 연작 중 네 번째 작품. 1969년 칸영화제 경쟁부문 상영작.


클레르의 무릎 Le genou de Claire / Claire's Knee
1970│105min│프랑스│Color│DCP│15세 관람가
연출│에릭 로메르 Eric Rohmer
출연│장 클로드 브리알리, 오로라 코르뉘, 베아트리스 로망
결혼을 앞둔 제롬은 혼자만의 휴가를 즐기기 위해 시골로 내려간다. 그는 우연히 옛 친구이자 소설가인 오로라를 만나고, 그녀의 딸인 로라를 소개받는다. 그리고 얼마 후 로라의 이복 자매 클레르도 이곳에 도착한다. ‘여섯 개의 도덕’ 연작 중 다섯 번째 작품. 1971년 산세바스찬영화제 황금조개상(작품상) 수상.



오후의 연정 L'amour l'après-midi / Chloe in the Afternoon
1972│95min│프랑스│Color│DCP│15세 관람가
연출│에릭 로메르 Eric Rohmer
출연│베르나르 베를리, 주주, 프랑수아즈 베를리
‘여섯 개의 도덕’ 연작 중 마지막 작품. 유부남인 프레데릭은 우연히 친구의 옛 애인 클로에를 만난다. 프레데릭의 규격화된 삶과 달리 보헤미안적인 삶을 사는 클로에는 프레데릭의 단조로운 일상에 활력을 선사한다.



O 후작 부인 Die Marquise von O... / The Marquise of O
1976│103min│프랑스, 서독│Color│DCP│15세 관람가
연출│에릭 로메르 Eric Rohmer
출연│에디트 클레베, 브루노 간츠, 피터 뤼르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1808년 소설을 개작한 작품. 러시아군이 북이탈리아를 침공하자 O 후작 부인은 가족들과 함께 폭격을 피해 대피한다. 이때 러시아 군인들은 그녀를 위기에 빠뜨리지만 마침 그곳을 지나던 러시아 장교가 그녀를 구한다. 에릭 로메르의 첫 번째 시대극. 1976년 칸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 수상.



비행사의 아내 La femme de l'aviateur / The Aviator's Wife
1981│101min│프랑스│Color│DCP│15세 관람가
연출│에릭 로메르 Eric Rohmer
출연│필립 마를로, 마리 리비에르, 안나 로르 뫼리
우체국에서 야간 근무를 하는 청년 프랑수아는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안느에게 사랑을 느낀다. 어느 날 프랑수아는 안느의 예전 애인 크리스티앙이 그녀의 아파트에서 나오는 것을 목격한다. 질투심을 느낀 프랑수아는 크리스티앙의 뒤를 밟는다. ‘희극과 격언’ 연작 중 첫 번째 작품으로, “아무것도 아닌 것을 생각하는 건 불가능하다”라는 격언으로 시작한다.



아름다운 결혼 Le beau mariage / The Good Marriage
1982│97min│프랑스│Color│DCP│15세 관람가
연출│에릭 로메르 Eric Rohmer
출연│베아트리스 로망, 앙드레 뒤솔리에, 페오도르 아트킨
사빈은 이별 직후 결혼을 결심하지만 누구와 언제 결혼할지는 자신도 모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로부터 에드몽을 소개받는다. ‘희극과 격언’ 연작 중 두 번째 작품으로, “망상을 안 해 본 이가 어디 있겠는가, 상상의 성을 안 지어 본 이가 어디 있으랴”라는 격언으로 시작한다.


해변의 폴린 Pauline à la plage / Pauline at the Beach
1983│95min│프랑스│Color│DCP│15세 관람가
연출│에릭 로메르 Eric Rohmer
출연│아만다 랑글레, 아리엘 동발, 파스칼 그레고리
얼마 전 이혼한 마리온과 그녀의 사촌 동생 폴린이 늦여름 해변가를 찾는다. 마리온은 자신이 연애 전문가라고 자부하지만 정작 지금까지 진정한 사랑을 나눈 적은 없다. ‘희극과 격언’ 연작 중 세 번째 작품으로 “입소문 내기 좋아하다 자기가 다친다”는 격언으로 시작한다. 1983년 베를린영화제 은곰상(감독상) 수상.



보름달이 뜨는 밤 Les nuits de la pleine lune / Full Moon in Paris
1984│102min│프랑스│Color│DCP│15세 관람가
연출│에릭 로메르 Eric Rohmer
출연│파스칼 오지에, 체키 카리오, 파브리스 루치니
인테리어 장식가인 루이즈는 건축가 레미와 함께 파리 외곽에서 함께 지낸다. 레미는 루이즈에게 결혼하자고 조르지만 독립적인 삶을 꿈꾸는 루이즈는 이를 거절한다. ‘희극과 격언’ 연작의 네 번째 작품으로 “두 여자를 가진 자는 영혼을 잃고, 두 집을 가진 자는 이성을 잃는다”는 격언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1984년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파스칼 오지에).


녹색 광선 Le rayon vert / The Green Ray
1986│98min│프랑스│Color│DCP│15세 관람가
연출│에릭 로메르 Eric Rohmer
출연│마리 리비에르, 아미라 셰마키, 실비 리셰즈
내성적이고 소심한 델핀은 여름 휴가를 혼자 보내야 하는 외로운 처지다. 남자 친구를 구하기를 내심 바라지만 성격 탓에 뜻대로 되지 않는다. 쥘 베른의 동명의 소설에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희극과 격언’ 연작의 다섯 번째 작품. 랭보의 시 구절 “오! 시간이 되니 심장이 뛰는구나!”로 시작한다. 1986년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여우주연상(마리 리비에르) 수상.


레네트와 미라벨의 네 가지 모험 4 aventures de Reinette et Mirabelle / Four Adventures of Reinette and Mirabelle
1987│95min│프랑스│Color│DCP│15세 관람가
연출│에릭 로메르 Eric Rohmer
출연│조엘 미켈, 제시카 포드, 필립 로덴바흐
자전거 바퀴에 바람이 빠져 곤란해하는 미라벨 앞에 레네트가 등장한다. 두 사람은 곧 가까워지고 여러 가지 일을 함께 헤쳐나간다. 시골 소녀 레네트와 도시 소녀 미라벨이 펼치는 네 개의 모험으로 이루어진 귀엽고 유머러스한 작품. <녹색 광선> 촬영 후 즉흥적인 기획으로 만들어졌다.



내 여자 친구의 남자 친구 L'ami de mon amie / My Girlfriend's Boyfriend
1987│102min│프랑스│Color│DCP│15세 관람가
연출│에릭 로메르 Eric Rohmer
출연│엠마누엘 숄레, 프랑수아 에릭 장드롱, 안 로르 뫼리
‘희극과 격언’ 연작의 마지막 작품으로, “내 친구의 친구들은 내 친구들이다”라는 격언으로 시작한다. 파리 근교의 생 제르맹 앙 라이, 라 데팡스 등을 배경으로 젊은이들의 감정과 사랑이 큰 줄거리를 이룬다. 내성적이지만 굳센 성격의 블랑쉬, 영민한 알렉상드르, 변덕이 심한 레아와 착한 파비앙 등이 서로를 바라보며 자신의 연인을 찾는다.


봄 이야기 Conte de printemps / A Tale of Springtime
1990│108min│프랑스│Color│DCP│15세 관람가
연출│에릭 로메르 Eric Rohmer
출연│안느 테세드르, 위그 케스테, 플로랑스 다렐
‘사계절 연작’의 첫 번째 작품. 고등학교 철학 교사인 잔느는 주말에 딱히 머물 곳이 없다. 남자 친구의 집은 온통 어질러져 있고, 잔느의 집에는 이미 다른 친구가 남자 친구와 함께 와 있다. 갑자기 머물 곳을 잃은 잔느는 충동적으로 친구의 파티에 갔다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나타샤를 만나 의기투합하고 그녀의 집에 머문다.



겨울 이야기 Conte d'hiver / A Winter's Tale
1992│114min│프랑스│Color│DCP│15세 관람가
연출│에릭 로메르 Eric Rohmer
출연│샬롯 베리, 프레데릭 반 덴 드리에쉬, 미카엘 볼레티
‘사계절 연작’의 두 번째 작품. 휴가지에서 만난 펠리시와 샤를은 짧은 시간 동안 사랑을 나눈다. 그러나 주소를 잘못 알려주는 실수를 하는 바람에 두 사람은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된다. 5년의 세월이 흐른 후, 펠리시아는 딸과 함께 파리에서 살고 있다. 1992년 베를린영화제 국제비평가협회상 수상.


나무, 시장, 미디어테크 L'arbre, le maire et la médiathèque / The Tree, the Mayor, and the Mediatheque
1993│105min│프랑스│Color│DCP│15세 관람가
연출│에릭 로메르 Eric Rohmer
출연│파스칼 그레고리, 파브리세 루치니, 아리엘레 돔바슬
시장은 촌스러운 지방의 외관을 쇄신하기 위해 미디어테크를 세우려는 계획을 세운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인 경력을 동원해 중앙 정부에 도움을 요청하지만 환경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문법학교 교사가 시장의 계획에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나선다. 하지만 시장은 이에 개의치 않는다.


파리의 랑데부 Les rendez-vous de Paris / Rendez-vous in Paris
1995│100min│프랑스│Color│DCP│15세 관람가
연출│에릭 로메르 Eric Rohmer
출연│클라라 벨라, 앙투안 바즐레, 오로르 로셰
남녀의 사랑을 그린 세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작품. 첫 번째 에피소드 “7시의 랑데부”는 자신의 남자친구가 딴 여자를 만난다는 소식을 들은 여자의 복수를, 두 번째 에피소드 “파리의 벤치”는 남자의 구혼을 거절하려는 여성의 이야기를, 그리고 세 번째 에피소드 “어머니와 아이, 1907”은 젊은 화가와 두 여인의 미묘한 관계를 그린다.


여름 이야기 Conte d'été / A Summer's Tale
1996│113min│프랑스│Color│DCP│15세 관람가
연출│에릭 로메르 Eric Rohmer
출연│멜빌 푸포, 아만다 랑글레, 그웨나엘 시몽
‘사계절 연작’의 세 번째 작품. 가스파르는 스페인으로 바캉스를 떠난 여자 친구 레나를 만나러 브르타뉴의 휴양지로 온다. 그런데 가스파르는 우연히 카페에서 만난 마고, 그녀의 친구 솔린, 뒤늦게 나타난 레나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가을 이야기 Conte d'automne / Autumn Tale
1998│111min│프랑스│Color│DCP│15세 관람가
연출│에릭 로메르 Eric Rohmer
출연│마리 리비에르, 베아트리스 로망, 알랭 리볼트
‘사계절 연작’의 마지막 작품. 장성한 아들과 딸을 둔 45세의 미망인 마갈리는 프랑스 남부에서 포도농장을 운영하며 혼자 살고 있다. 마갈리는 외로워하지만 소극적인 성격 때문에 남자를 만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마갈리의 오랜 친구 이자벨은 신문에 몰래 구인 광고를 내고 마갈리에게 소개해 줄 적당한 사람을 찾는다. 1998년 베니스영화제 각본상 수상.


영국 여인과 공작 L'anglaise et le duc / The Lady and the Duke
2001│129min│프랑스│Color│35mm│15세 관람가
연출│에릭 로메르 Eric Rohmer
출연│루시 러셀, 장-클로드 드레이퓌스, 샬롯 베리
프랑스 혁명이 진행 중인 18세기 후반, 영국에서 파리로 건너온 귀족 집안의 그레이스 엘리엇 부인은 오를레앙 공작과 친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엘리엇 부인은 혁명을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고, 오를레앙 공작은 그런 엘리엇 부인을 걱정스러워한다. 에릭 로메르가 처음으로 디지털로 만든 영화로 미술과 독특한 미장센이 깊은 인상을 남긴다.


삼중 스파이 Triple Agent
2004│115min│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Color│35mm│15세 관람가
연출│에릭 로메르 Eric Rohmer
출연│카테리나 디다스칼루, 세르주 렌코, 시리엘 클레어
1936년 5월, 러시아인 표도르는 아내와 함께 파리에서 살고 있다. 국내외의 정치 상황이 불안정한 시기, 표도르는 언뜻 러시아 정부를 위해 몰래 일하는 스파이처럼 보이지만 때로는 다른 목적을 가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2004년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 상영작.


로맨스 Les amours d'Astrée et de Céladon / The Romance of Astrea et Celadon
2007│109min│프랑스│Color│35mm│15세 관람가
연출│에릭 로메르 Eric Rohmer
출연│앤디 기레, 스테파니 크레엥쿠르, 세실 카셀
에릭 로메르의 유작으로 17세기 프랑스의 목가 소설 『아스트레』를 원작으로 만들어졌다. 목동인 셀라동과 아스트레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다. 그러나 마을 축제에서 셀라동이 다른 여자와 춤을 추는 걸 본 아스트레는 셀라동을 차갑게 대하고, 이 때문에 괴로움에 빠진 셀라동은 강물에 몸을 던지고 만다. 2007년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 상영작.

특별상영 Special Screening



에릭 로메르와 함께 En compagnie d'Eric Rohmer / In the Company of Eric Rohmer
2010│100min│프랑스│Color│DigiBeta│15세 관람가
연출│마리 리비에르 Marie Rivière
출연│에릭 로메르, 마리 리비에르
<비행사의 아내>,<녹색 광선>, <가을 이야기> 등 오랜 시간 동안 에릭 로메르와 함께 작업했던 배우 마리 리비에르가 연출한 에릭 로메르에 대한 다큐멘터리. 감독은 작은 카메라를 들고 에릭 로메르와 그의 지인들을 찾아가 그의 영화와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강연 Lecture
1. 클레르의 무릎
일시│4월 22일(토) 오후 3시 30분 <클레르의 무릎> 상영 후
강사│이나라 이미지문화 연구자

2. 영국 여인과 공작
일시│4월 23일(일) 오후 3시 30분 <영국 여인과 공작> 상영 후
강사│곽영빈 미술평론가/영화학 박사

3. 여름 이야기
일시│5월 7일(일) 오후 6시 30분 <여름 이야기> 상영 후
강사│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마리 스테판과의 대화 Talk with Mary Stephen


1. 4월 26일(수) 오후 7시 <여름 이야기> 상영 후

2. 4월 27일(목) 오후 7시 <가을 이야기> 상영 후 

3. 4월 28일(금) 오후 7시 <로맨스> 상영 후 


◆대담 - 에릭 로메르를 말한다 Discussion: On Eric Rohmer

일시│4월 29일(토) 오후 3시 30분 <에릭 로메르와 함께> 상영 후
참석│마리 스테판(영화감독, 편집자),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마리 스테판 Mary Stephen

- 영화감독이자 편집자. <겨울 이야기>(1992), <나무, 시장, 미디어테크>(1993), <파리의 랑데부>(1995), <여름 이야기>(1996), <가을 이야기>(1998), <영국 여인과 공작>(2001), <삼중 스파이>(2004), <로맨스>(2007) 등 1992년 이후 에릭 로메르의 모든 작품에 편집으로 참여했다. 그 외에도 <블라인드 마운틴>(리 양, 2011) 등의 작품을 편집했으며, 연출작으로는 <Justocoeur>(1980), <In Transit, in Transition: Poem from South Africa>(199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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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는 4월 4일(화)부터 9일(일)까지 “짐 자무쉬 특별전”을 개최합니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자무쉬의 데뷔작 <영원한 휴가>(1980), 대표작인 <천국보다 낯선>(1984), <커피와 담배>(2003) 등 모두 일곱 편의 영화를 상영합니다. 80년대 미국 독립영화의 아이콘으로 시작해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영화감독으로 자리잡은 짐 자무쉬의 1980-90년대 초기 작업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특별히 이번 프로그램에서는 디지털로 새롭게 만든 상영본으로 모든 작품을 감상할 수 있으니 더 큰 기대를 바랍니다. 또한 4월 5일(토)에는 <커피와 담배> 상영 후 “9와 숫자들”의 송재경 가수가 자무쉬 영화의 음악과 그 매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예정입니다. 인간의 외로움과 따뜻함, 대도시의 삭막함과 위로가 기묘하게 공존하는 짐 자무쉬의 영화 세계를 좋아하는 모든 분들을 초대합니다.

■시네토크 Cine Talk
일시 4월 5일(토) 오후 6시 30분 <커피와 담배> 상영 후
게스트 가수 송재경(“9와 숫자들”)

일시│2017년 4월 4일(화) ~ 9일(일)
주최│(사)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후원│영화진흥위원회, 서울시, 서울영상위원회, 안다미로
장소│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종로구 돈화문로 13 서울극장 1층)
문의│02-741-9782 www.cinematheque.seoul.kr

상영작 Screening




영원한 휴가 Permanent Vacation
1980│75min│미국│Color│DCP│15세 관람가
연출│짐 자무쉬 Jim Jarmusch
출연│크리스 파커, 레일라 가스틸, 존 루리
파커는 거리를 돌아다니고 사람을 만나면서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기 시작한다. 자신을 이방인이라고 생각하는 그는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도 쉽게 마음 속 외로움을 지우지 못한다. 짐 자무쉬가 27살의 나이에 연출한 데뷔작. 당시 극장에서 개봉하지는 못했지만 영화제 등에서 소수의 관객들에게 높은 지지를 받았다.

천국보다 낯선 Stranger than Paradise
1984│89min│미국, 서독│B&W│DCP│15세 관람가
연출│짐 자무쉬 Jim Jarmusch
출연│존 루리, 리차드 에드슨, 에스터 벌린트
윌리와 에디는 뉴욕에서 정해진 직업 없이 하루하루 적당히 시간을 보내는 청년들이다. 어느 날, 윌리의 사촌 에바가 헝가리에서 뉴욕으로 온다. 에바는 잠시 이곳에 머물겠다고 하지만 윌리는 그녀의 방문을 반기지 않는다. 1983년에 연출한 동명의 단편을 확장시켜 만들었다. 1984년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 수상. 1984년 로카르노영화제 황금표범상 수상.

다운 바이 로우 Down by Law
1986│107min│미국, 서독│B&W│DCP│15세 관람가
연출│짐 자무쉬 Jim Jarmusch
출연│톰 웨이츠, 존 루리, 로베르토 베니니
잭(Zack)과 잭(Jack)은 각자 다른 죄목으로 뉴올리언스의 감옥에 갇힌다. 그리고 영어를 잘 못하는 이탈리아인 밥까지 감옥에 수감되면서 세 사람은 일시적으로 가까워진다. 사소한 말싸움과 갈등 끝에 세 사람은 결국 탈옥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긴다. 1986년 칸영화제 경쟁부문 상영작.

미스테리 트레인 Mystery Train
1989│110min│미국, 일본│Color│DCP│15세 관람가
연출│짐 자무쉬 Jim Jarmusch
출연│나가세 마사토시, 니콜레타 브라스키, 스티브 부세미
멤피스의 밤거리를 배경으로 같은 시간에 일어난 세 가지 사건을 다룬 옴니버스 영화. 엘비스 프레슬리를 좋아하는 일본인 커플의 이야기, 최근 남편을 떠나보낸 이탈리아 여성의 이야기, 그리고 술에 취해 충동적인 행동을 저지르는 남자들의 이야기가 차례로 펼쳐진다. 1989년 칸영화제 경쟁부문 상영작.



지상의 밤 Night on Earth
1991│128min│프랑스, 영국, 독일│Color│DCP│15세 관람가
연출│짐 자무쉬 Jim Jarmusch
출연│지나 롤랜즈, 위노나 라이더, 아민 뮬러-스탈
다섯 개의 도시 - LA, 뉴욕, 파리, 로마, 헬싱키 - 를 배경으로 택시 기사와 손님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사건의 대부분은 택시 안의 대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지나 롤랜즈, 베아트리체 달, 이삭 드 번콜, 로베르토 베니니, 마티 펠론파 등 명배우들의 개성 넘치는 연기를 감상할 수 있다.

데드 맨 Dead Man
1995│121min│미국, 독일, 일본│B&W│DCP│15세 관람가
연출│짐 자무쉬 Jim Jarmusch
출연│조니 뎁, 개리 파머, 크리스핀 글로버
19세기 후반, 클리블랜드에서 서부로 일을 구하러 온 윌리엄은 갑작스러운 공격을 받아 총격 끝에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부상을 입은 채 길을 헤매던 윌리엄은 노바디라는 괴짜 인디언을 만나는데 그는 윌리엄을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라고 믿는다. 1995년 칸영화제 경쟁부문 상영작.

커피와 담배 Coffee and Cigarettes
2003│97min│미국, 일본, 이탈리아│B&W│DCP│12세 관람가
연출│짐 자무쉬 Jim Jarmusch
출연│로베르토 베니니, 스티브 부세미, 빌 머레이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에 대한 단편들을 묶어 만든 영화. 이미 80년대에 연출한 단편을 포함해 전부 열한 편의 영화로 이루어져 있다. 커피와 담배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 담배를 끊은 사람들이 느끼는 초조함, 또는 그저 문득 떠오른 생각들에 대한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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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가 침대에 누워있다. 그들은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본다. 남자는 자신의 어린 아들을 죽인 살인범에게 복수하고자하는 일념으로 살아가고 있는 샤를이다. 그의 곁에 누워있는 여자는 그가 살인범을 찾기 위해 접근하다가 결국 사랑에 빠지게 된 엘렌이다. 그들의 얼굴은 침대 옆에 있는 조명과 상대의 얼굴에 가려져, 두 사람 모두 한쪽 눈과 반쪽 얼굴만 카메라에 담긴다. 그런데 이들의 반쪽 얼굴은 또 하나의 얼굴을 이루어서 서로 다른 곳을 응시하는 두 눈을 가진 한 사람의 얼굴처럼 보인다. 샤를의 눈은 허공을 바라보고, 엘렌의 눈은 샤를을 응시한다. 엘렌은 샤를에게 왜 폴을 도와줬냐고 타박하지만, 샤를은 마땅한 대답을 하지 못한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야수는 죽어야 한다는 마치 샤를의 일기장에 빼곡하게 적혀있는 빨간 글씨들 같다. 차 사고로 어린 아들을 잃은 샤를은 범인 찾기에 몰두해왔다. 그러다가 사고 현장에서 범인과 동승하고 있었던 여배우 엘렌을 알게 되고 그녀에게 접근한다. 그는 범인을 알아내기 위해 그녀와 사랑에 빠진 것처럼 행동하다가, 범행과는 전혀 다른 그녀의 모습에 그녀를 좋아하게 된다. 마침내 샤를은 범인의 정체를 알게 되고, 그의 집까지 들어온다. 하지만 이곳에서 그가 마주한 것은 범인인 폴 때문에 고통 받는 가족들의 모습과 그들의 폴을 향한 증오였다.


샤를은 특히 폴의 아들인 필립에게 어떤 연민을 느낀다. 그는 자신의 아빠를 죽여 달라고 말하는 필립을 꾸짖으면서 혼란스러워 한다. 홀로 고독하게 복수심을 키워왔던 샤를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다. 이러한 연민 때문에 샤를은 폴을 죽일 수 있는 몇 번의 순간에도 주저하고 죽이기를 실패한다. ‘폴은 죽어야 한다는 당위로 생긴 샤를과 가족들 사이의 연대가 오히려 그 당위를 위협하는 것이다. 엘렌 역시 왜 폴을 도와줬냐면서 폴을 죽여야 한다고 말한다. 앞에서 말한 엘렌의 눈은 당위의 눈빛이었고, 샤를의 눈은 연민과 주저함의 눈빛이었다.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는 기괴한 얼굴은 샤를의 아이러니한 감정을 대변한다. 그는 다시 자신의 본래 목적을 생각하며 폴을 죽이겠노라고 다짐하지만, 보트 위에서의 계획도 실패로 끝난다.




흥미롭게도 이 영화에서 당위가 흔들리는 지점은 야수에 대한 이해 때문이 아니다. 영화는 절대 악을 부정하지 않는다. 폴의 극악무도한 행동들은 이해하기가 어렵다. 영화는 이해할 수 없는 절대 악의 존재를 인정하되, 그것에 대한 대안으로써 어떤 연대를 보여준다. 설령 그것이 범인의 아들과의 연대라 하더라도, 샤를은 오히려 그리스 비극처럼 보인다면서 멋지다고 말한다. 결국 야수는 죽고, 연대가 당위를 이기지 못하지만, 샤를과 엘렌 그리고 샤를과 필립 사이의 연대는 사라지지 않는다.


영화에서 관객들이 가장 궁금해 하게될 장명 중 하나는 야수, 즉 폴이 죽는 장면일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폴이 죽는 장면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도록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텔레비전 화면으로 간략하게 사건 현장을 요약할 뿐이다. 이는 영화의 초반부에서 어린 아들에 대한 샤를의 부정(父情)을 영사된 화면과 곰 인형으로만 보여주는 것과 비슷하다. 샤를에게 더 중요한 것은 어린 아들에 대한 복수가 아니라 필립과의 연대다.


마지막 장면에서 샤를은 폴을 죽이고 자수한 필립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러면서 자기가 범인이라 말해달라고 엘렌에게 부탁의 편지를 남긴다. 편지를 남긴 후 떠나는 샤를은 걷고 또 걷는다. 침대에 누워서 근심 가득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모습과는 다르다. 그는 필립의 희생을 받아들인 자신을 책망하며, 자신이 필립에게 폴을 죽어야한다는 암시를 은연중에 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는 용서를 구하고, 사랑을 고백한다. 그리고 그는 바다로 멀리 멀리 떠난다. ‘야수는 죽어야 했는가에 대한, 그리고 누가 야수였는가에 대한 물음을 간직한 채로 자신의 형벌을 선택한 것이다.

 

김혜령 | 관객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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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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