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토마스 앤더슨 35mm 필름 투어]


필름 없는 필름

- <시네마 퓨처> 상영 후 오성지 시네토크

 

오성지(한국영상자료원 연구전시팀) <시네마 퓨처>를 보면서 생각난 것들을 자연스럽게 얘기해볼까 한다. 우리는 어렸을 때 35mm 필름으로 영화를 봤고 사진을 찍을 때도 필름 카메라로 찍은 뒤 사진관에서 현상-인화를 했다. 사진과 영화를 물질로 경험한 세대다. 그런데 요즘은 어릴 때부터 핸드폰으로 영상을 보는 디지털 세대라서 경험 자체가 다를 것이다. 먼저 필름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하겠다.


- 질산염 필름에서 폴리에스터 필름까지

상영용 필름을 7~8 프레임 정도 잘라서 가져온 걸 나눠주려 한다. 지금 나눠드린 걸 보면 모든 장면이 거의 같은 장면일 것이다. 24프레임이 1초에 해당하기 때문에 움직이는 장면을 보기 위해서는 꽤 긴 필름이 필요하다. 컬러 필름의 경우 R-B-G로 나뉜 세 개의 레이어가 있고, 이 부분을 물리적으로 지탱하는 베이스 부분이 있다. 1950년 이전에는 이 베이스가 질산염으로 된 필름(Nitrate Film)을 많이 썼다. 하지만 이 필름은 불이 붙기 쉽다. 당시 극장에 불이 났다는 뉴스가 많은 건 다 이 필름 때문이었다. 이후 아세테이트 필름(Acetate Film)이 등장했다. 안전 문제를 개선했기 때문에 다른 말로 ‘안전 필름 (Safety Film)’이라고도 불렀다. 그런데 이 필름은 ‘초산화 신드롬’ 문제가 있다. 필름은 온도와 습도에 민감한데 이 필름은 한번 초산화 반응이 시작되면 시큼한 냄새와 함께 필름이 약해졌다. 영사기 안에서 끊어지는 경우가 많았고 보존에도 적합하지 않았다. 그 다음에 등장해 지금까지 쓰이는 게 폴리에스터 필름(Polyester Film)으로 좀 더 튼튼하고 안정적이다.

참고로 한국은 질산염 필름을 딱 한 벌(<청춘의 십자로>(1934)) 갖고 있다. 현재 따로 보관 중이며, 운반도 조심해야 하고 별도의 자격증을 가진 사람만 상영할 수 있다.


- 네거티브, 포지티브

영화 촬영이 끝나고 제일 처음 만들어지는 프린트는 색상이 반전된 네거티브 필름이다. 이 네거티브 필름을 포지티브 필름으로 현상한다. 우리가 보통 ‘프린트’라고 부르는 건 포지티브 필름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네거티브는 사운드 네거티브와 이미지 네거티브가 나뉘어져 있는데 이걸 합쳐서 상영용 프린트로 만든다. 김기영 감독의 <죽엄의 상자> 같은 경우는 이미지 네거티브만 수집할 수 있었다. 그래서 무성영화가 아니지만 무성영화로 상영하게 된 안타까운 경우다.

오늘 <시네마 퓨처>를 보면서 ‘제네레이션(generation)’이란 표현을 들었을 것이다. 이를테면 <스타워즈> 같은 경우는 세계 곳곳에서 상영을 하는 작품이라 수백 벌의 프린트를 만들어야 한다. 이걸 오리지널 네거티브에서 만들면 결국 손상이 된다. 프린트라는 건 한 번 기계에 걸 때마다 손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중간 단계를 거친다. 네거티브에서 포지티브를 만들고, 이 포지티브에서 ‘듀프 네거티브 필름(Dupe Negative Film)’을 만든 다음 일반 상영용 프린트를 만든다. 이런 네 단계를 거친 프린트를 보고 ‘네 번째 제네레이션’이라고 한다.

하지만 과거 한국은 제작 환경이 그리 좋지 않았기 때문에 주로 오리지널 네거티브에서 직접 극장용 프린트를 만들었다. 그래서 80년대 작품도 오리지널 네거티브의 상태가 그리 좋지 않다. 심지어 오리지널 네거티브가 없다는 얘기도 들었을 것이다. 이건 해외 영화제에 오리지널 네거티브를 바로 보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프린트를 따로 만들 비용이 없어서 해외에 보냈다가 다시 돌려받지 못한 경우가 생겨 분실되고 만 것이다. 이럴 경우는 최대한 상태가 좋은 상영용 프린트를 수집해서 복원을 한다. 대표적으로 <오발탄> 같은 경우가 오리지널 네거티브 없이 해외 영화제용 상영 프린트를 복원한 사례다. 영어 자막이 이미지의 절반을 가린 상태였지만 그걸 지우는 기술을 개발해서 지금은 깨끗하게 만날 수 있다.


-obsolete

‘obsolete(폐기, 구식)’ 란 개념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지금 보여드리는 필름들은 과거에 실제 상영됐던 필름으로 지금 사용하는 필름과는 퍼포레이션(perforation, 필름에 뚫려 있는 일정한 크기와 간격의 구멍) 형태가 다르다. 옛날에는 이렇게 둥근 퍼포레이션도 있었고, 퍼포레이션의 갯수와 위치도 달랐다. 이렇게 다양한 포맷이 있었지만 지금 이 포맷들은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다. 지금 ‘표준’ 형식이 있다는 건 그 외의 형식은 사라졌다는 말이기도 하다. 동시에 이 필름을 사용했던 카메라와 영사기가 사라졌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또 다른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지금은 필름 매체 자체가 사라지고 있고 국내에는 필름 상영이 가능한 극장도 얼마 없다. 한때 표준 매체였던 35mm 필름이 obsolete가 된 것인데, 과연 필름 매체와 필름 상영이 사라질 것인지 질문을 할 수 있다. 나도 정확하게 답변하기는 어렵지만 계속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 기억

지금 보여드리는 사진은 BFI 보관고의 일부다. 필름이 바닥에서 천장까지 쌓여있다. 이 필름 안에는 우리들의 기억이 들어 있다. 1930년대 영국의 거리가 있고, 1940년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고, 1950년대에 유행했던 옷이 들어 있다. 즉 우리의 일상이 저 필름들 안에 기록돼 있는 것이다. 아카이브는 기억의 저장고로서 보물창고 같은 곳이다.

필름은 온도와 습도만 잘 맞으면 100년 넘게 보존할 수 있는 안전한 매체다. 1895년에 처음 영화가 만들어졌으니 우리에겐 100년이 넘는 기억이 있다. 지금은 영화외 다른 분야의 연구자들도 필름을 귀중하게 생각한다. 이를테면 <미몽>(1936)이 발굴됐을 때 그 안에는 당시 서울의 거리, 모던걸들의 모습, 미츠코시 백화점에서 쇼핑하는 일상의 모습, 유명한 무용가인 조택원의 무용 영상도 담겨 있다. 역사적 자료로서도 큰 가치를 갖고 있는 것이다.


- 복원의 기준

모든 영화를 복원하는 건 사실상 어렵기 때문에 보통 ‘빅 타이틀’을 우선적으로 복원한다. 예를 들어 프리츠 랑의 <메트로폴리스>는 거의 매년 복원이 이루어지는 작품이다. 사운드가 바뀌거나, 몇 장면이 더 들어갔다거나 하는 식으로 다양한 버전의 복원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덜 유명한 작품은 상대적으로 복원이 잘 시도되지 않는다. 고민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 필름 중에는 ‘고아 필름(Orphan Film)’이라고 해서 정말 알려지지 않은 영화들, 언제 만들어졌고 누가 연출한지도 모르는 짜투리 필름들이 있다. 어떤 영화를 복원하고 다시 상영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하면 좋을 것 같다.

복원의 기준도 문제다. ‘오리지널’에 가깝게 복원한다고 했을 때 원본은 과연 무엇일까? <시네마 퓨처>를 보면 원본에 존재했던 먼지까지 디지털 기술로 지운 <아라비아 로렌스>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이런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어디까지가 원본인지 파악하기 어렵다. 디지털 기술이 발전했다고 해서 너무 깨끗하게, 너무 높은 선명도로 복원하면 당시 상영된 영화와는 다른 느낌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 필름 체험

영화를 제작하고 상영하는 사람들에게 디지털과 필름의 차이는 크게 다가온다. 영화가 무거운 박스로 오는 것과 작은 USB에 담겨 오는 것은 당연히 다르다. 그렇다면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필름과 디지털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옛날에는 ‘극장 구경 간다’라는 표현을 흔히 썼다. 가족들과 극장에 가서 함께 영화를 보고 짜장면을 먹고 돌아오는 과정 자체가 중요했는데 지금은 영화 감상 방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오늘 <매그놀리아>를 35mm로 본 분들도 있을 텐데 어떻게 느꼈을지 궁금하다.


김보년(프로그래머) 말씀하신 <아라비아 로렌스> 부분이 흥미로웠다. 나는 편집을 바꾼 감독판이 나왔다든가, 색감을 더 개선시킨 블루레이가 나왔다고 하면 챙겨보려 한다. ‘원본’의 존재를 의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지금 시대에 영화의 원본을 찾는 건 불가능한 일 같다. 복원의 맥락에서도 중요한 질문일 것 같다.

오성지 35mm 필름이 사라지고 나면 나중에는 우리가 세잔의 그림을 보기 위해 박물관을 찾는 것처럼 35mm 상영관을 찾을 거라는 우려도 있다. 그런데 필름은 결국 더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복제 예술이자 상업 매체이다. 여기에서 원본성을 찾다 보면 결국 ‘오리지널’이 무엇인지 물어볼 수밖에 없는데 이게 쉽지 않은 문제다.

이를테면 60~70년대에 활동했던 한국 감독 중 자신의 영화를 나중에도 계속 편집한 분이 있었다. 자기가 만족할 때까지 편집한 것이다. 그렇게 새로 편집을 해오면 우리는 개봉 당시 버전의 ‘오리지널’과 몇십 년이 지나 만들어진 새로운 편집본을 갖게 된다. 또는 디지털 복원을 하며 색감을 조정할 때 감독과 촬영감독의 의견이 다른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어떤 게 원본일까? 정말 대답하기 힘든 문제다. 또는 무성 흑백영화의 경우에도 나라마다 컬러 틴팅(tinting)을 전부 다르게 했다. 멀티 버전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 중 무엇이 오리지널인지 답을 내기는 어렵다. 그래서 요즘은 복원 자체를 리크리에이션(re-creation)으로 보는 관점도 있다.


관객 오래된 필름을 복원할 때 어떤 영화를 먼저 복원하는지 궁금하다.


오성지 여러 기준이 있는데 일단 그 작품이 영화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많이 본다. 필름의 상태도 중요하다. 상태가 안 좋은 필름일수록 복원의 우선 순위가 올라간다. 상영했을 때 관객이 얼마나 올지도 따져봐야 한다. 복원에는 돈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이윤의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그 필름이 유일본인지 아닌지다. 프린트가 딱 한 벌 남아 있는 영화들이 있으면 우선적으로 작업을 하려 한다.


김보년 주로 필름 복원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영사기 노후화 등의 문제도 심각하다.


오성지 옛날에는 한국에 현상소가 많았는데 지금은 다 문을 닫았다. 영사기 중에서도 16mm 영사기는 이미 거의 사라져버렸다. 고장이 나면 부품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이고, 8mm 영화는 국내에서 복원할 수 있는 곳이 아예 없다. 35mm 영사기를 쓰는 곳이 갈수록 줄어들다 보니 부품을 구하기도 힘들어지고 영사 인력도 많지 않다. 영사기사 교육은 앞으로 많이 고민해야 할 문제다.


일시 4월 14일(토) 오후 6시 <시네마 퓨처> 상영 후

정리 하수정 홍보팀장

사진 목충헌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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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멸의 제주]



“현실을 외면하고 싶지 않다”

- <눈꺼풀> 상영 후 오멸 감독 시네토크




이용철(영화평론가) 2016년 5월,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눈꺼풀>을 상영했었다. 그리고 2년 만에 감독님과 다시 <눈꺼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자리가 만들어졌다. 2016년 시네토크 당시 관객들 중 눈물을 흘리는 분들이 있었다. 그때는 세월호를 둘러싼 상황이나 전반적인 정치 상황이 지금 같지 않았다.

오멸(감독) 엊그제 개봉을 앞두고 시사를 하면서 나도 오랜만에 영화를 다시 봤다. 바뀐 사회적 분위기가 내 감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당시 시네토크를 할 때는 나도 마음이 좀 이상했던 기억이 있다.

이용철 <눈꺼풀>은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바로 그해 제작한 영화다. 하지만 오랫동안 정식 개봉은 하지 않았고 이제서야 개봉을 앞두고 있다. <눈꺼풀>을 찍는 그 순간에도 개봉에 대한 문제를 결정하지 못했던 걸로 알고 있다.

오멸 내 경우에는 일단 찍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시작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대중에게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건 내 의지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당시 우리 극단 멤버들과 세월호 참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가 예술한답시고 영화도 하고 연극도 하는데 이 일을 다뤄야 하지 않겠느냐, 예술가로서 할 일이 있지 않겠느냐고 얘기했다. 그리고 바로 촬영부터 시작했다. 워낙 극소수의 인원들과 시작한 거라 그때는 개봉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개봉을 하고 싶어도 ‘블랙리스트’와 같은 일이 있었기 때문에 배급사나 주위 사람들에게 여러 파장이 미칠 것 같았다.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개봉이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세월호를 다룬 이야기는 계속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용철 블랙리스트라는 건 그 불이익을 받는 당사자도 정확하게 모르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증거도 명확하지 않다. 심사에서 떨어지고 지원을 못 받아도 그 원인에 대해서는 심증만 가질 수 있다. ‘일반인’들은 이 문제를 정의의 문제라 생각할 수 있지만 창작자들에게는 ‘생존’의 문제다. 특히 어려운 조건 속에서 영화를 만드는 오멸 감독님은 그 문제가 더욱 심각했을 것이다.

오멸  제주도는 4.3 이후 연좌제가 있었다. 3대에 걸쳐 국가 권력의 감시를 받고 후손들이 불이익을 당해야 했다. 여기에 대한 제주 시민들의 트라우마가 있다. 나도 <지슬> 이후 개봉에 어려움을 겪었고, 실제로 제작하던 작품의 지원이 갑자기 취소되는 일도 있었다. 극단을 운영하며 영화를 만들고 있었는데 지금은 극단이 거의 해체 위기에 처했다. 어떻게 보면 정치인들이 성공했다고 볼 수도 있다(웃음). 이걸 회복하는 데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부서진 걸 다시 쌓고 싶지만 나도, 멤버들도 나이가 들어버렸다.



이용철 오늘은 <눈꺼풀 메이킹>도 함께 상영했다.

오멸 제주 지역방송국에서 <눈꺼풀> 촬영 현장을 찍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이틀 동안 찍겠다고 했지만 열흘간 함께 있어야 한다는 조건으로 PD가 섬까지 왔고 2부작으로 만들었다. 밤 8시 프로그램이었는데 시청률이 14%가 나와서 정규 방송을 제치고 1등을 했다(웃음). 오늘 본 영상은 그 방송 버전에서 내레이션을 빼고 분량을 20분으로 줄인 것이다.

이용철 나도 잠시 촬영 현장에 있었지만 매우 즐거웠다. 그런데 그 시기가 <하늘의 황금마차> 이후 영화 제작에 대한 고민이 컸던 시기로 알고 있다.

오멸 영화 내용은 우울하고 슬픈 내용이지만 촬영을 하는 동안 모두 몸이 건강해졌다(웃음). 무인도에 혼자 있다 보니 계속 삶과 생명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되더라. 그러면서 작은 것에 감사하는 순간이 많아졌다. 마음 아픈 이야기를 하러 왔다가 우리가 치유되는 경험, 죽음을 이야기하러 갔다가 생명을 마주하는 경험을 했다.

이용철 <뽕똘> 같은 코미디에도 죽음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특히 요즘 오멸 감독의 작업에는 죽음이 더 많아진 것 같다.

오멸 죽음을 밀접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삶과 죽음이 같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린 그 사실을 자주 잊어버리지만 작업을 할 때는 그런 생각을 떠올리려고 한다. 한쪽 어깨에 삶, 한쪽 어깨에 죽음, 이런 게 아닐까.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의도치 않은 숙제를 떠안게 되는데, 죽음을 인정하는 순간 삶이 다르게 다가오는 것 같다. 삶의 연장선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이용철 지금 제주는 개발이 많이 됐고, 외지 사람들이 찾는 관광지가 됐다. 그래서 제주가 갖고 있던 어떤 신화적 느낌이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오멸 감독은 여전히 신의 세계와 신화적 요소를 영화 속에서 많이 다루려 한다.


오멸 섬 공동체의 특징 중 하나가 샤머니즘 문화가 강하다는 것이다. 제주에는 ‘신구간(新舊間)’이란 게 있다. 이사를 할 수 있는, 귀신에게 허락받은 시간으로서 다들 그때 이사를 한다. 같은 맥락에서 해녀가 물에 들어가지 않는 기간도 있다. 바다를 관장하는 신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것이다. 이처럼 제주에서는 사람과 신이 밀접한 관계를 맺은 채 시간이 흐른다. 삶의 질문과 습관이 신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

어릴 때 무덤에서 잔 적이 있다. 제주에서는 무덤이 집과 가까운 밭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제일 자주 가는 곳에 부모의 무덤을 만들고, 매일 부모님의 묘를 돌본다. 이처럼 신을 대하는 태도가 수직이 아니라 수평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



관객 1 영화의 제목 ‘눈꺼풀’이 무슨 뜻인지 궁금하다.

오멸 4.16 당시 제일 고통스러운 사람들은 아마 밤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차마 눈을 감고 싶어도 감을 수 없는 그 눈꺼풀의 고통스러움을 떠올리며 제목을 정했다. 그리고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이 사건을 직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실을 외면하지 말자는 나의 다짐이기도 하다.

관객 2 세월호를 다루는 게 예술가들의 의무라고 말씀하셨다. 최근 『전체관람가』에서 공개된 <파미르>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듣고 싶다.

오멸 일 주일 전에 세월호에 대한 장편 시나리오 초고를 끝냈다. 최근 제작 여건이 안 좋아져서 내가 직접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갈수록 더 간절해지고 있다. 올해 촬영을 시작하려고 여러 가지 준비를 하고 있다.

이용철 나는 오멸 감독이 세월호에 너무 에너지를 쏟는 것 같아 약간 걱정이 되기도 한다. 아무래도 상업적으로 반기지 않는 소재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종종 만나 근황을 물으면 항상 세월호 이야기를 한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감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참고로 신작 <인어전설>은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벌써 공개가 됐다.

오멸 <인어전설>은 제작 중 지원이 끊기는 바람에 좀 고달프게 만들었다. 장편 열 편 만드는 게 개인적 목표인데 그걸 이루는 게 정말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만드는 영화가 아니라 나를 돌아보는 작업으로서의 영화, 내가 더 자유로울 수 있는 매체로서의 영화를 만들고 싶은데 쉽지 않다. 그래도 열심히 투자자들과 이야기하며 기회를 만들려고 한다.

이용철 오멸 감독이 이렇게 공개적인 자리에서 ‘형편’ 이야기를 하는 건 처음 듣는다. 블랙리스트는 어떤 사람들이 영화를 못 만들게 하는 힘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감독이 영화를 계속 찍게 하는 힘을 줄 수 있는 건 관객이다. 곧 <눈꺼풀>이 개봉을 한다. 여러분들이 많은 힘을 주시길 바란다.

오멸 삶을 즐겁게 하는 영화도 많지만 세월호는 실제 사건이다. 그 트라우마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 시기가 계속 찾아오는 것 같다. 3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세상을 그렇게 떠난 사건은 3천 명, 3만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계속 파장을 미칠 것이다. 당장 나에게는 피해가 없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세월호의 파장은 곧 우리에게 올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세월호에 대해 질문을 던져서 올바른 답을 찾고 이 사회의 바른 지표로 삼아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기억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폭력이라고도 말하더라. 하지만 공동체의 올바른 지표를 만들기 위해 다같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시 3월 31일(토) 오후 4시 <눈꺼풀> 상영 후

정리 김보년 프로그래머

사진 목충헌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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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영화를 만든다는 것: 광화문시네마의 경우]


 

세상에 저항하기, 또는 나만의 세계에 갇히기

- <소공녀>


 

담배 한 모금과 한 잔의 위스키를 위해서라면 집(정확히는 방)은 포기하겠다. 대개의 경우라면 이 문장을 두고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하겠지만 <소공녀>의 미소(이솜)의 셈법은 완전히 다르다. 그녀는 집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담배와 위스키를 사랑한다. 자신의 취향이 뭔지를 확실히 아는 미소는 가난한 현실을 이유로 들어가며 그 취향을 포기하거나 타협하고 싶지 않다. 오르는 방세를 감당하느니 오른 담뱃값을 감당하는 쪽을 택한다. 최소한의 짐을 챙겨 거리로 나선 그녀는 이 상황을 “갈 데가 없는 게 아니라 여행 중”이라고 설명한다. 자기변명이나 합리화가 아니다. 미소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 또 그 생각대로 살아간다. 자발적인 선택의 결과로 여행자가 된 미소는 한때 그녀와 밴드를 함께했던 옛 동료들의 집을 하나씩 방문한다. 멤버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가정과 집에 발목 잡혀 살고 있기에 여행자 미소의 방문이 마냥 편치 않다. 세상 앞에서 원하든 원치 않든 변해버린 자신들과는 달리 세파 속에서도 변치 않고 ‘고상한’ 취향이나 지키고 사는 미소가 달가울 수 없다. 혹자는 미소가 세상을 너무 낭만적으로 사는 게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미소라면 ‘낭만이 어때서’라고 답할 것이다.


거칠지만 미소는 2018년 한국영화에 등장한 여성 낭만주의자의 변형된 한 유형이라고 말해보고 싶다. 최근 몇 년간, 특히나 한국 독립영화 속 풍경에는 20, 30대 심지어 10대 여성들이 처한 가난, 집의 부재 상태, 거리를 떠돎, 여성이라는 이유로 겪는 위협과 폭력 등의 문제가 도드라졌다. 이 경우 가난과 폭력이 영화의 전면에 서며 그로 인해 주인공의 삶은 더없이 누추해지거나, 타인과 타협하거나, 아예 다른 방식으로 공동체를 꾸리게 된다. 미소 역시도 가난하고 집(가정)이 없으며 여기저기를 떠돌며 여성이라는 이유로 폭력적인 시선과 대우를 받는다는 점에서 앞선 풍경의 연장선상에 있다. 하지만 미소는 가난과 폭력을 대신해 ‘취향의 사수’를 전면에 세운다. 이때의 취향은 기호를 넘어서는 자기 고집이자 사고방식이며 삶의 태도와 같은 말일 것이다. 자기 자신과 세상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데서 이 취향에는 일종의 반항의 냄새가 난다. 이 반항은 낭만주의자의 그것과 유사해 보인다. 낭만주의의 뿌리를 고찰한 이사야 벌린과 그가 관심을 둔 사학자들의 말을 빌려보자면 낭만주의는 ‘어떤 종류의 보편성에도 강력히 저항하는 것’이자 ‘구속받지 않는 강력한 의지와 개인 신념과 이상의 강조’라고 거칠게 말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앞서 미소를 낭만주의의 변형적 인물이라고 말했다. 미소가 낭만을 고수하는 방식, 즉 전적으로 저항하기보다는 되레 자신을 희생하는 식으로 보편성에 제동을 거는 것 같기 때문이다. 밴드 멤버들의 집에 갔을 때 미소는 청소 도우미라는 직업인으로서의 자신의 특기를 십분 발휘해 멤버의 가사를 돌봐준다. 이는 애정하는 상대에게 미소가 마음을 쓰는 방식일 테지만 그녀의 이런 너그러움을 보는 게 마냥 편치만은 않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자신의 의사는 무시한 채 자신을 결혼 상대로 바라본 멤버의 집에서 나올 때, 애인 한솔(안재홍)이 자신에게 ‘남자’로서의 자존심을 내세우는 말을 할 때 미소는 강력한 저항 대신 일정 부분 자기 감내를 택한다. 그것은 품위를 잃지 않는 미소만의 방식이었을까, 그것이 그녀에게 더 나은 선택이었을까. 고민이 된다. 낭만을 고수하며 동시에 선하기까지 한 인간, 낭만을 고수하기 위해 선함을 체득한 인간. 뭐가 됐든 미소의 저항과 선함 사이의 관계는 좀 더 면밀히 살펴봐야 할 부분 같다. 좋았던 과거를 잊지 않고 옛 동료들을 먼저 찾아간 건 미소였지만 그 후 멤버들이 다시 모인 자리에 유일하게 없는 이는 미소뿐이다. 그리고 미소는 전에 살던 방보다 더 협소하고 유동적인 곳에 임시로 기거한다. 애인도, 친구도, 심지어 방세를 받으러 오던 주인조차도 없는 완벽한 혼자다. 미소의 여행은 얼마간 계속될 수 있겠지만 그녀의 낭만 고수법은 이대로도 괜찮은 걸까. 미소의 세계가 조금 더 자신만의 세계 안쪽으로 좁혀졌다는 신호는 아닐까. 이 징후는 괜찮은 것일까.


정지혜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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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토마스 앤더슨 35mm 필름 투어]


건들건들 느껴볼 것

- <인히어런트 바이스>

  

조연으로 출연한 조쉬 브롤린조차 처음 읽었을 때 “빌어먹을, 한 단어도 못 알아먹었다”고 토로한 바 있는 토머스 핀천의 동명 소설을 영화로 옮긴 <인히어런트 바이스>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해가 안 간다고 불평하게 만들기에 딱 좋은 작품이다. 제법 이름 난 비평가인 조너선 롬니조차 『필름 코멘트』에 쓴 <팬텀 스레드>의 리뷰에서 이 전작을 언급하면서 지독히 두서없는 영화란 뜻에서 “차라리 인코히어런트 바이스(incoherent vice)라고 불러야 한다”며 비꼬았을 정도니 말이다.

이 영화를 멋지게 독해해내려는 시도는 무모한 도전으로 남겨지게 마련이다. 독해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니라 그 이상야릇한 무드에 다짜고짜 전염되어 볼 수밖에 없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사립탐정 닥(호아킨 피닉스)이 뉴타운 지역의 매춘업소를 방문했다가 누명을 뒤집어쓰고 경찰에 붙잡혔을 때, 그 뒤에 펼쳐진 모래 언덕 위로 정체모를 사람들이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 대목이 있다. 이런 장면을 보고 뭐라고 콕 집어 해석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의도적으로 오묘하게 만들어진 장면 앞에서는 말보다 주인공과 함께 오묘한 기분에 빠져드는 편이 좋을 것이다. 혹은 파트너를 잃은 상처를 지닌 형사 ‘빅 풋’이 대놓고 초콜릿 ‘하드’를 쪽쪽 빨아대는 모습을 보고 어떤 진지한 ‘썰’을 늘어놓을 수 있을 텐가. 이 영화의 두서없는 흡입력 앞에서는 너무 난감해 말고 그냥 킥킥대며 빨려드는 태도가 필요한 것 같다.

물론 한편으로 생각하면 <인히어런트 바이스>는 1970년대 미국 청년 세대를 짓누르고 또한 폭발시켰던 음모론, 편집증, 폭력주의와 반폭력주의, 리버럴리즘, 약물, 죄의식, 멜랑콜리, 분열증 등을 아주 노골적으로 상기시키며 끌어들이는 영화다. 그러니까 미국사의 한 시대를 형성한 사건들이나 사상들을 뒤적이면서 그럴싸한 말로 이 영화의 소위 ‘정체’에 대해 자못 엄숙한 태도로 몇 마디 정리된 말을 늘어놓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정리된 말은 토마스 핀천의 원작이나 폴 토머스 앤더슨의 각색에도 썩 어울리지 않는 리액션이다. 이 영화는 정리가 잘 되지 않는 상태로 즐겨야 한다.

말하자면 다른 한편으로 <인히어런트 바이스>는 미국에 대한 사회 비평적 영화가 아니라 핀천의 원작에 대한 영화적 리액션이다. 그리고 이 영화적 리액션은 잘 조율된 불협화음으로 넘실거린다. 주인공을 압박해오는 힘들과 주인공을 이완시키는 힘들 사이의 모순, 파편화된 서사와 통합적 형식 사이의 긴장, 폴 토마스 앤더슨 초기에 자주 볼 수 있었던 다선적 구조와 그의 2000년대 영화들에 나타나기 시작한 미니멀한 구조 사이의 결탁, 필름에 대한 시대착오적 향수와 자본과 산업에 대한 날카로운 감각 사이의 갈등 등, 불협화음은 영화 내외를 가로지르며 울려퍼지고 있다. 그러니 이로부터 일관된 결론을 도출하려 하지 말고, 남부 캘리포니아의 햇빛과 바람에, 마리화나 연기에 취한 기분으로 건들건들 느껴볼 것을 권한다. 


이후경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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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토마스 앤더슨 35mm 필름 투어]


말씀의 탄생

- <데어 윌 비 블러드>

 

1898년에 시작한 영화는 1927년 대공황의 시기에서 멈춘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라는 시대 배경은 역사적 맥락 외에 영화사적 맥락을 환기하는 측면이 있다. 말소리가 소거된 채 숨소리와 비명, 과잉된 음향으로 채워진 약 15분간의 도입부를 통해 영화는 무성영화를 인용하고 있음을 분명히 밝힌다. 초기 영화의 반향으로 영화를 읽을 때 두드러진 이미지가 있다. 시축 기계가 땅에 꽂히자 땅에서 석유가 흘러나오는 모양을 클로즈업한 숏은 어쩐지 몸속에서 피가 불거져 나오는 양상을 연상시킨다. 비유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검은 석유는 곧 흑백 영화의 검은 피를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석유를 추출하는 것만큼이나 기계가 사람의 몸에 꽂히는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그곳에서 땅과 신체는 공동의 운명을 짊어진다.

땅과 신체 속을 흐르는 석유와 피는 그 자체로 서사의 흐름을 창출하는 두 요소다. 대니얼(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피붙이는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지만 대니얼은 늘 혈연과 가족에 붙들린다. 이를 강제하는 건 석유에 관한 대니얼의 욕망이다. 그런데 혈연관계는 안정적인 기반이기보다는 늘 불안정함을 수반한다. 불안정은 혈연관계 대체자의 희생으로 드러난다. 대니얼이 공동체를 중시하는 마을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 필요했던 어린 아들은 시축 중 발생한 가스 폭발 사고로 청력을 상실한다. 아들의 빈자리를 대체했던 동생 헨리는 거짓말이 발각되며 대니얼의 손에 죽는다. H.W.는 다시 아들의 자리로 돌아오나 관계는 끝내 파탄난다. 결국 욕망이 혈연을 요구하는 것은 와해와 파괴를 위해서인 것처럼 보일 정도다.

일련의 과정은 대니얼의 선택에 의한 것이기보다는 어찌할 수 없는 운명에 가까우며, 교회는 운명에 순응하도록 마을 사람들을 통제한다. 일라이가 집전하는 교회는 석유의 통제 불가능한 힘에 맞서 사람들을 안정시키는 기능을 한다. 대니얼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으나 그의 신은 교회에 있지 않다. 영화에서 첫 번째 등장하는 말인 대니얼의 대중에 대한 연설은 일라이의 교리 행위와 대구를 이룬다. 즉 그가 전도하는 신은 석유다. 영화는 대니얼의 말을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으로 외화면에서 먼저 등장시키면서 그가 전지전능한 말씀의 담지자임을 은밀히 보여준다. 대니얼이 일라이의 축원 제안을 거절한 이유는 일라이의 행위가 자신과 마찬가지로 말로 사람들을 홀리는 것임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거짓이 거짓을 알아보듯, 그는 일라이의 교리 행위를 꿰뚫어 보고 그것을 ‘쇼’라고 비꼰다.

영화의 결말부, 늙은 집사와 함께 홀로 남은 대니얼을 찾아온 일라이는 사뭇 가족을 강조한다. H.W.가 일라이의 어린 동생과 혼인하면서 둘은 인척관계로 얽힌 것이다. 돈을 구걸하는 일라이에게 대니얼은 종교와 교리 부정을 요구하며 자신의 승리를 확정 짓고자 한다. 대니얼에 의한 일라이의 살해로 귀결되는 마지막 장면의 목적은 일라이에 대한 대니얼의 승리, 혹은 종교에 대한 자본의 승리가 아니다. 석유를 모두 갈취당한 메마른 땅처럼, 인간의 육체 역시 피와 땀을 송두리째 잡아 뽑힌 채 소진되었음을 이미지로 확증할 뿐이다. 영화에서 유정탑은 하나의 상징물처럼 교회 맞은편에서 활활 타는 스펙터클로 제시된다. 이 괴상한 신전은 새 시대를 예감하듯 보존과 유지가 아닌 파괴와 무너짐으로 자신을 증명한다.


김소희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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