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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Cine talk

지옥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

[시네토크] 김지운 감독의 선택작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

설 연휴가 끝난 지난 5일 저녁, 1회부터 빠지지 않고 매년 친구들로 참석한 김지운 감독의 올해의 추천작인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 상영 후 김지운 감독과의 솔직담백한 시네토크가 이어졌다. 코폴라가 선사하는 암흑의 세계에 갔다 온 관객들은 혼이 빠진 상태로 허기를 참으며 많은 질문을 던졌다. 영화에 관한, 영화를 만드는 것에 관한, 영화를 보는 것에 관한 치열한 토크열전이 펼쳐졌던 그 현장의 일부를 전한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보는 것 자체가 굉장히 힘든 영화였는데.
김지운(영화감독): <악마를 보았다> 끝내고 광기, 복수, 지옥, 어두운 내면을 다룬 영화를 멀리 하려고 했는데... (웃음) 오늘 <지옥의 묵시록> 그것도 리덕스 판, 코폴라가 생각한 지옥의 완전판을 여러분께 보여드리게 됐다.

김성욱: 2001년에 리덕스판이 개봉했을때 보고 몇 장면을 간헐적으로 보기는 했지만 큰 화면으로 제대로 본 건 오늘이 10년만이다. 
김지운: 79년 원판을 보고나서 처음이다. 어릴 때 봤을 때도 힘들었는데 나이 먹고 보려니까 더 힘들더라. 이 영화는 1902년에 나온 조셉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이라는 모호하고 어두운 중편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이미 베르너 헤어조크도 이 소재로 영화를 만든 바 있고, 오손 웰즈도 이 소재로 만들려고 했다가 세계 대전이 일어나서 중도에 그만둔, 약간 마가 낀 작품이다. 원래 존 밀리어스와 조지 루카스가 이 소재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려고 했는데 베트남전이 민감한 소재여서 제작자와 감독들이 거절했다고 한다. 그걸 코폴라에게 가져다줬고 그 때부터 코폴라의 악몽이 시작된 것이다.

김성욱: 이 영화를 만들면서 코폴라 자신도 ‘내가 뭘 하고 있나’라고 말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79년 개봉버전보다 리덕스판은 50여분이 더해졌다. 추가됐더라도 여전히 애매한 구석이 많은 영화이고 사람들마다 영화에 대해서 다양한 견해를 갖고 있다. 리덕스 판으로 다시 보신 느낌은?
김지운: 한 인터뷰에서 코폴라가 ‘영화의 흐름을 많이 따라 간다’고 밝혔던 기억이 있다. 나도 약간 그런 편인데, 생각해놓은 큰 그림들은 있지만 영화가 흘러가는 것을 막 쫓아가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다. 잘 설명할 수는 없지만 코폴라 자신도 문명과 반대지점의 정글이 갖는 미스터리, 신비적인 것과 마틴 쉰의 투명한 눈으로 전쟁에서 벌어지는 추악한 면과 광기를 관찰하는, 그런 매혹적인 지점들에 말려들어간 게 아니었나 생각된다. 필리핀 촬영지의 악조건도 있었고, 코폴라가 계획한 대로 되지 않은 내외적인 상황의 결과인 듯하다.

김성욱:
전체적으로 환상적이고 망상적인 세계로 진입해가는 영화인데.
김지운: <지옥의 묵시록>은 <이지 라이더>와 더불어 미국의 대표적인 드럭(drug) 영화라고 생각된다. <스피드 레이서>가 코카인 영화라면 <이지라이더>와 <지옥의 묵시록>은 마리화나 느낌의 영화가 아닌가 싶다. 살인이나 자살 외에 약물이 아니고선 지옥에서 도망쳐 나올 수 없지 않은가. 코카인, 환각제, 마리화나는 절망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이었을 것 같다. 타인과 자신에게 큰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약은 월남전에 처박힌 인간의 돌파구로서 의미가 있다. 이것이 몽환적인 느낌을 준다. 연기, 화면, 편집, 음악의 사용, 세계관까지도 그러한 약의 느낌이 있는 영화다.

김성욱: 실제 영화에서 약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고, <이지 라이더>의 데니스 호퍼도 잠깐 등장한다. 랜스라는 인물도 그런 사람으로 그려진다. 이 영화의 비전을 랜스라는 인물의 약물복용의 시선으로 읽어내는 사람도 있다. 원판과 리덕스 판의 차이는 많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결말이다. 커츠의 왕국이 79년 개봉버전에선 폭격에 의해 없어지는데 리덕스 버전은 그렇지 않다. 엔딩의 변화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김지운: 코폴라가 언젠가 말했는데 폭격 장면을 넣으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한다. 급하게 편집하는 바람에 그렇게 된 것이라 알고 있다. 오늘 봤을 때는 마틴 쉰이 그 왕국에 안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마틴 쉰이 보트를 타고 밖으로 다시 나가는 것을 보고 ‘지옥을 경험하고 나서도 희망을 가지게 될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커츠는 광기를 보았고 문명 세계에 대한 희망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더 나아질 것이 없어서 안주했다고 생각했는데 마틴 쉰이 커츠와 똑같은 과정을 겪고도 그를 죽이고서 다시 나온다는 것 때문에 코폴라가 전쟁을 다루는 세계에 대한 모호한 지점이 있는 것 같다. 절망적인 상황, 광기의 밑바닥을 윌러드를 통해서 보여주고 나서 윌러드가 다시 커츠가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폭격 되고 안 되고 이전에 윌러드가 다시 문명세계로 나온다는 부분이 모호하게 느껴졌다.

김성욱:
커츠를 찾아 가는 여정에서 중간에 마틴 쉰이 베트남 민간 여자를 총으로 쏴 죽이고선 ‘그러니까 건드리지 말고 놔두고 가자고 하지 않았냐’고 말할 때의 느낌이 오늘은 강하게 느껴졌다. 영화에서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면?
김지운: 모든 이미지들이 하나하나 낙인이 찍혀있다. 특히 바그너의 오페라를 틀면서 월남인들을 폭격하는 장면이 압도적이었다. 그 이후의 어떤 영화에서도 그만한 스펙터클과 에너지를 보지 못했던 것 같다. 누가 훔쳐내도 훔쳐낼 수 없는 명불허전의 장면이 아닌가 싶다. 리덕스 판에 크게 추가된 장면은 플레이걸과의 섹스 장면, 프랑스 농장주 가족들 장면이다. 이 장면들이 쓸데없는 것이라는 평도 있었지만 코폴라의 변에 따르면 프랑스인들의 시선으로 미국을 고발하고 경고하는 유령 같은 느낌으로 그 장면을 넣었다고 한다. 그만큼 흐름에 역행하면서까지 코폴라가 하고 싶은 얘기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지옥의 묵시록의 회상>이라는 뒷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에는 영화보다 더 재밌는 애기가 많이 나오는데 모든 인터뷰에서 한결같이 ‘그건 미친 짓이었다. 우린 미쳤었다’고 하더라. 그걸 보고 있으면 진짜 점점 미쳐가는 모습이 역력해보이더라. 제작비 올라가고 사건사고가 생기고 촬영이 끝나질 않았다 한다. 하비 케이틀을 해고하고 마틴 쉰을 데리고 와서 찍은 것처럼 코폴라는 스태프가 마음에 안 들면 해고를 많이 시켰던 감독이다. 새로운 사람이 들어와서 제작비는 올라가고 태풍 불어서 세트도 떠내려가고 했다 하더라. 마틴 쉰은 심장발작을 일으켜 미국 가서 치료받기도 하고, 정말 영화 찍으면서 일어날 수 있는 사건사고가 코폴라에게 모두 일어났던 작품이라고 하더라. 감독 입장에서는 영화고 뭐고 총으로 쏴죽이고 싶지 않았을까. (좌중 웃음) 모든 사람이 미쳐가는 과정의 영화가 <지옥의 묵시록>이었던 것 같고, 그런 제작과정에서 점점 미쳐간, 광기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모습이 그래도 영화에 들어있는 듯하다. 찍는 것 자체가 전쟁인 영화를 함께 봤는데 지옥에서 벗어나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함께 느꼈으면 한다.

관객1: 코폴라는 70년대에 영화사에 길이 남을 작품을 만들었지만 8, 90년대에는 쇠퇴해갔다. 코폴라가 이후 작가적 역량을 발휘 못한 이유가 혹 <지옥의 묵시록>에서 에너지와 아이디어를 소진해서 그런 것은 아닌지 싶은데.
김지운: 코폴라는 <지옥의 묵시록>에 자신의 열정을 다 쏟아 부은 것 같다. 코폴라는 이전 세대의 감독들과는 달랐다. 아메리칸 뉴시네마의 기수였고, 시스템에 놓여있던 전 세대의 감독들과 달리 학교에서 학문으로 영화를 배우고 유럽 예술영화를 탐닉했던 인물이다. <대부>를 만들 당시, 그의 상황은 처참해서 이런 갱 영화까지 해야 하는 것인지 의문을 가졌는데 조지 루카스가 ‘무조건 해라. 돈 벌고 빚도 갚아라’는 얘기를 듣고서 하게 됐다고 한다. 코폴라의 예술가적 야심과 현실적인 요구가 딱 맞아떨어졌을 때 명작들이 나온 것 같다. 그런데 <지옥의 묵시록> 이후에 자기는 무조건 상업영화 만들겠다고 사람들에게 자기 정체성을 말하고 나서 모든 것이 상업적으로 망가진 것 같다. 예술적인 비전과 현실적인 삶의 욕구가 매치된 영화가 <대부>고 뭐든 다 할 수 잇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쏟아낸 작품이 <지옥의 묵시록>이라고 생각한다. 정글이라는 로케이션이 갖는 미스터리에 말리면서 쇠잔해버린 느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 덕분에 <지옥의 묵시록>이라는 어마어마한 영화가 나온 것 같다. 물론 다 쏟아버렸고 고갈되기도 했다. 재능이 고갈되는 것을 방지하거나 유보하는 방법 중 하나는 저처럼 조금씩 쓰는 것도 있고 (웃음) 쏟아낸 만큼 초심의 상태로 빨리 돌아오는 것도 있다. 그런 상태로 빨리 돌아갈 수 있는 것이 쉽지는 않다. 코폴라는 스튜디오와 차별된 자기 회사를 만들었는데 결국엔 똑같이 대형 스튜디오가 벌이고 있는 착취를 다시 벌이게 되지 않았나. 자기를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바라보는 것을 늦추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관객2: 영화 막바지에 커츠 대령이 본인 왕국을 왜 건설했고, 현실의 무엇으로부터 도피하려 했는지 정당성을 말하고 있다. 우리의 현실 때문에 공감이 많이 됐는데 감독님은 어떤 지점에서 공감하셨는지?
김지운: 코폴라가 모호하게 전쟁의 광기를 얘기하고 있지만 이 영화만큼 강력하고 처절한 반전 영화는 없다고 생각한다. 연평도 사태 후 일각에서 당장 전쟁이라도 날 것 같은 분위기가 일면서 되게 겁이 났다. 어떻게 해서든지 전쟁은 일어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전쟁을 겪은 세대는 아니지만 <지옥의 묵시록>에서 전쟁이 인간을 광기로 몰아넣는 과정을 보면서 소름끼쳤다. 사실 전쟁이 인간을 광기로 몰아넣는지, 인간에게 악마적 기운이 있는데 전쟁이 그것을 들춰낸 것인지 잘 모르겠다. 이 영화를 보면서 무서웠던 점이다. 초반에 이미 장군들을 만날 때 ‘더러는 악의 기운이 선을 이길 수 있다’고 한 장군이 얘기하는데, 그때 이 영화가 무엇을 얘기하려는지 알게 된다. 윌러드가 발견한 것은 커츠가 아니라 공포의 세계였다. 전쟁이 인간을 광기로 몰아넣는다기보다 광기가 원래 있는 것인데 전쟁이 그것을 들춰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더 처절하고 소름끼치게 봤다.

(정리: 최용혁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관객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