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 영화 특별전 - 세상과 불화하는 인물들]



박화영을 이해하지 않기

- <박화영>

회상의 성격을 띠며 사건, 상황, 인물의 이면을 드러내는 것으로 플래시백을 정의할 때, <박화영>(2018)의 플래시백(일단 편의상 플래시백이라고 부르기로 한다.)은 이에 부합하는 것처럼 보인다. 엔딩을 제외한 6번의 플래시백 속 박화영(김가희)은 플래시백 바깥의 박화영과 대조된다. 짧은 머리에 걸걸하고 막무가내인 박화영은 긴 머리에 소심하고 어색한 표정으로 등장한다. 초반의 플래시백은 박화영의 엄마에 관한 것으로 화영이 엄마에게 쌍욕을 내뱉고 돈을 뜯는 시퀀스 전후로 등장한다. 이 플래시백은 박화영이 자신의 엄마를 저주하게 된 원인으로 보기에는 어딘가 부족하다. 분절된 세 번의 플래시백을 조합해 보면 화영의 엄마는 살갑진 않아도 화영에게 최소한의 지원을 한다. 박화영의 과도한 발광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더 분명한 설정이 필요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화면을 차분히 가라앉힌다. 플래시백이 폭력성의 원인에 관한 것이 아니라면, 반대로 앞으로 있을 일을 비밀스럽게 노출한다고 추측해볼 수 있다. 최초의 플래시백이 놓인 자리는 이러한 추측을 강화한다. 플래시백 다음 숏이 오프닝 시퀀스와 연결되기에 흐름은 문제없으나, 타이틀숏 직후 플래시백이 등장하는 것은 어색하고 성급하다.


영화의 포인트가 엄마와 박화영의 관계에서 또래 집단, 특히 은미정(강민아)과의 관계로 옮겨 가면서 플래시백 역시 미정에 관한 것으로 이행한다. 화영은 SNS를 통해 미정과 연락해 그녀를 만난다. 이 장면은 박화영이 강간당할 위험에 처한 은미정을 돕다가 스스로 강간의 피해자가 된 뒤, 살인 누명을 쓸 위기에 몰린 상황 전후로 등장한다. 이 장면을 플래시백으로 본다면 ‘그때 서로 연락해 만나지 않았다면’ 식의 가정을 통한 회한의 감정을 전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상한 것은 박화영이 취기를 빌려 내뱉는 다음의 대사다. “니는 나 없으면 어쩔 뻔 봤냐. 근데 옛날 때, 엄마, 야 어떻게 생각하냐?”라는 생략된 말 속에 이미 모든 일을 통과한 직후의 시점임이 암시된다. 은미정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엄만 무슨 엄마? 우리 엄마? 잘 지내지.”라고 답한다. 그렇다면 이 장면을 통해 은미정과 관련된 부분은 플래시포워드였음을 확정하면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앞선 장면 역시 플래시포워드인가, 플래시백인가.



둘 중 어느 쪽으로 놓고 보아도 어느 정도 말은 된다. 영화가 이것을 의도하고 있다고 가정할 수 있는 이유는 에필로그처럼 삽입된 영화의 엔딩 때문이다. 플래시백-포워드 장면과 동일한 화면비로 등장한 마지막 장면은 그때까지 두 개로 교차하던 시간이 비로소 만난 것처럼 보인다. 새롭게 가출팸을 꾸린 박화영은 다른 멤버들과 라면을 끓여 먹으며 (아마도) 은미정을 만났던 이야기를 꺼내려 한다. 그러다 ‘존나 간지럽네’라며 가발을 벗어 버린 짧은 머리의 박화영이 껄껄 웃는 얼굴에서 페이드아웃된다. 가발을 벗는 장면이 두드러진 이유는 플래시백-포워드 내내 박화영이 가발을 쓰고 등장했기 때문이다. 관객은 설사 그것이 가발처럼 보여도, 영화적으로 설정된 ‘진짜 머리카락’으로 이해했다. 헤어스타일의 변화는 곧 시간의 변화를 드러내는 전형적인 방식이니까. 인서트 속 박화영의 머리카락이 사실은 가발이었다는 것은 박화영의 대조적인 모습이 해석의 대상이 아닌, 보이는 그대로의 허구적인 재현일 수 있었음을 드러낸다. 마지막 장면에서 박화영의 웃음은 그녀를 어떤 이해의 대상으로 환원하는 것을 거부하고, 박화영은 박화영일 뿐임을 표시한다. <박화영>이 관객에게 요구하는 것도 박화영에 관한 이해가 아니라, 끝내 박화영을 이해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일지 모른다.



김소희 영화평론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