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 가즈오 특별전: 물러서지 않는 카메라]



“당시 오쿠자키의 심정이 여전히 궁금하다”

- <천황 군대는 진군한다> 상영 후 하라 가즈오 감독과의 대화




변성찬(영화평론가) 하라 가즈오 감독이 거의 13년 만에 새 작품 <센난 석면 피해 배상소송>을 발표했다. 1972년에 첫 작품을 발표한 뒤 지금까지 8편의 영화만 만들었다. 과작의 감독인 셈인데 이번 영화제에서는 그중 6편을 볼 수 있다. 먼저 감독님의 인사를 듣도록 하겠다.

하라 가즈오(감독) 어제 한국의 젊은 다큐멘터리 감독들과 식사를 했다. 지금 제작 중인 작품들의 영상을 볼 수 있었는데 다들 아주 훌륭한 작품들이라 나도 질 수 없다는 마음이 들었다. 영화 연출은 나이와 상관없이 어느 쪽이 더 재미있는지 싸우는 세계다. 젊은 감독들에게 지지 않겠다. 이게 내 인사말이다.

변성찬 감독님의 영화를 보면 ‘에너지’와 ‘문제적 인물’이란 단어가 저절로 떠오른다. 무엇보다 인물이 갖고 있는 기이하고 불가사의한 에너지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에너지의 또 다른 원인은 인물과 카메라 사이의 관계에 있다. 인물과 카메라 사이의 팽팽한 줄다리기를 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오늘 본 <천황 군대는 진군하다>가 가장 대표적인 경우라 생각한다. 먼저 오쿠자키 겐조라는 이 문제적 인물을 어떻게 만났고, 어떻게 영화를 시작했는지 듣고 싶다.

하라 가즈오 매년 1월 천황에게 인사를 하는 의식이 있는데 이때 오쿠자키가 파칭코 구슬을 쏘는 사건을 일으켰다. 한 기자가 이 사건을 역사적인 사건이라 생각하고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에게 영화화 제안을 했다. 영화를 찍기로 한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오쿠자키의 재판정에 몰래 카메라를 들고 들어갔다. 하지만 당시 카메라는 찍으면 ‘지~’하는 소리가 크게 났고, 결국 재판정에서 나와야 했다(웃음). 그리고 10년 동안 아무것도 찍지 못했다.

10년 뒤, 나는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촬영 현장에 촬영 보조로 참여했다. 그때 감독님에게 재미있는 영화를 찍고 싶다고 했더니 오쿠자키 겐조라는 남자가 있다고 말해주었다. 당시 이마무라 감독님은 극영화를 찍고 있던 때라 다큐멘터리를 찍을 생각이 없었고, 나는 다큐멘터리를 두 편 찍었었기 때문에 내가 적합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오쿠자키를 만났다.


변성찬 영화를 보고 있으면 오쿠자키가 감독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래서 카메라와 인물 사이에 미묘한 긴장이 생긴다. 감독님은 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얼마나 예측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하라 가즈오 긴 얘기가 될 것 같다. 내가 오쿠자키보다 20살 정도 어리다. 오쿠자키는 나같이 어린 사람이 감독인 것 자체를 용납하지 못했다. 오쿠자키는 종종 ‘하라 씨는 감독이 아니라 촬영하는 사람이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걸 찍으면 된다’고 말했다. 촬영 중간에 각자 하고 싶은 대로 편집을 한 뒤 어느 쪽이 더 재미있는지 비교해 보자는 말도 했다. 하지만 당시는 필름으로 영화를 찍는 시대였기 때문에 그렇게 하면 돈이 엄청 많이 들었다. 그래서 정말 그만두겠다고, 오쿠자키 씨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거면 젊은 카메라맨을 고용해서 8mm로 싸게 찍으라고 강하게 말했다. 그랬더니 내가 찍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하더라(웃음).

처음 제작을 시작했을 때 어떤 영화를 만들지 함께 논의했었다. 그때 오쿠자키는 전쟁 영화를 만들어도 아무도 보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는 어떤 ‘사건’을 저지르고 싶어했다. 일본에서는 매년 교과서 문제가 생긴다. 일본의 전쟁 행위를 설명하는 말을 조금 약한 표현으로 바꾸면서 생기는 문제다. 그 뉴스가 나왔을 때 오쿠자키는 문부대신을 ‘타겟’으로 삼으려 했다. 실제로 문부대신이 탄 차를 자신의 차로 들이받겠다는 말도 했다. 또 꽃다발에 칼을 숨기고 야스쿠니 신사로 들어가 난동을 부릴 테니 그걸 찍어달라고도 했다. 그런 사건을 찍는 건 괜찮지만, 거기에 얽혀 오쿠자키가 체포되면 영화를 만들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이 영화에 담긴 인육과 관련된 내용을 내가 제안했다. 오쿠자키가 당시 병사들을 찾아가 진실을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을 영화로 만들면 재밌겠다고 생각했고, 내용을 자세히 설명해주지는 않았었다. 오쿠자키는 처음에는 별 관심이 없었는데 이들이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채면서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면 한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웃음).


변성찬 오쿠자키가 체포되면 더 이상 영화를 찍을 수 없다고 했는데, 결국 영화의 끝부분에 그게 현실이 된다. 미수에 그치긴 했지만 실제로 그는 중대장에게 총을 쏘려고 했다. 감독님과 사전에 얘기가 된 일인지 궁금하다.


하라 가즈오 영화의 삼분의 일 정도가 지났을 때 오쿠자키는 이미 중대장을 죽이겠다는 결의를 했다. 나에게 중대장을 죽이는 걸 찍어달라고도 말했다. 내가 살인을 제안한 게 아니다. 오쿠자키의 그 말을 들었을 때 깜짝 놀랐다. 감독이 출연자에게 뭔가를 제안하고 거절당하는 건 자주 있는 일이지만 출연자가 살인을 하겠다고 감독에게 말하는 건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찍어야 할지 말지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오쿠자키는 그걸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말했다. 세상에 사람을 죽이는 장면을 찍을 수 있는 다큐멘터리 감독은 나밖에 없을 거라고 말하더라. 오른손으로는 촬영을 하면서 왼손으로 살인을 막을까, 같은 생각도 했다. 하지만 결국 촬영하면 안 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살인을 전제로 한 현장에 가서 촬영을 하는 건 안 된다고 판단했다. 오쿠자키에게 직접 이런 말을 하지는 않았고 그냥 촬영을 하겠다는 답을 주지 않았다. 그랬더니 오쿠자키는 내가 촬영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두 번 다시 살인 장면을 찍어달라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


변성찬 감독님의 말을 들으니 오쿠자키가 더 알 수 없는, 굉장히 예외적인 인물인 것 같다. 감독님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두 번의 공백이 있다. 1974년에 <극사적 에로스>를 만들고 다음 작품인 <천황 군대는 진군한다>를 1987년에 발표했다. 이게 첫 번째 공백이고 두 번째 공백은 촬영만 8년이 걸린 <센난 석면 피해 배상소송>이다. 오쿠자키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천황 군대는 진군하다>를 만드는 데까지 어느 정도의 기간이 걸렸나?


하라 가즈오 촬영 시작에서 오쿠자키의 구속까지 1년 반 정도 걸렸다. 그런데 뉴기니에 갔을 때 찍은 필름을 몰수당했다. 그 촬영 분량이 내가 생각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그런데 그 부분이 없어지면서 - 나는 마지막 장면이 없는 영화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 절망적인 마음으로 일 년 동안 아무것도 못했다. 필름까지 눈에 안 보이는 곳에 숨기고 거의 포기한 상태로 있었다. 그런데 1년이 지나니 영화를 완성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다시 들어서 그때부터 1년 정도 편집을 했다. 그래서 제작에 총 5년이 걸렸다.


관객 1 두 가지 질문이 있다. 하나는 <천황 군대는 진군한다>에 대한 질문이다. 전반부에는 희생자의 당사자들이 직접 출연하는데 후반부에는 황당하게도 오쿠자키의 아내가 실제 인물의 대역으로 출연한다. 어떤 에피소드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두 번째는 감독님의 작품 세계에 대한 질문이다. 감독님은 영화 안에서 철저히 관찰자의 입장에 머무르는 것 같다. 무리를 해서라도 이 인물을 완전히 파헤치겠다는 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는 것 같다. 이 작품뿐 아니라 <극사적 에로스> 같은 작품도 마찬가지다. 왜 이런 전략을 취하는지 궁금하다.


하라 가즈오 영화 촬영이 진행되면서 유족들이 오쿠자키와 함께 다니는 것을 불편해하기 시작했다. 유족들은 부담을 느꼈고 결국 같이 행동하는 것을 거절했다. 그 후 오쿠자키는 ‘대역’을 쓰고 싶다며 내 어머니에게 그걸 부탁하고 싶어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이상해서 거절을 했고, 결국 오쿠자키의 부인이 출연하게 됐다. 오쿠자키는 ‘리얼리스트’다. 상대방은 대역인 줄 모르니까 일단 죄송하다는 사과를 받을 수 있을 거라 계산한 것이다. 혼자 가는 것보다 유족과 같이 가는 게 사과를 받기 더 쉬울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고 그게 대의명분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오쿠자키 특유의 리얼리즘이 신기하게 다가왔다. ‘여기에 유족이 있는데 죄송하지 않냐’고 상대에게 소리를 지르는데, 정말 대단한 용기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 질문에 답을 하자면... 오쿠자키는 원래 중고차를 파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중고차를 파는 오쿠자키의 일상을 찍어도 이 영화에는 쓸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오쿠자키는 천황제를 부수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었던 인물이었고, 나는 그의 그런 삶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에게 당신이 하고 싶은 걸 카메라 앞에서 해보라고 제안을 했다. 이를 통해 오쿠자키의 마음을 표현하려고 했다.


변성찬 감독님의 말을 들으며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상상해 보았다. 일단 영화가 시작되면 인물이 상황을 주도하고 감독님은 그를 관찰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촬영 이전 단계에서는 감독님의 적극적인 개입과 조정이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관객 2 인도네시아 촬영 분량을 모두 몰수당했다. 아마 위령제를 지내지 않았을까 추측했는데, 어떤 장면을 촬영하려고 했었는지 궁금하다.


하라 가즈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하려면 30분은 더 걸릴 것 같아서 아주 간단하게 얘기해 보겠다. 촬영을 하던 시기가 그 지역이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때라서 촬영 허가가 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뇌물을 써서 일 주일간 있을 수 있는 비자를 받았다.

그렇게 인도네시아에 갔는데 오쿠자키가 호텔에서 소동을 일으키는 바람에 경찰이 출동했다. 그런데도 오쿠자키는 계속 자기가 천황에게 파칭코 구슬을 쐈고, 이곳 뉴기니에서 살아남은 남자라고 얘기했다. 결국 경찰이 군인을 불렀고 중위 정도쯤 되는 군인이 호텔로 왔다. 오쿠자키는 그에게 비싼 요리를 시켜주고 뇌물을 주고, 내가 차고 있던 손목시계까지 주면서 얘기를 시작했다. 오쿠자키는 자신이 전쟁에서 어떤 일을 겪었고 전우들이 얼마나 많이 죽었는지 등의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게 연기라고 생각했지만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일단 찍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결국 군인이 오쿠자키가 가고 싶은 곳으로 데려다주겠다고 했고, 그렇게 오쿠자키가 포로로 붙잡혔던 마을까지 함께 갔다. 여기서도 이장 같은 사람에게 뇌물을 주면서 여러 장면을 찍을 수 있었고 더 높은 계급의 군인을 만나러 갈 수 있었다. 비록 뇌물을 썼지만 오쿠자키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군대 사무실로 카메라를 들고 들어가는 순간 사람들이 촬영 허가를 받았냐고 물으며 지금까지 촬영한 필름을 다 내놓으라고 했다. 겁을 먹고 일단 필름을 다 꺼냈더니 오쿠자키는 그 위에 양반다리로 앉아서 갖고 갈거면 갖고 가라고 외쳤고, 통역자는 겁을 먹고 도망갔다. 통역도 없는 상태에서 결국 필름을 다 몰수 당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라고 생각했던 분량이 없어지는 순간이었다. 얼굴이 새하얗게 되면서 너무 힘이 없어져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여기까지만 얘기하겠다(웃음).


관객 3 오쿠자키 겐조가 출소 후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오쿠자키는 한이 많이 맺혀서 그런지 폭력을 스스로 정당화하는 것 같았다. 감독님은 오쿠자키의 이런 폭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다.


하라 가즈오 오쿠자키는 감옥에서 12년 동안 복역했다. 그 사이에 나에게 편지가 왔다. <천황 군대는 진군한다>의 2편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12년 동안 고민했는데 결국 만들지 말아야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편지에 답장도 하지 않았다.

세상에는 나쁜 사람이 있는데 그중 오쿠자키를 이용해 돈을 벌려는 사람이 있었다. 성인 영화를 찍는 사람들이었는데, 오쿠자키가 출소하자마자 차를 태워 도쿄까지 갔다. 그리고는 SM을 소재로 한 성인 영화에 출연을 시켰고, M 역할을 견디다 못한 오쿠자키가 현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촬영을 거부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소동까지 촬영해서 판매했고, 오쿠자키는 화가 나 고베로 돌아갔다. 그리고 고베에서 혼자 8년 동안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 8년 동안 나를 증오하고 원망했다고 전해 들었다.

폭력에 대한 얘기는 어렵다. 폭력이라는 말을 쓸 때는 주의해야 한다. 폭력에는 여러 레벨이 있다. 국가의 폭력은 전쟁 같은 것이다. 국가는 군대나 경찰도 소유하고 있다. 이런 국가에 대항하려면 돌을 던지는 식의 폭력을 쓸 수밖에 없다.

영화 안에서 오쿠자키가 사람을 때리는 장면이 두 번 정도 있다. 그런데 그 장면을 자세히 보면 진짜로 때리는 것이 아니다. 전우들을 찾아다니며 처형이나 인육에 대한 얘기를 들으려 하지만 상대는 당연히 얘기하려 하지 않는다. 일본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폭력에 노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맞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폭력이라는 낯선 순간에 노출되며 숨기고 있던 걸 드러내는 효과는 확실히 있었다. 아마 폭력이 없었다면 인육을 먹었다는 비밀을 이야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무언가에 갇혀 있는 것으로부터 벗어나도록 육체적으로 자극하는 것, 그런 의미에서 폭력을 쓰는 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중대장의 아들에게 총을 쏜 건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할 수 없는 폭력이다. 오쿠자키가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앞으로도 계속 폭력을 쓸 것이라고 얘기한 건 테러리스트의 논리다. 개인적으로 테러리스트의 논리에는 찬성하지 않지만 그런 논리를 이루는 배경이나 역사에 대해서는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영화를 통해 이런 현실에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나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오쿠자키가 앞으로도 계속 폭력을 사용할 것이라 얘기한 부분은 편집자가 빼려고 했다. 편집자는 이 장면을 빼지 않으면 사람들이 천황과 전쟁을 비판하는 오쿠자키의 말을 받아들이기 힘들 거라고 판단했다. 나도 그 말에는 동의했지만 오쿠자키는 폭력을 통해 국가에 저항하는 사람이었고, 그 말을 빼버리면 영화가 아름다운 결론으로 마무리될 것 같았다. 편집자와 엄청 싸웠지만 결국 이 장면은 넣기로 했다.


관객 4 <전신소설가>에서 ‘여러 사실들이 겹쳐져 있는데 그중 선택을 하기 때문에 픽션이다’라는 소설가의 대사가 인상적이었다. 이 영화에서도 한 출연자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고 할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도 전쟁의 참상 같은 것을 직접 목격하면 불편을 느끼는 정도가 아니라 아마 병에 걸리고 말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상관을 살해하겠다고 나선 오쿠자키를 따라가지 않은 감독님의 선택에 공감한 쪽이다. 감독님은 현실을 전부 표현해도 된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어떤 ‘정도’를 지키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하라 가즈오 영화를 찍기 전에는 이런 문제를 이야기해야 하고, 이런 영상을 담아야겠다고 머릿속으로 정말 많이 생각한다. 그런데 촬영을 시작하면 항상 30% 정도만 겨우 찍을 수 있는 것 같다. 찍을 수 없는 게 압도적으로 많다. 현장에서 찍으면 안 된다고 판단하는 경우도 있고, 찍고 싶지만 조건이 안 맞아서 못 찍는 것도 있다.

일단은 가능하면 다 찍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찍지 못했던 그 조건까지 다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찍을 수 없었던 장면들을 생각하다 차기작의 주제를 찾을 때도 있다. 오늘 같은 이런 대화 자리도 영화를 다시 생각하는 과정이다. 어떤 생각으로 찍었는지 말하면서 장면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이런 의미였구나 하고 생각하며 이해가 깊어진다.


변성찬 <천황 군대는 진군한다>는 30년 전 영화이다. 하지만 영화적 에너지, 사회적 에너지가 바래지 않고 남아 있어서 새삼 놀라웠다. 필름 촬영이라는 굉장히 어려운 조건에서 만들어졌지만 찍지 못한 ‘구멍’ 같은 부분이 매우 강렬하게 다가오기도 했었다. 마지막으로 감독님의 이야기를 듣고 오늘 자리를 마치도록 하겠다.


하라 가즈오 말하고 싶은 에피소드가 하나 더 있다. 오쿠자키가 중대장을 죽이겠다며 총을 들고 갔을 때 그 총은 장난감총을 개조한 것이었다. 그 총은 오쿠자키를 지지하는 사람이 준 것이었고, 오쿠자키는 그 총이 정말 사람을 죽일 수 있는지 의문을 갖고 있었다.

그렇게 오쿠자키가 중대장의 집에 갔는데 중대장은 없고 아들만 나왔다. 당시 오쿠자키는 중대장의 아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 화가 났고, 그래서 이 총이 사람을 죽일 수 있는지 시험해보기 위해 쐈다고 한다. 그래서 정말 처음부터 오쿠자키가 사람을 죽이려는 분명한 살의를 갖고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때 오쿠자키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심정으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여전히 궁금하다. 그리고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해서 그걸 표현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있다. 이처럼 여러 시각을 동원해도 풀 수 없는 문제들, 이런 인간의 불가사의한 점에 대해서 많은 생각이 든다. 이런 얘기를 하면 세 시간 정도 더 필요할 것 같다(웃음).




일시 6월 16일(토) 오후 2시 30분 <천황 군대는 진군한다> 상영 후

정리 김혜령 자원활동가

사진 목충헌 자원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