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영화를 만든다는 것: 광화문시네마의 경우]



“절대 담배 안 끊겠다는 반항심으로 만들었다”

- <소공녀> 상영 후 전고운 감독 시네토크





정지혜(영화평론가) <소공녀>는 물론 미소의 이야기지만 서울이란 도시의 주거 형태가 어떻게 분화되고 있는지, 어떤 지경까지 처했는지 보여주기도 한다. 감독님이 영화를 만들 때 공간에 대한 고민도 굉장히 많이 했을 것 같다. 영화의 출발 지점에 대해 먼저 듣고 싶다.


전고운(감독) 이 영화의 주인공은 미소이지만 또 하나의 주인공은 서울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도시에서 살아 남으려 하다가 잃어버리는 것들을 기록하고 싶었다. 그리고 <소공녀>를 만들 때는 정권에 대한 불만도 정말 컸다. 이걸 어떻게 간접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던 참에 마침 담뱃값도 오르더라. 내 생각에 정말 말도 안 되는 큰 인상폭이었다. 그런 분노들에서 처음 시작했다.


정지혜 잊혀진 도시의 풍경을 기록하고 싶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이 말은 광화문시네마가 제작한 모든 영화에 해당되는 말 같기도 하다. 이번 특별전을 통해 광화문시네마의 영화들을 본 관객은 공간에 대한 서로 다른 탁월한 해석들을 보았을 것이다. 특히 고시원, 단칸방 등 젊은 청춘들이 머무는 공간을 중요하게 묘사하며 인물을 설명하곤 한다.

그런데 <소공녀>의 미소는 집을 포기하고 담배와 위스키라는 취향, 나아가 사랑의 대상을 지키려 한다.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을까? 란 의문도 사실 좀 들었다. 미소에게 자신이 머무는 공간, 자신이 살아가는 서울이란 도시는 어떤 의미일까?


전고운 거창한 의미가 아니라 그냥 자기가 나고 자란 터전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어떤 분들은 서울이 아니라 지방에 가면 되지 않느냐고 묻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미소가 아무런 연고도 없는 다른 도시에 가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미소가 서울의 상징이 되기를 바라기도 했다. 서울은 미소의 모든 것이 담긴 곳이고, 미소가 버텨야 하는 공간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살기에 너무 비싸지면서 발붙일 곳이 점차 줄어든다.


정지혜 ‘미소’의 이름 자체가 의미심장하다. 미소는 친구와 동료, 타인에게 미소를 보내는 인물이다. 그런데 많은 경우 관객은 감정이입을 주로 주인공에게 하고 다른 인물들에게는 배타적인 감정을 갖는 경우가 많은데, <소공녀>를 볼 때는 미소 주위의 인물들도 어느 정도 이해를 하게 된다. 미소와 미소의 친구들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잡으려 했는지 듣고 싶다.


전고운 처음 친구들이 시나리오를 봤을 때 미소에 공감하는 사람은 소수였다. ‘평범한’ 사람들은 미소의 친구들이 처한 상황을 더 잘 이해했고 미소에게 거부감을 가졌다. 그리고 실제 미소처럼 살고 있는 소수의 친구들만이 미소에게 감정이입을 했다. 나에겐 그 차이가 재미있게 다가왔다.

미소를 이해하지 못하는 관객들이 <소공녀>를 미워하지 않게 하는 방법은 친구들을 밉지 않게 그리는 것이었다. 만약 미소를 이해하지 못해도 친구들을 통해 이 영화를 사랑스럽게 봐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지혜 그 친구들 중 광화문시네마의 멤버도 있었을 것 같다. 광화문시네마는 영화를 만들 때 시나리오 개발부터 함께 힘을 모으는 걸로 알고 있다. <소공녀>의 경우는 어땠는지 궁금하다.



전고운 내가 지향하는 방향과 다른 감독들이 지향하는 게 많이 다르다. 하지만 나는 다른 쪽으로도 잘 열려 있기 때문에 다른 감독의 작품에 각색으로 참여할 수 있다(웃음).

<소공녀>의 경우에는 친구들이 나를 무서워해서 그런지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깔끔하게 ‘재밌다’, ‘이대로 찍어도 되겠다’고 말해주었다. <범죄의 여왕>이나 <족구왕>은 장르 영화다 보니 아무래도 계속 많이 고쳤는데, 이번에는 약간 ‘네 맘대로 해라’ 느낌이었다. 대신 엔딩에 대해서는 치열하게 논의했다.  


정지혜 처음 기획 단계에서는 미소의 나이가 조금 더 많았던 걸로 알고 있다.


전고운 시나리오를 쓰고 나면 어떻게 극장에 걸릴 수 있을지만 생각한다. 처음 쓴 시나리오는 분위기가 좀 더 어두웠고 주인공도 나이가 많았다. 주인공의 나이 들어가는 얼굴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투자-개발 과정에서 나이를 조금 낮추었고, 그러면서 작업이 좀 더 수월하게 진행됐다.


정지혜 <소공녀>는 도시에서 혼자 자신의 취향을 지키면서 나이 들어가는 여성의 이야기이다. 감독님의 개인적 고민도 어느 정도 반영됐을 것 같다.


전고운 내 첫 번째 장편 영화라서 미소처럼 철저하게 내 취향을 지키지는 못했고, 조금 내 색깔을 눌러가면서 만들었다. 하지만 열심히 살고 어렵게 취직도 했는데 돈은 부족하고, 취미생활도 없어지고 바빠서 친구도 못 만나는 이런 이상한 구조에 대해 계속해서 고민을 하며 만들었다. 영화를 다 찍고 난 후 나에게 영화가 미소의 담배와 위스키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한 적은 있다.


정지혜 광화문시네마 멤버들은 서로의 영화에 짧게 출연을 하기도 하는 등 품앗이처럼 협업을 한다. 동시에 상업영화의 틀에서 다른 제작사나 투자사와도 함께 일을 한다. 어떤 어려운 점이 있는지, 또는 어떻게 계속 광화문시네마가 지속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전고운 일단 우리는 ‘광화문시네마’ 소속 멤버 이전에 개인이고 친구다. 친구가 다른 곳에서 영화를 만들면 당연히 친구로서 도와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할 수 있는 힘은, 좀 쑥스럽지만, 사랑이다. 사랑밖에 없는 것 같다(웃음). 영화를 찍으면 누군가의 희생이 따르고, 그렇다고 돈을 버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즐거움 말고는 얻을 게 없다. 광화문시네마의 시작이었던 <1999, 면회>를 만들 때도 술자리에서 얘기를 하다가 재밌겠다면서 서로 돈을 모아 영화를 만들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내가 친구에게 받은 건 다음에 돌려줘야 하지 않겠나. 이런 사랑과 책임감의 바톤 터치가 자연스럽게 지금까지 이어졌다.

우리의 사랑이 유지될 수 있는 건 우리가 서로 완벽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가 부족한 사람이란 걸 알고 있다. 천재가 아닌 사람들이라서 뭉칠 수밖에 없다.


정지혜 전고운 감독은 광화문시네마의 공동대표이기도 하다. 대표로서 어떤 영화를 지향하는지 듣고 싶다.


전고운 다섯 감독의 취향이 전부 다른데 우리는 그걸 암묵적으로 존중해 준다. 사실 연출하는 사람들끼리는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는 게 정말 어렵다. 어쩔 수 없는 시니컬함으로 상대의 작품을 무시하기 쉽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려 하지 않는다. 나랑은 다르지만 잘하는 게 있다는 태도를 분명히 가진다. 그리고 영화에 대한 취향은 서로 다양한 게 더 재밌기도 하다.


정지혜 연출도 해야 되고 기획과 제작도 해야 되는데 어려운 점은 없는지?


전고운 특별한 피로감은 없다. 우리는 장편영화 찍는 걸 응원하고 도와주는 사람들이다. 누가 아이템을 가져오면 그걸 무조건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려고 한다. 아, 한 가지 피로감이 있다면 세금이다. 버는 건 없는데 세금을 내라고 한다(웃음).


정지혜 정말 큰 피로감일 것 같다(웃음).




관객 1 엔딩을 두고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는데 처음 엔딩이 궁금하다.


전고운 미소가 마지막 친구집에서 쫓겨난 다음 어딘가로 전화를 한다. 그런데 그 친구가 독일에 있다고 한다. 장면이 바뀌면 미소가 베를린에서 흰머리를 한 채 똑같이 가사 도우미로 일하면서 양주를 마시고 길에서 담배를 피운다. 그게 처음 엔딩이었다. 그런데 친구들에게 무책임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럼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뭐냐’고 하더라. 그래서 고민 끝에 지금 엔딩으로 바꾸었다.

내가 제일 보고 싶었던 건 미소가 주는 카타르시스였다. 나는 영화에서 담배 피우는 여성만 봐도 희열을 느낀다. 누가 이걸 길게 찍으면 더 좋을 것 같아서 내가 직접 찍어보기로 했다. 엔딩은 정말 모든 경우를 다 생각해 봤다. 미소가 담배밭에서 직접 담배 농사를 짓는 것까지 생각했었다(웃음).


관객 1 미소의 머리가 나중에는 백발로 바뀐다. 정말 인상적이었다.


전고운 영화는 결국 시각적 요소라고 생각한다. 미소의 마지막은 남들에게는 포기지만 자신에게는 선택이다. 그 선택의 결과를 충격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흰머리를 떠올렸다. 약 설정은 그 다음에 집어넣은 것이다. 실제 존재하는 병으로 알고 있는데 이 영화에서는 내가 상상해서 만든 병이다.


관객 2 오늘로 14번 봤는데 볼 때마다 재밌다. 미소의 라이터가 궁금하다. 미소는 가난한데 좋은 라이터를 쓴다. 어떤 설정이었는지 듣고 싶다.


전고운 미소가 어떤 라이터를 쓸지 열심히 고민했다. 담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한 번쯤 라이터 선물을 받는다. 미소는 그 선물 받은 라이터를 소중하게 오랫동안 쓰는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참고로 라이터는 지포라이터인데 소리는 뒤퐁라이터다. 그 ‘핑’하는 소리가 짧은 음악 같아서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아는 사람은 눈치를 챌 수 있는 나만의 유머였다.


관객 3 영화에서 유머가 많이 느껴졌다. 평소 즐겨보는 영화나 드라마, TV 프로그램이 궁금하다.


전고운 연출을 잘한 영화는 다 좋아한다. <대부>, <에일리언>, 미카엘 하네케, 마이크 리 등 다양하게 좋아한다. 코미디 영화에서 만족한 영화는 별로 없다. 코미디에서는,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우디 알렌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 언젠가 <블루 재스민> 같은 영화를 한 번 만들고 싶다.


관객 3 여성 감독으로서 자신이 어떤 차별점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전고운 차별점이라기보다는 자신감이 있다. 여성 캐릭터를 훨씬 다양한 각도에서 보여줄 수 있다. 그리고 남성 영화의 문화에서도 오랫동안 살아왔기 때문에 남성 캐릭터도 잘 만들 수 있다. 결과적으로 둘 다 잘할 수 있는 게 내 장점이다(웃음). 많은 경우 남성 감독들은 여성 인물을 너무 평평하게 만들거나, 공중에 띄워놓거나, 사람처럼 만들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으려 한다.


정지혜 결말에 대해서 질문하고 싶다. 마지막에 미소는 텐트에서 살기를 선택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걸 지키며 산다는 게 이렇게 어려운 걸까 고민해 보았다. 솔직히 말해 그곳에 있는 미소의 모습을 마음 편하게 보는 게 쉽지는 않았다. 특히 최근의 한국영화에서 길거리를 배회하는 여성이 많이 등장하는데, 미소의 마지막 거처에 대한 고민을 더 자세히 듣고 싶다.


전고운 그 텐트는 내 나름의 풍자였다. 고작 위스키와 담배라는,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취향을 지킨다는 게 우리나라에서 너무 힘든 일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다. ‘내가 정말 텐트까지 쳐야겠냐?’ 같은 느낌이었다(웃음). 갈 데까지 가 보고 싶었다. 담뱃값 아무리 올려봐라, 나는 절대 안 끊겠다 같은 나름의 반항심이었다.

마지막 엔딩을 너무 마음 아파하며 보는 분들이 있는데, 내 주위의 ‘미소’들은 드디어 자신의 공간이 생긴 거라며 그 장면을 너무 좋아하더라. 보는 위치에 따라 영화를 보는 감상이 완전히 달라지는 점이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다.


관객 4 나는 오늘로 11번 봤다. 시나리오집도 읽었는데 영화에는 없는 장면이 있었다. 미소가 재경(김예은)의 집에서 일하다 잠깐 잠들었다는 이유로 오해를 받아 해고당하는 장면이었다.


전고운 사실 그 장면도 촬영을 했지만 너무 신파로 흘러갈까 봐, 미소를 너무 불쌍하게 몰아가는 건 안 좋을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편집을 했다. 관객을 좀 덜 지치게 만들고 싶었다. 정말 많이 고민을 한 편집이었고, 감독의 자리가 힘들다는 걸 새삼 느꼈다.


정지혜 미소는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선한 인물이다. 나중에는 거의 감금을 당하는 상황에 처하는데도 감사하다는 메모를 남기고 떠난다. 이런 예의와 품위가 어떻게 가능할까.


전고운 미소 캐릭터에 영감을 준 내 친구들은 정말 미소처럼 착하다(웃음). 남의 말을 잘 들어주고 예의바른 친구들이다.

나는 이 사회에 제일 필요한 건 선인이라고 생각한다. 주위 사람을 외롭지 않게 해주고, 힘들 때 옆에 있어주는 그런 사람. 그런 사람이 있어야 다른 사람이 죽지 않고 살아가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사회는 언제부턴가 그런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착하면 안 된다고 하는데 정말 그럴까? 영화를 만들며 그런 가치가 사라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정지혜 영화를 만들 때 어떤 과정이 제일 즐거운지.


전고운 내 영화 만들 때 말고는 다 즐겁다(웃음). 남의 영화 보고 감놔라 배놔라하는 게 너무 재밌다. 이 영화를 어떻게 재밌게 만들지 고민하는 것과 내 고민으로 인해 영화가 조금 더 좋아지는 게 좋다. 배우자이기도 한 이요섭 감독은 나보고 노예근성이 있다고 하더라. 어떻게 보면 그 말도 맞다. 나는 서포트하는 게 좋다.


정지혜 <소공녀>의 마지막에 ‘강시 프로젝트’가 나온다. 그 작품도 서포트를 할 예정인가?


전고운 앞의 경우와 달리 <강시>는 아직 정해진 게 없다. 하지만 누구라도 시작하면 나는 바로 같이하고 싶다.


정지혜 마지막으로 다음 작품에 대한 얘기를 듣고 싶다.


전고운 이제 <소공녀>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새 작품을 본격적으로 구상하기 전에 영화감독이 사람이 할 만한 일인가 먼저 고민해야 할 것 같다. 해보니 정말 미친 직업이다. 아티스트도 돼야 하고, 정치도 해야 하고, 사회성도 좋아야 한다. 그런데 나는 그걸 다 할 수 없어서 벅차더라. 그래도 쓰고 싶은 이야기는 있다.



일시 4월 28일(토) 오후 6시 30분 <소공녀> 상영 후

정리 김보년 프로그래머

사진 목충헌 자원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