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토마스 앤더슨 35mm 필름 투어]


사랑의 동선

- <펀치 드렁크 러브>


폴 토마스 앤더슨이 만든 장편 중 가장 짧은 결과물인 <펀치 드렁크 러브>는 90분 남짓한 러닝타임 동안 멈춤 없이 내달리는 영화다. 항공사에 전화를 걸어 행사 상품에 관해 문의하는 배리(아담 샌들러)의 모습으로 다짜고짜 시작하는 오프닝 시퀀스의 문이 열리면 카메라는 결코 후진하는 법 없이 인물의 동선을 따라 사방으로 질주한다. 날렵하지만 유려하고, 재빠르되 능수능란한 속도와 테크닉으로 곧장 결말에 도달해 버리는 이런 영화를 보고 덧붙일 말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는 그저 배리라는 인물에 부여된 몇 가지 특수한 조건을 이야기하고 싶다. 

<펀치 드렁크 러브>가 멈춤 없이 내달린다는 말은 단지 비유적인 표현만은 아니다. 영화는 배리에게 안정적인 거주지를 제시하지 않는다. 집 안에서 그는 가족들의 파티를 망치거나, 어설프게 폰섹스를 시도하다 딘 일당에게 협박의 빌미를 제공하거나 한다. 심지어 은밀한 대화를 나누던 직업여성에게 집값을 요구받은 뒤로는 마치 실내로부터 추방되기라도 하듯 영화가 끝날 때까지 한 번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배리의 작업장 한가운데 어색하게 지어진 사무실 세트는 ‘내부’에 정착할 수 없는 배리의 상태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유리벽으로 구성된 사무실은 바깥에서 쏟아지는 빛과 소리에 별수 없이 노출되는 공간으로, 폐쇄 지향적이지만 외부의 영향에 끊임없이 휩싸이는 배리의 세계를 집약한다. 레나를 만나기 위해 하와이로 떠난 배리가 그녀에게 전화를 거는 장면이나 그 유명한 키스 장면이 둘만의 애정을 나누는 내밀한 장소가 아니라 타인의 침범과 개방이 손쉽게 허용되는 공공장소를 배경으로 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 비롯한다.

그러므로 배리는 시종일관 가만히 있질 않는다. 전화를 받으면서도 연신 몸을 움직이기 마련이다. 이따금 뛰어다니기도 한다. 산만하게 이동하는 배리의 동선을 좇으며 카메라는 한 가지 특수한 공간적 감각을 제공한다. 영화의 도입부를 떠올려 보자. 시네마스코프 화면 구석엔 배리가 왜소하게 배치되어 있고, 나머지 부분엔 가로로 길게 늘어진 수평선이 강조되고 있다. 그런데 배리가 작업실 밖으로 나오면 반대로 전경부터 후경까지 막힘없이 이어지는 거리의 수직적인 광경이 드러난다. 내부와 외부를 잇는 배리의 동선에 맞춰 수평선과 수직선이 매개하는 것이다. 이후로 영화가 진행되면서도 마트와 복도, 거리와 도로를 오가는 배리의 동선을 일관되게 관통하는 건 수평과 수직이라는 움직임의 선이다.

그리고 이 수평과 수직의 매개가 도형을 이루는 최종적인 순간 <펀치 드렁크 러브>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 기다리고 있다. 하와이에서 만나기로 한 배리와 레나는 약속 장소에 도착한다. 카메라는 서로에게 다가가는 두 인물의 걸음을 정면에서 보여준다(‘수직선’). 사람들이 가로축으로 이동하는 평면과도 같은 배경 속에서 그들의 만남은 성사된다(‘수평선’). 마침내 서로에게 접촉하는 배리와 레나는 그림자의 형상으로 하나의 원형을 만들어낸다. 이처럼 배리와 레나의 로맨스는 이야기상으로는 도로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교통사고처럼 우발적인 것이지만, 움직임의 선을 중심에 두고 보자면 치밀하고 논리적으로 건축된 사랑의 동선을 가로지르며 이루어지는 운명적인 만남인 것이다. 


김병규 관객에디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