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영화 산책 - 오즈 야스지로에서 프레드릭 와이즈먼까지]



고독의 공기

- <조용한 열정>


19세기 미국의 여성 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삶을 스크린으로 옮긴 테렌스 데이비스의 <조용한 열정> 전반부에는 어딘지 모르게 밝고 환한 기운이 감돈다. 기숙학교에서 숨 막힐 듯한 삶을 살고 있던 에밀리 디킨슨은 친애하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와 시 쓰기 활동을 시작한다. 집이라는 실내 환경은 새로운 외부로의 가능성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듯하다. 개인의 삶에 대한 그녀의 강고한 철학이 보수적인 종교관을 가진 이모를 놀라게 하기도 하지만 큰 갈등은 빚어지지 않는다. 가족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안정감과 견고함이 적어도 한동안은 이 영화를 지배한다.

그러다 영화가 시작된 지 20분 정도 경과했을 때 급격한 변화가 일어난다. 영화는 초기 사진술이라는 장치를 디지털적으로 활용해 시간을 빨리감기한다. 사진이 발명된 초기에 한 장의 사진이 완성되려면 카메라 앞의 인물은 오랜 노출 시간을 견디며 앉아 있어야 했다. 그래서인지 시간을 박제시킨 듯한 사진들은 피사체에 미친 시간의 작용과 그 내밀한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당대 사람들이 사진 속에 자신의 영혼이 갇혀 있는 듯한 느낌에 몸서리를 쳤던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러한 효과를 의식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이 전환점을 기점으로 하여 영화는 지독한 개인주의자였던 에밀리 디킨슨의 내면적 삶 속으로 서서히 침잠해 들어간다.

이후 이 영화의 주된 풍경을 이루는 것은 이별과 고독과 소멸과 죽음 같은 것들이다. 만남과 우정과 사랑과 삶도 결국에는 이별과 고독과 소멸과 죽음에 자리를 내어주기 위해 준비된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에밀리 디킨슨은 브라일링 버펌이라는 당대에 보기 드문 자유로운 여성과 친분을 나누기도 하고, 자신의 시를 알아봐주는 왓츠 워스 목사에 큰 애착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친분과 애착은 반복해서 상대의 결혼이라는 사회적 합의에 의해 중단되거나 가로막힌다. 그럴 때마다 더욱 분명해지는 것은 에밀리 디킨슨에게 삶은 결코 그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심지어 한때 누구보다 절친했으나 어느새 자신의 불륜을 정당화하는 가증스러운 사내가 되어버린 오라비와도 공유할 수 없는, 철저히 고독한 것이다. 개인의 고독이라는 삶의 명제에 충실하려는 그녀에게 그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타협이나 절충이란 존재할 수 없으며, 타인들과의 잦은 불협화음은 필연적으로 수반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그녀를 향해 이 영화에서 그녀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 중 하나인 동생 비니 디킨슨조차 매번 “왜 태도가 그러느냐”고 괴로운 듯 묻는다.

시대는 물론 자신과 가장 친밀한 자들과도 불화하기를 무릅쓰며 오직 자기 개인의 내밀한 진실에 충실하고자 한 은둔가를 통해 영화가 찍고자 하는 것도 그녀를 둘러싼 고립의 공기인 것 같다. 카메라는 이따금씩 무언가를 말하거나 어딘가를 쳐다보는 인물을 지나쳐 주변의 공간을 느린 속도로 돌아본다. 그 순간 영화의 화면을 통해 절절히 다가오는 것은 인물과 인물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 그 거리로서의 공기다. 그 손에 잡히지 않는 스스로 고립한 개인의 공기를 느끼게 하는 것이 이 영화의 눈부신 점인 것 같다.


이후경 영화평론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