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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의 자리 - <스파 나잇>

[봄날의 영화 산책 - 오즈 야스지로에서 프레드릭 와이즈먼까지]


데이빗의 자리

- <스파 나잇>

 

<스파 나잇>은 한국계 미국인 앤드류 안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자 2016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 수상작이다. 영화는 데이빗이라는 인물의 곤경을 총체적으로 드러내 보인다. 미국으로 이민 간 한국인 집안의 3세, 경제난에 시달리는 부모의 유일한 자식, 부모의 기대와 한인 사회의 은근한 부추김 속에서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인물. 무엇보다도 지금 데이빗을 압도하는 건 자신의 성정체성을 감각하고 자각하며 느끼는 두려움과 떨치기 힘든 사회적 기대에 따른 자기 부정이다.

인물의 감정 상태와 상황을 그려가는 이 영화의 방식에는 특정한 공간이 있다. 그곳은 불특정 다수가 집단적으로 몸을 드러내는 게 공적으로 허락된 대중 목욕탕이다. 특히나 한국의 가족주의적 관습에 비춰보면 대중 목욕탕은 가족 구성원 중 적어도 출생 신고에 생물학적으로 동성이라 표기됐을 이들끼리 함께 목욕을 하며 가족만의 고유한 서사를 만들고 가족 유대를 확인한다는 믿음이 생성되던 공간이다. 영화는 대중 목욕탕이 실은 얼마나 더 은밀한 사적 서사가 가능한 곳인지를 보여준다. 영화의 첫 시퀀스도 대중 목욕탕이다. 데이빗 부자가 서로의 등을 밀어주고, 데이빗은 자신의 벗은 몸을 감각하며 나신의 타인을 의식한다. 지극히 사적인 감각은 공적 공간에서 살아난다.

데이빗이 대중 목욕탕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성정체성에 대한 자각과 자기 부정은 한층 심화돼 간다. 데이빗은 ‘크루징 스팟’으로서의 대중탕을 목격하고 경험한다. 섹슈얼리티의 맥락에서 ‘크루징’(cruising)은 남성 성소수자들 간에 관심을 드러냄을 칭하는 은어이자 극장, 공원, 공공 화장실과 같은 공적 공간에서 섹스 파트너를 찾는 행위까지를 포함한다. 대중 목욕탕에서 오가는 은밀한 시선, 그곳의 또 다른 칸막이 공간인 사우나실과 수면실에서의 유혹과 접촉, 성행위까지. 데이빗은 갈등한다. 그곳에서 자신이 본 것을 부정하고 혐오하다가도 자신이 본 것을 그 자신의 감각으로 느껴보고 싶다. 서로를 탐색한 후 그들만의 시간을 갖고자 사우나실로 향하는 이들을 지켜보던 데이빗은 이 상황을 모른 채 사우나실로 가려는 제3의 인물을 사우나실 청소를 핑계로 차단한다. 동시에 사우나실 안에서 그들만의 시간을 보내던 자들을 용인한다. 반대로 데이빗은 경찰이 출동하고 “이상한 짓을 보면 (자신에게) 알리라”는 사장의 말을 듣고는 수면실의 은밀한 행위에 거부 반응을 드러내기도 한다. 사우나실에서 누군가에게 신호를 보내 보려던 데이빗은 상대의 호의적 반응 앞에 놀라며 되레 거부 의사를 표하기도 한다. 이처럼 영화는 대중 목욕탕에서 벌어질 수 있는 전 방위적인 가능성을 통해 데이빗의 갈등과 그 양태를 점진적으로,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데이빗은 사실상 리액션으로 점철돼 있는 인물이다. 상대와 상황의 변화 앞에서 최소한의 반응만을 보인다. 영화는 내면의 갈등을 겪는 데이빗이 누군가와 자신의 상태에 대해 대화할 수 있는 시간조차 허락지 않는다. 대신 데이빗은 자신을 둘러싼 상황, 대중 목욕탕 안팎,가족과 지역 사회, 그 자신을 더 많이 보고, 듣고, 감각한다. 리액션만이 가능한 세계, 더 많이 지켜봐야 하는 이가 감당해야 하는 시간은 고통의 시간이기도 하다. 이때의 시간은 개인의 감각과 충동을 억제하게 하는 외부 세계의 시간이기도 하다. 그러던 데이빗이 영화 막바지에 보여주는 가장 극적인 충동은 설득력이 있으면서도 의아함을 남긴다. 데이빗은 사우나실에서 상대가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 성행위를 하지만 결국 상대에게 거부당한다. 이 극적인 쾌락과 감각의 순간에 데이빗의 질문은 어째서 “한국인이냐”는 것이었을까. 거기에는 성정체성뿐 아니라 그가 미국 사회에서 자라면서 끊임없이 인식할 수밖에 없었던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이 드리운 또 다른 두려움이 아니었을까. 경험의 세계에서 감각과 감정은 어디까지 열릴 수 있을까. 감각과 감정의 세계는 경험을 얼마나 벗어날 수 있을까. 데이빗의 곤경은 훨씬 더 복잡한 지도 위에 놓인 것일지도 모른다.


정지혜 영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