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영화 산책 - 오즈 야스지로에서 프레드릭 와이즈먼까지]


일상의 시인

- <패터슨>


<패터슨>은 미국 뉴저지주에 위치한 패터슨이라는 소도시를 배경으로 한다. 월요일 오전 6시 10분경,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마을과 동명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버스 운전기사이자 시인인 패터슨이 잠에서 깨어난 다음 늘 그랬다는 듯 시계를 확인한다. 그는 아직 잠에서 덜 깬 아내 로라와 아침 인사를 나눈 다음 전날 밤에 준비해둔 것으로 보이는 옷가지를 챙긴다. 그리고 부엌으로 가서 홀로 단출하게 아침 식사를 한다. 이후로도 영화는 요일별로 아침에서 저녁으로 이어지는 패터슨의 일과를 따라가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짐 자무쉬의 전작에 익숙한 관객에게 이 오프닝은 생경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황혼의 시간과 허름한 모텔 공간을 배경으로 어딘가를 정처 없이 배회하는 인물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었던 그가 패터슨이라는 소도시에 뿌리내린 한 시인의 삶을 다루었으니 말이다. 물론 이번 작품에도 특정 지역과 공간에 깃든 장소감과 역사성을 언급하는 대목이 군데군데 있고, 카페나 술집에서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와 나란히 앉아 수더분하게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짐 자무쉬의 인장과 같은 장면을 확인할 수 있음에도 <패터슨>은 어딘가 모르게 이질적인 구석이 있다. 전작들과 달리 떠나는 것보다 머무르는 것에, 일탈보다는 회귀에, 특이한 것보다는 일상적인 것에, 어둠보다는 밝음에 좀 더 친밀하게 다가서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일상적인 대상들 간의 친화력을 강조한다. ‘친화력’이라는 단어는 18세기 무렵을 중심으로 화학자와 물리학자들이 물질 간의 관계와 결합을 설명하기 위해 주로 썼던 것으로, 혹자에게 그것은 사랑을 욕망의 화학작용에 빗댄 괴테의 『친화력』을 떠올리게 할지도 모른다. 이처럼 친화력은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삶의 신비를 표현하는 수사에 가깝다. 짐 자무시의 <패터슨>에도 이성보다는 직관에 기초한 언어로 설명해야 할 법한 대상에 대한 끌림을 표현한 장면이 다수 있다. 영화는 패터슨이 일상의 작은 부분에 매력을 느끼고 그가 그것을 시적으로 표현하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그리고 반복적으로 묘사한다. 

패터슨의 일상적 행위와 문학적 창작 행위는 그가 일상을 시적인 언어로 번역하거나 표현하는 부분에서 만난다. 예를 들면, 식탁 위에 놓인 성냥갑, 로라의 일상적인 모습, 버스나 거리에서 우연히 들은 대화마저도 그에게는 모두 좋은 글감이다. 그의 일상 전체가 시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그는 일상의 파편들과 정신적으로 교감하는 과정에서 시를 완성한다. 이 영화에서 일상적인 대상들 사이의 유사, 동일, 차이, 반복이 강조되는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풀이해 볼 수 있다. 이름이 같은 대상들이 함께 언급되거나 쌍둥이처럼 외형적으로 닮은 것들이 나란히 놓이는 경우가 있다. 물론 영화는 그들 간의 친화력에 관해 논리적인 설명을 덧붙이지 않는다. 대신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겉으로만 봐서는 알 수 없는 비밀과 신비를 품고 있다고 넌지시 말한다. 패터슨에게 시를 적어 놓은 공책이 비밀 노트이고, 그의 아내 로라가 만든 파이가 비밀 파이인 것처럼, 일상을 둘러싼 모든 것들의 가치는 표면을 꿰뚫고 그것의 내면을 보려는 시선과 관심 속에서 빛을 발한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에서 시인이란 사소한 것들의 껍질을 벗겨 삶의 신비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연금술사에 빗댈 수 있을 것이다.


이도훈 『오큘로』 편집인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