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관객이 줄어든다는 얘기는 이십 년 전부터 했다”

예술영화관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전망


지난 12월 14일(목),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는 일본 오사카의 예술영화관인 ‘플래닛 플러스 원’의 도미오카 구니히코 대표를 초대하여 영화를 둘러싼 얘기를 나누는 특별한 자리를 가졌다. 특별히 대전아트시네마에서 진행된 이 자리에는 서울, 청주, 대구 등에서 극장을 운영하고 있는 스태프들이 참여하여 깊이 있는 이야기를 오래도록 나누었다. 도미오카 구니히코 씨는 신인 감독들이 만든 독립영화의 중요성을 여러 번 강조하며 조만간 한국과 일본의 교류 프로그램을 진행하자는 제안도 하였다.

도미오카 구니히코(플래닛 플러스 원 대표) 만나서 반갑다. 나는 1995년부터 오사카의 ‘플래닛 플러스 원’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 공간은 내가 중학생이던 70년대부터 보기 힘든 영화를 상영하는 장소였다. 주로 16mm 필름을 상영했고, 무성 영화 시절의 프랑스 영화, 70년대의 미국 영화를 자주 상영했다. 필름은 내가 개인적으로 수집한 것도 있고, 고베영화자료관에서 수집한 것들도 있다.


강민구(대전아트시네마 대표) 대표님의 젊은 시절이 궁금하다. 언제부터 영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나?


도미오카 구니히코 중학생이던 73년 정도부터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뉴 아메리칸 시네마 끝 무렵이었고, 텔레비전에서 <미지와의 조우>가 방영되던 시절이었다. 스티븐 스필버그나 알프레드 히치콕, 존 포스, 하워드 혹스의 영화를 보면서 성장했다. 당시 일본에서는 3편을 동시 상영하는 극장이 있었는데 영화자료관에서 이미 상영된 것들을 상영하곤 했다. 그런 영화관에서는 50~60년대 영화는 잘 상영하지 않았다. 텔레비전에서 히치콕의 영화를 보고 흥미가 생겨 관련된 책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책에는 쓰여 있지만 볼 수 없는 영화를 체크해서 메모를 해두기도 했다. 이후 텔레비전이나 영화관에서 상영되지 않는 작품들을 체크해 나갔는데 리스트가 길어질수록 볼 수 없는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대학에 입학해서 영화 서클을 하게 됐다. 그곳 부원들끼리 두 달에 한 번씩 영화관이나 텔레비전에서 볼 수 없는 영화를 선정해 필름을 빌려 대학교 홀에서 상영했다. 당시 일본에는 16mm 필름을 대여해 주는 곳이 있었는데 부원끼리 돈을 모아서 충당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가장 먼저 배운 게 16mm 영사기를 다루는 법이었다. 그때는 일본의 어느 대학이든 16mm 영사기를 갖추고 있었다. 상영하는 작품에 관한 리플렛을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었다. 이런 활동의 연장선에 플래닛 플러스 원이 있다. 일반적인 영화관과는 다르게 우리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작품을 뽑아서 상영하는 자주상영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에 구로사와 기요시가 8mm로 영화를 자주제작한다는 기사를 봤다. 나도 친구들과 극 영화를 자주제작하기도 했다. 1990년대 초두에 도쿄로 이사를 가서 5년 정도 살았는데 그때 구로사와 기요시와 알게 되어 그의 작품의 각본을 쓰게 됐다. 1980년대 이전에는 일본에서 자주제작하던 감독들이 프로로 데뷔하기 어려웠다. 보통 영화사에 취직해서 7~8년 동안 조감독을 하고 감독이 되는 게 일반적인 수순이었는데 70년대가 되면 영화사들이 어려워진다. 영화감독을 지망하는 사람들이 있어도 영화사에서 조감독을 모집하지 않았다. 그래서 피아영화제(PIA Film Festival)에 자주제작 영화를 출품하고 감독이 된 사람들이 생겨났다. 지금 60대 정도인 감독들은 대개 그렇게 자주제작 영화를 만들던 사람들이다.

90년대 중반에 구로사와 기요시, 다카하시 히로시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과 함께 기요시의 집에 모여 밤새 영화 얘기를 하곤 했다. 그러다 우리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기획은 영화사에서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시에 젊은 관객은 영화를 거의 보지 않았고, 영화사는 영화의 내용이 엉성하더라도 인기가 있는 아이돌이나 스타가 출연하길 원했다. 스타가 출연하기만 하면 영화감독이 그 안에서 뭘 해도 좋다는 게 일반적이었다.

여러 편의 영화를 동시 상영하는 시스템이 있었는데 한 편은 제대로 된 배우와 스토리를 갖추고 있는 작품을 틀고, 다른 한 편은 소위 ‘B영화’, 즉 이상한 영화를 틀었다. 대표적인 게 로망 포르노다. 그때의 감독들은 자신만의 시도를 하는 게 가능했다. 80년대에 접어들면서 시스템이 붕괴하면서 감독이 자신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작품을 찍지 못하게 됐다. 흥미롭고 좋은 작품들은 흥행엔 참패했다.

그때는 스필버그나 조지 루카스가 활동하던 시기였고 대학에서 영화를 배우던 사람들이 감독으로 데뷔하는 걸 보면서 관객을 키워야 한다는 걸 새삼 절감했다. 영화를 보지 않고 성장한 세대들이 영화가 가진 재미를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1920년대 이전의 무성 영화를 포함해서 오래된 영화들에는 이미지를 어떻게 구성하는지에 대한 참신한 아이디어들이 굉장히 많다. <네 멋대로 해라>의 대사에도 나오는 것처럼 할리우드의 수많은 영화 문법들이 1912년 그리피스의 작품에서 이미 시도되었다. 젊은 감독들에게 그런 좋은 영화를 보여주지 않으면 영화엔 미래가 없다고 생각했다. 일반적으로 감독이 영화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영화를 만들기 이전에 영화를 보여주는 게 앞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랑스의 누벨바그나 독일의 뉴 저먼 시네마도 모두 시네마테크가 있었기에 가능한 창작 활동이었다.

휴대폰으로도 영화를 볼 수 있는 시대가 왔지만 개인적으로 필름이야말로 영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복수의 사람들과 함께 보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 고베의 한 영화관에서 우디 앨런의 <애니 홀>을 봤다. 당시의 나에겐 그 영화가 그리 재밌지 않았는데, 어떤 외국 관객들이 한 대목에서 폭소하고, 다른 대목에서는 또 다른 관객층이 폭소하는 모습을 봤다. 극장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봤을 때 그곳은 하나의 사회가 형성된 거라고 볼 수 있다. 각자의 인생 경험에 따라서 영화의 서로 다른 장면에서 반응하는 걸 보게 된다. 그러면서 내가 모르는 세상이 많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초등학생 때 <시민 케인>을 봤고 재미없다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자꾸 명작이라고 해서 고등학생 때 한 번, 대학생 때 또 한 번 다시 봤다. 그때서야 무척 흥미롭고 훌륭한 영화란 걸 알게 됐다. 연령과 지식이 쌓이면서 영화의 풍부한 레이어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플래닛 플러스 원을 그런 장소로 생각하고 있다.


강민구 긴 시간 동안 세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일본의 미니시어터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대학 시절 영화 동아리 활동을 했던 분들이 많은데 도미오카 대표도 극장을 운영하고 있지만 영화 제작에 대한 관심이 여전히 있을 것 같다. 영화와 관련된 워크샵이 있다면 소개해주면 좋겠다.


도미오카 구니히코 ‘시오토’라는 프로젝트가 있다. 플래닛 플러스 원을 20년간 운영해 왔는데 1996~1997년경에 젊은 감독 지망생들이 자신이 만든 16mm 작품을 가지고 와서 상영해 달라고 했다. 우린 주로 오래된 영화들을 틀고 있었는데 그때 무명의 젊은이들이 만든 작품을 상영했다. 그러면서 젊은 감독들을 발굴하고, 그들의 작품을 상영하는 것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러던 중 오사카시에서 영화제를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왔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시네 드라이브’라는 간사이 지역 자주영화 페스티벌을 기획하고 있었다. 그래서 대신 시(市)의 문화예산으로 제작 프로그램을 운영하면 어떨까 싶었다. 젊은 감독들에게 예산을 지급해서 이듬해 영화를 제작하도록 하는 전주영화제의 ‘디지털 3인 3색’을 참조했다. 그렇게 생겨난 게 시오토다. 전주영화제만큼 많은 예산을 제공하지는 못하지만 한 작품당 30만 엔 정도 지급하고 있다. 

최근 들어 일본의 미니시어터에서도 독립영화를 많이 상영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최근의 독립영화들은 질이 저하되었다고 생각한다. 누구든 간단하게 영화를 찍는 시대가 되었다. 감독 본인이나 감독의 친구들이 관객으로 오곤 한다. 이게 독립영화 상영의 실상이라고 생각한다. 감독이 관객들에게 무언가를 전하고 싶다는 건 많이 느껴지지 않고 감독 자신의 사적인 표현만 있을 뿐이다.

비평이 결여된 영화계의 상황도 이에 영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보기 힘든 영화를 상영하는 장소를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의 일본 영화계는 비평의 영향력이 없다. 아무도 비평을 쓰지 않고, 영화에 관한 글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의 사적인 코멘트에 그친다. 영화가 왜 재미있는지를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 옛날 영화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관객을 위한 설명도 부족하다. 이런 것들이 앞으로 제작될 영화들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한다.


청중 1 젊은 관객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극장에서 좋은 영화를 상영해도 낡은 시설에 한계를 느낄 때가 있다. 젊은 관객들을 유치하고 싶지만 쉽지 않다. 이에 대해선 어떤 고민을 하고, 실천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도미오카 구니히코 시설이 아니라 내용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질적으로 뛰어난 작품을 제대로 알리는 수밖에 없다. 플래닛 플러스 원은 교실 정도의 크기이고 의자도 간이 의자를 사용한다. 영화가 목적이면 시설이 좋지 않더라도 관객을 끌 수밖에 없다. 홍보에도 한계가 있다. 좋은 작품을 잘 알리는 게 가장 우선이기 때문에 극장의 스태프들이 작품에 대해 직접 글을 써서 좋은 작품이라는 걸 증명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밖에 오역이 많은 자막을 수정하는 작업을 하기도 했다. 관객이 줄어든다고 얘기하지만 그 이야기는 20년 전에도 했다. 한 번 오고 말 사람을 잡기보다는 영화를 목적으로 꾸준히 찾아올 사람들을 찾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체험이라고 생각한다. 발 밑으로 쥐가 지나가는 누추한 극장에서 스즈키 세이준의 영화를 봤던 기억이 있다. 10년 전 한국에 왔을 때만 해도 한국의 커피는 일본보다 맛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제는 서울이든 오사카든 똑같은 백화점이 있고 스타벅스가 있다. 차이나 낙차가 이야기를 만든다고 생각하는데 체험으로서의 세계가 점점 균일화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청중 2 관객의 세대 구성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도미오카 구니히코 1980년대 일본은 ‘시네필 세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영화의 붐을 겪었던 세대다. 그때의 젊은 관객들이 이제 나이가 들어 중년 관객으로 영화를 보러 온다.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스크린으로 영화를 본다는 공통의 욕망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다. 단점이라고 할 만한 건, 미니시어터에 찾아오는 연령층이 높다 보면 젊은 관객들이 선입견을 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영화관에는 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든 연령층이 찾아오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한 회식 자리에 80대 노인분이 계셨는데 그분이 최근에 볼 만한 영화가 없다고 하길래 우리 영화관에서는 존 포드의 <콰이어트 맨>을 상영한다고 말씀드렸다. 당신은 어릴 적에 그 영화를 봤고 최근 중고 DVD를 구입해서 다시 봤다고 하면서, 어릴 적에 놓쳤던 것들이 새롭게 보이더라고 하더라. 이게 영화라고 생각한다. 관객들이 영화가 가진 복잡한 레이어를 다시 발견하게 하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이부터 노인층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한 편의 영화 안에서 유기적으로 다수의 반응이 발생하고, 이를 통해  사회에 나와 다른 타자가 존재한다는 인식을 사고하게 하는 곳이 영화관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동시에 각기 다른 반응을 하는 것. 그게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청중 3 간사이 지역의 다른 극장들과 어떤 교류를 가지는지 궁금하다.


도미오카 구니히코 일종의 간사이 네트워크가 있어서 간사이 지역에서 극장을 운영하는 분들과 종종 모여 이야기를 한다. 도쿄와 비교했을 때 오사카는 극장 간의 교류가 비교적 많은 편이다. 간사이 지역에서도 한국의 독립영화를 상영할 수 없을까 생각하고 있다. 극장끼리 작은 서킷을 만들어서 서로 자기 나라의 영화 상영을 제안하는 시스템이 구축되면 좋을 것 같다. 홍콩과 마카오에서 독립영화를 만드는 한 감독의 작품을 모아서 상영한 적이 있었다. 비슷하게 홍콩, 대만, 한국, 일본 등 아시아 지역의 영화관들이 동시에 참여하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어떨까. 배급사가 관여하면 어쩔 수 없이 흥행 실적이 중요해진다.


정리 황선경 관객에디터

사진 장승미 대전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