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베니스 인 서울]

 

“서울을 배경으로 K-pop 가수가 등장하는 영화를 찍고 싶다”

- <사랑과 총알을 그대에게> 상영 후

마르코 마네티 감독, 미켈란젤로 라 네베 작가 시네토크

 

미켈란젤로 라 네베(시나리오 작가) 무엇보다도 서울에 와서 무척 기쁘다. 서울은 정말 아름답고 놀라운 도시다. 

허남웅(영화평론가) 이탈리아 뮤지컬 영화를 본 건 오랜만이었다. 어떻게 처음 아이디어를 얻었는지 궁금하다.

마르코 마네티(감독) 내가 조금 ‘맛이 간’ 성격이다(웃음). 나도 어떻게 아이디어를 얻었는지 잘 몰라서 답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이 영화를 만들기 전 동생과 함께 뮤직비디오를 100편 정도 만들었는데 그래서인지 내 영화에는 뮤지컬이나 오페라적인 측면이 있다. 이 영화의 배경은 나폴리인데, 나폴리는 다른 도시가 제공하기 힘든 경험을 선사하는 도시다. 나폴리는 혼돈스럽고 음악적인 매력을 갖고 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나폴리를 배경으로 뮤지컬 영화를 떠올렸다. 일반적으로 범죄와 뮤지컬은 잘 어울리지 않지만, 그 보기 드문 조합을 해보려고 했다.

허남웅 뮤지컬 장르의 시나리오를 쓸 때는 다른 장르보다 생각할 지점이 더 많을 것 같다. 

미켈란젤로 라 네베 기술적 어려움이 있다. 일단 노래를 영화에 맞춰야 하고, 한 배우가 아니라 여러 명의 배우들이 노래를 불러야 하기 때문에 어떤 노래를 선택해야 할지 많이 고민했다. 하지만 노래를 넣음으로써 관객에게 감동을 전달하는 데 굉장한 도움을 받았다. 기술적으로는 어려웠지만 결과적으로 나에게도 좋은 경험이었다. 개인적으로 뮤지컬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 영화를 통해 뮤지컬을 좋아하게 되었다.

허남웅 비슷한 질문을 감독님께 묻고 싶다. 뮤지컬 영화이기 때문에 캐스팅 할 때도 더 고민을 해야 할 것 같다. 

마르코 마네티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있다. 일단 노래를 부를 수 있어야 하고 춤도 출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배우이면서 노래를 할 수 있는 사람 중 반을 캐스팅했고, 나머지 반은 가수이면서 연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캐스팅했다. 파티마 역을 맡은 배우(세레나 로시)는 노래도 잘하고 연기도 잘하는 완벽한 배우였다.

허남웅 이 영화는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하는 007 영화를 뮤지컬로 만든 것 같은 느낌이다. 007 시리즈를 비롯한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인용이 많다.

마르코 마네티 007 시리즈나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인용은 극 중 마피아의 아내를 떠올리며 생각한 것이다. 보다시피 이 영화에는 남자 주인공 2명, 여자 주인공 2명이 등장한다. 그런데 남자 주인공들은 주로 자신이 맡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대장은 대장의 일을 하고 부하는 부하의 일을 이행한다. 하지만 여자 주인공들은 이들과 다르다. 이들은 창의적으로 행동한다. 게다가 마리아는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나의 놀이처럼 생각한다. “당신은 왜 할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확실하고 멋있게 사람을 죽이지 못하느냐.”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이런 행동을 보이면서 할리우드 영화와 현실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즉 현실 속에서도 할리우드 영화와 같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허남웅 나폴리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영화 로케이션을 하며 어떤 기준을 가졌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나폴리라는 배경이 이야기에 어떻게 녹아들었는지 듣고 싶다. 

마르코 마네티 우리는 로케이션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어느 정도 시나리오가 풀리면 그 다음 바로 로케이션을 진행한다. 할리우드처럼 경제적인 상황이 좋으면 새로운 세트를 지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사실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시나리오에 딱 맞는 장소를 찾는 건 매우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장소를 찾다가 적합한 곳을 찾으면 거기에 맞춰 시나리오를 바꾸기도 했다. 이를테면 영화 안에는 항구에서의 총격전을 포함해 항구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시나리오에는 항구 장면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나폴리에서 장소를 찾다 보니 항구와 고층 빌딩이 많이 나와서 자연스럽게 영화에도 등장하게 됐다. 사실 이 영화에서는 시나리오가 아니라 로케이션이 지휘권을 갖고 있었다.

나도 그렇고, 미켈란젤로도 그렇고 나폴리 출신이 아니다. 그래서 지금 나폴리의 성격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조금 조심스럽다. 하지만 우리는 로케이션 매니저를 따로 고용하지 않고 직접 그 장소를 돌아다닌다. 서울에 와서도 사흘 동안 열심히 땀 흘리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이런 작업을 나는 너무 좋아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람도 직접 만나고, 시나리오를 쓰는 도중에도 로케이션을 다니며 인물을 새롭게 추가한다. <사랑과 총알을 그대에게>를 만들며 나폴리에서 만난 분이 있는데, 나중에 그분이 이 영화를 보고 ‘이게 바로 나폴리다.’라고 얘기해 주었다. 우리 보고 나폴리 출신이 아니냐고 물을 정도였으니 우리들이 나폴리를 완전히 잘못 이해한 건 아닌 것 같아 기뻤다. 영화를 잘 만들었냐 못 만들었냐를 떠나, 우리는 나폴리에 대한 사랑을 갖고 그 사랑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려고 했다. 

참고로 여러분들이 영화를 보는 동안 나는 잠깐 밖에 나가 있었다. 그런데 극장 옆에 아주 작은 골목이 있었고, 불이 켜져 있길래 가봤더니 여러 식당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 풍경을 보는 순간 여기서 뭘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극장으로 돌아와 미켈란젤로를 데리고 와서 같이 그 골목을 걸었다. 미켈란젤로도 여기를 배경으로 뭔가 써보고 싶다고 했다. 이게 우리의 작업 방식이다. 

미켈란젤로 라 네베 시나리오 작가들이 방에 갇혀 작업을 오래 하다 보면 폐쇄적으로 바뀐다. 시나리오도 기술적으로만 접근하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밖에 나가서 직접 특정한 장소를 보며 작업을 하면 마음도 열리고 결과물도 더 좋게 나온다. 

관객 1 이탈리아 관객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봤는지 듣고 싶다. 현재 한국의 시민들은 많이 개인화되었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떼지어 다녔다면 지금은 더 이상 그런 모습을 찾기 어렵다. 그런 맥락에서 영화 속 치로의 캐릭터가 하는 행동들이 인상적이었다. 현대 이탈리아의 젊은 세대에게 감독님이 어떤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았다.

마르코 마네티 좋은 질문을 해주어서 고맙다. 이탈리아 관객들에게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관객도 많이 찾았고 비평가들에게도 긍정적인 평을 받았다. 올해 최고의 영화로 꼽히기도 했다. 10월 5일에 개봉해서 지금도 상영하고 있을 정도다.

한국의 개인주의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 별로 없다. 영화 속 치로는 사랑 때문에 친구를 배신한다. 그리고 자신의 진정한 친구였던 로사리오를 죽이고 진정한 살인자가 된다. 두 사람 사이에는 우정이 존재하는 것 같지만 그 우정은 마피아 조직 내에서의 우정일 뿐이다. 치로도 극 중에서 “너는 사실 마피아 두목을 위해 살아온 것이다.”라고 말한다. 치로든 로사리오든 이들은 결국 마피아 두목의 부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개인의 삶, 개인의 자유를 서로 존중하는 사람만이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어떤 이유에서든 개인의 삶과 자유를 파멸시키는 사람은 진정한 친구로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관객 2 말씀하신 것처럼 영화에 나폴리에 대한 애정이 많이 담겨 있다. 그런데 나폴리의 범죄자들이 사는 아파트를 보여주는 장면도 있고, 나폴리를 떠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이처럼 나폴리를 부정적으로 그리는 장면들도 있는데 이런 장면에 대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마르코 마네티 영화 속에서 세 개의 중요한 장소가 나온다. 첫 번째는 나폴리의 스캄피아(Scampia)라는 곳이다. 영화 안에서는 부정적인 공간으로 묘사되지만 이 지역은 나폴리 전체를 대변하는 곳이 아니다. 물론 약간 낙후된 동네이기는 하지만 위험한 지역은 절대 아니다. 영화 안에는 미국 관광객들이 소매치기당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진지하게 부정적으로 그린 건 아니고 약간 유머러스하게 그리려고 했던 장면이다. 나폴리는 범죄만 벌어지는 장소는 아니다. 알다시피 문화적, 예술적으로 풍부한 가치를 지닌 곳이고 삶의 생동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나쁜 동네가 아니라는 걸 다시 한 번 말씀드리고 싶다(웃음). 

두 번째 장소는 뉴욕인데, 뉴욕에 대해서는 특별히 할 말이 없다. 굳이 이야기를 하자면, 악의 무리는 세계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영화 속 범죄는 주로 나폴리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동시에 뉴욕과도 연결되어 있다. 

세 번째는 호놀룰루다. 호놀룰루라는 장소를 나폴리와 비교해서 보여주고 싶었다. 영화를 만들면서 나폴리가 굉장히 아름다운 곳이란 걸 새삼 느꼈다. 그런데 나폴리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는 곳을 살기 어려운 동네라고 말한다. 즉 우리는 나폴리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칭찬하지만 정작 그곳의 사람들은 그 칭찬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나폴리는 예술적으로 큰 가치를 지니고 있는 곳이지만 나폴리 사람들은 그 가치를 외부인처럼 생생하게 느끼기가 오히려 어렵다. 그래서 나폴리 사람들은 나폴리를 떠나고 싶어한다. 이런 아이러니를 호놀룰루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 나폴리에 살던 사람들이 호놀룰루에 가자 “나폴리가 아니야, 나폴리가 아니야.”라는 가사의 노래를 부른다. 그래도 나폴리가 최고라는 메세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관객 3 개인적인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들 중 몇몇은 마치 악당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르코 마네티 007 시리즈의 주인공 중 한 명인 다니엘 크레이그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영화에서 스무 명을 총으로 쏴 죽여도 어느 누구도 나보고 뭐라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영화에서 담배를 한 대 피우니까 사람들이 뭐라고 하더라.” 이 말을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다. 

죽이는 것과 훔치는 것은 다른 일이다. 비록 영화 속에서 도둑질을 하긴 하지만 그건 마피아들의 보물을 훔치는 것이니 어떻게 보면 선한 것이기도 하다. 게다가 그 사람이 날 죽이려고 계획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괜찮은 것 같다. 내가 얘기하고 싶은 건, 영화는 결국 현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영화는 현실을 과장해서 보여준다. 특히 도덕이나 윤리 같은 문제를 과장된 상황 속에서 보여주려 한다. <사랑과 총알을 그대에게>도 우화적인 측면이나 은유적인 측면을 통해 현실 세계의 삶과 죽음을 보여주려 했다. 물론 현실에서는 사람을 그렇게 죽이면 안 되지만, 다시 말씀드리고 싶은 건 영화는 현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조금만 더 이야기하고 싶다. 난니 모레티 감독의 작품 중 영화감독이 한 영화비평가를 굉장히 괴롭히는 내용의 영화가 있다. 자신의 영화를 계속 비판했다고 붙잡아서 고문을 해버린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그렇게 고문을 했다고 해서 실제 난니 모레티가 그런 고문을 하고 싶어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그런 장치를 통해 현실 세계와 그 속의 폭력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건 이렇게 예술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영화다. 

허남웅 마지막으로 작가님과 감독님께 인사 말씀을 듣고 마무리하겠다.

미켈란젤로 라 네베 무엇보다 여러분들이 깊이 있게 이 영화를 봐주어서 감사하다. 조금 전 극장 옆에서 본 골목도 그렇고, 이번에 구상한 것을 구체화시키기 위해 가능한 한 빨리 한국에 다시 오고 싶다. 

마르코 마네티 나도 빨리 한국에 다시 오고 싶다. 지금은 구상 초기 단계라서 자신 있게 말하긴 어렵지만 요즘 상하이를 배경으로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다.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이탈리아에 살던 주인공이 눈을 뜨니 하루 아침에 상하이에 와 있다. 그는 빨리 이탈리아로 돌아가야 하지만 여권도 없고 신분증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중국의 한 밀수업자를 만나 그의 도움으로 이탈리아로 돌아간다. 그런데 지금은 그 밀수업자를 K-pop 가수로 바꾸고 싶다(웃음). 그리고 상하이보다 서울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지금 결정할 수는 없고 로마로 돌아가자마자 동생과 함께 상의를 해야 할 것 같다. 

허남웅 조만간 K-pop 가수가 등장하는 마르코 마네티 감독의 영화를 기대하면서 큰 박수 부탁드린다. 


일시 12월 10일(일) 오후 6시

정리 김혜령 관객에디터

사진 허윤수 자원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