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포르투갈 영화제 - 포르투갈의 여성 감독들]


<세 남매>(테레사 빌라베르데, 1994)



테레사 빌라베르데의 <세 남매>는 어느 소녀의 어둡고 잔인한 현실을 숨김없이 그린 작품이다. 가난한 가정의 둘째 딸인 마리아는 학업과 직장을 병행할 뿐 아니라 가사 일까지 도맡아 하고 있다. 한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많은 일이다. 게다가 시각 장애인인 아버지는 가족 구성원들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남편’과 ‘아버지’라는 권위를 무기로 아내와 자식들에게 육체적, 정신적 폭력을 가하는 그는 마리아를 가장 힘들게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마리아의 직장 상사는 이유 없이 그녀를 구박하더니 성폭행까지 시도하고, 클럽에서 만난 남자는 마리아의 몸만을 원한다. 그 후로도 더 나쁜 일들이 벌어지며 마리아는 점점 구석으로 몰린다. 경찰은 살인 사건 때문에 마리아를 조사하고, 어머니는 남편의 폭력을 견디지 못해 집을 나가며, 마리아의 오빠와 동생마저 자유를 찾아 떠난다. 오직 마리아만이 이 모든 일을 짊어진 채 집을 떠나지 못한다.

어린 소녀가 사회의 어두움 때문에 고통받는 모습을 그린 영화가 드문 편은 아니다. 지금껏 많은 감독들이 다양한 폭력의 양상과 그에 반응하는 여성 주인공의 고통을 그려왔고, 빌라베르데의 <세 남매> 역시 ‘여성 수난극’의 계보 안에 놓을 수 있는 작품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특별하게 다가오는 건 폭력을 묘사하는 방식이 아니라 폭력에 반응하는 주인공의 모습이다. 마리아 데 메데이로스가 연기한 마리아는 자신에게 닥친 고난 앞에, 흥미롭게도, 슬픔이나 분노가 아니라 피로를 호소한다. 마리아의 지인이 묻는다. “슬프니?” 이 질문에 텅 빈 눈의 그녀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피곤해요.”

영화가 끝나도 이 장면이 계속 마음에 남는다. 고난으로 가득한 일상과 거기에서 발생하는 우울과 절망을 극복하는 것은 물론, 갑자기 자신에게 닥친 비극과 타인의 죽음조차도 결국 자신이 해결해야 할 ‘일’로 받아들이는 그녀의 지친 모습은 고통에 대한 어떤 노골적인 묘사보다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다시 생각해보면 마리아는 어떤 극적인 계기로 인해 한순간에 추락하는 게 아니라 조금씩, 서서히 마모되어 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생기를 잃고 메말라가는 마리아는 결국 어떤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이는 어쩌면 탈진의 상태에 처한 마리아가 마지막으로 자신의 무기력에 저항하려 한 적극적인 행위였을지도 모른다.

김보년 프로그램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