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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를 영화 안에서 새롭게 상상하다 - <사랑과 총알을 그대에게>

[2017 베니스 인 서울]

  

나폴리를 영화 안에서 새롭게 상상하다

 - <사랑과 총알을 그대에게>


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상영된 마네티 형제의 <사랑과 총알을 그대에게>(2017)는 마피아 조직이 벌이는 범죄 행각과 킬러와 여인의 운명적인 로맨스를 동반한 독특한 뮤지컬 코미디이다. 영화는 나폴리의 ‘수산물의 왕’으로 불리는 마피아 보스 빈첸조의 장례식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첫 번째 뮤지컬 넘버가 연주되면 관객들은 관 속에 누워 있던 빈첸조가 눈을 부릅뜨고 노래를 부르는 광경을 지켜보게 된다. 도입부를 장식하는 빈첸조의 장례식이, 그가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나폴리를 떠날 수 있도록 꾸며낸 아내 마리아의 위장극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건 얼마 뒤의 일이다. 그 과정에서 우연히 빈첸조가 살아 있다는 걸 목격한 간호사 파티마는 킬러들의 표적이 되는데, 그녀를 따라온 킬러이자 과거의 연인인 시로와 재회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된다.

우스꽝스럽고 과장된 코미디 영화다. 한 가지 특별한 점이 있다면 범죄조직이 도시를 장악한 나폴리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코미디라는 것이다. 마네티 형제는 영화의 중심 공간으로 나폴리를 선택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영화와 TV에서 볼 수 있는 우울하고 절망적인 도시가 아니라, 몇 가지 문제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문화적 활력과 공감을 불어넣는” 나폴리를 보여주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몇 년간, 이탈리아 영화가 제시하는 ‘현실적인 나폴리’의 풍경은 가난과 마약 밀매, 악명 높은 범죄와 부패로 얼룩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마테오 가로네의 <고모라>(2008)가 그 대표적인 사례로 기억된다. <사랑과 총알을 그대에게> 또한 이와 같은 현실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는다. 나폴리를 찾은 미국인 관광객들의 모습을 담아낸 영화의 도입부 에피소드에서 카메라는 나폴리 북부 스캄피아의 황량한 도시 전경을 전면에 드러내고, 관광객을 집중적으로 겨냥한 소매치기 행태를 보여준다. 요컨대 도입부에서 묘사되는 나폴리는 한쪽에선 빈첸조의 가짜 장례식이라는 거대조직의 부패가, 다른 한쪽에선 가난한 이들의 일상화된 범죄가 만연하게 벌어지는 공간이다.

다만 <사랑과 총알을 그대에게>는 도시의 냉엄한 현실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대신, 음악과 영화라는 대중적인 장치들로 작품의 분위기를 전환한다. 마리아는 <노팅 힐>(2005)을 비롯한 각종 영화의 DVD를 돌려보며 대사를 따라 하고, <007 두 번 산다>(1967)에서 얻은 아이디어로 빈첸조의 가짜 장례식을 기획한다. 빈첸조와 마리아는 자신들의 지하 아지트를 ‘패닉룸’이라 부르고(조디 포스터가 출연한 미국 영화의 제목이라는 첨언도 잊지 않는다), 그 방의 한가운데에는 마릴린 먼로의 사진이 큼지막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치로와 다시 만난 파티마는 <플래시댄스>(1983)의 주제곡(‘What A Feeling’)에 맞춰 춤과 노래를 선보인다. ‘브루스 리’처럼 무술을 배웠다는 치로는 조직원들을 처단하는 과정에서 <미션 임파서블>(1996)과 <매트릭스>(1999) 풍의 액션을 패러디한다. 뮤지컬의 양식과 대중문화의 기호들이 뒤섞이며 <사랑과 총알을 그대에게>의 노선을 분명히 나타내는 것이다.

거칠게 정리하자면, <사랑과 총알을 그대에게>의 무대에는 세 가지 영화적 힘이 공존한다. 하나는 제임스 본드 영화에서 빌린 계획으로 빈첸조의 죽음이라는 가상의 영화를 연출하려는 마리아의 열망이다. 이것이 <사랑과 총알을 그대에게>라는 영화의 서사를 시동케 하는 동력으로 기능한다. 다른 하나는 과거의 사랑을 되찾기 위해 조직을 배신하고 죽음을 감수한 도피를 감행하는 치로와 파티마의 낭만적인 여정이다. 이들의 여정이 진전됨에 따라 영화는 초반부에 주어진 황량한 나폴리의 외관에서 벗어나 전형적인 액션 누아르 영화의 서사와 화면으로 모습을 달리한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의 열망이 있다. 각종 범죄와 부패가 창궐하는 나폴리의 피폐한 무대 위에 뮤지컬과 영화라는 대중문화의 외형을 덧씌우고자 하는 본편의 연출자 마네티 형제의 기획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이질적인 요소들의 충돌을 수용하는 연출자의 태도가 때로는 눈 뜨고 보기 민망한 장면들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탁월한 유머와 예기치 않은 근사한 리듬을 연주해내는 원리로 작동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사랑과 총알을 그대에게>의 나폴리는 감독 자신의 말처럼 ‘문화적 활력’으로 가득한 가상의 영화 도시로 거듭난다.

 

김병규 관객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