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빗 린치 특별전]


거대하고도 황홀한 영화적 인상화 - <인랜드 엠파이어>

  

  데이빗 린치의 <인랜드 엠파이어>의 줄거리를 요약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영화 속 이미지들의 인과관계는 물론 인물들의 정체조차 명확히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마케팅을 맡은 사람들조차 내용을 어떻게 설명해야 될지 몰라 대충 ‘곤경에 빠진 여자’라고 태그라인을 붙이고 말아버렸다는 건 농담이 아니다. 물론 억지로 이렇게 추려볼 수는 있을 것이다. 거물 남편을 둔 한 여배우가 새로 이사 온 이웃의 예언대로 얼마 전 오디션을 본 영화에 캐스팅이 된다. 불륜과 사랑에 관한 낭만과 광기를 다루고 있는 것으로 짐작되는 그 영화는 알고 보니 두 주인공 배우가 살해를 당해 제작이 중단되고 만 어느 폴란드 영화의 리메이크작이다. 제작진은 무성한 소문과 불길한 예감을 뒤로하고 촬영을 개시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니키가 실제 현실과 극 중 현실 사이에서 혼란에 빠진다. 그러면서 영화 또한 그녀가 출연 중인 영화와 폴란드 원작영화 등을 넘나들며 거대한 악몽의 미로 속으로 접어들고 만다.

가능한 줄거리는 거기까지다. 그 다음부터 관객은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장면이 영화 속 영화의 한 장면인지 영화 속 실제 상황인지,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인물이 실제 주인공인지 주인공이 연기하는 인물인지 구분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거기다 애초부터 해석 불가능한 장면들도 적지 않다. 이를테면 토끼 탈을 쓴 배우들이 벌이는 실내극 장면이 대표적인데, 어떤 이들은 이를 린치의 다른 영상 작업들과 연관지어 파악해 보려고도 한 듯하나 별 소득은 없었던 듯하다. 자명한 사실은 누군가가 이 영화의 모든 조각들을 어떻게든 연결시켜 하나의 완벽한 해설을 도출해 본다고 한들 결국 거기에 절대적 근거나 토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이것은 내러티브 중심으로 영화를 보고 해석하려는 모든 시도를 일찌감치 좌절시키는 영화다. 대신 이 영화는 감상자에게 다른 태도를 요구한다. 데이빗 린치가 베니스영화제 기자회견장에서 직접 말한 것처럼, 이 영화가 퍼즐이라면 그것은 “지적 논리”가 아닌 “인상” 작용을 통해 끼워 맞춰야만 하는 퍼즐이다. 그중 특히 ‘인상’이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필름 카메라에 비해 디지털 카메라는 현대 회화의 붓과 같은 것에 훨씬 더 가까운 도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는 그의 카메라가 어떠한 대상에 대해 계획적으로 완성된 화면을 구성하기보다 구성 요소들에 의해 일어난 인상들을 말 그대로 그때그때 ‘찍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감상자는 어떤 장면의 대사나 공간적 구조나 인물 구도가 마치 자유연상 작용을 일으키듯 이후 다른 장면들을 잉태시키거나 파생시켜 나가는 상황을 종종 맞닥뜨리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에 사용된 디지털 카메라는 영화 제작의 현실적 조건과 한계에 기민하게 대처하기 위한 경제적 매체로서 선택되었다는 느낌 이상으로 창작자의 내적 필요에 의해 그의 영화적 아이디어들을 자유롭게 찍어내고 연결하고 덧칠하여 그것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배가시키기 위한 회화적 매체로서 선택되기도 했다는 느낌을 준다.

더불어 이 영화는 단지 디지털 카메라를 썼기 때문에 디지털 영화가 아니라 디지털 시대에만 가능한 지극히 실험적인 제작방식을 택했다는 점에서 중요하게 기억되는 디지털 영화이기도 하다. 할리우드에서 나름 잔뼈가 굵은 대감독과 대배우들이 2년 반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HD급도 아니고 소니 DV 카메라 PD-150을 가지고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짬짬이 되는 대로 영화를 찍은 것이다. 처음에는 장편 영화를 찍을 생각도 아니었다고 한다. 그저 단편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삼삼오오 모여서 촬영을 했고, 그러니 완성된 시나리오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었으며, 때로는 제대로 된 대본조차 없어 린치가 현장에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설명해 주면 배우들은 그것이 다른 장면들과 어떻게 연결될지 알지도 못한 채 그저 주어진 순간에 충실하여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과정상의 특징이 이 디지털 영화의 중요한 감각적 성질로도 그대로 옮겨져 있다.

누구의 간섭도 없이 초저예산으로 만들어진 이 거대하고도 황홀한 영화적 인상화는 조악하면서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 심도 화면의 포커스는 이따금씩 날아가 있으며, 등장인물들의 얼굴은 때때로 왜곡된 비율로 잡혀 있거나 과도하게 번득이고, 어둠은 종종 뭉뚱그려져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불명료하면서도 강렬한 현재적 인상들과 그 인상들이 안기는 불완전한 감각에 의존해 헤쳐 나가야만 하는 미적 미로에 다름 아니다. 특히 난감한 사실은 앞서 등장한 인물들, 공간들, 상황들에 대한 인상과 감각 또한 갑작스레 변모하기를 거듭한다는 점이다. 이 영화의 카메라가 로라 던이라는 배우의 얼굴을 다루는 방식만 봐도 그녀의 인상이 언제 어떻게 느닷없이 변해버릴지 전혀 가늠할 수가 없다. 비교적 친절한 음악과 사운드 디자인을 감안한다고 해도, 이 영화의 감상자는 준거점 없는 이야기의 세계, 원본 없는 감각의 세계에서 길을 잃기를 기꺼이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런 체험이 설렘보다 불편함과 귀찮음으로 다가온다면 <인랜드 엠파이어>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게 좋은 디지털적 영화 체험의 지옥이다.

 

이후경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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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