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소리는 오늘도]



“나의 얘기를 하고 싶었다”

- <여배우는 오늘도> 상영 후 문소리 감독과의 대화





장영엽(『씨네21』기자) 최근 영화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마치 유행어처럼 ‘기자님은 오늘도…’, ‘팀장님은 오늘도…’ 이런 말을 쓴다. 오늘 본 <여배우는 오늘도>는 여배우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여배우’ 대신 각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모든 사람들의 이름을 넣어도 무리가 없다. 그만큼 보편적인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임순례 감독은 최근 문소리 감독에 대해 “연기도 잘하고 연출도 잘하면 반칙이다”라고 하더라.


문소리(감독) 세상이 그렇게 공평하지 않다(웃음).


장영엽 오늘은 문소리 감독이 직접 인상적인 장면 세 개를 뽑아주었다. 먼저 기본적인 질문을 한 다음 그 장면들을 보며 이야기하겠다. 이 영화는 원래 세 개의 단편으로 시작한 걸로 알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 장편 개봉 프로젝트로 진행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문소리 세 편의 단편을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다 같이 묶어서 상영한 적이 있다. 그때 이 단편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완결성을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배우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우리들 이야기네요’란 반응을 들으며 용기도 좀 얻었다. 단편을 극장에서 개봉해 한국 영화의 다양성에 기여를 해보자, 이런 생각은 너무 거창하고(웃음), ‘뭐 어때? 해볼 수 있지’라고 생각했다. 영진위의 2017년 저예산 영화 개봉 지원을 받아 여기까지 왔다. 작은 규모로 개봉 중이다.


장영엽 엄청난 GV 릴레이를 하고 있다. 여러 배우들이 게스트로 참여하는 것에 관객들의 반응도 뜨겁다. 이 영화를 본 다른 배우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문소리 많은 분들이 ‘백만 번도 더 겪은 일이다, 아우 그럼’ 이런 반응을 보여주셨다(웃음). 만약 ‘남배우는 오늘도’였으면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 있었을지 궁금해하기도 하더라. 아나운서, 간호사, 유치원 선생님 등 살면서 직업인이면서 딸이자 엄마 등 동시에 여러 가지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한국 여성들의 삶에 대한 공감을 보여주셨다. 심상정 의원도 ‘심상정은 오늘도’를 만들어야 한다며, 완전 자기 이야기라고 많이 이야기하더라.


장영엽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가장 먼저 이 질문을 떠올릴 것 같다. 도대체 현실과 픽션의 비중이 어느 정도인가.


문소리 며느리도 모른다(웃음). 사실 나도 모른다. 우리의 기억은 정확한 게 아니고 재구성된 것이다. 어떤 것은 강렬하고 길게 남지만 어떤 건 짧게 왜곡되어 남는다. 그런 기억을 다시 영화로 만들기 위해 각색을 하면 하나의 신에 얼마나 많은 왜곡이 들어갈까. 영화 안에 치과 의사랑 사진을 찍는 신이 있는데, 내가 여러 사람들과 사진을 찍은 100번도 넘는 기억이 하나의 신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사실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소위 ‘팩트 체크’를 할 수 없다.

그런데 팩트보다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 느낀 나의 생각을 전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결국은 다 영화다. 실제 문소리가 나오고 실제 남편이 나오지만 전부 만들어진 것이다. 그걸 진짜처럼 보이게 하려고 노력을 했다. 그리고 그게 영화 만들기고, 그게 연기의 과정이라 생각했다. 전부 가짜인데 그걸 진짜로 믿게 하려고 온갖 가짜를 다 동원하지 않나. 가짜를 통해 진심을 전달하는 것. 그런 ‘놀이’가 영화 만들기이자 영화 보기가 아닐까.


장영엽 감독이 됐을 때 배우들에게 이것만은 보장해주고 싶다, 이건 꼭 지켜야겠다 생각한 부분이 있을 것 같다.


문소리 음... 돈은 좀 제대로 주고 싶다(관객 박수). 그런데 나도 사실 제대로 드린 것 같지는 않다. 적은 예산에 적은 회차로 찍다 보니 제대로 지급을 못 했다. 그리고 아역 배우와 작업을 할 때는 아동 연기자를 위한 조항, 법규 같은 것들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아이들한테 해서는 안 될 스케줄이나 촬영 환경이 보이면 마음이 아프다. 그런데, 나도 많이 노력했지만, 밤 12시에 재운 애를 새벽 4시 반에 다시 깨워서 연기를 시켰다. 비가 올 것 같아서 비 오기 전에 촬영을 해야 했다. 내 자식이면 이렇게 찍을까 싶을 정도로 미안했다.

그리고 인물의 등장도 중요하지만 퇴장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 인물이 영화 안에서 제대로 사라지지 않으면 그건 감독이 버리는 거라고 생각해 왔다. 조연이든 단역이든 그 사람의 삶의 무게는 똑같은 거다. 그 인격의 무게를 다 담아내지는 못할 망정 중간에 회피하거나 방기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3막에 나오는 감독 아내가 담배 피우는 장면을 집어넣었다. 원래 시나리오에는 그런 마무리가 없었는데 촬영 전날 이 역할이 떠올랐다. 감독 아내 캐릭터가 단지 다른 배우들의 머리채를 잡으라고 만든 건 아니니 이 인물도 많은 역사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 감정의 마무리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촬영 전날 담배 피우는 신 하나 찍자고 부산으로 오라고 했다. 4시간 걸려 서울에서 부산까지 오신 다음 담배 한 대 딱 멋있게 피우고 올라가셨다(웃음).


장영엽 이제 준비한 장면들을 보면서 이야기를 이어가도록 하겠다. 첫 번째 고른 사진은 1부에 나온 장면이다.




문소리 일단 산이 나오는 장면을 하나 넣고 싶었다. 1막은 ‘산에 간다’는 아이디어로 시작했다. 그런데 다 찍고 보니 북한산이 너무 멋있게 찍힌 거다(웃음). 너무 의미를 부여한 장면 같아 보여서 일단 그 장면을 뺐다. 그런데 나중에 마침 이 안양의 삼성산 정상은 자동차 도로와 가깝다고 하더라. 정말로 차에서 내려서 조금만 걸어가니 저런 산 정상이 나왔다. 굉장히 높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게 높은 곳이 아니다(웃음). 산 정상에 올라가면 뭔가 대단한 걸 느낄 것 같지만 기대와 다를 수 있다, 그런 생각을 담고 싶었다.


장영엽 1막과 2, 3막의 촬영감독이 다르다.


문소리 1막의 시나리오를 썼더니 막걸리 마시면서 얘기하는 장면이 홍상수 감독의 영화 같다고 하더라. 남녀가 눈빛 교환도 안 하는데 무슨 홍상수냐고 얘기했지만(웃음), 사람들이 자꾸 그런 말을 하더라. 박홍열 감독과 가볍게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그럼 제가 최대한 홍상수 감독스럽지 않게 찍어볼게요’라고 먼저 제안을 했다. 그래서 최대한 다르게 해보자고 했다.

2막과 3막을 찍을 때는 소위 ‘단편 영화’의 환경에서 만들려고 했다. 아시다시피 박홍열 감독은 홍상수 감독뿐 아니라 다른 영화 경력이 매우 많은 촬영감독이다. 그리고 많은 단편 영화들은 아직 상업영화에 데뷔하지 않은 분들이 주로 작업한다. 나도 <박하사탕> 전에 여러 단편 영화를 찍으며 새로운 동료도 사귀고 영화를 배웠던 기억이 있다. 그 경험이 지금도 내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나도 그런 기회를 젊은 영화인들에게 주고 싶었다. 그래서 아직 데뷔하지 않은 스태프 중 좋은 분을 만나 함께 진행했다. 그분이 최근 <우리들>로 장편 데뷔한 김지현 촬영감독이다.


장영엽 다음은 두 번째 장면이다. 3막의 장면이다.


문소리 이 장면은 일단 기술적으로 좀 아쉽다. 광량도 부족해서 벽에 화면이 제대로 비치는 것 같지 않다. 특히 벽지 무늬가 저렇게 도드라진다.

저 영상의 대부분은 연극 연출하는 이상우 선생님이 강원도에서 직접 촬영한 것들이다. 새벽 5시 30분에 저런 영상을 막 보내준다(웃음). 여기에 내가 헌팅 다니면서 직접 찍은 영상을 같이 편집해 만들었다. 저 안개 낀 갯벌도 내가 찍은 것이다. 거의 열흘 가까이 장례식장과 묘지 헌팅만 다녔는데 딸이 서해안 갯벌 체험을 하러 갔다가 ‘엄마도 왔으면 좋겠다’고 전화를 하더라. 그래서 혼자 부랴부랴 차를 몰고 서해안으로 갔다. 갈 때만 해도 ‘내가 지금 여기 갈 때가 아닌데’ 하면서 조급해했었다. 서해안에 도착했는데 안개가 너무 많이 꼈더라. 그렇게 안개 속에 혼자 있으니 묘한 감정이 생겼다. 사람들은 멀리 아른아른 보이고 쓰레기는 바닥에 굴러다니고, 이걸 찍어야겠다 싶어서 아이폰으로 바로 찍었다. 내가 아무리 머리를 써서 의도하고 계획을 짜도 삶이 내 앞에 보여주는 것 앞에 그냥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순간이 있는 것 같다.


장영엽 3막은 앞의 1, 2막과는 조금 다른 정서를 갖고 있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예술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감독 문소리’의 이야기가 더 드러난 것 같다.


문소리 2막까지 여배우가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고 나니 자연스럽게 ‘왜?’란 질문이 생기더라. 우리는 왜 그렇게, 무얼 위해 그렇게 고군분투하는 걸까. 명확한 답은 아니더라도 이 질문에 답하는 어떤 방향이나 지향이 있음을 얘기하고 싶었다. 그래야 이 이야기를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장영엽 이제 세 번째 장면이다. 3막의 마지막 장면인 공동묘지 장면이다. 이 장면은 정말 묘하다. 지금까지 보통 바스트숏이나 클로즈업이 많았는데 예외적으로 롱숏이 나온다.




문소리 시나리오에는 장례식장 앞의 강으로 설정했었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곳을 찾고 보니 거긴 너무 그림 같아서 마치 ‘정답’ 같더라. 강도 흐르고 삶도 흐르는 느낌, 삶과 죽음의 강을 건너는 그런 느낌(웃음). 무슨 국어 시험 문제 같기도 하고, 단지 그림 예쁘다고 영화에 넣는 건 아닌 것 같더라. 그래서 다시 다른 곳을 찾기 시작했다.

일단 이 사람들이 외로워 보이지 않기를 바랐다. 함께 걸어가는 느낌이 있기를 바랐고, 그래서 묘지를 생각했다. 나는 여기 무덤에 묻힌 분들이 단순히 죽은 사람이 아니라 각자 하나의 삶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이 많은 인생을 긁어 모아 영화를 만들고 배우는 저들의 삶을 가져와 연기를 한다. 먼저 세상을 떠난 이분들과 함께 숏을 만들고 싶었다. 나는 이게 ‘떼숏’이라고 생각한다(웃음).

영화 속 공간은 부산에 있는 공원 묘지인데, 어릴 때부터 많이 봤던 곳이다. 이렇게 역사가 보이는 곳을 찾았다. 서울-경기 지역에 안 가본 묘지가 없을 정도로 찾아다녔는데 최근 만들어진 묘지는 너무 질서정연해서 데스크탑 컴퓨터가 300대 놓여있는 것 같더라. 오래된 묘지는 너무 산 중턱에 흩어져 있고. 그래서 이 무덤을 떠올리고 부산으로 가자고 했다. 처음에는 스태프들도 안 좋아했는데 막상 도착해서 보더니 다들 동의했다.

영화를 개봉하고 이렇게 GV를 여러 번 하면서 극장의 관객석 풍경이 무덤과 굉장히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웃음). 무덤 17번, 18번 이런 식으로. 내가 지금 이 경사로를 올라 뒷문으로 퇴장을 하면 영화 속 장면과 비슷한 그림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내게 극장의 이미지가 무의식 속에 이런 식으로 남아있는 건 아닐까 생각을 하고 있다.


관객 1 재밌게 봤는데 스트레스도 너무 많이 받았다(웃음). 사는 건 힘들고 나는 피해자지만 또 살아갈 수 있는 건 친구들과 이런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나를 죽지 않고 살아가게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며 그런 느낌을 받았다.


문소리 나만 생각하고 나만 들여다보면 답이 안 나온다. 많은 문제는 관계 안에서 풀리는 것 같다. 나, 나, 나 하고 살아가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심지어 더 고통스러워진다. 그런데 관계를 들여다보면 배우는 것도 있고 위로도 얻는다. 때로는 다른 사람과 싸우면서 새로운 힘을 얻기도 한다.


관객 2 1, 3막은 화면비가 16:9인데 2막만 시네마스코프다.


문소리 오늘 전문가들이 많이 오신 것 같다(웃음). 이렇게 묶어서 개봉을 할 생각이 없었다는 강력한 증거다. 2막을 찍을 때는 달리는 장면이 중요해서 시네마스코프를 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2막에는 나와 다른 사람들 간의 거리를 중점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가로로 넓은 화면에서 인물 사이의 거리감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시네마스코프로 찍었다.

그렇게 촬영과 편집이 거의 끝난 다음 남편에게 보여주었더니 ‘무슨 생각으로 2.35:1로 찍었냐’고 묻더라. 사람들이 1막이랑 이어서 볼 텐데 통일을 해야 된다는 거다. 그래서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답했었다(웃음). 생각이 짧았던 거지.




관객 3 직접 캐스팅도 하셨을 텐데 캐스팅이나 오디션에서 어떤 기준을 갖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문소리 영화인들끼리 하는 얘기가 있다. 어떤 감독이 훌륭한 감독인지 판단하는 제일 쉬운 기준은 그 감독이 어떤 배우와 일하는지 보면 된다는 거다. 다시 말해 감독의 중요한 능력은 배우 캐스팅이다. 그렇다고 내가 좋은 감독이란 건 아니지만(웃음), 이번에 괜찮은 배우들이랑 많이 작업을 했다.

1막에는 비전문 배우랑 많이 작업했다. 배우와 배우가 아닌 사람의 이야기를 그리다 보니  비전문 배우를 많이 캐스팅했다. 그런데 2막에서부터는 이게 다큐가 아니라 ‘영화’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전문 배우들을 캐스팅했다.

이미 연기를 하는 분들이라서 특별한 연기 오디션을 보지는 않았다. 대신 잠깐 나오는 분들이라도 5분 이상 평범한 대화를 나누며 ‘실제 느낌’을 보려고 했다.


관객 4 보통 TV나 영화에는 20대 여성 아니면 노인 여성들만 많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 영화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여배우들이 나와서 좋았다.


문소리 그래서 이 영화를 만들 때 내 작품의 별명이 ‘중년 단편’이었다(웃음). 특히 단편 영화에는 중년 남성도 많이 나오지 않는다. 나는 내 주변에서 제일 평범하게 사는 편이다. 직업만 영화배우일 뿐이지 삼십 대 중반에 결혼해서 애도 있고 어른들을 모시고 살아간다. 그런데 내 주위에는 정말 다양하게 사는 친구들이 많다. 그 친구들이 ‘우리 얘기’가 담긴 영화가 없다고 말한다. 차이밍량이 ‘세계를 걱정하면 상업영화고 자기를 걱정하면 예술영화’라는 귀여운 얘기를 했다고 한다. 우리도 그런 얘기를 했다. 왜 이렇게 영화들이 우주를 걱정하고 세계를 걱정하냐고. 그냥 각자 걱정하는 영화를 만들자는 말을 했다. ‘우리의 걱은 사소한 건가?’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 그냥 우리의 얘기, 나의 얘기를 하고 싶어졌다.


장영엽 마지막 이야기를 듣고 오늘 자리를 마칠까 한다.


문소리 많은 극장에서 GV를 했는데 서울아트시네마는 서울아트시네마의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오늘 많은 얘기를 했는데 사실 내가 뭐라고 얘기했든 별 상관 없다. 여러분이 본 느낌 그대로가 좋다고 생각한다. 음… 앞으로도 나 역시 좋은 영화의 좋은 관객이 되도록 노력하고, 그런 인생을 즐기고 싶다. 그러면 여기서 더 자주 여러분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시 9월 29일(금) <여배우는 오늘도> 상영 후

정리 김보년 프로그램팀

사진 이정훈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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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