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무라 쇼헤이 회고전]



“이마무라 쇼헤이의 세계”





김성욱(프로그램 디렉터) 이마무라 쇼헤이 회고전을 기획하면서 덴간 다이스케 감독을 초청했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아들이기도 한 덴간 다이스케 감독은 <우나기>의 시나리오에도 참여한 시나리오 작가이자 영화감독이며, 현재 일본영화학교의 학장이기도 하다. 먼저 이마무라 쇼헤이에 대한 덴간 다이스케 감독의 이야기를 들어보겠다.

덴간 다이스케(감독) 아버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에 저항감이 있어 그동안 얘기한 적이 거의 없었다. 나는 오늘 상영한 <우나기>의 각본 작업에 참가했었다. 아버지와는 네 편의 영화에서 각본 작업을 함께했다. 작업을 할 때는 부자 사이라기보다는 각본가와 감독의 관계에서 격렬하게 싸우기도 했다. <우나기>는 원작소설을 가지고 있는데, 소설과는 이야기가 약간 다르다. 원작은 밤에 장어를 잡고 낮에 장어구이집을 하는 남자의 이야기다. 그런데 그런 설정으로는 제작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이발소로 설정을 바꿨다. 각본을 쓰다가 아버지와 영화의 방향성에 대해 심한 대립이 일어났다. 절반 정도 각본을 쓴 시점에서 나는 빠졌었다. 결국 이후의 이야기는 다른 사람이 썼고, 각본이 다 완성된 시점에 한 번 읽어봐 달라고 연락이 왔다. 재미없는 부분이나 안 풀렸던 부분이 있으니 읽고 수정해달라고 했다.

이 영화는 다행히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다. 유럽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고, 일본에서도 비교적 흥행에 성공했다. 한국에서도 일본 영화로서는 꽤 이른 시기에 개봉했던 걸로 안다. 만약 이마무라 쇼헤이의 영화를 <우나기>로 처음 접한 분들이라면 그의 다른 작품을 보고 놀랄 수도 있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하나의 스타일을 고수하지 않았고 시대마다 변화했다.



이마무라 쇼헤이 작품들의 공통점

그 작업들을 관통하는 공통점 몇 개가 있는데, 그 공통분모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많이 언급되는 것으로 첫 번째는 섹스 묘사가 항상 있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 영화를 볼 수가 없었다. “네 아버지는 에로 영화만 찍는다”며 주변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 처음 아버지 영화를 극장에서 봤는데, 일반적인 포르노와는 다른, 솔직히 보고 싶지 않은 영화였다.

두 번째 큰 특징은 차별받는 사람이나 범죄자, 아웃사이더들이 주로 등장하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마무라 쇼헤이의 영화는 일본인이 어떤 종교관과 사고관을 가지고 그동안 살아왔는지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구조주의적 접근이 작품 중심에 있다. 섹스의 문제나 소외자의 문제는 사회나 인간 심리의 큰 구조를 설명하기 위한 요소로 들어가 있다. 아버지의 전체 필모그래피의 중반쯤 되는 지점에서부터는 일본의 신화를 모티프로 해서 구조주의적인 영화를 만들게 된다. 대표적으로 <신들의 깊은 욕망>이 있다. 또 한편으로는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여러 사건에 관심을 가졌고, 그들을 리얼하게 묘사하려 했다. 그 시기에 여러 편의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도 했다. 다큐멘터리를 찍고 리얼리티를 추구하다 보니 배우의 연기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가질 때도 있었고, 그래서 다큐멘터리의 기법을 극영화에 활용한 작업도 있었다. 오늘 <우나기>도 그렇지만 말년의 작품들은 오히려 연극적인 연기를 표현한다.


영화 작업을 하며 아버지가 겪은 갈등들은 굉장히 흥미롭다. 모든 영화가 다 재미있지만 상업적인 영화는 한 편도 없다. 그래서 계속해서 가난해졌고, 영화를 찍을 때마다 빚이 늘어났다. 더 이상 도쿄에서는 살 수 없어서 시골로 이사했었던 기억이 있다.

아버지의 영화 세계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특징은 유머다. 어떤 작품을 보더라도 유머가 있다. 무거운 희극이라고 해서 본인의 영화를 ‘중(重)희극’이라고 불렀다. 아버지는 인생, 세상, 역사가 희극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빚쟁이들에게 쫓기는 상황이 희극적으로 느껴졌다는 아버지의 글을 본 적이 있다. 이마무라 쇼헤이는 정말 에피소드가 풍부했던 사람이다. 그중 하나는 빚에 쫓기면서 시골에서 살던 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아버지가 마을을 걸어가다가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뭔가 하고 봤더니 범죄의 현장 검증이었다. 범죄자가 아닌 사람이 살인 누명을 쓴 거였다. 아버지는 집에 돌아와서 양복으로 갈아입고 다시 그 현장으로 돌아갔다. 현장에 경찰관도 많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수고하십니다”라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안으로 들어갔고, 정말 흥미진진하게 현장 검증을 보고 들었다. 그러다 결국 관계자가 아닌 걸 들켜서 쫓겨났는데, 쫓겨난 다음에도 다시 한 바퀴 돌아서 부엌으로 이어지는 뒷문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그 집안 식구와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잡담을 나누고 있는 곳에 능청스럽게 끼어들어서 현장 검증하는 얘기를 계속 들었다. 어떤 게 궁금할 때는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집요하게 파고들었던 분이다. 이런 일화들은 정말 많다. 나는 아버지가 영화에서 소외자를 다룬 것도 처음부터 사회적, 사상적으로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알고 싶은 것에 대한 호기심에 먼저 충실했던 결과라고 생각한다.

아버지 영화에는 반미적인 특성도 있다. 아버지는 청년 시절에 전쟁을 겪었고, 일본이 전쟁에 패하는 걸 목격했다. 군국주의 청년은 아니었고 그것에 비판적인 청년이었지만, 패전을 하고 일본이 미국에 지배를 당하는 걸 보게 된다. 전쟁에 패한 남자들은 풀이 꺾여서 일본으로 돌아오는데, 오히려 여성들은 미군을 상대하면서 씩씩하게 살아가는 면이 있었다. 그런 풍경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돼지와 군함>이나 <붉은 살의> 같은 영화가 그러한 영향을 보여준다.

김홍준(감독) 이마무라 쇼헤이의 회고전이긴 하지만, 덴간 다이스케 감독님도 처음 한국을 방문했으니 감독님에 대한 질문을 드리고 싶다. 덴간 다이스케 감독님은 영화 연출자이자 시나리오 작가, 교육자이기도 하다. 요즘에는 무슨 작업을 했는지 궁금하다. 또 일본영화대학이 이마무라 쇼헤이 영화학교의 발전한 형태라고 알고 있는데, 학교에 대해서도 소개를 부탁한다.

덴간 다이스케 요즘에는 연극을 몇 편 연출했다. 일본에서는 ‘자주영화’라고 표현하는데, 작은 예산을 가지고 만드는 독립영화를 직접 제작해서 일반 극장이 아닌 곳에서 상영회를 갖는 활동을 몇 년 전부터 해오고 있다.

그리고 아버지가 만들었던 일본영화학교가 발전되어 일본영화대학이 됐다. 처음에는 전문학교였는데 지금은 대학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현재 일본에는 이 학교 출신의 스탭이 없는 현장은 없다고 봐도 될 정도다.

김홍준 필모그래피를 보면 하야시 가이조, 미이케 다카시 감독과 시나리오 작업도 많이 같이 했다.

덴간 다이스케 미이케 다카시 감독은 일본영화학교 출신이다. 하야시 가이조 감독은 다른 곳에서 만난 분이다. 나는 영화학교 출신은 아니다. 저예산 영화를 만들다가 하야시 감독을 알게 됐고, 입봉하게 된 후에는 여러 감독을 만나 공동 작업을 했다. 미이케 다카시 감독은 이마무라 쇼헤이 촬영팀의 조감독 막내로 일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의 인연으로 알게 됐다.


김홍준 <우나기>는 1983년의 <나라야마 부시코>에 이어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탔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일본의 영화감독 중 유일하게 황금종려상을 두 번 수상한 감독이다. 일본에서 소위 ‘국민 감독’의 칭호를 얻는다거나 국가적 지원을 받을 법도 한데, 아까 빈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우나기> 이후 제작 환경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덴간 다이스케 상을 받은 직후에는 돈이 잘 모인다. 그런데 차기작에서 또 실패하기 때문에 그 다음부터는 다시 마이너스로 출발해야 한다. 해외에서 젊었을 때부터 평가를 많이 받았던 감독들과 달리 이마무라 쇼헤이는 그렇지 않았다. 이를테면 오시마 나기사 감독은 일찍부터 유럽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아버지는 “오시마 나기사는 사무라이고 나는 백성이기 때문에 안 되는 거다”라고 말씀하셨다.

칸영화제에 <나라야마 부시코>가 초대받았을 때 오시마 나기사의 <전장의 메리 크리스마스>도 함께 초대받았다. 당시 <전장의 메리 크리스마스> 팀에서는 데이빗 보위, 사카모토 류이치와 함께 성대한 파티가 이어졌고, 오시마 나기사가 수상할 것이라는 분위기가 있었다. 한편으로 <나라야마 부시코>의 파티는 프랑스인이 알 리 없는 사카모토 스미코라는 여배우가 노래를 부르는, 조촐한 분위기였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분위기가 좋게 작용한 것 같다. 인지도가 높지 않았기 때문에 갑자기 나타난 일본 감독이 호기심을 자극한 게 아닌가 싶다. 왜 <우나기>가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김홍준 여담인데 나도 부천영화제 프로그래머로서 1997년 칸영화제에 갔었다. 그해 칸영화제의 후일담 중 하나는 올해 최고의 파티가 <우나기> 팀이었다는 얘기다. 메인 메뉴로 장어구이가 나왔다(웃음).



관객 1 이마무라 쇼헤이의 필모그래피를 따라가다 보면 한국에 대한 언급이 종종 있다. ‘조선’, 또는 ‘한국’이라는 나라는 그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궁금하다.

덴간 다이스케 아버지는 젊을 때부터 재일조선인, 재일한국인들을 만나면서 그분들에 대한 친근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학생일 때도 “오늘 한국의 영화감독과 술을 마시면서 얘기를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정확히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도 한국 영화감독과 교류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앞서 이야기했던 현장 검증 에피소드의 누명을 쓴 사람도 재일한국인이었다.

관객 2 영화의 이미지나 인물의 동선이 다층적인 것 같다. 영화를 보면서 퍼즐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혹시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이 수학이나 수에 대해 관심이 있었는지 알고 싶다.

덴간 다이스케 아버지는 “각본은 수학적으로 써야 한다. 논리가 중요하다. 그렇지만 너무 지나치게 균형이 있는 건 좋은 시나리오가 아니다”라고 말씀을 하셨었다.

관객 3 한국영화 중 <2009 로스트 메모리즈>라는 영화에 이마무라 쇼헤이가 단역으로 출연했었는데, 어떤 경로로 출연했는지 궁금하다.

덴간 다이스케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 그 감독님이 아버지 영화의 팬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출연하신 것으로 안다.

관객 4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이 오즈 야스지로의 조감독을 맡았던 적이 있는 걸로 안다. 평상시에 오즈 야스지로 감독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시곤 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촬영현장에서 배우들과의 관계가 어땠는지도 궁금하다.

덴간 다이스케 아버지는 오즈 야스지로 감독을 존경했다. 스타일은 전혀 달랐다. 젊을 때는 반발도 있었다. 오즈 야스지로는 테이크를 반복하면서 거듭 다시 찍는 스타일인데, 그러다 보면 배우들이 가지고 있던 생생함이 사라지고 나중에는 좀비처럼 된다. 때문에 아버지는 오즈 야스지로의 그런 방식에 대해 동의하지 못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 “지금 생각해 보면 오즈 야스지로 감독은 정말 대단했다”라고 말씀하셨다.

연기 연출에 있어 아버지는 구체적인 지시 없이 대략적인 느낌을 던지고 본인이 원하는 것이 나오도록 기다리는 타입이었다.

관객 5 <우나기>를 보면서 일반적인 기승전결이 아니라 연대기적 서사라고 느꼈다. <우나기>는 원작이 있는데, 어떤 부분에 초점을 두고 각색하셨는지.

덴간 다이스케 클라이막스를 향해 가는 근대극적인 방식은 아버지가 쇼치쿠 소속이었을 때 주로 사용했었다. 하지만 독립적으로 작업을 시작하고 나서는 이전까지 자신이 해왔던 것에서 벗어나려 하는, 균형을 깨려는 싸움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오히려 <우나기>는 기존의 ‘균형 잡힌’ 대본이라고 생각한다. 근대극적인 방식을 어느 정도 즐기면서 만든 작업이 <우나기>가 아닌가 싶다. <우나기>를 만들 당시에는 이미 연세도 있었고, 개성이 굉장히 강한 감독이었기 때문에 구체적인 디렉션은 없었다. 선문답 같은 막연한 얘기를 하면 그걸 가지고 ‘이런 뜻이겠지’ 추측하며 작업했다.



 

관객 6 영화에서 이발소가 중요한 장소로 나온다. 각색된 설정인데, 이발소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하다.

덴간 다이스케 형무소에서 재소자들은 몇 가지 직업 훈련을 받는데, 실제로 수감자들이 출소한 다음 가장 많이 선택하는 직업이 이발사다. 이발소가 리얼리티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발소라는 공간이 갖는 분위기도 매력적이었다. 이발을 하다 보면 사람들이 모이고 이야기를 나눈다. 일본에는 ‘이발소 담화’라는 말도 있다. 매일 머리를 자르는 건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사람이 모여드는 장소로 이발소가 매력적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관객 7 이마무라 감독의 작품을 보면 아버지와 자식의 대립, 혹은 아버지가 없는 자식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런 부정적인 이미지가 어디에서 기인하는 거라고 생각하시는지 알고 싶다.

덴간 다이스케 아버지와 아들의 대립은 구조적으로 공동체와 개인의 관계를 다룰 때 도식적으로 잘 활용된다. 종교나 전쟁을 다룰 때에도 아버지와 아들의 구조가 활용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아버지는 자신의 아버지, 그러니까 나의 할아버지와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김홍준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주변부 인물에 대한 작업을 꾸준히 했다. 이런 작품 세계가 오늘날의 일본영화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궁금하다.

덴간 다이스케 정신적인 영향을 받은 분들은 많을 거다. 학교에서 배운 제자들도 많다. 이마무라 쇼헤이를 전혀 모르는 젊은 감독들도 아버지의 작품을 보고 영향을 받는 경우도 있을 거다. 아버지는 마지막까지 자신이 믿는 길을 걸어간 분이다. 현재 일본영화계에도 자신의 길을 믿으며 살아가는 분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김홍준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영화를 지금 서울에서 본다는 건 오늘날의 한국영화들, 그리고 그 한국영화들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현실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오늘 자리에 대한 감독님의 소감을 듣고 마치겠다.

덴간 다이스케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작품을 이렇게 많이 상영하는 기회는 일본에서도 거의 없었다. 아버지는 평생을 두고 재밌는 영화를 만드는 걸 추구했던 분이다. 시대에 따라서 연출 방식이 완전히 바뀔 때도 있었지만 모두 그때그때 성실하게 만들었던 작업들이다. 이마무라 쇼헤이의 영화를 오늘 처음 보시는 분들도 많을 텐데 영화에서 많은 것을 느끼면 좋겠다.


일시 9월 9일(토) 오후 5시 <우나기> 상영 후

정리 황선경 관객에디터

사진 주민규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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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