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누아르 특별전]


밤과 도시의 이중적 성격

- <고독한 영혼>(니콜라스 레이)


<고독한 영혼>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살인 사건에 관해 이야기하던 딕슨이 형사 부부를 배우로 삼아 자신이 재구성한 살인현장을 연출하는 장면이다. 딕슨은 살인마 역할을 맡은 형사에게 아내의 목을 더 강하게 조일 것을 요구하면서 광기 어린 눈빛을 드러낸다. 카메라가 포착한 그의 얼굴에는 연원을 알 수 없는 빛이 드리워져 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그러나 지금 딕슨의 얼굴을 강렬하게 뒤덮는 이 빛은 외부의 광원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는 그의 내부로부터 분출된 가학적 쾌감의 시각화로 이해해야 할 것 같다.

딕슨의 광기를 추동하는 빛은 자연광이 아니라 도시의 인공조명이다. ‘황혼의 시인’이라 불린 니콜라스 레이가 선택한 주인공답게 딕슨은 백주의 시간대와 어울리는 인물이 아니다. 태양빛이 내리쬐는 동안 그는 졸음을 호소하거나, 이렇게 일찍 일어난 것은 몇 년 만이라며 무기력하게 중얼거린다. 그의 폭력성과 가학성은 밤의 기운 속에 침잠해 있다. 한밤의 도시가 내뿜는 야경의 빛이 그의 파괴적인 면모를 격렬하게 충전시키는 것이다(한편으론 딕슨이 지닌 밤의 정서는 대단히 매혹적이기도 한 것이어서, 그와 로렐의 관계가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사건도 밤에 발발한다). 도시 한복판의 도로 위에서 발생한 사소한 시비를 담아낸 도입부의 광경은 과잉된 분노와 민감한 반응들로 가득한 도시의 구동원리를 지목한다. 도시는 개인의 고립을 과도한 폭력성으로 표출한다. 바로 이 세계를 딕슨이 떠돌고 있다. 원제에 명시된 ‘고독한 곳(lonely place)’은 딕슨의 폐쇄적인 내면을 가리키는 은유인 동시에 그의 서식지인 할리우드라는, 이 차가운 소외의 세계에 할당된 표지인 셈이다.

<고독한 영혼>이 그려낸 밤의 풍경은 아름다우면서도 불안하고, 서정적이면서도 음험하다. 이곳엔 모순된 비이성적 충동이 도처에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밤에는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시나리오 작가는 폭행과 스캔들을 일삼으며, 상대를 향한 무시와 다툼은 일상적으로 만연해 있고, 차들은 위협적으로 달려들며, 인물들은 서로 신뢰하지 못하고 의심에 휩싸이는 곳. 연인의 사랑과 동료들의 격려를 주변에 두고 있음에도 광기와 분노에 휩싸이며 파국을 맞이하는 딕슨의 운명은 당연해 보이기까지 한다. 엔딩에 이르러 딕슨은 집을 나서 거리를 향해 걸어간다. 그의 발걸음은 오직 신경질이 난무하는 도시의 무방비한 거리만이 자신에게 주어진 유일한 장소라는 것을 깨달은 체념 섞인 선택처럼 느껴진다.

도시의 야경과 딕슨의 얼굴에 드리워진 빛이 그토록 강렬하게 각인된 까닭도 여기서 비롯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도시라는 고독의 세계와 딕슨의 얼굴이 공명하고 있음을 예견하는, 또한 딕슨의 자기파괴를 탐미적으로 수긍하는 도취의 빛이다. 딕슨은 할리우드의 밤거리를 떠나지 못할 것이다(마지막 장면의 딕슨은 첫 장면의 도로 위로 되돌아올 것이다). 니콜라스 레이 특유의 냉엄한 관측과 묘사가 이 사내와 그가 몸담은 도시 전경에 독특한 비애감을 부여한다는 것은 두말할 것 없다. <고독한 영혼>의 미감에는 밤의 관능적인 분위기와 한 남자가 마주한 파국의 기운이 연결되어 있다. 불길하지만 유혹적인 아름다움이다.

 

김병규 관객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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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