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독립영화 신작전]


출구는 도처에 있고, 어디에도 없다

- <폭력의 씨앗>(임태규)

 

군대는 더는 비밀의 장소가 아니다. 숨겨진 것을 들추려는 욕망을 공공연히 드러냈던 TV 예능 프로그램은 금지된 공간으로서의 군대를 소재로 삼으며 운신의 폭을 넓혔다. 생활관과 훈련 장면을 공개하면서 군대의 본질을 알려주는 듯 굴었던 TV쇼와는 달리 영화 <폭력의 씨앗>은 단 한 번도 생활관 내부로 침투하지 않는 이상한 군대 영화다. 카메라는 생활관은커녕 부대 정문조차 통과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첫 번째 숏에서 단체 외출 이후 복귀하는 부대원들의 발걸음은 정문을 통과하지 못한 채 정문 주변을 배회하다 끝난다. 다음 숏은 다른 날처럼 보이는데 이들은 여전히 외출 중이다.



롱테이크 숏은 영화에 필연적인 현장감을 부여하는데, 이때 관객은 상황 외부의 관찰자가 아닌 개입자로 초대된다. 4:3 비율의 좁은 화면에서 사건의 조망자를 위한 자리는 부재하기 때문이다. 예외적이지만, 지극히 일상적인 풍경 속에 불안한 그림자를 드리우는 건 굳은 채 있는 이병 필립과 무수한 동선의 창조자인 일병 주용의 얼굴이다. 이들의 얼굴은 카메라가 주로 주용을 따라 움직이는 가운데서도 흔들림 없이 시각적 방점을 찍는다. 이미 배역과 자신을 구분할 수 없게 된 선임들과는 달리 필립과 주용은 아직 자신의 배역을 파악하지 못했거나, 배역을 마지못해 수행하는 듯 보이는 미숙한 배우다. 두 사람의 불안한 하모니는 상부 복종식 군대 시스템을 연약하게 교란하는 동시에, 관객에게는 다소 불안한 안내자가 된다.

군부대 근처를 배회하던 카메라는 주용이 필립의 치과 치료를 핑계로, 실은 누나를 찾아 철원에서 인천으로 향하면서 부대로부터 더욱 멀어진다. 그러나 인천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다른 국면을 창출하기보다는 기시감을 일으키는 반복에 가깝다. 이는 치과의사인 형부의 고압적인 태도에서 비롯된다. 카키색 반소매 티셔츠 차림에 툭툭 던지는 말투, 은근히 위협하는 형부의 눈빛은 주용의 군대 선임들의 태도와 분리되지 않는다. 주용의 누나를 폭행한 사실을 은폐하려는 형부는 군대 내 폭행을 은폐하려는 선임들과 비슷한 위치에서 주용을 압박한다. “처남도 내 덕 좀 봤잖아”라는 형부의 발언은 그 작동원리가 바뀌었을 뿐 군대 바깥은 또 다른 군대일 뿐임을 명징하게 드러낸다.



그러나 군대를 둘러싼 상하관계의 변주와 생성, 이것이 양산하는 강자와 약자의 대립은 영화가 말하려는 것의 일부일 뿐이다. 주목할 것은 관계의 속성이 아니라 불안한 감정 그 자체다. 인물들의 불안한 표정은 해석을 중지시키고 오직 감정을 전염시키는 힘을 지닌다. 주용의 누나, 주용, 필립은 공고한 사회구조에서 약자의 역할을 떠안는 가운데 서로가 서로의 변주 노릇을 한다. 그러나 이들은 서로를 보듬는 대신 끝내 서로 할퀸다. 그렇다면 영화는 결국 연대 불가능을 이야기하려는 것일까. 예정된 절망으로 회귀하기 전에 영화가 보여준 잉여로운 순간 하나를 떠올려보고 싶다. 인천행 고속버스 안에서 주용과 필립은 내내 긴장해 있던 상태에서 벗어나 모처럼 숨을 돌린다. 이 순간은 이들과 동행해 온 관객을 위한 휴지부이기도 하다. 물론 이들의 대화 내용은 군대라는 테두리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으나, 그 속에 이례적으로 나른하고 편안한 공기가 깃들어 있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이 짧은 숏은 하나의 실현되지 못한 가능성의 지대로 남아 영화의 절망적 결말을 가까스로 유보시킨다.


김소희 영화평론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