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과의 세 번째 만남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의 마지막 날 극장을 찾은 손님은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었다. 지난 2월 21일(화), 기요시 감독은 <크리피>를 관객들과 함께 본 후 시네토크 시간을 가졌다. 기요시 감독이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은 건 이번이 세 번째이다. 지난 소격동 시절에도, 낙원동 시절에도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았던 기요시 감독은 빠른 시간 내에 서울아트시네마의 새로운 전용관에서 ‘네 번째 만남’을 갖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구로사와 기요시(감독) <크리피>를 끝까지 봐주셔서 감사하다. <크리피>는 정말 꺼림칙한 영화다. 원작 소설이 있는 이야기인데, ‘이사를 온 전직 형사가 찾던 범인이 옆집 남자다’라는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어서 만들게 되었다. 오랜만에 만든 사이코 스릴러 드라마라서 찍으면서도 매우 즐거웠다.

정지연(평론가) 감독님도 말씀하셨듯이, 이전에는 주로 창작 시나리오로 작업을 하셨는데 <크리피>는 원작이 있는 작품이다. 영화를 본 후에 원작을 찾아봤더니 원작의 내용이 영화와는 많이 달랐다. 원작을 각색하면서 어떠한 기준으로 스토리와 캐릭터를 정리, 재창조하셨는지 궁금하다.

구로사와 기요시 원작 소설의 이야기는 굉장히 복잡하다. 영화로 구현한 부분은 원작 소설의 전반부에 해당한다. 원작의 후반부에는 형사와 범인 이외에도 굉장히 많은 인물이 나온다. 그러면서 서로 복잡한 관계를 맺지만 영화에서는 그런 부분을 과감히 생략했다. 과거를 그리면 분량이 배 이상 늘어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과거로 돌아가는 것 자체도 힘들다. 글로 쓴다면 간단하지만 영화는 그렇지 않다. 심지어 원작 소설에서는 범인 니시노와 형사 다카쿠라의 고등학교 시절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오는데, 이렇게 되면 배우들과 비슷한 얼굴을 가진 배우도 찾아야 한다. 초등학생 시절의 이야기라면 적당히 아역배우를 쓰면 되지만, 고등학생 시절을 연기할 닮은 배우를 찾기 힘들었다. 그래서 결국 생략했다.

정지연 영화 만들기의 경제학이 중요하게 작동한 것 같다. <크리피>를 보면서 <큐어>가 떠올랐다. 특히 주인공의 캐릭터나 이야기의 구조가 그러하다. <큐어>의 형사는 아내 때문에 상처가 많았다. <크리피>의 주인공 역시 겉으로는 아내와 다정해 보이지만 실상은 거의 깊은 얘기를 나누지 않는다.

통상적인 범죄 스릴러라면 범인을 잡아 불안감을 없애고 정상성을 복구하는 것을 목표로 할 테지만 감독님의 영화는 정상성을 복구하는 것보다 추격자의 내면을 묘사하는 데 더 집중한다. 원작에 전혀 없는 내용 중 흥미로운 장면이 있다. 오프닝에서 다카쿠라가 오만한 자신감을 갖고 있다 실패하는 부분이다. 그 마음의 상처 때문에 주인공의 자존감이 추락한다. 원작에는 전혀 없는 이 성격을 추가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구로사와 기요시 내 영화에 대해서 나보다 더 잘 아시는 것 같다. 나는 이제까지 무서운 영화를 여러 편 찍었다. 그 대부분은 유령이 나오는 영화였다. 이렇게 순수한 사이코 스릴러를 찍는 것은 말씀하신 대로 <큐어> 이후 거의 20년 만의 일이다. 너무 오래간만에 찍는 사이코 스릴러이기 때문에 <큐어>는 전혀 떠오르지도 않았다. 그저 다시 사이코 스릴러 장르를 찍을 수 있어 가슴이 벅찬 상태였고, 때문에 <큐어>와 다르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조차도 하지 못했다.

이 작품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프로듀서가 먼저 읽고 추천한 것이다. 찾아 헤매던 범인이 바로 옆집에 살고 있었다는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었다. 장소가 옆집이기 때문에 영화 자체가 조밀해진다. 출연하는 배우도 적어지고, 따라서 예산도 줄일 수 있게 된다. 이런 컴팩트한 상황에서 서스펜스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의 후반부를 대부분 생략하긴 했지만 핵심적인 아이디어는 원작의 그대로다.

원작과 내용이 달라진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이미 영화를 보면서 눈치 채신 분도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다카쿠라 형사 자체가 마음에 빈틈이 있는 사람이다. 그 빈틈이 어쩌면 악인인 니시노보다 다카쿠라에게 더 큰 결함으로 작동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니시노는 악랄한 괴물로 그려지지 않는다. 악인 니시노에게 대항해야 할 형사가 점차 악으로 변해가는 이야기에 서스펜스가 가득하다고 느껴졌다. 이 부분을 영화로 형상화해보고 싶었다.

정지연 <큐어>에서 야쿠쇼 고지가 마미야와 닮아가는 과정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구로사와 기요시 사실 형사가 범인을 잡는 이야기는 매우 흔한 이야기다. 그러나 내가 생각할 때 형사라는 ‘직업’ 자체의 결함 때문에 범인의 체포가 늦춰지는 경우는 드문 것 같다. 원래 수사는 제대로 진행하면 범인이 밝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세상의 법칙이다. 하지만 정말 이상하게도 니시노라는 범인은 좀처럼 체포되지 않고 범행의 진상도 밝혀지지 않는다. 왜 그런지 계속 생각했다. 그러다 도달한 결론 중 하나가 형사라는 직업 이전에 인간 자체가 가진 약점이 있다는 생각이었다. 범인이 그 약점을 능숙하게 잘 파고들기 때문에 수사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들을 종합해서 만든 영화가 <크리피>다.

정지연 감독님의 영화를 보면 유령영화와 범죄영화를 막론하고 감독님만의 인장이 있다. 가령 흔들리는 커텐, 실내에 쳐진 비닐 등의 이미지들이 그렇다. <크리피>에도 니시노의 집에 비닐이 많이 붙어 있다. 특히나 감독님의 기운을 느낀 순간 중 하나가 오프닝 신이다. 취조를 끝낸 다카쿠라가 후배와 이야기를 나눌 때 후경에서 문이 저절로 열린다. 사실 문이 저렇게 열릴 이유가 없다. 이건 감독님 특유의 유령적인 장면이다. 이 밖에도 영화를 잘 떠올려보면 문이 유령처럼 열리는 순간이 몇 번 반복된다. 주인공이 6년 전 사건이 벌어졌던 집에 도달했을 때도 문이 저절로 열리고, 아내가 니시노의 집에 갔을 때도 문이 저절로 열리면서 니시노가 등장한다. 물론 다른 영화에서도 유령 같은 문이 있지만 감독님의 영화에서 문이 열린다는 건 단순하지 않은 것 같다. 보통의 영화에서 문이 열리는 건 ‘환영(歡迎)’의 순간이라면, 감독님의 영화에서 문이 열리는 순간은 불온한 순간이다. 이 역시 원작에도 없는 내용인데 어떻게 구상하신 것인지 궁금하다.



구로사와 기요시 너무 여러 번 그런 장면을 찍어서 부끄럽다(웃음). 나도 문이 저절로 열리는 장면을 왜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문이 열린다는 것, 그러면서 이전까지 안보이던 광경이 스크린에 보인다는 것은 중요하다. 영화는 사각으로 구획된 세계만 볼 수 있지만 관객은 그 세계 저편에 다른 세계가 있다고 믿으면서 영화를 본다. 그렇다면 스크린에 비치지 않은 세계는 사실 카메라가 살짝만 움직여도 보이게 된다. 문이 열리는 것 역시, 문이 열림으로써 우리가 그전에는 보지 못한 다른 세계가 보인다. 이런 것들이 영화가 주는 즐거움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문이 저절로 열리는 장면은 간단해 보이지만 실제로 찍을 때는 그렇지 않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스태프가 숨어 문을 밀거나, 실 같은 것으로 당겨야 한다. 실제로 찍으려고 하면 굉장히 거추장스럽다. 스태프들도 문이 제대로 열리길 바라면서 긴장한다. 그런 의미에서 문이 저절로 열리는 장면은 현장에서 스탭들의 마음을 하나로 단결시키는 장면이기도 하다(웃음).

정지연 예전에 감독님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때 인터뷰 주제는 영화에 등장하는 유령의 존재론이었다. 왜 자꾸 유령의 세계를 묘사하냐고 물었더니, 영화 자체가 픽션과 리얼리티의 경계에 서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문을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라고 설명한 것처럼, ‘열린다’는 것이 감독님의 영화를 대변하는 키워드가 아닌가 싶다.

문이 열리는 것과 비슷한 느낌 중 하나는 접촉의 순간이다. <크리피> 역시 이상하면서도 에로틱한 장면이 하나 있다. 터널에서 니시노가 야스코에게 악수를 청하는 장면이다. 니시노가 야스코의 손을 잡고 “우리 집에 꼭 오세요”라고 말하는데 이 장면이 굉장히 이상하다. 비단 이 영화뿐 아니라 감독님의 영화에서 접촉의 순간은 좋은 느낌은 아니다. <밝은 미래>에서는 오다기리 조가 해파리를 만지려고 하는 순간에 아사노 타다노부가 “만지지 마”라고 하고, <카리스마>에서도 나무에 다가가는 주인공에게 환청처럼 만지지 말라고 하는 소리가 들린다. <해안가로의 여행>에서도 마찬가지로 남편이 아내에게 접촉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심지어 <크리피>에서 다카쿠라의 뒤편으로 아내가 손을 잡는 순간도 애정의 순간이 아닌 주사를 놓는 장면이다. 감독님의 영화에서 만진다는 것이 왜 이렇게 위험한 순간으로 그려지는지 궁금하다.

구로사와 기요시 내 영화를 상세히 보신 것 같다. 내 영화 속 만진다는 행위에는 특별한 느낌이 있는 것 같다. 그런 느낌 없이 내 영화에서 사람과 사람이 접촉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건 아마 내가 일본인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서양의 경우는 인사의 표시로 악수를 하고, 프랑스에서는 뺨에 키스를 하는데 이것은 일본에서는 있을 수 없는 행위다. 일상생활에서 일본인이 서로 접촉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자연스레 내 영화에 반영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또 이런 이유도 있다. 손의 연기라고 할 수 있는데, 서양인의 경우에는 가만히 내버려둬도 손의 제스처가 다양하기 때문에 그것이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하지만 일본인은 일상생활에서 손짓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찍을 때도 손을 화면에 넣을 필요가 거의 없다. 그래서 일본의 경우는 다들 얼굴만 거의 화면에 넣고 그 밖의 것은 넣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된다. 얼굴 표정만으로 오케이가 되는 것이다. 그 결과 카메라를 뒤로 빼는 것도 의미가 없어진다. 만약 손까지 넣으면 손을 비추기 위해 카메라도 빼야 하고, 배경도 신경 써야 하는 등 화면에 여러 가지가 담기게 된다. 손짓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정지연 감독님 영화의 공간에 대한 이야기도 궁금하다. 이 영화에는 집과 취조실, 강의실 이 나오는데 영화에서 물리적 공간을 배치하는 것에 대한 선택의 원칙이 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영화를 빨리 찍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콘티를 미리 정해놓는지, 아니면 현장에서 직관적인 판단으로 숏을 설정하는지 궁금하다.

구로사와 기요시 이 질문들은 내 영화를 관통하는 본질에 걸쳐 있기 때문에 대답이 길어질 것 같다. 가능한 간단히 대답하자면, 내 영화에서 공간의 선택은 굉장히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그렇지만 실제로 각본을 쓰는 단계에서는 공간을 거의 설정하지 않는다. 간략하게 마을, 방, 실내 정도로 쓸 뿐 구체적으로 어떤 마을이며 어떤 실내인지는 쓰지 않는다. 하지만 로케이션 헌팅을 나가면 여러 군데를 돌아다닌다. 그러다가 ‘딱 이곳이다’라는 느낌이 오는 장소가 있다. 아마 여기서부터 영화가 시작되는 것 같다. 거의 직감적으로 장소를 고른다. 그때 가장 중요한 것은 카메라를 어디에 놓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이 위치에 카메라를 놓았을 때 각본 그대로의 무대가 될 것 같은 장소가 있다. 분위기나 화각이 적합할 때가 그렇다. 그러나 이때 카메라를 오른쪽으로 조금만 움직이면 새로운 것이 보인다. 보이지 않던 통로가 보이거나 하는 식이다.

이런 ‘플러스 알파’가 있는 장소가 내가 생각하는 최적의 장소다. 이 플러스 알파의 유무로 장소를 정하고 카메라의 위치를 선택하면 배우가 그 공간에서 어떻게 움직이겠다는 생각이 대략적으로 잡힌다. 배우의 위치나 보이지 않는 공간으로 배우가 이동하는 동선 등이 점차 자연스럽게 머릿속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그렇게 카메라의 위치와 배우의 포지션이 결정되는 것에 따라서 작업을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콘티를 만들거나 구체적으로 무언가를 쓰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저 스태프에게 카메라의 위치를 설명하고 배우에게 동선을 설명하는 등의 주문만 한다.

영화를 찍을 때 실제로 배우를 그 장소에 넣어보면 실패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런 경우에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장소에 카메라와 배우를 배치해서 더 좋은 결과를 얻은 경우도 있다. 이것이 영화 현장에서의 스릴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에서는 계획을 세웠다가 그것이 실패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일이 굉장히 빈번하다. 이런 의미에서 현장에서의 자유로움만큼은 언제나 유지하고 싶다.

정지연 감독님의 영화를 보면 물리적으로 설정된 세트 공간 외에도 화면에 보이지 않는 공간을 흥미롭게 사용한다. 가령 <크리피>의 오프닝이 그러하다. 다카쿠라가 취조를 할 때 범인이 화면에는 보이지 않는 경사에게 가서 담배를 피워도 되냐고 묻는 장면이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범인의 그 행위를 보여줄 것 같은데 카메라는 계속해서 다카쿠라를 찍는다. 다카쿠라는 이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행위는 화면 바깥에서 벌어진다. 보이는 공간과 보이지 않는 공간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 원칙이 있는지 궁금하다.

구로사와 기요시 카메라에 비치지 않는 곳에서 나는 소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을 관객에게 들려주고 싶다. 실제로 내 영화에는 범행 현장의 옆방에서 들리는 소리나 어디서 나는지 알 수 없는 기계음 등이 많이 들린다. 현장에서도 스태프들에게 현장의 독특한 소리들을 녹음해 달라고 부탁한다. 당장 그 영화에서 쓰지는 않더라도 언젠가 쓸 일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 현장에서 스태프들이 내는 소리도 좋아한다. 가령 카메라 뒤에서 숨을 참고 있던 스태프가 본인도 모르게 내는 기침소리나 부스럭거리는 소리. 혹은 이동차가 움직이다 덜컹하는 소리 등이 그렇다. 이런 소리들은 일반적인 현장에서는 삭제되지만 나는 이런 소리를 굉장히 좋아한다. 내 영화 대부분에서 그런 소리들을 사용한다.



관객 1 <도쿄 소나타>를 보고 감독님이 만든 <우주 전쟁>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전철이 지나갈 때 집 내부에서 번쩍이는 빛들이 그러하다. <도쿄 소나타>와 <우주 전쟁>이 감독님께 어떤 영화인지 궁금하다.

구로사와 기요시 <도쿄 소나타>는 <우주 전쟁>과 <폭력의 역사>(데이빗 크로넨버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작품이다. <도쿄 소나타>에는 장남이 갑자기 미군에 입대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 설정은 <우주 전쟁>에서 오빠 역을 맡은 인물이 갑자기 입대를 하는 장면에 영향을 받았다. <폭력의 역사>에서는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아버지가 자취를 감춘다. 그리고 아버지가 다시 돌아오면 표면적으로 가족의 질서가 회복된 것처럼 보이지만 이 가족이 정말 제대로 회복이 되었나 하는 의문이 있었다. <우주 전쟁>도 마찬가지다. 이혼을 하고 뿔뿔이 흩어졌던 가족들이 보스턴에서 기적적으로 재결합하지만 앞으로 이 가족은 어떻게 되는 걸까라는 의문이 남는다. <도쿄 소나타>도 이러한 의문에서 출발했다.

관객 2 오프닝 크레딧이 인상 깊었다. 배우들의 이름은 철창 사이로 정확히 들어가지만 감독님의 이름은 창살을 가로질러 나온다. 본인이 이 세계의 창조자로서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겠다는 의지로도 느껴졌다.

구로사와 기요시 오프닝 크레딧은 전혀 의도하지 않았다. 다만 일본인은 대부분 이름이 네 글자인데, 내 이름은 세 글자라서 그런 것 같다. 주연 배우들의 이름은 네 글자로 그 공간에 예쁘게 들어간 반면 내 이름은 세 글자라서 그렇게 들어갔다(웃음).

관객 3 니시노가 자유의지를 말하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분명 주사를 투여해서 피해자들에게는 선택권이 없는 상황인데 그는 계속해서 자유의지라고 말한다.

구로사와 기요시 원작 이전에 일본에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가장 유명한 사건은 ‘기타큐슈 일가족 감금 살인사건’이다. 실제로 일곱 명이나 되는 가족들끼리 서로 죽인 사건으로, 그 사건에서도 범인이 일종의 약물을 사용한다. 그러면서 피해자들의 자유를 빼앗고 스스로 명령을 내리지 않으면서 희생자들에게 “네 마음대로 하라”고 말하고 내버려 두었다. 그러면서 희생자들이 서로 죽이게 조종하는 것이다. 아직도 재판 중이고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사건이다. 실제로 범인을 만난 적은 없지만 지인이 공판을 직접 보고 와서 이야기를 해 준 적이 있다. 범인이 실제로 굉장히 웃긴 사람이었다고 한다. 니시노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데, 재판장에서 범인이 말을 할 때마다 방청객들이 폭소했다는 것이다. 이 범인에게 니시노라는 캐릭터를 만드는 데 도움을 받았다.

관객 4 감독님의 영화에는 일본의 유명한 배우들이 많이 나온다. 캐스팅의 기준이 궁금하다.

구로사와 기요시 사실 내게 배우를 선택할 수 있는 힘은 없다. 게다가 인기 배우는 개런티도 비싸고 스케줄도 바쁘기 때문에 내가 부탁을 할 수도 없다. 지금까지는 다행스럽게도 좋은 배우들이 각본을 읽고 출연에 응해주었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실제 인기가 있고 다작을 하는 배우는 배우로서도 뛰어나다는 것이다. 인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지연 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는지.

구로사와 기요시 늦은 시간까지 함께해 주셔서 감사하다. 한국에 올 때마다 느끼지만 관객분들의 수준이 높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항상 세밀하게 보신다. 인사치레로 하는 말이 아니라 솔직한 심정이다. 이처럼 관객들의 수준이 높으니 한국에서 좋은 영화가 나올 수 있는 것 같다. 그에 비하면 일본은 여전히 좋은 영화가 나오고 있기는 하지만 관객의 수준은 떨어진다(웃음). 매번 실감하는 바이고, 또 많은 자극을 받는다.

정지연 이미 <크리피> 이후 <은판 위의 여인>을 만드셨고, 이 영화는 곧 한국에서 개봉할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영화를 또 만드셨다. 그 영화가 한국에서 상영될 때 또 한국에 초대하고 싶다. 무엇보다 서울아트시네마가 이전하면 그때 그 극장에서도 꼭 관객 분들과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정리 l 김창섭 관객에디터

사진 l 주민규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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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