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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전/클로드 샤브롤 회고전

복수와 연대-클로드 샤브롤의 <야수는 죽어야 한다>(1969)


남녀가 침대에 누워있다. 그들은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본다. 남자는 자신의 어린 아들을 죽인 살인범에게 복수하고자하는 일념으로 살아가고 있는 샤를이다. 그의 곁에 누워있는 여자는 그가 살인범을 찾기 위해 접근하다가 결국 사랑에 빠지게 된 엘렌이다. 그들의 얼굴은 침대 옆에 있는 조명과 상대의 얼굴에 가려져, 두 사람 모두 한쪽 눈과 반쪽 얼굴만 카메라에 담긴다. 그런데 이들의 반쪽 얼굴은 또 하나의 얼굴을 이루어서 서로 다른 곳을 응시하는 두 눈을 가진 한 사람의 얼굴처럼 보인다. 샤를의 눈은 허공을 바라보고, 엘렌의 눈은 샤를을 응시한다. 엘렌은 샤를에게 왜 폴을 도와줬냐고 타박하지만, 샤를은 마땅한 대답을 하지 못한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야수는 죽어야 한다는 마치 샤를의 일기장에 빼곡하게 적혀있는 빨간 글씨들 같다. 차 사고로 어린 아들을 잃은 샤를은 범인 찾기에 몰두해왔다. 그러다가 사고 현장에서 범인과 동승하고 있었던 여배우 엘렌을 알게 되고 그녀에게 접근한다. 그는 범인을 알아내기 위해 그녀와 사랑에 빠진 것처럼 행동하다가, 범행과는 전혀 다른 그녀의 모습에 그녀를 좋아하게 된다. 마침내 샤를은 범인의 정체를 알게 되고, 그의 집까지 들어온다. 하지만 이곳에서 그가 마주한 것은 범인인 폴 때문에 고통 받는 가족들의 모습과 그들의 폴을 향한 증오였다.


샤를은 특히 폴의 아들인 필립에게 어떤 연민을 느낀다. 그는 자신의 아빠를 죽여 달라고 말하는 필립을 꾸짖으면서 혼란스러워 한다. 홀로 고독하게 복수심을 키워왔던 샤를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다. 이러한 연민 때문에 샤를은 폴을 죽일 수 있는 몇 번의 순간에도 주저하고 죽이기를 실패한다. ‘폴은 죽어야 한다는 당위로 생긴 샤를과 가족들 사이의 연대가 오히려 그 당위를 위협하는 것이다. 엘렌 역시 왜 폴을 도와줬냐면서 폴을 죽여야 한다고 말한다. 앞에서 말한 엘렌의 눈은 당위의 눈빛이었고, 샤를의 눈은 연민과 주저함의 눈빛이었다.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는 기괴한 얼굴은 샤를의 아이러니한 감정을 대변한다. 그는 다시 자신의 본래 목적을 생각하며 폴을 죽이겠노라고 다짐하지만, 보트 위에서의 계획도 실패로 끝난다.




흥미롭게도 이 영화에서 당위가 흔들리는 지점은 야수에 대한 이해 때문이 아니다. 영화는 절대 악을 부정하지 않는다. 폴의 극악무도한 행동들은 이해하기가 어렵다. 영화는 이해할 수 없는 절대 악의 존재를 인정하되, 그것에 대한 대안으로써 어떤 연대를 보여준다. 설령 그것이 범인의 아들과의 연대라 하더라도, 샤를은 오히려 그리스 비극처럼 보인다면서 멋지다고 말한다. 결국 야수는 죽고, 연대가 당위를 이기지 못하지만, 샤를과 엘렌 그리고 샤를과 필립 사이의 연대는 사라지지 않는다.


영화에서 관객들이 가장 궁금해 하게될 장명 중 하나는 야수, 즉 폴이 죽는 장면일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폴이 죽는 장면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도록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텔레비전 화면으로 간략하게 사건 현장을 요약할 뿐이다. 이는 영화의 초반부에서 어린 아들에 대한 샤를의 부정(父情)을 영사된 화면과 곰 인형으로만 보여주는 것과 비슷하다. 샤를에게 더 중요한 것은 어린 아들에 대한 복수가 아니라 필립과의 연대다.


마지막 장면에서 샤를은 폴을 죽이고 자수한 필립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러면서 자기가 범인이라 말해달라고 엘렌에게 부탁의 편지를 남긴다. 편지를 남긴 후 떠나는 샤를은 걷고 또 걷는다. 침대에 누워서 근심 가득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모습과는 다르다. 그는 필립의 희생을 받아들인 자신을 책망하며, 자신이 필립에게 폴을 죽어야한다는 암시를 은연중에 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는 용서를 구하고, 사랑을 고백한다. 그리고 그는 바다로 멀리 멀리 떠난다. ‘야수는 죽어야 했는가에 대한, 그리고 누가 야수였는가에 대한 물음을 간직한 채로 자신의 형벌을 선택한 것이다.

 

김혜령 | 관객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