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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시네토크] “이야기는 뿔난 암소를 보여주는 일” -<케이프 피어> 상영 후 김의성 배우 & 최동훈 감독 시네토크

 [2017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이야기는 뿔난 암소를 보여주는 일”

-<케이프 피어> 상영 후 김의성 배우 & 최동훈 감독 시네토크



김성욱(프로그램 디렉터) – 오늘 김의성 배우와 최동훈 감독이 추천해준 <케이프 피어>를 보았습니다. 먼저 두 분께 이번 친구들 영화제에 참여하신 소감을 묻고 싶습니다.


김의성(배우) - 오늘 생각보다 많은 관객 분들이 오셔서 많이 놀랐고요. 사실 저는 이 영화를 오늘 처음 봤습니다(웃음). 제가 영화를 갖고 무슨 얘기를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옆에 계신 최동훈 감독님을 살짝 꼬셨습니다. 그래서 감독님이 추천하고 저는 영화를 봤습니다. 오늘 얘기는 감독님이 많이 해주실 겁니다.


최동훈(감독) - 저는 선배님만 믿고 왔는데요(웃음). 이번에는 <기아해협>도 같이 추천을 했는데 <기아해협>은 이미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상영을 했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오늘 보신 <케이프 피어>로 넘어갔습니다. 저는 마틴 스콜세지를 굉장히 좋아하지만 사실 이 영화를 더 좋아하거든요. 김의성 선배가 이 영화를 좋아하실지 궁금해하면서 봤습니다. 


김의성 - 네, 매우 좋았습니다. 이 영화를 추천하신 이유를 조금 더 들어보고 싶은데요.


최동훈 – 이 영화가 비평적으로 그렇게 좋은 평가를 못 받았더라고요. 막 화가 나더라고요. 이유를 좀 찾아보니까, 표현이 과감하지 못했다, 이런 말이 있더라고요. 이를테면 맥스 케이디가 술집에서 여자를 폭행하는 장면은 분위기만 내고 실제 폭행 장면은 찍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그건 말이 안 되는 소리예요. 왜냐하면 저때는 아주 강력한 검열의 시대였거든요. 폭력과 섹스를 정확하게 묘사할 수 없었어요. 이 정도의 묘사만으로도 당시 관객들에게는 <원초적 본능>을 우리가 처음 볼 때와 비슷하지 않았을까요. 그런 환경을 이해하고 보면 J. 리 톰슨 감독이 얼마나 훌륭한 연출력을 가졌는지 알 수 있어요. 삼류영화도 많이 찍기는 했지만요. 


김의성 - 저는 오히려 그런 면이 이 영화의 굉장히 매력적인 면이었다고 생각해요. 나중에  로버트 드니로가 로버트 미첨이 했던 맥스 케이디를 연기했잖아요. 그 영화에서는 뭐랄까, 딱 볼 때부터 맥스는 사이코패스처럼 보여요. 이 사람은 어떤 짓을 저질러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사람으로 보이죠. 그런데 로버트 미첨은, 사실 저는 중반부까지는 이 사람에게 약간 감정이입을 할 정도였어요. 내가 악역을 많이 해서 그런가(웃음). 의도하지는 않았더라도 결과적으로 굉장히 절제된 폭력과 성에 대한 표현. 그런 게 상상력을 자극하죠.


최동훈 - 저는 이 영화의 마지막 씬을 되게 좋아하거든요. 맥스 케이디가 옷을 싹 벗고 누워서 물속으로 딱 들어갈 때 너무 무서운 거예요. 한 마리 악어가 연상되기도 하고. 실제로 싸우는 장면 찍을 때는 악어 두 마리가 싸우는 것 같아요. 퍽퍽 거리면서 싸우죠. 흑백영화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런 너무 아름다운 장면이었고, 아, 로버트 미첨에게 완전히 매료당했어요. 

김의성 - 저도 이 배우를 아주 어렸을 때 본 것 말고는 기억이 거의 없는데, 보고 굉장히 멋있는 배우라고 생각했어요. 이 영화에서는 그레고리 펙이 상대가 안 되던데요? 하하.


최동훈 - 언제나 그래요. 그레고리 펙은 신인 여배우랑 <로마의 휴일>을 찍었는데 그 신인여배우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받고(웃음).

그런데 로버트 미첨은 저 당대 최고의 섹시스타 중 한 사람이었어요. 성격도 좀 괴팍하고. 어렸을 때 본 사진 중에 로버트 미첨이 마리화나 때문에 경찰에 잡혀가서 찍은 사진이 있어요. 그 사진이 굉장히 유명하죠. 그런데 묘한 게 있어요. 로버트 미첨처럼 감옥을 들락날락 한 사람이 닉 놀테예요. 술 먹고 파파라치 막 때리고. 닉 놀테도 경찰서에서 찍은 사진이 있어요. 그리고 두 사람이 모두 “케이프 피어”라는 영화에 나오게 됐죠(웃음).

제가 로버트 미첨 걷는 걸 진짜 좋아하거든요, 로버트 미첨이 약간 이렇게, 발가락을 땅에 끌듯이 이상하게 걸어요. 그런데 또 성격이 이상해서 누가 그 걸음걸이에 대해 물었더니 배가 안 나오는 방법이라고 대답을 했어요. 본인이 연기를 잘 하는 배우라고 절대 얘기 안 해요. 자기의 연기 방식은 딱 두 가지인데, 말을 탔을 때랑, 안탔을 때. 이렇게 두 가지라고 말했죠(웃음).

또 있어요. 자기 연기 스타일은 딱 세 가지 밖에 없다. 왼쪽을 보거나, 오른쪽을 보거나, 정면을 보거나. 그러니까 굉장히 쿨하게 얘기하는 배우고, 장식 같은 게 없어요. 침묵으로 연기를 표현할 줄 알죠. 저는 이 배우가 굉장히 아티스틱한 배우라고 생각하는데, 또 어떤 입장에서 보자면, 좀, 둔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죠. 그런데 저는 그 사람의 처진 눈도 되게 좋아요. 



김의성 - 비슷한 말일지도 모르겠는데, 저는 한편으로는 아, 악역을 연기하는 게 참 훨씬 쉽다는 생각도 했어요. 표현의 방법이 너무 많아요. 첫 장면에서 어떤 여자가 책을 안고 가는데 맥스 케이디가 툭 치고 쳐다보지도 않고 그냥 가잖아요. 그런 거 하나로 이 사람의 성격이 드러날 수 있어요. 그런데 그레고리 펙이 연기했던 주인공 샘 보든은 이 사람의 캐릭터를 설명하게 위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장면이 필요한지. 그리고 끝내 설명도 제대로 되지 않고. 


최동훈 - 그레고리 펙이 연기를 못 한다기보다는, 중산층 가정을 지키려는 선한 백인 남자는 언제나 딱 저거밖에 할 연기가 없는 것 같아요. 이 영화가 원래는 굉장히 유명한 소설이었어요. 그리고 <베라 크루즈>를 썼던 시나리오 작가가 굉장히 시나리오로 잘 옮겼어요. 원작은 아마 군인 출신에 약간 돌아버린 남자가 중산층 가정을 공격하는 내용이에요.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악당에게 사연을 절대 주지 않아요. 반면에 리메이크 <케이프 피어>는 악당에게 이유가 있죠. 샘 보든이 맥스 케이디를 미워해서 재판 자료를 숨겨버리잖아요. 그럼 맥스 케이디는 이제 복수를 하는 거죠. 

오늘 보신 <케이프 피어>는 오히려 시대 분위기상 악당에게 사연을 줄 수 없었기 때문에 맥스 케이디를 사이코패스에 폭력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으로 ‘단순히’ 묘사를 했죠. 그런데 그걸 로버트 미첨이 정말 잘 해냈죠. 오히려 리메이크의 로버트 드니로보다 훨씬 좋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케이프 피어>를 리메이크 한다고 하니까 당시 할리우드가 완전 난리가 났어요. 굉장한 작품이 나올거라 생각한거죠. 원래는 스필버그가 자기가 하려고 판권을 샀는데, 왠지 잘 안 어울릴 것 같아서 마틴 스콜세지한테 연출을 줬죠. 스콜세지는 3년 동안 24고까지 시나리오를 썼대요. 이런걸 보면 스필버그가 얼마나 까다로운 사람인지 알 수 있죠. 

딱 찍고 나니까 로버트 드니로가 연기를 너무 잘 한 거예요. 올해의 아카데미는 맥스 케이디의 로버트 드니로다. 최고의 악당이 나왔다, 이랬는데 그해에 더 위대한 악당이 나왔습니다. 바로 한니발 렉터(웃음).


김의성 - 참 아는 게 많으세요(웃음). 나는 이 영화를 보며 굉장히 재밌게 느꼈고 너무 좋았어요. 그런데 만약에 지금 이 시나리오를 누가 감독님에게 주면 너무 단순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니까 영화가 너무 많이 만들어지고, 관객을 너무 속이려고 하니까 우리가 이제는 잘 안 속게 된 건 아닐까 싶어요. 그런 면에서 지금 시대에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관객을 열심히 속여야 한다는 게 좀 고통스럽지 않으세요?

최동훈 – 뭐, 삶과 거의 붙어있습니다. 남을 속이는 게(웃음). 근데 원래 이야기를 만든다는 게,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런 얘기를 했잖아요. 뿔난 암소를 보여주는 것이다. 암소는 뿔이 없는데 마치 암소가 뿔이 있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거잖아요. 아주 그럴 듯하게 쓰는 거.

제 식으로 해석하면 우연이 남발되는 데 그 우연이 마치 필연처럼 보이도록 만드는 게 이야기라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요즘 많이 느끼는 건, 이 영화가 굉장히 느려요. 장식도 별로 없어요. 필요한 정보는 다 대사가 전달하고 마지막 20분의 서스펜스를 만드는데 충실해요. 그런데 그 마지막 20분이 정말, 저는 영화를 꽤 많이 봤는데도 손에 땀이 날 정도에요. 정말, 아주 정직하게 만든 영화인데도 그래요.


김의성 -  다리 밑에 있던 보안관의 목을 조를 때, 거기서부터는 진짜 영화가 사람 숨도 못 쉬게 하는 거 같아요.


최동훈 – 이 영화가 영국에서는 검열에 걸려서 4분 잘렸대요. 그래서 도대체 어디를 잘랐는지 진짜 유심히 봤는데 찾아낼 수가 없어요. 아마 맥스 케이디가 엄마와 딸을 위협하는 장면이 아닐까 하는데...

  

김의성 – 엄마의 가슴을 팔로 싹 스치는데 많이 보여주지 않아도 그게 너무 무섭더라고요. 그리고 이 정도만 보여줘도 당시의 관객들은 다 믿어요. 그런 약속이 어쩌면 순진하게 이루어지는 거죠. 지금은 힘들겠지만.



최동훈 - 저는 잘 안 보여줍니다. 아귀가 고광렬의 팔을 이렇게 딱 찍으면 저는 그것도 가까이서 보여주기 싫어서 멀리서 보여주거든요. 저는 <대부>도 좋아하는데, 그 이유가 ‘액션 영화’가 아니라 폭력을 다룬 영화기 때문이에요. 액션과 폭력은 엄연히 다른 문제거든요. 저는 폭력을 다루는 그 감도랄까, 그걸 고민하고 있어요. 나는 액션을 좋아해서 액션을 찍는데, 조용히 저를 좀 반성해보자면 너무 액션만 찍는 게 아닌가. 너무 깊이가 없는 액션만 찍었는데 이런 은은한 폭력의 세계가 더 리얼한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합니다. 다음 작품에서는...(웃음).


김성욱 - 참고로 오늘 최동훈 감독님의 제작사 직원분들도 다들 같이 오셨습니다(웃음).


최동훈 – 끝나고 술 먹으려고 같이 왔어요(웃음). 저번에도 한 번 같이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영화보고 다 같이 술 먹고 영화 얘기 했었는데, 이렇게 고전 영화 보면서 얘기 하는 게 정말 즐거운 것 같아요. 그 영화들은 정말 형식적으로 공들여 찍은 영화들이고, 저도 그렇게 찍으려고 해요. 그렇게 하려면 공부를 해야 하니까 고전 영화를 보면서 가장 클래식한 방법론을 봐야죠. 저는 이렇게 극장이 도서관처럼 느껴지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관객 1 – 그레고리 펙과 로버트 미첨의 연기 스타일에 대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관객이 본 거랑 전문가가 본 부분이 다를 것 같습니다. 


최동훈 - 그레고리 펙은 어쩔 수 없이 저 시대의 최고 젠틀맨을 연기할 수밖에 없었거든요. 그레고리 펙한테는 자유가 없었을 거예요. 악당을 연기했으면 아마 관객에게 외면당했을 거예요. 그런데 로버트 미첨은 선한 사람도 연기하지만 악당 역할도 자유롭게 할 수 있어요. 데이비드 린의 <라이언의 딸>을 보면 무력한 남자 연기도 되게 잘해요. 

아까 농담처럼 왼쪽 보고 오른쪽 보는 연기 얘기를 했지만, 저는 정말 그런 배우들이 좋아요. 리 마빈, 스티브 맥퀸 같은 배우들. 연기를 하는 건지 그냥 가만히 생각하고 있는 건지 불분명한 연기를 선보이는 배우들이 너무 좋아요. 보통은 ‘열연’하는 배우들이 연기를 잘 한다고 생각하죠.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막 우는 거. 그런데 저는 그런 연기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요. <케이프 피어>를 보면 로버트 미첨의 눈이 뒤로 갈수록 점점 변해요. 마지막에는 막 슬퍼보여요. 그런데 그게 뭔지 잘 모르겠어요. 그런 모호함이 저는 좋아요.


김의성 - 왜 시대마다 말도 계속 바뀌잖아요? 우리나라의 60년대 영화만 봐도 지금 쓰는 말이랑 전혀 다른 말을 쓰죠. 지금의 기준으로 그 연기를 평가하는 건 좀 어렵죠. 한석규씨 이전의 영화 연기까지만 해도 양식적으로 지금과는 좀 달랐어요. 한석규씨, 송강호씨가 연기하면서부터 배우들이 훨씬 자연스러운 우리 생활의 언어들을 쓰기 시작했어요. 지금 <케이프 피어>만 봐도 배우들이 조금은 양식적인 연기를 해요. 정해진 곳을 바라보는 그런 연기.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좀 답답한 느낌이 있죠. 그런데 로버트 미첨의 연기는 지금 봐도 좀 현대적으로 느껴져요. 시대를 타지 않는 그런 연기. 저 당시의 사람들은 오히려 미첨의 연기를 보면서 좀 이상하다고 느꼈을 수도 있을 거예요. 지금 영화에 그대로 나와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아요.


관객 2 – 만약 2017년에 최동훈 감독님이 <케이프 피어>를 리메이크 한다면 어떨까요?


최동훈 - 대단한 대답을 할 것 같은데 그런 건 없어요. 연출에서 가장 중요한건 배우를 캐스팅 하는 거거든요. 저는 그게 70~80%가 넘는다고 생각해요. 그럼 한국에서 맥스 케이디를 누가 해야 할까... 일단 김윤석 선배나 김의성 선배가 떠오르네요.


김의성 - 저는 아직 착해서. 하하(웃음).


관객 3 – 아까 김의성 배우님이 얘기하신 부분 중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관객들이 저런 연출을 바로 믿어줄 정도로 순수했다고 하셨는데요. 그러면 앞으로는 영화적으로 더 화려하고 더 자극적인 것들을 많이 넣게 되는 걸까요. 앞으로 영화 연출이나 연기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거라 생각하는지 두 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최동훈 – 저는 데뷔할 때부터 쌈마이라고 소문이 나서... 근데 저는 자극적인 것은 그 자체로는 죄가 없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서 <대부>에서 사람을 죽일 때 뒤에서 목을 끈으로 조르면 그 남자가 발버둥을 치면서 유리창을 차거든요. 그럼 그 유리창에 금이 가요. 딱 이 정도.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안 찍어요. 막 정말 졸라서 혓바닥이 나오는 걸 보여주고, 이렇게 해야 관객이 믿는다고 생각을 해요. 저는 자극적인 걸 좋아하지만 어떤 것을 필요하고 어떤 것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 밸런스를 맞추는 게 더 중요해요.

지금 질문은 되게 어려워요. 저도 하다보면 너무 자극적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도둑들> 때는 액션을 크게 보여주고 싶어서 건물 타는 것만 20일 정도 찍었어요. 그것만 없었으면 훨씬 쉽게 찍었을 거예요. <암살> 때는 백화점을 짓자고 하기도 했었고. 그렇게 액션의 규모를 점점 키워가는 것에 대해 반성을 하기도 했어요. 막 범위를 키우지 않아도 더 미세하고 더 디테일하게 찍는 게 더 재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의성 - 저는 과거가 아무리 좋아도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기술이 발전하고 사회가 변하는데, 이 발전된 기술로 변화된 사회를 보여주는 방법을 찾지 않을 이유가 없잖아요. 만약 <케이프 피어>의 시나리오를 지금 그대로 들고 와서 영화로 찍으라고 하면 ‘이걸 어떻게 영화로 찍어’란 말이 나올 수밖에 없거든요. 세상이 변하고 사람들의 생각이 복잡해졌어요. 옛날 영화에서 배울 건 배우는 거고, 지금의 ‘화려한’ 영화에 대해서 어떤 걸 기대하는 것도 우리 관객의 권리라고 생각해요. 



김성욱 – 이 영화에서 로버트 미첨이 연기한 캐릭터를 가만히 보면 좀 가련한데, 연기를 하는 배우의 표현이 확실하지 않습니다. 


김의성 - 이런 얘기를 그냥 하는 게 아니라 요즘 연기에 대해서 고민이 되게 많아요. 큰일났다, 나 너무 못하는데, 이런 생각이 들고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사실 <부산행>의 용석은 그 인물의 행동이 강해서 그렇지 캐릭터 자체는 굉장히 플랫했어요. 얇고, 평평했고 거기에 뭘 더 집어넣을 여지가 없었어요. 그런데 연상호 감독님이 그때 그냥 하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그렇게 했어요(웃음). 

얼마 전에 최동훈 감독님이랑 그런 얘기를 했어요. 연기를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들어서 물어 봤는데 자신을 천천히 드러내는 연기가 좋은 것 같다고 했어요. 그 말에 약간 힌트를 얻었어요. 내가 연기하는 캐릭터를 빨리 증명하려고 하지 않고 관객이 궁금해 할 것들을 남겨두는 거예요. 그러려면 겁이 없어야 되거든요. 연기에 겁을 먹으면 빨리 뭘 보여줘야 돼요. 하지만 겁 없이 ‘뭐, 언젠가는 충분히 너희들이 볼 수 있을거야’라는 뱃심이 필요한 것 같아요. 하여튼 요즘 그런 생각을 합니다. ‘연기력’, ‘연기 잘 한다’ 이런 말 보다는 그냥 그 자리에 잘 존재하는 것. 그리고 뱃심 좋게 좀 뻔뻔하게 연기하는 것. 특히 영화에서는 이런 게 좋은 연기가 아닐까, 뭐 그런 고민을 하고 있어요.


최동훈 - 저는 ‘연기파’라고 하는 말 자체도 너무 웃겨요. 그런 건 없어져야 되는 건데. 연기는 매력적인 걸 표현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 매력을 어떻게 발산하는 가에 대한 게임이에요. 우리가 저 사람이 연기를 잘 한다고 느낀다는 건 그 사람이 매력적이라는 얘기라고 생각해요. <케이프 피어>에서 맥스 케이디가 소녀를 향해 걸어오잖아요. 아무 것도 안 하고 그냥 걸어와요. 앞만 보고. 그런데 소녀랑 이렇게 딱 붙었을 때 정말 불안해져요. 이런게 정말 훌륭한 연기라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김성욱 시간이 거의 다 갔습니다. 나중에 다시 두 분 초대해서 이번에 못한 우치다 도무의 <기아해협>을 틀고 또 영화 얘기하는 자리를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의성, 최동훈 – 감사합니다.




정리 l 한동혁 관객에디터

사진 l 장혜진 포토그래퍼, 주민규 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