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아직도 정체가 궁금한 작품이다”


<매그놀리아> 상영 후 

윤가은 감독 & 이화정 『씨네21』 기자 시네토크



이화정(『씨네21』 기자) – 오늘은 굉장히 빨리 매진이 됐다. <매그놀리아>는 2000년에 국내에서 개봉했고, 무려 188분짜리 영화다. 당시에는 과잉의 영화라는 평가도 있었다. 수많은 영화 중에 왜 <매그놀리아>를 관객들과 함께 보고 싶어 하셨는지 궁금하다.


윤가은(감독) - 처음 제안해 주셨을 때, 세 작품 정도를 추천해달라고 했다. 좋아하는 영화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 나에게는 영화 한 편을 선택하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려운 일이다. 그러다 꼽은 세 편의 영화는 <안녕하세요>, <엘리펀트>, <매그놀리아>였다. 개봉 당시 <매그놀리아>를 극장에서 못 봤었다. 그때 대학교 2학년이었는데, 연극 동아리 활동을 하던 때다. 연습을 마치고 피곤한 상태에서 집에 들어왔는데 TV에서 <매그놀리아>를 우연히 보았다. 굉장히 몰입해서 봤던 기억이 있다. 이후로 이 영화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건 어떤 경험일지 궁금했다.


이화정 - 연출 데뷔 전과 후에 이 영화를 본 경험이 다를 것 같다.


윤가은 - 연출 데뷔 이전에도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때다. 당시에는 영화를 볼 때 이야기가 먼저 들어오는 편이었다. 그런데 <매그놀리아>를 보면서 처음 카메라라는 것을 느꼈다. 카메라가 이야기를 구성하는 도구로서 저렇게 활용이 되는구나 싶었다. <우리들>이 개봉한 다음 다시 <매그놀리아>를 볼 기회가 있었다. 그때는 이 영화의 조명까지 눈에 들어왔다. 굉장히 정교하게 연출된 것이었구나 싶었다. 데뷔 이후에는 아무래도 작업자로서 고민하는 것 같다. 


이화정 - 퀴즈쇼를 중심으로 엮여있긴 하지만 아홉 명의 다른 인생, 다른 삶을 다루고 있다. 관객들이 이 중 누군가에 동화되어서 188분이라는 긴 시간을 따라가게 한다는 것은 연출자로서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여러 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영화더라도 보통은 주요 인물이 있고, 그 주변 인물들로 구성이 되는 경우가 많다. 처음 <매그놀리아>를 봤을 때 개인적으로 가장 큰 놀라움은 ‘어떻게 이렇게 분배를 잘했을까’였다. 아마 폴 토마스 앤더슨을 알트만과 비교하는 이유도 거기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윤가은 - 그게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인 것 같다. 폴 토마스 앤더슨의 생각을 알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들을 한 명의 사람으로 생각하고 시나리오를 쓴 건 아닐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여러 사람들이 하나의 인간처럼 느껴졌다. 각각의 이야기보다 주제, 메시지가 더 앞섰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되게 복잡하고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산만할 수도 있는 플롯인데, 이상하게 하나의 플롯처럼 느껴지는 지점이 있다. 폴 토마스 앤더슨이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 이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는 짤막한 인터뷰를 봤었는데, 그때 ‘어떤 하나의 생각에서 출발을 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화정 - 폴 토마스 앤더슨의 작품 중에서 이 영화가 가장 순하고 착한 영화가 아닐까 싶다. 어떤 사람은 영화의 엔딩을 보고 단죄라고도 얘기하고, 이 세계가 하나로 뭉치는 것이라고 얘기도 하던데, 개구리가 쏟아지는 장면에서조차도 인물들이 서로를 위해주는 모습이 계속해서 나온다. 그런데 감독의 이후 영화에는 이런 식의 따뜻함 같은 게 없다. 이 영화의 결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윤가은 - 최근에 다시 볼 때는 이 영화에 플롯이라는 게 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처음부터 기승전결의 ‘기’가 아니라 ‘전’에서 시작된다는 느낌이다. 사람들의 감정이 들끓다가 개구리비가 내리면서 어떤 해소감이 생긴다.

개구리비가 성경 구절의 차용이라는 생각은 확실히 들었다. 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는게 일종의 단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서로 화해하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트라우마를 놓지 못하고 살던 사람들이 그 순간 기적처럼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있다.


이화정 - 개구리비를 화면 안에 구현한다는 시도 자체가 맞닥뜨릴 수 있는 비난이 있다. 개구리비가 내렸다는 기록이 실제로 있었다고는 하지만 보고도 믿기지 않는 일이다. 예전에 인터뷰에서 폴 토마스 앤더슨이 스필버그와 자기를 비교하면서, 스필버그는 동화로 이루어진 이야기를 만든다면, 자신은 동화이자 초현실로 이루어진 세계를 만든다고 말하더라. 


윤가은 - 개구리비 장면을 처음 봤을 때 무척 놀랐다. 이게 현실에서 빗겨난 판타지가 아니라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이것이 과연 우화적인, 상징적인 장면인가 싶었다. 영화 속에서 여러 인물들이 겪는 고통도 그것이 현실일까 믿기 힘든 일들이다. 말로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개구리비도 삶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 중 하나처럼 보였다. 우리에게 찾아오는 비극적인 사건과 개구리 비가 내리는 것은 크게 다른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화정 - 인물들이 모두 각자의 불행 속에 놓여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도 좀더 현자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다. 영화를 여러 번 볼수록 인물들이 점점 더 구분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필 같은 경우 어떤 사람들은 세상에서 좋은 의지를 가지고 선한 행동을 하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준다. 스탠리의 경우에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스스로 뚫고 나온다. 아무리 개구리비나 가혹한 운명 같은 것이 있다 하더라도 인물들의 의지가 그들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만드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윤가은 -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꼼짝도 하지 않고 영화를 끝까지 봤던 이유 중 하나가 스탠리였다. 그 아이는 유일하게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싫다고 이야기하고 퀴즈쇼 세트장을 빠져 나간다. 마지막에는 아버지에게 찾아와서 나에게 잘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스탠리의 존재가 유일한 희망처럼 느껴졌다.


이화정 - 사랑받는 많은 배우들이 나오기 때문에 배우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지나가는 영화다. 줄리안 무어는 이 영화에서부터 출발했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다. 특히 톰 크루즈가 이 영화에서 보여준 이미지 변신은 놀라울 정도다.


윤가은 - 오늘 큰 화면으로 보니까 정말 미치겠더라. 반 묶음 머리에 이상한 가죽옷을 입고(웃음). 정말 재수 없어서 어디까지 하나 계속 보게 되는 캐릭터였다. 톰 크루즈에게 저런 얼굴도 있었나 느꼈다. 

스물아홉의 젊은 감독이 만든 영화인데, 노장 배우부터 어린 아이까지 모든 연령층이 영화에 나온다. 이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정말 그 안에 사는 사람들 같다는 느낌을 준다. 아홉 명이 모두 모이는 장면은 없지만 신기하게 모두 한자리에 모여 합을 맞춰서 연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스물아홉이라는 나이를 생각하면 정말 놀랍다. 메이킹 영상을 찾아봤는데, 아역배우들과 호흡과 맞추면서 리허설을 하더라. 그만한 계산과 노력이 있었구나 싶었다. 


이화정 - 폴 토마스 앤더슨은 영화 학교를 갔다가 더 이상 배울 게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바로 자퇴했다고 하니, 자신에 대한 확신이 분명했던 것 같다. <부기 나이트>로 이미 명성을 얻었고, <매그놀리아>도 많이 인정받았다. 폴 토마스 앤더슨에게는 흥행 이상의 것들이 있다. 코폴라 감독은 폴 토마스 앤더슨이야말로 할리우드 시스템에 반대해서 자신의 색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자신의 색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주제의식이 뚜렷하다. 지금도 계속 명확하게 그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제목인 ‘매그놀리아’는 목련을 뜻하기도 하지만 LA에 있는 지역 이름이기도 하다. <부기 나이트>를 촬영한 곳이기도 하고, 감독 자신이 어릴 적 자란 곳이다. LA의 화려한 곳을 벗어난 평범한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보편적인’ 상처를 갖고 있다. 영화는 그것을 극복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하며 사랑을 계속 강조하는 것 같다. 도니가 치아교정을 한 것도 사랑을 위해서다. 상처들을 사랑으로 치유할 수 있다고 말하는 부분이 귀엽게 다가왔다.


윤가은 - 한편으로는 가족이야기인데, 가족한테 입은 상처를 가족 바깥의 사람으로부터 치유 받는다. 가족 공동체 내부에서 해소될 수 없는 아픔을 인정한다. 어떤 상처에 대해 그것을 부정하거나 막연히 해결될 것이라고 말하는 영화가 아니다. 


이화정 -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어떤 게 있을까.



윤가은 – 2분이 넘는 롱테이크 장면도 인상적이지만, 그냥 인물들이 대화하는 장면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예를 들어 린다가 필을 때렸다가 사과하는 장면은 처음 봤을 때부터 마음에 남았다. 필이 린다의 뒤늦은 죄책감을 진심으로 슬퍼해 주는 게 느껴졌다. 짐과 클라우디아가 대화를 나누는 귀여운 장면들에서는 언발란스한 사람들 사이의 이상한 케미가 있다. 전체적으로 움직이는 쇼트가 많은데, 대화하는 장면들에는 컷이 많지 않다. 두 인물 사이의 공기를 잡아내는 묵직한 컷들이 인상적이었다.


관객 1 - <매그놀리아>를 처음으로 극장에서 봤다. 그냥 집에서 영화를 보는 것과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에 어떤 차이점이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윤가은 - 연출자는 작품이 극장에서 상영될 때를 생각하며 영화를 만든다. 극장은 일단 영화를 중지할 수 없다. 영화라는 것을 온전히 관람할 수 있게 만드는 환경은 극장 외에는 없는 것 같다. 한 편의 영화를 보고 그 영화를 온전히 내 체험으로 만드는 건 아무래도 극장이라는 환경인 것 같다.


이화정 - 요즘 “그 영화 봤어?”라고 물어보면 “응. 그런데 1/3 남았어.”라는 식의 대답을 듣곤 한다. 영화를 한 번에 쭉 보는 것과 나눠서 보는 경험은 분명히 다르다. 후자의 관객은 분명 영화 감상에 손실이 있을 것이다.


윤가은 - 영화는 시간예술이라는 점을 점점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알트만의 <숏 컷>이 188분이다. 폴 토마스 앤더슨은 <매그놀리아>를 만들 때 알트만에 대한 오마주로 러닝타임을 일부러 맞췄다고 한다. 그 정도로 감독들은 시간에 신경을 많이 쓴다. 영화는 일정한 시간 안에 관객들에게 어떤 체험을 주려 한다. 그 목적을 지켜주는 곳이 극장이다.


관객 2 -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찍기도 하셨는데, <매그놀리아>의 아역 연기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윤가은 - 캐스팅이 놀라웠다. 스탠리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이미 어떤 슬픔 속에 있는 것 같다. 저런 아이를 캐스팅 했다는 점에 존경심이 든다. 아이들만 출연하는 <매그놀리아>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저런 식의 사연을 가진 아이들이 정말 많으니까. 한글 꽃 이름 하나 붙여서, “해바라기” 뭐 그런 걸로 하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웃음). 서로 얽히고설키면서 마지막에 노래 부르고(웃음). 언젠가 찍고 싶은 영화 목록 안에 있다. 


이화정 - 이렇게 극장에서 <매그놀리아>를 볼 수 있도록 해준 윤가은 감독에게 감사하다. 끝까지 함께 해주신 관객들도 감사하다.


윤가은 - 긴 영화를 보고 토크까지 들어주셔서 감사하다. 극장에서 보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영화를 골랐는데, 내가 영화를 분석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다 보니 사실 아직도 잘 모르는 지점이 많은 영화다. 그럼에도 내 20대를 흔들었던 영화고, 아직도 정체가 궁금한 작품이다. 오늘 이야기하다보니 새롭게 알게 되는 면도 있었다. 다양한 사람들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오늘 다시 들었다. 영화 자체에 대한 각각의 감상들을 가지고 가시면 좋겠다.



정리 l 황선경 관객에디터

사진 l 장혜진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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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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